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The Garden of...Silence (2)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려 댔다.
나를보곤 뒷걸음질치다 거실 바닥에 쓰러졌던 남자가 밖으로 뛰쳐나간 지, 10여분 정도가 지난 후였다.
하지만 나는 계속 웅크린 채 소파에 앉아만 있었다.
몸이 얼어붙어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힘겹게 숨을쉴 때마다, 입에선 연기 같은 하얀 입김이 계속 뿜어져 나왔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굳어 있던얼굴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돌아갔다.
두터운 경찰정복을 입은 두 사람이 거실로 들어서, 소파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있었다.
두 사람 중 여경은 나를 보다가 시선이 위쪽으로 이동해 잠시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아마도 소파 위에 걸려 있는 혜린이의 그 사진을 보고 있는 듯했다.
“저기.....선생님?”
젊어 보이는 또다른 남자 경찰이 소파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여기 집 주인분이.....신고가 들어와서 왔는데요.....
선생님 왜 남의 집에 들어와 있어요?”
남자 경찰이 소파 바로 맞은편, 테이블 앞까지 다가와 물었다.
여경은 남자 경찰 뒤에 한걸음 물러서 나를 보고 있었고, 경찰에 신고했다던 그 남자는 현관 입구에 서서 여전히 놀란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남자 경찰이 의심스런 눈으로 내 얼굴을 이리저리 찬찬히 살펴보고 있었다.
“선생님. 어디 아프세요?
여기서 밤새 주무신 거예요?”
말을 하는 경찰의 입에서도 하얀 입김이 길게 뿜어져 나왔다.
“네....”
“선생님. 남의 집에 이렇게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됩니다.
무단 침입은 3년 이하 징역을 받을 수도 있어요.”
“죄송합니다....”
할 말이 없었다.
“술 드셨어요?”
“아니요....”
“그럼 왜 여기....
현관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고 들어 왔어요?”
“여기....살았어요....”
“네?”
내게 말을 하던 경찰이 고개를 돌려 현관에 서 있는 그 남자를 돌아봤다.
그 남자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경찰과 잠시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선생님 여기 살았다고요? 지금은 저분이 집주인이라는데요?”
“아이....저희가....몇달 전에 여기 인수를 했어요.”
현관에 있던 남자가 서둘러 답했다.
“신고하신 분, 여기주인 맞죠?”
“네! 맞아요!!!”
남자 경찰이 벽에 걸려 있는 혜린이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반면, 뒤에서 서 있던 여자 경찰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저기....사진에 있는 여자분이 집주인이신 거 같은데.....지금 어디 계시죠?”
“아니...그건요.....여기....전 주인인 거 같은데....”
여자경찰의 물음에 현관에 서 있던 남자가 답했다.
“죽었어요....”
“네?”
대화가 오가던 거실이 내 한마디에 조용해졌다.
“선생님? 지금 뭐...뭐라고 하셨어요?”
“나하고 여기서 같이 살던 사람인데요...
몇 달 전에....나하고 같이 택시 타고 가다가.....사고가 나서.....죽었어요....그 사람은....”
갑자기 눈앞이 흐려졌다.
내게 묻던 여자경찰의 얼굴도 덩달아 희미하게 번져갔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자, 내 무릎에 올려져 있던 그 예쁜 상자 위에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어....저기 선생님 일단....신분증......”
경찰의 목소리가 조금 변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지갑에서 꺼낸 운전면허증을 건네줬다.
거실엔 한동안 경찰이 들고 있던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울려 댔다.
“집 주인분은 잠시만......”
남자경찰이 현관 쪽으로 다가가, 신고를 했다던 그 남자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여기 주인 바뀐 건모르셨어요?”
여자경찰이 물었다.
“네...”
“아무리 그래도....”
“어젯밤에 한파경보였는데....여기서 주무신 거예요?”
“네...”
“얼굴이 너무 창백한데....몸은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집 주인분하고 이야기 중이니까, 잠깐만 계세요.”
여자경찰이 집을 빠져나갔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지금 내 꼴이 그랬고......이 상황이 그러했다.
“이것 좀 드세요...”
테이블 앞에 보온병에 들어 있을 법한 작은 플라스틱 컵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컵에서도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입김처럼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감사합니다.”
여자경찰이 내 앞에 놓아둔 그걸 천천히 마셨다.
마시기 좋은 따뜻한 온도의 무슨 차 같았다.
그걸 몇 모금 마시자 비로소 나는 또다시, 냉혹한 현실의 세계로 천천히 돌아오고 있었다.
“저기 선생님. 저희가 확인은 해봤고, 집 주인분하고 이야길 좀 했는데요...
다시는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남자경찰이 다시 거실로 들어오자마자, 내게 말했다.
“네....죄송합니다.....”
“몸은 괜찮아요? 아프신 곳은 없어요?
병원에 가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네 괜찮습니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소파에서 일어났지만, 현기증이 쏟아져 몸이 휘청거렸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네...”
그렇게 경찰들과 함께 그 집을 빠져나왔다.
집주인은 마당에서 홀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사람 참.....아이....놀래라.....”
나를 보곤 그가 말했다.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그에게 몇 번이고 고개 숙여 사과를 하고 차로 갔다.
“바쁘신데....고맙습니다...”
“뭘요...저희 일인데요...”
뒤에서 집주인과 경찰의 대화가 들려왔다.
“집 참 예쁘다....이런 집은 얼마쯤 해요?”
“아이고...말도 마세요.
급매로 나온 거, 저희가 괜히 잡았다가..
계약이 안 돼....계약이.....
집 보러 오는 사람도 없고,
저희도 고생입니다.
팔리지도 않고...세도 안 나가고, 싸다고 덜컥 구매했다가......”
뒤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에,
얼음장 같은 차 문을 열려는 내 손이 그대로 멈췄다.
그리고 내 몸이 돌아서,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해갔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네?”
대화를 나누던 집주인과 경찰의 시선이 다시 그쪽으로 다가가고 있는 내게로 향했다.
“이....이 집....내 놓으셨어요?”
“네? 네네....”
“제가...여기 살게요......원하시는 대로.....
월세든 전세든.....달라는 대로 다 드릴 테니까....
내가 여기 살게요.....”
간절히 애원하는 내 목소리가...
그렇게 한참 동안 그들 앞에 울려 댔다.
[어머! 그렇게 갑자기요?]
[죄송합니다. 사정이.....]
[혹시 결혼해요?]
[아...그게...]
[어머....축하해요!
여자친구하고 그렇게 다정하게 지내더니...
그래도 오랫동안 거기 살다가 이사 간다니까 섭섭하네....
그 집 신혼집으로도 좋은데.
나는 루아씨 거기 계속 있었으면 좋겠는데.
하긴.....요즘 신혼집은 다 아파트니까.....
아쉬워도 할 수 없죠.
급한 거 같은데,
제가 그렇게 편리 봐 드릴게요.
내일 오전에 입금할게요.]
[너무 감사합니다.
저도 갑자기 이렇게 돼서 너무 죄송합니다.]
[아휴...그러지 않아도 돼요.
그 집이야, 내놓으면 바로 나가는 집인데 뭐...
루아씨. 청첩장 꼭 보내줘요!]
[아...네...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집주인과 통화를 끝나자마자,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이 집.....
어머니가 추모공원의 소나무아래, 영원히 잠들었던 그날....나는 본가를 떠나 이곳으로 왔었다.
5년이넘는 시간 동안 이 집은 내게 추억으로 가득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이 집.....이제 나는 이렇게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며칠 전, 혜린이의 집 앞에서 나는 그 집주인에게 애원하고 애원했다.
그리고 경찰이 그곳을 떠나기도 전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나는 집주인에게 계약금을 송금했다.
참 아이러니했다.
그 집주인은 내게 매매를 원했다.
집 주인이 제안한 매매 금액엔 집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
혜린이의 손길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전자제품과 가구 일체를 포함한 금액이었다.
집주인이 원한 금액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의 전세금과,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나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그 통장에 남아있는 그 돈.
그리고 그리 넉넉치는 않았지만, 몇 년 동안 내가 작업을 하며 조금씩 모아뒀던 그 돈을 모두 합한 금액과 같았다.
내겐 너무나 다행스러운 우연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소파에앉아 있다가, 스마트폰 통신사 어플에 접속해 번호를 정지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밤....그리고 새벽을 넘는 시간까지 홀로 짐을 싸고 있었다.
“왔어요? 근데 짐이.....이게 다예요?”
혜린이의 집 앞에 도착하자, 집주인이 벌써 도착해 있었다.
내가 알려준 이 집에 트럭도 조금 일찍 도착해 있었다.
나는 내가 필요한 것들만 싸서 이곳으로 왔다.
TV나 냉장고 등의 전자제품과 침대와 가구 따위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그 집에 그대로 두었다.
나는 잔금을 그 사람에게 바로 이체해줬다.
“다 됐습니다....”
“그래요 그래요....확인했어요.
내가 그쪽 형편을 알아서 그런데...
저희도 부동산이다 보니까. 수익을 내야 되는 거고...”
“아닙니다...여러모로 감사합니다.”
“저기....잘 살아요....젊은 사람이.....너무....상심하지 말고.....”
나를 보는 이 남자의 표정이 그리 밝지가 않았다.
그는 차를 타고 그렇게 이곳을떠나갔다.
트럭으로 싣고 온 짐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박스가 하나씩 열려, 자신의 자리를 찾아 갈 때마다, 오랫동안 뭉쳐있던 내 마음도 조금씩 풀려나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참으로 기뻤다.
내가 이 집에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했다.
한참을 거실 이곳저곳을 가로질러 다니기를 반복하다, 흘러내리는 땀에, 잠시 쉬고 싶어 거실 바닥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품고서, 거실을 조용히 둘러보다 마주친 눈빛.
벽에 걸린 커다란 사진.
혜린이가 나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