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0화 〉Harmonia (10) (80/102)



〈 80화 〉Harmonia (10)


“참! 그리고 이거...”

레스토랑 사장이 와인 병을 조심스레 받쳐 들고 있었다.

“사장님! 그 와인 뭐예요?”

서연씨가 물었다.


“이태리 키안티 와인인데요.
한번 드셔 보시라고요. 서비스입니다.”

“어머! 비싼  같은데.....”

“하하하.....본부장님 손님들한테 이 정도야 뭐...

이거 굉장히 맛있어요.

저희 레스토랑에서 직수입하는 거라,  달에 20병 정도밖에  들오는 귀한 겁니다.

다른 와인에 비해 도수는 좀 높은편이라서, 맛있다고 급하게 드시면 금방 취합니다.”


사장이 시선이 다시 나리를 향해 있었다.

하지만 나리는 그 시선을 피해, 다른 곳으로 천천히 이동해갔다.


“그럼....필요한  있음 말씀하시고요.”

“네! 사장님 고맙습니다.  마실게요!”

서연씨의 인사에 사장이 마지막으로 나를 한번 둘러보곤 룸을 빠져나갔다.


나리는 내게 건네줄 음식을 하얀 접시에 꼼꼼하게 발라내고 있었다.



“오빠, 왜 갑자기 정장을 입고 왔어요?
갑갑한 거 싫어해서 잘 안 입잖아요?”

먹기 좋게 발라낸 음식이 담긴 접시를 나리가 내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냥. 오랜만에....그냥 입어 봤어.”

“너무 잘 어울린다.....”

나리의 반짝이는 눈빛이 내 얼굴 주위에 계속 맴돌았다

서연씨는 그런 우리를 보며 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와달리 눈빛은 깊은 근심이 담겨 있었다.




“나리씨는 요즘 어때요? 공항에서 근무는거.....”

“네.  만해요. 비행할 때보단 훨씬 편해요.”

이따금씩 나리와 서연씨는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 둘의 분위기가 내겐 자꾸뭔가 어색하고 불편해 보였다.


아버지는 많이 늦을 모양이었다.

아버지 소식이 잠깐 궁금했지만, 서연씨에게 묻지는 않았다.

레스토랑 사장이 두고 간, 이태리 키안티 와인을 오픈했다.

코르크 마개를 열자마자,
굉장히 부드럽고 진한 향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오빠! 제가 드릴게요....”

맞은편 서연씨가내가 오픈해 놓은 와인을 받아 들어, 내 잔을 채워줬다.

나리는 그런 서연씨를 가만히보고 있었다. 표정이 좋지가 않았다.

와인잔을 빙글빙글 돌려보니, 너무나 진했던 그 향기가 조금씩 옅어져, 달달한 꽃향기로 변해갔다.



“어때요?”

“맛있다...”

나는 그 와인을 나리와 서연씨에게 따라주었다.





온종일 멍하던 머릿속이,

오랜만에 내 몸속에 깊게 스며드는 알콜.......와인 때문인지 조금씩 개운해져 갔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계속 소리가 들려왔다.

나리의 빛나는 명품 핸드백 속에 들어 있는 스마트폰 진동소리인 거 같았다.



나리는 그걸모르는지 계속 대화를 하다가, 그 소리의 간격이 잦아질 때쯤, 핸드백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을 했다.


나리는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를 확인하고.

간단한 답장을 보내고.

전화를 걸어, 항공사 선배로 보이는 사람과 통화를 했다.

누군가와 통화하는 나리의 모습이 참 예뻤다.

공손한 말투와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그 목소리...

하지만 내 머릿속엔,

작은 유리상자 속에갇혀 있던 혜린이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작은 아름이의 얼굴까지도....






[여보세요?]

[네. 맞아요]

[아.......네...알겠습니다]

전화를 받던 서연씨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차  빼달라고 하네요.”

주차장이가득 차, 도로변에 주차를  것 때문인듯 했다.



“내가 갔다 올게...”

나는 룸이 조금답답했다.

나리와 서연씨의 알 없는 미묘한 분위기도 그랬고,

나는 와인만 계속 마실 뿐, 자꾸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담배도 한 대 피우고 싶었다.


“그러실래요?”

“응. 차  줘”


서연씨에게 키를 건네받고, 룸을 빠져나왔다.


도로변에 차가 좁은 간격으로 다닥다닥 줄지어 서 있었다.

공간이 좁아, 서연씨  바로 뒤에 주차돼 있던 차가 빠져나갈 수 없어 보였다.




차를 몰고 레스토랑 옆 골목을 따라 천천히 돌았다.


토요일이어서인지 호수 주변으로 몰려나온 차들로 주차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레스토랑 반대쪽 골목 끝에 차가 한대  빠져나가는 걸 보고, 서둘러 그곳에 주차했다.



건물 뒤편 입구에 레스토랑 간판이 작게 붙어있는 걸 보니 아마 뒷문인 것 같았다.


건물 입구로 들어가는 계단에 쪼그려 앉아, 담뱃불을 붙였다.

오늘은  이상한 날이었다.

해가 떨어지면 기온이 항상 10도 가까이 떨어져 있었는데, 오늘은 유난히 포근했다.



혜린이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천국의 정원에서,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그렇게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까?


나만 홀로 이렇게 남겨져 있는  원망했다.

사고가 났던 그날,

나도 깨어나지 못했다면,
지금쯤아마.....혜린이와 함께 있을 수 있었을 텐데....


비엔티안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혜린이를 처음 본 그 순간,

머릿속엔  순간만 계속 리플레이 되고 있었다.



술이 더 마시고 싶었다.

조금 전, 레스토랑 사장이 내어준  와인이 입속에 계속 맴돌았다.


담배 두어 개를 연달아 피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뒷문으로 들어가니 계단이 보였다.

건물 뒤편에 있어서 사람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 곳인지, 계단을 어슴푸레 밝혀 놓은 등이 수명을 다해가는 것처럼 무척 어두웠다.


계단을 올라갔다.

2층에 올라서 코너를 돌아, 3층으로 향하는 계단 한 개를 밟는 순간.


위에서 ‘쾅’ 하는 철문 소리가 크게 들려,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멈춰 섰다.

“아아아.....놔요!”

바로 위에서혼잡한 구두 소리가 울려댔다.

그리고 바로 ‘딸깍’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흔한 그 소리는 손잡이에 튀어나온 문을 걸어 잠그는 그런 소리였다.

“너 오랜만에 보니까, 더 예뻐졌다?

왜 이제 나와? 전화도 안 받고......메세지도 계속 보냈는데....”


“아아....손...놔요....아파요....”

차가운 목소리 소리였다.

하지만 변해버린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나는 알 수 있었다.


“너....지금까지  연락을 그렇게 안 받아? 내가 몇 달 동안 그렇게 연락을 했는데.....”

“내가 연락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두어 달 전에 갑자기 문자 하나 덜렁 보내 놓고,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조금 전, 우리 테이블에 와인을 건네주던 목소리....

그리고 오래전.....
그 Bar 아래층, 공사를 하다 만, 어수선한 그곳에서 나리의 목소리와 함께 들려오던 그 목소리...



“앞으로 연락하지 마요.
오늘도 여기 오려고 온 거 아니에요.”

“하아! 왜 그러는지 이유나 좀 알자.

그동안 남자 생겼어?
하긴......너 정도면넘치고 넘치겠지.”

“사람들 기다려요. 들어가야 해요.....아!! ”

고통이 잔뜩 스며 있는 소리였다.


“몇 달 동안 나하고 그렇게 잘 놀아 놓고....니 맘대로 연락 끊어 버리고.....씨발 지금 장난쳐!”

남자의 고함소리가 계단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잠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리야! 우리 이러지 말고....좋게 이야기하자. 내가 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너 예전에 이러지 않았잖아.

너 여기 비행 올 때마다, 나 만나서 잘 놀았잖아. 근데 갑자기 연락도 끊어 버리고.....왜 그러는 건데 도대체?”

남자의 목소리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나리야. 나 더이상 미치게 만들지 말고....
저녁식사 끝나면, 다른 사람들 보내 놓고 사무실로 와. 응?”

“이게 마지막이에요.
오늘 여기도 수 없이 온 거예요.
더이상 볼일도.....그쪽하고 만날 일도 없어요.”

“뭐? 그...그쪽?

나리야. 너 나하고 좋았잖아.
씨발.....나하고 하는 거, 존나게 좋아했잖아.

니가 먼저 꼬리쳐 놓고,
씨발! 지금 와서  이 지랄이야!”


“그만 해요...듣기도 싫으니까...”

하이힐 소리가 또다시 이어졌다.

“나와요....비켜요!”

“내가 이렇게 순순히 놓아 줄 거 같아?

씨발년아! 그날......너 처음만 난 날.

Bar 5층에서 물고 빨고 하고 나서.
지민인가그년 때문에 그날 밤,   데리고 갔었는데.

 다음 날, 내가 계속 전화하니까.
밤에 니가 술 처먹고 혼자 여기 찾아왔잖아.

기억 안나?

그날 사무실에서 나한테 존나게 대준 거,  잊었어?

그때부터 잖아!


씨발년아!

그때부터 여기 비행 있을 때마다, 나하고 놀아 놓고......사귀는 거처럼 그래 놓고,  달 만에 나타나서 갑자기  이 지랄이냐고?”


“결혼해요. 그러니까. 연락하지 마!”

“뭐...뭐? 결혼?
혹시...룸에 니 옆에 앉아 있던  새끼야?”

“말 그 따위로 하지 마!”

앙칼진 목소리였다.


“하아....미치겠네.....

나하고 두어 달 미친 듯이 놀아 놓고...
두어 달 연락 없더니....뭐? 결혼을 해?

병신같이 순진하게 생긴 아까  새끼도 니가 어떻게 굴러먹던 년인지 알아?”

“비켜!”

작은 몸싸움이 벌어진 것처럼 소란스러웠다.


“나리야! 나리야!
잠깐만....우리 좀.....진정하자.....”


“제발 비켜.....제발.....”

“나리야! 내가 너 원하는 거 다 해줄 게....어?
우리 이러지 말자....

나 너 정말 좋아해....
우리 예전처럼 그렇게 지내자....

니가 원하면 나하고 결혼하자....
내가 가진  다 줄게....어? 나리야?”


“그만해.

너도 나 데리고 놀만큼 놀았으면 됐잖아.

그러니까, 더이상 연락하지 마.

그리고 착각하지 마.
가끔이였지만, 나 너하고 만나면서 단 한 번도 좋아한  없어.

그냥 잔거야.
그냥 섹스만 한 거라고,

내가 미쳐 있을 때....정상이 아닐 때...”

“이...씨발년이!!!

고..고나리....내가 이건 죽을 때까지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그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