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Harmonia (11)
“이...씨발년이!!!
고..고나리....내가 이건 죽을 때까지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그날.........”
남자의 말이 뚝 그치자,
위에서 들려오는 소음으로 소란스럽던 2층 계단이 잠시 정적에 빠져버렸다.
“너 그날.
마지막으로 봤던 날.
내 친구들하고 처음 같이 술 마시던 날.
여기서 술 마시고 2차로 다 같이 우리 집에 갔을 때,
내가 약 빨고 자는 사이에 뭐했어?
두현이하고 선태하고....뭐했냐고!!!”
또다시 찢어질 듯한 고함소리가 귓가에 쩌렁쩌렁 울려 댔다.
“너 그날, 내가 자는 사이에 몰래 거실에 나갔지?
씨발년아!
너 그날, 그 새끼들하고 떼씹했지?
어!!! 그 새끼들한테 돌아가면서 대줬지? 개같은년아!!
내가 모를 줄 알아?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까.
니 보지에 좆물덩어리가 가득 차 있던데...
뭐했어?
아침까지 그 새끼들하고 뭐했어? 어? 말해봐!!!
“미친 새끼!!! 비켜!”
나리의 소리였다.
“솔직히 말해봐!
너 그 새끼들한테 밤새도록 대줬지?
씨발년이 술 처마실 때도 그 새끼들한테 실실 웃으면서 꼬리 치더니...
두현이 그 새끼가 치과의사라고 하니까,
니가 그 새끼 보는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어.
씨발년아! 그 소리 들으니까 보지가 벌렁벌렁 거렸어?
너 그날 그새끼한테 밤새도록 대주고 나 몰래......다시 둘이 만났지?
내가 웬만하면 모르는 척, 넘어가려고 했는데.
왠지 알아?
씨발년아! 니가 그렇게 걸레 짓을 하고 다녀도, 너 하고 잘해 보려고 그런 건데....
지금 와서 뭐? 결혼을 해?
누구 마음대로?
당장 룸에 가서 니 옆에 있던 그새끼한테, 니가 어떻게 구르고 다녔는지 다 말해볼까?
니가 나 만날때마다 약 빨고, 어디서 어떻게보지를 벌려줬는지,
레스토랑 룸에서,
사무실에서.
차에서,
모텔에서,
우리집에서,
그리고 공항에서...
니가 나하고 어떻게 놀았는지 다말해볼까? 그 새끼한테?
뭐? 결혼을해? 미친년이!
너는 절대 그 새끼하고 결혼 못해!
이리 와봐! 씨발년아!
오랜만에 니 몸 좀 확인해보자!”
철문에 무인가 심하게 부딪치는 ‘쿵’ 하는 소리가 계단에 울렸다.
“흐흐흐....내가 니 몸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알아?
다른년들하고 떡칠 때도 니 몸만생각했다.
너는 씨발년아....나하고 같이 살아야 돼.
너는 절대 못 벗어나.
가만히 있어봐....
하아! 하아! 하아!”
잔뜩 흥분해, 당장이라도숨이 넘어 갈 듯한 남자의 거친 숨소리였다.
은밀한 침실에서나 흘러나올 법한 그런 소리들이, 내가 서 있는 아래층으로 조용히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것 봐.....흐흐흐....젖었네...
니 보지 벌써 젖었다.
나리야 어때?
이렇게 만지고 쑤셔주니까 옛날 생각나지?
내가 처음 너 만난 날,
그 Bar 5층에서 니 보지 만질 때.
내가 얼마나 꼴렸는지 알아?
너 같은 년은 처음이야 씨발년아......너는.....너는.....
얼굴도 색스럽게 생긴 년이....보지는....
뒤로 돌아봐!
니가 좋아하는 내 좆대가리 박아 줄게....”
날카로운 하이힐 소리가 아니라, 묵직한 구두 소리만이 계속 들려왔다.
“하아...하아....나리야...내가 진짜 잘할께.....응?
나 정말....
아...씨발년아! 사랑해.....
다리 좀 벌려 봐바.....”
“그 손....치워!”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였지만.
분주하게 움직이는 묵직한 구두 소리는 계속 울려 댔다.
“뭐...뭐하는 거야?
어디다 전화하는 거야?”
계속 들려오던 구두 소리가갑자기 뚝 그쳤다.
[아버님! 왜 안 오세요?]
시종일관 서슬 퍼런 칼날처럼 바짝 서 있던 그 목소리가 순식간에 변해 있었다.
[네. 저희는 먹고 있어요.
아버님 언제 오세요?]
남자의 마음을 한순간에 녹아내리게 하는, 짙은 애교가 잔뜩 섞여 있는 간드러진 그 목소리.
[네. 안 그래도 여기 사장님이 방금오셔서 이것저것 챙겨주고 있어요.]
[지금 사장님 옆에 계세요.
네! 아버님 잠시만요 바꿔 드릴게요.]
“뭐....뭐야.....누...누구야...”
남자의 떨리는 목소리,
개미처럼 속삭이는 소리가 이곳까지 간신히 흘러내려 왔다.
묵음이 된 듯, 5초 정도 조용하던 이곳에 떨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여...여보세요?]
[네? 아......본부장님.....아 네네....]
[네. 안 그래도....제가 잘 챙겨 드리고 있습니다]
[아........네에....]
[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요.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네네....]
너무나 예의 바르게......좀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시종일관 굽실거리던 남자의 통화가 그렇게 끝났다.
“니 맘대로 해.
그리고 더이상 아는 체도.....연락도 하지 마.
구역질 나니까!”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무엇이 원상태로 돌아가는, ‘딸깍’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듣기 싫은, 금속을 긁어 대는 쇳소리와......커다랗게 ‘’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이곳은 이내 조용해졌다.
홀로 남은 남자의 거친 숨소리만이 계속 들려왔다.
다시 룸으로 들어섰을 땐,
서연씨만이 조용히 테이블을 지키고 있었다.
“오빠! 본부장님 좀 있음 오신대요.
나리씨는 좀 전에 전화받으러 나갔어요.”
“응...”
서연씨에게 차 키를 건네주고, 내 자리 앞에 있던 와인잔을 들고 창가로 갔다.
수많은가로등 불에 황금빛으로물들어, 눈부시게 반짝이는 호숫가가 참 보기 좋았다.
내가 자리를 비운사이,
그렇게 부드럽고 진하던 키안티 와인의 맛이 처음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온갖 더러운 공기가 침투해, 오랫동안 산화되어 버린.
지독한 산미가 잔뜩 느껴지는 씁쓸할 맛으로 완전히 변질되어 있었다.
변질된 이 와인의 맛이,
마치 지금 이 순간 내 인생같았다.
“오빠! 괜찮아요?”
서연씨가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보며 창가로 다가왔다.
“뭐가?”
“혜린씨.....”
“서연아....그날.....혹시 내가 우리집 베란다에서 목 매달았어?”
순간 서연씨의 눈빛이 한없이 떨렸다.
지우고만 싶었던 뭔가가,
나로 인해 다시 생생하게 기억이 난 듯, 금방이라도 울어 버릴 거 같은 그런 표정이었다.
사실 그날의 일이, 아직까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건조대가 완전히 사라진 베란다를 올려다볼 때마다......이상하게 목이 너무나 아팠다.
누구가가 내 숨통을 바짝 조여오는 것처럼...
서연씨는 떨리는 눈으로 나를 볼 뿐,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걱정돼.....”
서연씨가 내 뺨을 감쌌다.
나를 보는 그 눈빛이 너무나 슬퍼 보였다.
“오빠....힘내요....
혜린씨....좋은 곳으로 갔을 거예요...”
“그날...혜린이 떠나던 날....사람들 많았어?”
“아니요. 그냥....가족들끼리 조용하게 장례 치뤘어요.”
“아름이는 봤어? 혜린이 딸.....”
“아니요. 못 봤어요.”
서연씨의 화사한 눈가가 글썽거렸지만, 눈빛은 여전히 내게 꼭 맞춰 놓고 있었다.
“앞으로....혜린씨 보러 갈 때....
꼭 연락하세요. 혼자 가지 말고요....네?”
나는 서연씨의 얼굴을 계속 들여다봤다.
나와 눈을 꼭 맞추고 있는 그 얼굴이 조금씩 다른 얼굴로 변해갔다.
“오빠.....”
한참을 망설이던 서연씨가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내 입술은 서연씨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입술에 깊게 닿아 있었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와인 향으로 온통 젖어 있는 작은 혀가 내 입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어머! 죄...송합니다!!”
갑작스런 인기척에 옆을 돌아보니, 문 앞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가 들고 있는 접시엔 새로 주문한 음식이 놓여 있었다.
내 바로 앞에 서 있던 서연씨의붉은 입술이, 타액으로 젖어 온통 번들거리고 있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그 여직원이 음식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급하게 룸을 빠져나갔다.
여직원이 빠져나간지, 몇 초도 되지 않아 다시 문이 열렸다.
나리였다.
나리는 창가에 서 있는 나와 서연씨를 보고 있었다.
나리의 모습은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와 똑같았다.
얼굴을 빛나 보이게 하는 화장, 길게 풀어헤친 부드러운 머릿결.
달라진거라곤,
와인 빛으로 보기 좋게 물들어 있는 볼과....
아버지가 입사선물로 줬던,
나리의 가느다란 팔목을 감싸고 있는 반짝이는 명품 시계, 그 주위가 누군가의 손에 꼭 잡힌 듯 빨갛게 변해 있었다.
한 20분 정도 지나자 아버지가 도착했다.
아버지는 룸에 들어오며 나를 여기저기 찬찬히 훑어 봤다.
“미안하다....좀 늦었지?”
“아니에요. 아버님.
주말에도 많이 바쁘신가 봐요?”
나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야....김사장이 이 와인을 내줬어?”
아버지가 자리에 앉으며, 레스토랑 사장이 들고 왔던 그 키안티 와인을 보며 말했다.
“다행히 많이 신경 썼네....김 사장이...”
“본부장님, 식사는 하셨어요?”
“응....저녁은 먹었어.”
아버지가 옆에 앉아 있던, 서연씨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고 있었다.
테이블에 아버지가 좋아하는 안주 몇 개가 추가되고, 새로운 와인 하나가 더 오픈 되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너희들....이제......결혼하는게 어떻겠니?”
아버지는 한참을 고민하다 말하는 거 같았다.
혜린이가 내 곁을 떠나고 나서, 3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 아버지로부터 또다시 결혼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아버지의 말에 나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무슨 죄를 진 사람처럼, 시선을 가만히 아래로 떨궈 놓고 있었다.
“이제 나리도 여기 공항에서 일하고...
너희둘이 자주 볼 수도 있고,
결혼하고 나면 좀 더 안정되고.......”
아버지는 내 얼굴을 보며 말끝을 흐렸다.
지금까지 내 눈치는 거의 본 적이 없는 아버지가, 이젠 내 눈치를 살펴가며 그렇게 조심스럽게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내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할게요.....결혼....”
고개 푹 숙이고 있던 나리가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동시에 아버지와 서연씨도 나리와 비슷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 결혼할게요 나리하고.....”
“나리야....나하고....결혼해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