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9화 〉The Garden of...Silence (6) (99/102)



〈 99화 〉The Garden of...Silence (6)

머리에 하얀 타월을 두른 채, 지민이가 욕실을 빠져나왔다.

따스한 온수 때문인지 하얗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루아씨. 나 뭐 좀....말릴  있는데....”

몸을 닦아냈을 커다란 타월 속에 무엇인가를 숨기듯, 지민이의 손이 덮여 있었다.


“이리 줘...”

“아니....내가 할게요....”

그때서야 타월 속에 숨겨놓은 게, 지민이가 입고 있던 속옷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침실로 들어갔다.

이곳으로 이사를 한 후, 침실에 들어온 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침실은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서인지 왠지 쓸쓸해 보였다.

화장대 위에 혜린이가 사용하던 화장품들이가지런히 줄지어 서 있었다.

“저 방에......거기 화장품도 있으니까......”

거실로 나와 옷걸이 하나를 건네주자, 지민이는 침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문은 닫지 않고 그대로 열어 둔 채였다.



소파에 앉아, 어떻게 해야 할지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편하게 잘 수 있도록, 침실을 지민이에게 내어주고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거 같았다.


오래전,

매일 밤,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며 깊게 몸을 섞던,나와 혜린이의 흔적이 고스란히 베어 있을  침대를, 지민이에게 홀로 내어 주는 건, 우리 뿐만 아니라 지민이에게도 큰 실례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붉게 달아 올로 있던 지민이의 얼굴에 은은한 광채가 빛났다.

몇달 동안 주인을 잃고서 뚜껑이 닫혀 있던 화장품 몇 개가 다시 열려, 처음 보는 여자의 얼굴 속으로스며들고 있었다.

혜린이가 집에서 편하게 입던, 발목까지 오는 롱 원피스.

그 옷을 입고서, 소파에앉아 있는 내게 다가오는 지민이의 모습에 내 마음이 참 이상했다.




“춥지 않아?”

“아니...괜찮아요.”

지민이가 소파에 앉으며 답했다.

아무리 난방을 해도, 넓은 거실을 떠다닐 외풍 때문에, 방과는 분명 온도차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지민이의 얼굴에 스며드는, 그 익숙한 화장품 향기를 느끼고 있었다.



“나는 작업 좀 해야 돼서....방에서 잘래?”

“아니. 아니.....그냥....여기서....”

질문을 던지자마자, 지민이는 놀란 표정으로 답했다.

감정을 숨겨놓지 못한 것처럼, 지민이의 얼굴에 알 수 없는 작은 두려움까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지민이도 홀로 침실에서 자는 게 분명 부담이 되는 모양이었다.






다시침실로 들어가자,

까만 팬티와 브래지어가 잘 보이지 않는 구석.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예전에 내가 살던 그 집에서 보았던 나리의 속옷과 비슷해 보였다.




침대 위에 있던 이불은 그대로 놓아두고, 침실에서 두터운 요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이불을 잔뜩 들고 나와, 거실 중간에 펼쳐 놓았다.


지민이는 소파에 앉아 그런 나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추우면 말해......”

이불을  펼쳐 놓고 보니 베개가 없었다.

나는 침실로 가, 침대 위에있던 베게 두  중에 내가 사용하던 그 베개를 들고나와 두터운 요 정중간에 올려놓았다.












거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어놓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지민이는 내가 깔아 준 이불 속으로 들어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작업을 하면서도 신경이 쓰여,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계속 시선이 갔다.

지민이가 옆으로 놀아 누워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그곳을 봤을 땐.

이제 막 잠들듯, 흐릿하게 변한 눈이 천천히 깜빡이며 나를 향해 있었다.

무거운 눈꺼풀이 천천히 눈을 가렸다가 다시 열리는.....그 기다란 눈썹에,  참고 있던 욕망이 다시 끌어 올랐다.

아니 어쩌면,지민이가 택시에서 내려, 테라스로 걸어 올 때부터 였는지도 모르겠다.

타이트하게 몸을 감싸고 있는, 까만 레더 스키니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몸을 계속 몰래 봤었다.

나를 향해 천천히 감기는 지민이의 기다란 눈썹이....어서 그리로 자신을 안아 달라는 그런 손짓처럼 보였다.



손은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지만, 릿리속에선......속옷을 입지않고 있을 지민이의 몸이 자꾸 떠올랐다.

욕망에 완전히 지배되어,

거실에 홀로 누워 있는지민이의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그 몸을 마음껏 만지고핥아 대도, 어쩌면 지민이는 그런 나를 말없이 받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없었다.

여자의 달콤한 그 몸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내 몸뚱어리가 너무나 천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비엔티안에서 침대에 축 늘어져 있던 혜린의 새빨갛게 부어 있는보지를 개처럼 빨던 그 PD와,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매일 밤 혜린이를 만나러 이곳을 찾아왔던,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혜린이의 보지 속에 그대로 정액을 싸 놓고, 자신의 정액으로 범벅이 되어있는 자지를 흔들어 세워 또다시 혜린이의 보지 속에 쑤셔 넣고 미친 듯이 움직이던 그 사내.


나리를 벽에 바짝 밀쳐 놓고, 탐스런 빨간 입술을 깊게 빨아대며 손으로 보지를 쓰다듬던 레스토랑 사장과,

내가얼굴을  수 없는 남자들의 모습까지도.......떠올랐다.



어찌 보면 나도, 그들과 다를 것 없는 욕망에눈이 먼 천박한 인간인  같았다.


나를 향해 있던 지민이의 흐릿한 눈이 깊게 닫혀 있었다.













눈이 떠졌다.

어둡던 거실이 환하게 변해 있었다.

온몸이 뜨거운 난로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새벽녘에 소파에 쓰러져 눈을 붙였었는데....

나는 거실에 깔아 놓은 이불 속에 누워있었다.

몸은 너무나 뜨거웠지만, 하루 종일 편하게 잠을 잔 것처럼 깨운 했다.

그리고 매일 밤 나를 괴롭히던 꿈도 꾸지 오늘은 않았다.



지민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불을 슬쩍 들춰보니, 지민이의 얼굴이 내 가슴에 깊게 닿아 있었다.

밤새 추웠는지 내 품속에 지민이가 꼭 안겨 있었다.





“으으음......”

가슴에 조금 거친 소리가 울렸다.



“추웠어?”

“조금.....”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들릴 듯 말 듯한 희미한 소리였다.


“으음....”

가슴에서 또다시 그 소리가 들리고, 이미 조금의 틈도 없는 내 품속으로 지민이가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지민이 허벅지가 내 허벅지 사이를 깊게 비집고 들어와, 어젯밤부터 발기되어 있던 성기를 지그시 눌렀다.


“아아.....”

지민이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자면서 추위에 뒤척였는지, 발목까지 내려 있던 롱 원피스 끝이, 허리까지 올라와 있었다.

지민이의 허리를 꼭 감고 있는 내 손에서 뜨겁게 달아올라 있는 맨살이 조금 느껴졌다.


내 허리 위에 힘없이 올려져 있던 지민이의 손이 내 등을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꿈 꿨어.....”

“무슨 꿈?”


하지만 지민이는 답이 없었다.





“수능시험 전날 이후론 한 번도 꿈을 꾼 적이 없는데.........”

“무서운  꿨어?”

지민이의 몸이작은 몸서리를 치듯 살짝 떨렸다.


나는 지민이의 허리를 감고 있던 손으로, 지민의 등을 천천히 토닥여 주었다.


언젠가 내가 아름이의 등을 그랬던 것처럼.....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런 소리에 다시 잠에서 깨어났다.

지민이는 여전히 내게 꼭 안겨 잠들어 있었다.

어지럽게 서로의 몸을 휘감고 있던 팔과다리를 풀어내고 이불 속을 빠져나왔다.


오전 10시가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테라스 유리창엔 한밤 거실의 열기 때문인지 습기로 가득했다.

유리창에 붙어 있는 습기를 손으로 닦아냈다.

제설차가 이제  우리 집 마당을 돌아, 다시 언덕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루아씨.....이거.....무슨 소리예요?”

이불 속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밀어 놓은 지민이가 눈을 부비며 나를 보고 있었다.
















도심으로 향하는 길엔 온통 눈 천지였다.

운전을 하는 중에도 도로를 바삐 오가는 제설차의 모습이 계속 보였다.

“조금 늦을 거 같은데.....옷도 못 갈아입고어떡해?”

“괜찮아요. 축의금 내고, 나리 얼굴만 잠깐 보고 나오려고요....”


어제와 같이 화사하게 화장을 한 얼굴로 조수석에 앉아 있는 지민이가 말했다.

시간은 벌써 11시 50분이었다.

12시에 시작한다던 나리의 결혼식에 어쩌면 조금 늦을 거 같았다.


차안엔......혜린이의 화장품 향기로 가득했다.













 차가 도착한 곳은,

넓은 강이 내려다보이는, 이 지역에서 유명한 특급호텔이었다.

호텔 로비 입구에 도착해 차는 멈춰 있었지만. 차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조수석에 앉아, 나를 바라보는 지민이의 얼굴엔 어제와 같이 또다시 무슨 할 말로 가득 차 있었다.

지민이는 복잡한 그것을 머릿속으로 하나씩 정리해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루아씨. 건강 챙겨요. 매일 식사 그렇게 하지 말고.....”

“응..”

“그리고 혜린씨 딸......”

지민이가 말을 하다 멈칫했다.

“그건 내가 알아보고.....연락할게요...”

“고마워...고맙다...”



“그리고.....”

“응?”

“아.....아니예요. 조심해서 가요.”

지민이는 끝내 마지막 그 말을 들려주지 않고 차를 떠났다.

호텔 로비로 들어가는 지민이의 뒷모습을 나는 물끄러미 보고 있을 뿐이었다.




호텔 앞.

화려하게 장식된 로비 입구를 지나, 다시 도로로 빠져나가려던 차가 급하게 멈춰 섰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차는 빙글 돌아, 다시 호텔 로비 쪽을 향했다.



내 차가 향한 곳은 호텔 지하 주차장이었다.

차들로 빼곡히 주차되어 있는 지하 주차장 끝에 차를 밀어 넣었다.




미련은 아니었다.

마지막이 될.....

나리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한번 보고 싶었다.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었지만, 왠지 그러고 싶은 마음이었다.




뒷좌석에 있던 검은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까지도 고민하고 고민했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이미 호텔 로비가 있는 쪽을 향하고 있었다.


호텔 로비에 있는 ATM에서 현금을 인출했다.

다행히 ATM에서 튀어나온  돈은 모두 구김 하나 없는 신폐였다.

호텔에서 하나뿐이 웨딩홀.

멀리서 보이는 입구엔 커다란 화환들이 줄지어  있었다.

나리가 다니는 항공사 대표 이름이 적힌 화환도 놓여 있었다.


예식이 한참 진행 중인지 식장과는 조금 떨어져 있는 밖에서도 마이크 소리가 들려왔다.

신랑 김 두현
신부 고 나리

커다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식장 입구, 커다란 판넬에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나를향해 있었다.



“봉투 하나 주실래요?”

“아...네......”


신부측 축의금을 접수하는 곳에 앉아 있던 한 여자가 내게 하얀 봉투를 건네주었다.

친척인지....그 여자의 얼굴이 나리와 어딘가 조금 닮아 있었다.

화려한 이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내 옷차림과....행색......

 여자가나를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갑에서 꺼낸 오만원권 현금 뭉치를 하얀 봉투에 모두 집어넣고서.......그 여자에게전해줬다.

“저기....성함을.....”

마이크 소리가 흘러나오는 식장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그 여자가 나를 불렀다.

“성함을 안 적으셔서.....여기  드릴게요....”

그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하얀 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서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대학 선배...]

여자가 건네준, 검은 사인펜으로 그렇게 적어 놓고 식장으로 들어갔다.



어둡게 불이 꺼진식장 안, 천정에 장식된 수백 개의 전구가 화려하게 반짝였다.

식장은 하객들로 가득차 있었다.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이 두 사람의, 오늘의 숭고한 약속은.............”

패션쇼장의 무대처럼 조금 높게 올라와 있는 그곳에만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었다.

수많은 하객들이 원형의 테이블에 앉아,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뒷쪽엔 테이블을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끝을 알  없을 정도로 길게 꼬리를 늘어트린 순백의 웨딩드레스....



가장 안쪽 커다란 화면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나리의 하얀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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