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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화 〉Harmonia (8) (78/102)



〈 78화 〉Harmonia (8)


김민정.

이 여자가  이런 이야기를 지금 내게해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진지한  표정이, 정말 나를 위해, 나리와 관련된 그 비밀스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루아씨.

지금 내가 왜 이런 이야길 해주는지 이해가 안 되죠?”

이 여자가 벌써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 나리 좋아해요. 아니 좋아했어요.

물론 지금은 나리가 많이 변했지만,

처음에 나리 입사했을 때, 싹싹하고 일 잘하고,

그래서 선배들이 많이 챙겼어요.
나리를........서로 자기 팀에 넣으려고 할 정도였으니까.

지민이가 그런 것처럼.


근데 지금은요....
선배고 후배고....다 나리 싫어해요.


승무원 하다 보면, 가끔 지저분한 이야기들, 소문들이 돌아다녀요.

들어온  얼마  된 애들은, 다른 직종보다 괜찮은 남자들 훨씬 쉽게 만날 수 있어서, 그렇게 어울려 다니다 보면, 실수하는 애들이 흔치 않게 있어요.


기장이나 부기장들도 괜찮은 스튜어디스 새로 들어오면,  두었다가 비행 끝나면 따로 만나서 데리고 놀고 그래요.

근데요....

보통 애들은 지저분한 그런 이야기들이 돌면, 스스로 정리를 해요.

그러면 주위에서 대충 넘어가 줘요.

흔한 일이니까....이 바닥에선....

근데 나리는 그러지 않았어요.

나가도 너무 나갔어.

기장들은 따로 커뮤니티가 있어서, 홍콩에서 나리 그 동영상 아마 반 이상은 봤을 거예요.

지금 우리 항공사 기장들 사이에 무슨 말이 도는지 알아요?


나리....

나리가 기내승무원 복귀하면, 가장 먼저 데리고 가고 싶다고 해요.

나는  동영상보지는 못했는데.......나리가 그걸 그렇게 잘한다나?


안 그래도 기장들하고 스튜어디스들 사이에 좀 미묘한게 있는데, 그런 이상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으니까, 스튜어디스 애들이 다 나리 싫어하는 거죠.


그렇다 보니, 나리에 대한이상한 이야기가 계속 더 부풀려지고.....

심지어, 공항에서 일하는....계약직 남자들하고 밖에서 따로 술 마시고, 자고 다닌다는 소문까지 날 정도니까...

스튜어디스들은 거의, 나리 빨리퇴사하길 바라고 있어요.”




내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있었다.

그건 지금 민정씨가 들려주는 나리의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민정씨! 그게 지금나하고 무슨 상관이죠?”

“네?”


“나하고 헤어졌을 때....나리가 그런 걸....내가 일일이  알아야  이유가 있을까요?

그리고요.....

이건 어때요?

나리하고 내가 헤어졌을때.

내가 애 딸린 서른세살짜리 스튜어디스  먹은 건?

민정씨 말대로면 그런 것도 나리가 다 알아야겠네요?”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던, 민정씨의 얼굴이 순간 엉망으로 지푸려져 갔다.



“그날우리 집에서, 지민이가  사러  사이에, 니가 먼저  자지 빨았잖아.

너는 왜 그랬는데?

그리고 현관 앞에서 나한테 대준 거 생각 않나?

그날 지민이도  들었다고 하더라......니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나도 모르게 흘러나와 버린, 방어기제....반발심리 같은 그런 거였다.

눈썹을 잔뜩 찌푸려놓고, 나를 쏘아보는  눈빛......

서늘한  눈빛이 오랫동안 풀리지 않을  같았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민정씨의 표정이 조금씩 변해갔다.

빨간 립스틱이 발려진 입술이 천천히 올라가는게 보였다.

“훗! 재밌네?”

나를 보는 민정씨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요즘 나리 많이 힘들건 데.....내가 좀 도와줄까?”

“니가 어떻게?”

“내가 그래주면....너는 뭐 해줄 건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갑작스런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오빠.”

언제 왔는지 테이블 옆에 나리가 서 있었다.

나리의 얼굴은 이곳을 빠져나갈 때보다 더욱빨갛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완전히 표정이 굳어 있었다.

나리의 저런 얼굴은 처음 보는 거 같았다.

아마, 전화 통화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던게 분명해 보였다.

나리가 시선을 돌려 민정씨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에 진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민정씨는 나를 보고 있었다.



“무...무슨 이야기 했어요?”

나리가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그 물음이 나를 향한 건지 아니면 민정씨에게 그런 건지 알  없었다.

“나리 왔니? 참 재미있네....루아씨.
이야기하다 보니까. 시간 가는지 모르겠네.....호호호....”

민정씨의 웃음소리에 나리는 어색한 표정으로 그런 민정씨를 보고 있었다.



한 차례 와인잔이 돌았다.

목이  들어가, 화이트와인 한 모금이 입속에 잠시머물다속으로 빠르게 넘어갔다.






“나리야? 요즘 어때? 일은 할만해? 애들이 텃세 부리지 않아?

보틍 기내 있다가 지상직가면, 일부러 텃세 부리고 그러는데.......”

“하아....아니요....잘해주세요....”

“그래? 다행이다...”

나리가 웃고 있었다.

어찌보면 나리의 억지 웃음이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두통이 오려는지 머리가 계속 지끈거렸다.



시간이 조금 흘러,

잠시 어색했던 테이블의 분위기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려고 할 무렵,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나리의 스마트폰이 또다시 떨렸다.

나리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깊은 한숨을 쉬고 있었다.

민정씨 시선도 그런 나리의 얼굴을 향해 있었다.

[네. 선배님!]

이번엔 나리가 민정씨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나리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해 있었다.

또다시 나리의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가 내게 들려왔다.

나리는 그 소릴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나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나리야! 전화 줘봐.”

갑자기 민정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마트폰을 귀에 가만히 대고 있던 나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런 민정씨를 보고 있었다

“전화 줘봐....”

이번엔 민정씨가 어서 스마트폰을 달라는 듯, 손을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선...선배님....잠시만요....]

재차 이어지는 민정씨의 말에,나리가 들고 있던스마트폰을 민정씨에게 건네주었다.



[여보세요?]

기내 방송을 하는 것처럼 너무나 또렷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너 누구니?

나 김민정인데.
지금 나리하고 저녁 먹고 있거든.

무슨일인데 계속 전화질이야? 애 밥도 못 먹게!]


그 소리에 나리가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놀란 눈으로 민정씨를 지켜보고 있었다.

전화를  상대가 계속 무슨 말을 하는지 민정씨는 한동안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편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민정씨의 표정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사라져갔다.

[그걸 왜 지금 이 시간에 전화해서 그러는 건데?

너희들은 손이 없어?
그리고. 그 딴 일 같지도 않은 하찮은 걸 나리가 해야 되는 거야?


너희들은 뭐하는 애들이야?
이것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내일 아침에 갈 테니까.
계약직 애들까지 싹 다 모아 놔!]

민정씨가 신경질적으로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기내 방송처럼 부드럽게 시작했던 통화가, 마지막엔 매우 거칠어져 있었다.


“자!”

통화를 끝낸 민정씨가 스마트폰을 나리에게 다시 건네줬다.

나리의 눈가가 젖어 빨갛게 변해 있었다.


“사무장님. 죄...죄송합니다.....”

“니가 뭐가 죄송해?
지상직 애들이 잘못 한 건데?

근데, 나리야!
이런 일까지 너한테 시키니?”

나리는 얼굴을 아래로 떨궈 놓고 말이 없었다.


“나리야. 넌 왜 말을  했어?
그거 니가 해야 될  아닌 거 알잖아.

내일 가서 정리  해야겠네....”


테이블 아래....

두 손을 꼭 감싸고 있는 나리의 하얀 손 위에, 투명한 물방울이 하나씩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투명한 와인잔이 붉은 입술에 닿는 순간, 민정씨가 나와 눈을 맞추며 웃고있었다.











“루아씨. 오늘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봐요...”

호텔앞에 차가 도착하자, 민정씨가 차에서 내리며 내게말했다.

“네. 들어가세요....”

뒷자리에 민정씨와 함께 타고 있던 나리도 따라 내렸다.

둘은 잠시 서서 웃으며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민정씨가 호텔현관 쪽으로 걸어올라가자, 나리가 조수석에 올라탔다.







차가 호텔을 출발한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나리는 몸을 운전석 쪽으로 완전히 돌려, 한쪽어깨를 시트에 기대어 놓고, 나를가만히 보고 있었다.


“벨트 안 해?”

물음에도 나리는 아무런 말없이 그냥 내 얼굴만 그렇게 보고 있었다.

깊은 나리의 눈빛은, 나를 보며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차가 집에 도착해서도 나리는 차에서 내려 말없이 내 뒤를 따라왔다.

현관 문을열고 거실에 들어서자, 나리의 얼굴이 내 어깨 위에 살포시 올려졌다.

나리의 몸이 내게 닿을 말듯, 그렇게 살짝 안겨 있었다.


현관 센서등이 꺼져, 다시 어둠 속으로 나리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나리는 그대로 내게 안겨 있었다.

나리의 어깨를 잡고, 거실 안쪽으로 가려다, 그냥 가만히 두었다.

 어깨에 살짝 기대어 있던 나리의 얼굴이 조금씩 흔들렸다.

“미안해요......”

어둠속에 힘없는 작은 소리가 흩날리듯 거실로 퍼져 나갔다.



“미안해요.....정말 미안해요.....흐흑!”

나리의 몸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 움직임으로 현관 입구 센서등이 다시 켜졌다.


“흑....흐흑.....

다시는 안 그럴게....
다시는 안 그럴게요....오빠.....흐흐흑.......흐흑......”


나리는 내 발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울음을 터트렸다.

서러운 울음소리가 거실에 더욱 커져갔다.

아마도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을 거 같았다.


하지만,

내 마음이 이상했다.

이 서러운 울음소리가 언젠가 내 귓속에 들어와,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익숙하게 들려왔다.













눈을 떴을 땐, 아직 새벽이었다.

알몸의  허벅지 위에, 나리의 긴 다리가 부드럽게감겨 있었다.

몸을 돌려, 잠들어 있는 나리의 몸을 찬찬히 쓰다듬었다.

피부 전체에 따스하게 번져 있는  온기가, 절대 꺼지지 않을 깊은 생명력을 품고 있음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지고 있었다.

말랑말랑한 나리의 엉덩이를 한참 동안 손안에 담다,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책상 스탠드를 켜 놓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정신없이 일을 하는 사이, 조금씩 밝아오는 창가가 이따금씩 눈가에 들어왔다.



갑자기 온몸이 따스해 졌다.

노트북 자판에 올려진 내 팔에, 긴 머리가 보기 좋게 떨어져 내려 있었다.


“좀 더 자지....새벽에 나왔어요?”

너무나 부드러운 목소리가귓가에 울렸다.

“일어 났어?”

“응....”

짧은 입맞춤.

내 볼을 감싸는 그 입술의 감촉에, 최면에 빠질 듯, 눈이 스르륵 감길 정도였다.

한동안 머물러 있던 그 따스한 오기가 물러가자, 다시 작업을 이어갔다.






작은 인기척이 계속 들려왔다.

창가엔 눈부신 빛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바로 옆에 있던 커피잔을 보니, 완전히 비워져 있었다.


목이 칼칼했다.

아라비카향이 진하게 풍기는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혜린아!  커피 좀 줄래?”


사랑이 듬뿍 담긴, 감미로운내 목소리가 다시 내게 되돌아왔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노트북 자판을 빠르게 두드리던 손이 멈췄다.



“혜린아! 나 커피..........”

뭔가 정지된 것처럼 내 목소리가  끊겼다.



갑자기 두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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