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6화 〉Harmonia (6) (76/102)



〈 76화 〉Harmonia (6)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자연스러워져 갔다.

다소 어색하고 불편했던 나리와 나의 관계가 그러했고, 홀로 집에 남아 작업을 할 때도 예전처럼 편해져 갔다.




나리는 항상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근무시간이 저녁 타임으로 변경이 되어도, 항상 같은 시간에 출근해 같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나리의 표정이 그때와 닮아 있었다.

우리가 사랑했던 지난 2년간의 시간속에 머물러 있던 그 얼굴처럼....


그리고 나리와의 잠자리도 변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나리는 내게, 매일 밤 꼭 해야 할 숙제처럼 그렇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었다.

내가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으면, 내 바지를 벗겨 내고 쪼그라들어 있는 자지를 한참 동안 빨아주다, 삽입이 될 정도로 발기가 되면 내  위에 올라탔다.


나리가 한동안  몸 위에서 움직이다가 내가 사정을 하면, 자신의 몸속에 깊게 담겨있는 내 것을 빼내고 깨끗하게 닦아주곤 잠이 들었다.


오로지 나를 위한 섹스였다.

내 욕구를충족시켜주고, 더불어 정액을 배설시켜 주기 위한 그런 섹스였다.

사랑을 찾는 대화도 없었고, 어떠한 전희도 사라진, 너무나 무미건조한 섹스였다.




하지만 어느 날 밤,

나는 침대에 가지런히누워있는 나리에게 진한 키스를 하고, 가슴을 만지고, 허리와 엉덩이 맨살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날, 정말 오랜만에 내 목을 꼭 끌어안고서 연이어 오르가즘을 느끼는 나리의 얼굴을  수 있었다.

나리의 눈가가 젖을 정도로, 굵은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나리는 퇴근 후, 나와 함께 집에서 머물 때, 스마트폰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가끔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오거나, 메시지가 도착해도 나리의 스마트폰은 소리 없이 항상 액정만 반짝였다.

나리는 그걸 확인하고,간단한 메시지를 보내거나 아니면 그냥 조용히 스마트폰을 덮어 놓았다.











나리가 출근하자마자 나는 책상에자릴 잡고 앉았다.


요즘 나는 조바심이 났다.

글이 막힘없이 너무 잘 쓰여졌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웠다.

나는 그렇게 일에 푹 빠져 있었다.


한참 정신없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다, 뜨겁게 달아올라 있는 내 몸에 놀라, 손이 멈췄다.

몇시간 동안너무 집중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신기가 들어온 거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한 곳에 오랫동안 시선이 몰려, 빡빡하던 눈을 천천히 돌려가며 풀어내고 있었다.

거실을 이리저리 훑어보다 우연히 마지막 머무른 곳은 TV선반 구석이었다.


그곳에 새까만 액정의 내 스마트폰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스마트폰을 저곳에 방치해 놓은게 3~4주는 지나버린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으로 향했다.

눈에 보일  말 듯한, 아주 작은 입자의 미세먼지가 검은 액정을 완전히 뒤덮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내려다보기만 할 뿐, 차마 집어들수는 없었다.

코끝에 기분 좋은 향기가 연신 스며들어 왔다.


TV 선반 끝,

드레스 룸으로 쓰는 작은방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자, 방금 느꼈던 그 좋은 향기가 몇 배로 진하게 그 공간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철제 행거 가장 끝, 그 공간에 나리의 옷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세탁을 했는지 투명한 비닐에 싸여 있는 승무원 유니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옷이 참 예뻤다.

행거에 걸려 있는 나리의 블라우스와 스커트는 보통사람들이 쉽게 구매할 수 없는, 대부분 고가의 해외브랜드 제품이었다.

행거 아래 놓여진 서랍을 열자,

속옷이 가지런히 색상별로 정리가 되어 있었다.


 중에 하나를 꺼내 들었다

신비하기까지 한 에메랄드 빛깔, 나리의 작은 팬티였다.


공중에 떠있는 솜털처럼 가벼웠고, 손끝에 닿는 느낌이 실크처럼 너무나부드러웠다.

서랍에 정리되어 있는 속옷 또한 일년에 한 두번 뉴욕이나 파리에서 화려한 런칭쇼를 하는, 세트로 몇십 만원 정도 고가의 해외 브랜드였다.


명품브랜드엔 전혀 관심이 없던 나리가....

이젠 옷과 백.....심지어 속옷까지, 소비패턴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엔, 작은방  켠을 차지하고 있는 나리의 옷들과속옷까지 그 모든게 예뻐 보였다.

그래서 이해가 되기도 했다.

만약 내가 여자고,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나도 그럴 거 같았다.


작은방을 빠져나올 때, 또다시 TV 선반에 올려진 내 스마트폰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작업을 이어가려 책상에 앉았지만, 내 시선은 한동안 그 스마트폰에 꽂혀 있었다.

한참 고민 끝에, 워드 창을 닫아 놓고, 중고거래 카페에 접속을 했다.

그리고 검색을 했다.

‘스마트폰 직거래’









시내 대학가 근처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귀여운 한 여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의 손엔 하얀 스마트폰 박스가 들려 있었다.

그걸 건네받고, 약속된 금액을 계좌로 이체해주자, 여자는 상기된 얼굴로 잘 쓰시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떠나갔다.



차에 올라타, 여자가 건네준스마트폰 박스를 열어보니,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새것같이 깨끗했다.

나는 TV선반에 올려져 있던 스마트폰에서  온, 유심을 그곳에 꽂아 넣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되어있었다.

나리가 일하는 항공사 어플을 열어, 오늘 비행 일정을 확인했다.

내 차는 집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항상 그렇듯, 공항엔 출국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이제 막 비행기가 랜딩해 입국게이트를 빠져나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터미널 가장 구석자리,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아 한쪽을 바라봤다.

체크인 부스가 조금 한산해보였다.

이곳에 오기전 확인했던 비행 일정으론 아마 조금 있으면 체크인이 끝날 거 같았다.




다섯개의 체크인 부스 중,

가장 중앙에 나리가 앉아,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는 남자승객과 이야길 주고받고 있었다.


위로 곱게 말아 올린 나리의 머릿결이 밝은 공항 조명에 화려하게 반짝였다.




나리는 체크인을하는 승객이 부스를 떠나가도 얼굴엔 여전히 환한 미소가지어져 있었다.

띄엄띄엄 몇 명의 승객이 나리의 부스를 지나치자, 체크인을 종료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나리를 제외한 네 명의 여자가 체크인 부스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각각 두 명씩 짝지어 웃으며 이야길 나누고 있었다.

두명의 여자가 나리를 지나쳐, 나리 옆에 앉아 있던 다른 두명의 여자와 합류했다.

 명의 여자들모여 재잘대며,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몇몇 여자들이 자리에 앉아 있는 나리를 차가운 눈빛으로 흘깃 한번 보곤, 체크인 부스를 빠져나갔다.





나리는 홀로 그곳에 앉아 있었다.

네 명의여자들이 떠나가자, 시종일관 환하게 웃고 있던 나리의 미소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큰 숨을 내쉬는 듯, 몸에  맞는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나리의 어깨가 힘없이 아래로 뚝 떨어져 내렸다.



한 남자가 홀로 앉아 있는 나리에 다가가 살갑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나리가 입고 있는 유니폼과 비슷한 디자인, 스튜어드 유니폼이었다.


그 남자가 뭐라고 하자, 나리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자가 나리에게 무슨 말을 하곤, 부스를 빠져나왔다.

뒤돌아  남자의 얼굴엔 아쉬움과 민망함으로 가득  있었다.

내 느낌이지만, 아마도 그 남자가 나리에게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는 거 같아 보였다.

잠시 후.

말끔하게 정장을 입은 남자가 나리가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나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에게 깊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조금전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남자가 나리에게 무슨 말을 하자. 나리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자가 부스를떠나가자, 나리의 얼굴은 조금 전보다 더욱 굳어 있었다.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눌렀다.


[나리야 바쁘니?]

메시지를 보냈다.

체크인 부스에 앉아 있던 나리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놀라는 거 같았다.



[오빠! 이제 전화돼요?]

[오빠 어디예요?]

[점심은 먹었어요?]

[무슨 일 있어요?]

메신저 어플에 나리의 메시지가 한꺼번에 주르르 쏟아져 내렸다.

[너 시간 괜찮으면,
점심 같이 먹을까? 약속 있어?]

[아니아니요 괜찮아요약속없어요]

띄어쓰기도 되어 있지 않은 답장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나 지금 공항 근처에 있어.
5분정도 있으면 도착하는데.
주차장 입구에서 볼래?]

[네. 조심해서 오세요]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체크인 부스를 바라봤다.

나리는 시선은 자신의 스마트폰에 계속 머물러있었다.

나리의얼굴엔, 너무나 보기 좋은 그 미소가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











“오빠! 오빠!”

나를 발견 나리가 종종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오빠! 어떻게 된 거예요? 전화는 이제 되는거예요?”

“응”


“나 너무 놀랐어!”

“왜?”

“갑자기 오빠 연락 오니까.....
근데 그건 뭐예요?”

나리가 내 손에 들려 있는 종이백을 보고 있었다.


“오는 길에 뭐 좀 사왔어.”

나리가 방긋 웃으며,  손을 꼭 잡았다.

나는 나리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나리가 나를 데리고  곳은, 공항 뒤편 인적이 드문 어느 벤치였다.

야외에서 도시락을먹기엔 조금 쌀쌀했지만, 내리쬐는 햇살 덕에 야외 벤치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나리는 살색 스타킹을 신고 있는 긴 다리를 가지런히 모아놓고, 내가 사온 도시락을 하나씩 열었다.




배가 고팠는지, 아니면 도시락을 사온  정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리는  맛있게 먹고 있었다.

조금 전, 체크인 부스에 앉아 있던 나리를 흘겨보던 그 여자들의 차가운 시선이 떠올랐다.

 눈빛엔 헤아릴 수 없는, 온갖 경멸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너무 맛있어요. 오빠!
오빠 이거....아......”

나리가 내 입에 고기 한 조각을 넣어주곤,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생글거렸다.

“너무 좋다. 오빠하고 이렇게 밖에서 도시락 먹으니까....”

“매일 올까? 이렇게 도시락 싸서?”

“아니요.....호호홋!!”

나리의 미소와 웃음소리가 예뻐, 나리의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나리의 뺨이 금방 빨갛게 물들어갔다.


타임머신을 타고 예전으로 완전히 돌아와 있는 것 같았다.

모든게 예전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나리가 승무원 유니폼을 입고 있다는 것과,

애교 섞인 귀여운 반말이 아니라, 이젠 내게 존대를 한다는 것.

그리고 나리의 얼굴에서 뿜어지는  수 없는 그 묘한 분위기였다.











깔끔하게 비워진 도시락을 정리하고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리가 내게 풀썩 안겼다.


“어! 사람 봐.....그만....”

“여기사람 없어요....”

애교가잔뜩 묻어 있는 소녀 같은말투.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은 우리뿐이었다.

나리의 허리를 바짝 끌어 안았다.


잘록한 허리에 내 팔이 마치 하나였던 것처럼 착 감겼다.

 느낌이 참 좋았다.

나리의 한쪽 뺨과,가슴, 골반 아래 그곳이 내 몸에 완전히 달라붙어 있었다.


타이트한 승무원 유니폼을 입고 있는 나리와 이 자리에서 섹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빠.....나 시간 좀 더 있는데....
차에......차에 좀 있다가 갈까요?”

귓가에 나리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리의 타이트한 스커트 위, 나도 모르게 말랑말랑한 엉덩이를 이제 막 쓰다듬으려던 손을 급히 떼어냈다.

“10분 정도....시간 있어요....”

얼굴이 빨개진 나리가 다시 내 손을 잡아 끌었다.

 머릿속엔,
나리가 말한 그 10분이라는 시간 동안 차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지 그려지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빠른걸음으로 공항청사를 향해 내려갔다.


“천천히 가....넘어져.....”

내 말에도 나리는 조금 앞장서 서둘러 걸어나갔다.

“오빠! 빨리요!!!”


공항 청사 바로 뒤쪽 모퉁이를 지날 무렵,

내 손을 꼭 쥐고 있던 나리이 손이 갑자기 떨어져 나갔다.



나를 재촉하던 나리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나리의 시선이 정면을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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