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Catacombe (2)
[너와 함께한 시간,
내 작은 가슴 속에 숨 쉬던 네가 사라져버린 순간,
하지만 나는 기억해,
너의 작은 숨결까지도,
너의 하얀 손이 나를 그리던 그때를,
나는 지금도 이렇게 너를 그리고 있다....]
한 남자의 노랫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듯 아련하게 울리고 있었다.
[끼이이익!!!!!]
찢어질 듯한 그 소음에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눈앞이 환하게 변했다.
너무나 눈부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혜린이가 내게 몸을 기대어 놓고, 환하게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나를 향해 있던 혜린이의 긴 눈썹이......너무나 천천히.....슬로우 비디오처럼 감겼다.
나는 혜린이를 내 품속에 꼭 감싸 안았다.
마치 중력이 사라진 시커먼 우주공간 속을 유영하듯 그렇게 내 몸이 떠올랐다.
[아아아.....루아......씨....]
혜린이의 옅은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하아....하아...하아....”
견디기 힘든 가쁜 숨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숨을 내쉬고.....내쉬어도 가슴속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거 같이 아팠다.
검은 형체가 내 눈가를 무엇인가로 계속 닦아내고 있었다.
“루아씨? 괜찮아요? 괜찮아요?”
떨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눈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여자가 들고 있던 부드러운 무엇이 내 한쪽 눈을 완전히 뒤덮었다 떨어지자, 시야가 잠시 선명하게변했다가 다시 눈물로 뭉그러졌다.
침대 곁에서 내 눈물을 닦아내고 있는 여자는 서연씨였다.
그 뒤에 검은 수트....검은 넥타이를 한 아버지의 얼굴도 잠깐 보였다.
“내...내가 꼭 않아줬는데......죽....죽었어요? 혜린이.......죽었어요? 아니죠?”
하지만 내 물음에 그 누구도 답을 해주지 않았다.
“아...아버지? 지금 어디 갔다 왔어요? 네?”
그 표정이었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아버지 이 표정은....
오래전 엄마를 보내던 마지막 날.....아버지가 푸른 소나무 밑에 잠든 엄마를 내려다보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루아야......”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루아야.....혜린이......보내주고 왔다....”
아버지의 그 말을 듣자마자, 내 눈이 힘없이 떨어져 내려 다시 꼭 감겨버렸다.
깊은 적막으로 둘러싸인 어둠의 터널을 지나, 다시 눈을 떴을 땐,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내가 얼마동안 잠들어 있었는지......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 몸을 감싸고 있던 붕대들이 모두 사라져 한층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나리가 침대 곁에 앉아, 측은한 얼굴로 가만히 나를 보고 있었다.
핼쑥한 나리의 얼굴엔 생기라곤 전혀찾아볼 수가 없었다.
“좀 괜찮니?”
목이 메인 듯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병실엔 나리와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혜린이......”
“루아야.....좀 괜찮니?”
“네....아무렇지도 않아요.나는 괜찮아요.
아버지....혜린이......어떻게 된 거예요?”
귓가에 다시 돌아온 내 목소리가 너무나 참혹했다.
아버지는 무슨말을 하려다 내 얼굴을 보곤 망설이고 있었다
“아빠....아버지...나 괜찮아요....궁금해서 그래요...”
“그 날. 너 하고 혜린이가 타고 있던 택시가 사고가 났어.
맞은편에서 중앙선 넘어온 차하고 정면충돌로....
택시기사는 현장에서사망했고.
너하고 혜린이는 병원에 실려왔는데.
혜린이는.....그날아침에......갔다.
혜린이....여기 장례식장에서 조문받고....
니가 깨어난 날,그날...발인이었어.
혜린이 부모님....참 좋은 분들이더구나...”
울고 싶었지만, 눈물은 더이상 흘러나오지 않았다.
“루아야....힘들겠지만......휴.......
잘.....이겨내라....하늘에서 혜린이도......”
아버지는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병원에서의 생활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서울에 있던친구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소식을 듣고 하나둘씩 내려와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서로 바빠 그리 자주 만나지 못했던 선배, 후배들도 병실로 찾아왔다.
아버지는 퇴근 후 매일 밤 병원에 들렀다.
연세가 많은 할머니가 하루 종일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밤늦게집으로 돌아갔다가 아침 일찍 다시 병원으로 오셨다.
지민씨는 여기 비행이 있을 때마다 무언 갈 잔뜩 사 들고 병실을 찾아 왔다.
그리고 나리....
나리는 휴가를 낸 건지 일주일정도 병원에 있다가, 일 때문에 2주 정도 후에 다시 올 거란 말을 남기고 병원을 떠났다.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표정들이 한층 편안해져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얼굴살이 쏙 빠져 있었다.
온통 붉은 상처투성이던 그날의 흔적들이이젠 거의 모두 지워져 있었다.
“루아씨. 기사 분 오셨어요.”
병실에서 조용히 전화를 받던 서연씨가 나를 불렀다.
“아버지는 참....괜찮다는데.....혼자 가면 되는데.....”
“본부장님이 본가로 가면 된다시던데.....”
아버지는 내가 혼자지내는게 걱정이 됐는지, 굳이 할머니 집에서 당분간 있으라 신신당부를 했다.
그렇게 나는 퇴원을 했다.
멀리서 대문 밖을 나와 있는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구! 우리 새끼....왔어? 니가 좋아하는 거 해놨다.....어서 밥 먹자....”
차에서 내리자마자 할머니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이리저리 만져 댔다.
마치예쁜 새끼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처럼.
“바쁠 텐데....고마워요....아가씨도 점심 먹고 가요...”
차에서 내려 인사를 하던 서연씨에게 할머니가 말했다.
“아니요...저는 괜찮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서연씨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곤 다시 차에 올라탔다.
“할머니....허리도 아프다면서 뭐 이렇게 많이 해 놨어요?”
식탁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 천지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모르게 정신없이그걸 먹고 있었다.
“많이 먹어 많이.....병원에 있다가 퇴원하면, 잘 챙겨 먹어야 해. 어서 먹어....”
“할머니도 먹어요.”
할머니는 그냥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나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너 당분간 여기서 지낼 거지?”
“아니....”
할머니가 화들짝 놀랐다.
“그러지 말고.....여기서.....”
“안돼....바빠....일해야 돼......
한달 넘게 일 못해서.....할 거 많아요.
오늘 그냥 할머니하고 밥 먹으로 왔어요.”
할머니는 가만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았다.
“할머니. 걱정 마요. 나 괜찮아....”
할머니의표정이 마음에 걸려 괜히 웃어 보였다.
“그래...그래야지...우리새끼.....에휴.....”
날보는 할머니의 눈시울이 붉게 번지고 있었다.
정신없이 그렇게 밥을 먹고......할머니가내 준 보약 냄새나는 차를 마셨다.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
내가 집에 가려고 고집을 부린다고 하소연을 했다.
할머니가 건네준 전화를 받아 아버지와 잠시 통화를 했다.
내 고집에 아버지도 어쩔 수없다는걸 아는지, 저녁에 다시 통화하자는 말을 하곤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집에 간다는 나를 계속 설득하던 할머니를 뒤로하고 대문을 빠져나왔다.
할머니는 내가 골목을 돌아서는 순간까지 대문 앞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도로에 나와 택시를 잡고, 뒷문을 열려는 순간.
머리속이 아득하게 변해버렸다.
택시 손잡이를 잡고 있는 내 손이 계속 덜덜 떨렸다.
“저기요? 안타요?”
조수석 창문이 내려가 택시기사의 큰 소리가 들려왔다.
“죄....죄송합니다.....”
나는 결국 그 택시 문을 열지 못했다.
걸었다.....
차들이 쌩쌩 달려나가는 도심을가로질러계속 걸었다.
환하던 도심의 풍경이 언젠가부터 조금씩 어둡게 변해가고 있었다.
꼬박 몇 시간을 그렇게 걸었다.
오랫동안 깁스를 해 있던왼쪽 발에 통증이 느껴졌다.
짙은 어둠이 완전히 깔리고서야 멀리서 내 집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조금 더 힘을 내....
그립던 내집으로 들어가 쓰러져 자고 싶었다.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진한 통증이 남아 있던 다리는 감각이 상실된 것처럼 이제 더이상 아프지 않았다.
창가의 가로등 불빛에 거실 중간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소파 테이블 위에 무언가가 올려져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절뚝거리며 소파로 갔다.
테이블위엔 아직 한 번도 불이 붙지 않은 심지가 하얀 붉은 초가 몇개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엔 예쁜 케이스 품속에 박혀 있는 반지 하나가반짝였다.
하얀 종이.
어느 날 내가 출력해 놓은 혼인신고서....
남 편(부)
왼쪽 칸에 정성 들여 꾹꾹 눌러쓴 내 이름과 개인 정보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하지만 오른쪽......아 내(처) 이 공간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분홍빛 봉투에 담긴 카드를 열었다.
[사랑하는혜린씨.
저는 사랑하는 혜린씨와 아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당신의 남편 강 루아....]
눈이 따가웠다.
하지만 눈물샘은 이미 고장나 버렸는지, 독한 죽은 공기만이 흘러나와 눈가를 찔러 댔다.
테이블을 가장자리에 놓여 있는 네 개의 양초에 불을 붙였다.
깊은 지하의 숨겨진 무덤처럼 죽어 있던 거실이 촛불로 환하게 밝혀졌다.
한 달 동안,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던 내 스마트폰......
그 참혹한 사고에도 작은 흠집 하나 남아 있지 않은 멀쩡한 스마트폰에 케이블을연결했다.
0%.....1%........4%.....
갑자기 스마트폰이 환하게 켜졌다.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들이.......계속 스마트폰을 올려 댔다.
한참을 기다리다 그 소리가 겨우 멈췄을 때.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메시지.....
그 메시지는 그날......사고가난 그날 새벽 택시를 타기 전 도착한 메시지였다.
[자기야!
나 더이상 못 참겠어.
오늘 아침에 알았어.
나.....임신했어.
자기 아이 가졌어.
집에 가서 자기한테 말하려고 했는데.
말하고 싶어서 더이상 못참겠어.
자기 배터리 없어서 전화기 꺼졌다고 해서 이렇게라도 빨리 말하고 싶었어.
집에 가서 충전하고.....
자기가 이걸 보면 표정이 어떨까?
나는 행복한 상상을 해.
오늘 너무 고마워요.
이 사실이.....당신한테.....행복한 선물이 되길 바래요.
사랑해요....루아씨!]
첨부된 사진엔....
임신테스트기에 선명하게 새겨진 붉은 두 줄........
그때서야.....
그 사진을 보고 나서야....
고장나 말라버린.....
뜨거운 눈물이, 왈칵....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