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2)화 (12/218)

12화

다음 날 아침, 개운하게 눈이 떠……졌으면 좋았겠지만 세니아 능력치에는 오버였던 모양이다.

[어제의 지나친 활동으로 운동에 제약을 받습니다.]

[모든 능력치 –10% (23:59:58……)]

“얼씨구?”

안 그래도 콩알만 한 능력치를 뺏어가시겠다? 그때 다시 퀘스트가 떴다.

[서브 퀘스트 : 굴하지 않는 마음]

[능력치 삭감에도 굴하지 않는 멋진 모습! 오늘도 빠짐없이 운동하세요.]

[보상 : 모든 능력치+3]

“오.”

어차피 일일퀘스트는 해야 했다.

어제 소예리 헌터랑 있으면서 이거저거 퀘스트도 깬 덕에, 능력치도 꽤 올랐다.

[세니아 드 포를랭 / 25세, 일반인

체력 : 550

근력 : 25

마력 : 10

민첩 : 13

지구력 : 25

방어력 : 11]

드디어 모든 능력치가 두 자릿수가 되었습니다!

와, 오지게 축하한다!

원래 다섯 자리 이상의 능력치를 갖고 있던 나로서는 눈물 나는 상태창이었다.

“그래, 애는 키우면 되는 거지.”

난 고개를 끄덕이며 연무장으로 향했다.

일단 연무장 한 바퀴 먼저 돌고, 포를랭 1검식 시도해봐야겠다.

“되려나?”

전에 그 능력치로 능력치 비례 0.2회였는데, 능력치에 어떻게 비례하는지는 몰라도 1회를 온전히 못할지도 몰랐다.

그럼 어떡하지?

“어떡하긴, 바닥에 또 엎어지는 거지, 뭐.”

난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스킬엔 숙련도라는 게 있어서 보정 들어가면 능력치가 부족해도 괜찮을지도 몰랐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내 신조였다. 난 기지개를 쭉 켜며 연무장으로 걸어 나왔다.

“아, 새벽 공기 좋고.”

언제 이렇게 새벽에 수련해 봤더라? 처음 게이트 열리고 얼마 안 돼서?

그때는 전 세계가 난리였다.

갑작스레 나타난 게이트를 처리할 체계를 가진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우후죽순 나타나는 게이트를 막느라고 헌터들도 뭉치지 못해서 한창 혼란스러울 때였다.

그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건 자신뿐이었다.

난 그때를 생각하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일단 한 바퀴부터!”

그렇게 딱 자세를 잡는 순간이었다.

―타탁!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불쑥 뛰어내렸다.

“!”

―스릉!

놀라서 검을 뽑은 건 순식간이었다.

[히든 퀘스트 : 빠른 발검 클리어!]

[민첩성 +15]

시스템창도 대박이었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이 더 대박이었다.

내가 뽑은 날이 선 검을 맨손으로 잡은 자.

C급 검 따위에 다칠 리 없는 사람.

“신재헌?”

네가 여기서 왜 나와?

연무장에 아무도 없는 게 아니었으면 RP던전 페널티 받을 뻔했다.

내가 외마디 비명처럼 외치자 신재헌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검을 막은 손 대신 다른 손으로 내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여기선 그냥 반이라고 불러.”

“반?”

반반무많이 치킨도 아니고 무슨 반…… 하다가 뒤늦게 이놈 이름을 떠올렸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

아마 아이반에서 뗀 애칭인 모양이었다.

“알았어. 그런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지금?”

실례지만 미치셨습니까? 내가 해가 제대로 뜨기도 전인 하늘을 가리켰다.

“이 나라 망했어? 아니면 왜 꼭두새벽부터 황제 폐하가 한낱 자작 가문 연무장에서 튀어나와?”

내 말에 신재헌이 손을 펴 보였다.

―철컥.

내 검을 손수 집어 넣어주고 뒤로 물러난 그는 새하얀 셔츠에 검은 바지 차림이었다.

황제 어쩌고 하는 비싼 직함 달고 있는 사람처럼은 안 보였다.

내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자 신재헌이 웃었다.

“일반인 버전 신유리 구경할 겸, 겸사겸사.”

“……겸사겸사?”

겸사겸사라면서 다른 목적은 말하지 않았다.

어이가 없네? 목적 그거밖에 없는 거 아니냐?

장난기로 똘똘 뭉친 이놈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난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 사이 신재헌은 내게서 몇 걸음 떨어진 연무장 바닥에 앉아 버렸다.

황제 폐하고 뭐고 흙먼지는 신경도 안 쓰는 게 내가 아는 신재헌이 맞았다.

“운동 안 해?”

나를 올려다보는 짙푸른 눈동자가 깜빡였다.

난 그 눈을 보고 확신했다.

“너 구경하러 온 거지? 다른 목적 없는 거지?”

눈을 가늘게 뜨자, 신재헌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 이래 봬도 바빠.”

“그럼 여기까지 행차하면 누가 뭐라고 안 해?”

“하지.”

그가 아주 가볍게 답했다. 그러고는 제 입에 검지를 슬쩍 올려 보였다.

“그래서 몰래 나왔고.”

“……나라의 귀감이다, 이 새X야.”

어이가 없어서 비속어가 튀어나왔다.

아차 하고 입을 막아 버렸지만, 어차피 이 연무장에 있는 건 우리 둘뿐이었다.

난 결국 깔깔 웃어 버렸다.

고등학교 시절, 10년 전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뛰기나 해. 뛰면서 들어.”

신재헌이 그런 내게 손짓했다.

그래, 신재헌이 튀어나오든 몬스터가 튀어나오든 풀체력 10%를 늘려 주는 일일퀘스트를 놓칠 순 없지.

내가 바닥을 박차고 뛰기 시작하자, 신재헌이 슬그머니 따라붙었다.

S급도 A급도 아닌 일반인의 기감으로는 그가 언제 내 옆에 와서 설렁설렁 걷기 시작했는지 알기 힘들었다.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던 그가 물었다.

“계승식, 자신 있어?”

난 그 말에 그를 돌아보았다.

“왜, 자신 없으면 기간 늘려 주게?”

아무리 시일이 급하기로서니 A급짜리한테 지겠냐?

물론 능력치 차이가 크긴 컸다.

능력치가 지금보다 딱 백 배만 높아지면 어떻게 하겠는데…….

신재헌이 말이 없는 사이 난 비참한 현실을 자각했다.

사실 뱉고 보니 좀 암울한 상황인 건 맞았다. 좋은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능력치 차이가 좀 문제긴 해.”

난 결국 툭 뱉어 냈다. 그러면서 열심히 뛰었다.

뭐 어떻게든 해 봐야지. 그렇다고 멍청하게 앉아 있다가 칼 맞을 순 없잖아?

그때, 내가 속력을 내든 말든 가볍게 따라붙은 신재헌이 나를 불렀다.

“잠깐 멈춰 봐.”

“응?”

돌아보니, 그는 나를 붙잡으려는 듯이 손을 뻗은 채 말하고 있었다.

난 그 어설프게 뻗어진 손을 보다가 그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그 애매한 손은 뭐야?”

“아,”

신재헌은 무슨 불에 손을 덴 듯 내게서 손을 떼 버렸다.

“그냥.”

“평소엔 등짝도 팡팡 치던 놈이 새삼 내외를 하네.”

어이가 없어서 말하고 보니 문득 현재 이놈과 내 능력치 차이가 떠올랐다.

……아, 이놈이 지금 내 등짝을 치면 내 몸이 터져 나가겠구나.

“이거라도 하는 게 낫겠다, 너.”

그때 신재헌이 인벤토리에 불쑥 손을 집어넣어 뭔가를 꺼냈다.

아, 나 빼고 다들 헌터 인벤토리 그대로 갖고 왔다고 했던가.

그럼 이 던전에 들어올 당시 던전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던 물건은 물론 장비하고 있던 아이템들까지 들고 들어왔을 터였다.

그 아이템들 중 하나라도 줄 생각인가 보다. 하지만 그 기똥찬 계획엔 맹점이 있었다.

“나 어지간한 아이템은 못 낄 텐데.”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아서, 일반인이 아무리 좋은 S급 아이템을 둘둘 말고 있어도 그냥 비싼 인간이 될 뿐이었다.

아이템의 능력치와 사용자의 능력치가 일정 이상 차이가 나면 기능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니까.

나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기껏해야 B급 하위 정도 아이템 능력치나 조금 받을 수 있을까?

그것도 ‘격이 다른 아이템에 힘이 짓눌립니다’ 같은 시스템 메시지가 뜰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재헌이 준 물건은 내가 상상한 어느 아이템도 아니었다.

[도금 목걸이(C)를 착용하였습니다.]

어느새 내 뒤로 돌아와 내 목에 목걸이를 채워준 그는 손을 펴 보였다.

“이건 괜찮지?”

“이건…….”

태생 S급인 내가 C급 아이템을 쓸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 아이템은 나도 아는 물건이었다.

“뭐야, 이거? 아직도 가지고 있었어?”

원래 내가 신재헌한테 준 물건이었으니까. 신재헌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 보니 찾았어.”

어쩌다 보니 찾은 것치고는 때깔이 고왔다.

얘 분명히 헌터로 각성하고 나서 이거 한동안 끼고 다녔을 텐데?

근데 목걸이는 조금 전에 산 것처럼 깨끗하기만 했다.

난 목걸이를 새삼스럽게 살펴보았다.

이건 내가 10년 전에 문방구에서 그에게 사 주었던 싸구려 목걸이였다.

정확히는 게이트가 나타나고 물건들에 무작위로 랭크가 씌워지던 혼란스러운 시기에, 능력치 좋은 C급 아이템인 줄도 모르고 샀던 장난감.

‘아, 목에 짤랑거리는 건 질색이라니까!’

‘내기 졌으면 해야지!’

목걸이는 싫다는 놈한테 깔깔거리면서 내가 걸어준 목걸이.

능력치가 있는 물건이라는 것도 한참 나중에나 알았다.

내가 멍 때리는 사이, 신재헌이 목걸이를 재차 정리해 주었다. 그러면서 펜던트를 내 옷 속으로 쏙 떨어뜨려 버렸다.

가슴팍에 금속이 닿는 느낌이 선연했다. 차가운 느낌에 움찔한 내가 정신을 차렸다.

[도금 목걸이(C)의 능력치 보너스를 받습니다.]

[체력 +30000, 방어력 +5, 마력 +200, 민첩성 +5]

시스템 메시지가 줄줄이 떠 있었다. C급치고는 엄청난 능력치였지만 내 시선은 다른 데에 쏠려 있었다.

[(+‘헌터 신재헌(S)’ 애장품 보너스 : 획득 경험치 +50%)]

“아니, 애장품을 여기다 붙이면 어떡해, 미친놈아!”

이거 완전 돌아버린 놈이네!

난 머리를 싸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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