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Catacombe (1)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발걸음이 가벼웠다.
발끝을 간지럽히는 푸른 융단 같은 풀잎의 느낌이 너무나 감미로웠다.
그리고 향기....은은한 복숭아향기가 푸른 언덕을 오르는 내 주위에 가득 차 있었다.
하늘엔 크기가 다른 두 개의 태양의 나를 가만히 비추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붉은 꽃들이 활짝 꽃망울을 터트려 나를 반기고 있는 정원.
이곳은 아마 천국의 정원인 것 같았다.
그 정원을 가로질러 깊숙이 들어가자,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 그림 같은 집이 보였다.
두 개의 태양에 크리스탈처럼 반짝이는 그 집이 너무나 눈부셨다.
그 집에서 한 여자가 테라스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
나도 모르게 입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긴 머리와 하얀 드레스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아름다운 그 여자를 나는 잠시 넋 놓고 지켜보고 있었다.
인형같이 생긴 두 명의 아이가 그 여자에게 달려가 안겼다.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여자가 나를 부르며 손짓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떠올려봐도 지금 나를 부르고 있는 저 아름다운 여자가 누구인지 기억나지가 않았다.
나는 그 여자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모든게 사라져 버렸다.
눈이조금씩 열리자, 웃으며 내게 손짓하던 여자의 하얀 얼굴이 그림처럼 지워져 버렸다.
“아.....누구지.....”
갑자기 시야가 환하게 변하자, 들릴 듯 말 듯한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오빠!!!”
바로 옆에서 소리가 들렸다.
긴 머리를 위쪽으로 곱게 말아 올려놓고 있는 작고 하얀 얼굴....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여자는.....다름아닌 내 여자친구 나리였다.
항공사 유니폼을 입고 있는 나리가 놓칠세라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어....나리야.....너 왜 지금 여기...있어? 비행은?”
“오빠!!! 오빠.....”
나리는 말을 잇지 못한 채, 나리의 눈에서 갑자기 굵은 눈물을 왈칵 쏟아져 나왔다.
주위가 웅성거렸다.
“루아야! 할머니다.....루아야....괜찮니?”
“어...할머니!”
할머니가 세상의 모든 근심을 짊어지고 있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리가 항공사에 입사하게 도와주었던 지민씨와,
가끔 집 앞 막창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친구 녀석.....상훈이의 얼굴도 보였다.
“지민씨? 상훈아......왜 여기 있어? 이게.....뭐야?”
지금 이상황에 어안이 벙벙했다.
나를 보고 있는 네 명의 사람들의 표정에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울고 있거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그때서야 내 몸을 내려다봤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한쪽 다리는 딱딱한 무엇인가로 발목에서 허벅지 바로 아래까지 둘러싸여 움직일 수 조차 없을 정도였다.
옆구리....가슴쪽에 진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곳 또한 붕대로 둘둘 말려 있었다.
내가 누워있는 곳은 병실이었다.
“어...이거 왜 이래?”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나리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나리는 아무 말없이 소리 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루아야 너 괜찮아?”
상훈이가 내게 말했다.
“상훈아....내가 왜 여기 있어? 너 하고 자전거 타다가......사....사고 났어?”
“어휴.......자식.......다행이다......이정도면 다행이다....”
“아이구...내 새끼....그래....정말 다행이다....어이구....흐흑.....할머니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할머니...왜 울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나는 조금 전 꿈에서 보았던 그 여자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게 손짓하던, 너무나 아름다웠던 그 여자가 누구인지를......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병실로 들어왔다.
의사와 몇 명의 간호사들이었다.
“강루아씨? 정신이 들어요?”
의사의 말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 하자, 한쪽에 연결된 하얀 튜브들이 한꺼번에 딸려와 팔목이 계속 따끔거렸다.
“어어어....안돼요. 안돼요...가만히 가만히.....있어요 움직이지 마세요!”
의사가 두 손으로 내 어깨를 감싸고 다시 침대위로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지금 움직이시면 안 돼요.....가만히 있어요....”
의사의 말에 간호사가 침대로 바짝 다가와, 반창고가 뜯겨 나간 링거주사를 팔뚝에 다시 밀어 넣었다.
링거 주사가 꽂혀 있던 팔 전체가 날카로운 무엇인가로 긁힌 것처럼 붉은 상처로 엉망진창이었다.
“선생님.....내가 왜 지금...여기 있어요?”
“강루아씨.....사고 났어요. 교통사고....”
“네? 교통사고요? 제가요? 언제요?”
하지만 의사는 대답 대신 뭔가를 확인하듯 꼼꼼하게 내 얼굴과 눈 속에 빛을 쏘아 대며 들여다보고 있었다.
현기증이 몰려와,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리는 작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의사 한걸음 뒤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세찬 폭풍우가 몰아친 것처럼,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내 머릿속은 여전히 뒤죽박죽이었다.
그 누구도의사가 말한 교통사고에 대해서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할머니는 침대 곁에 앉아, 병원에서 나온 죽 같은 것을 내게 먹여주었다.
할머니의 표정이 처음보단 훨씬 좋아 보였다.
상훈이가 저녁에 다시 온다는 말을 남기고 병실을 떠났다. 그리고 뒤이어 집에서 뭔가를 챙겨오겠다던 할머니가 떠나자,
병실엔 나리와 지민씨만이 남겨져 있었다.
“지민씨. 오늘 나리하고 같이......여기 비행이었어요?”
나리와 같이 승무원 유니폼을 입고 있는 지민씨에 물었다.
“네...”
어색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한참 동안 지민씨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화장으로 반짝이는 지민씨의 얼굴을 들여다볼수록 이상하게 머릿속이 더욱 혼란스러웠다.
승무원 유니폼을 입은 채 늘씬하게 쭉 뻗어 있는 몸매....
타이트하게 감싸여 있는 허리....엉덩이.....이상하게도 자꾸 그 몸에 시선이 갔다.
지민씨도 그런 내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병실을 조용히 빠져나갔다.
“오빠! 괜찮아? 안 아파?”
나리의 손이 따스했다.
“너....언제 왔어요?”
“오늘......”
“내가.......사고는......언제 났는데?”
내 물음에 나리가 잠시 머뭇거렸다.
나리의 손을 힘주어 꼭 잡았다.
승무원 유니폼을 입고 있는 나리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내가 보기엔 뭔가......나리의 분위기가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거 같았다.
무슨 말로 설명하기엔 어려웠지만, 분명히 뭔가가 달라져 있었다.
“일한다고 힘들지 않아?”
“아니....괜찮아.....”
“예쁘다....우리 나리.....”
“흑....”
나리가 또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왜 울어? 나 이제 괜찮아...”
침대 곁에 서 있는 나리의 잘록한 허리를 감싸 안았다.
살이 빠져 잘록한 허리가 더욱 가늘어졌는지......내 손이 나리의 허리에 자석이 들러붙는 것처럼 깊게 착 감겼다.
그리고 타이트한 자줏빛 승무원블라우스 위에 느껴지는 보들보들한 맨살의 촉감이 너무 좋았다.
“오빠.....”
“너...왜 이렇게.....더....예뻐졌어? 이리와 봐,,,,,”
꼭 감고 있던 나리의 허리를 침대로 끌어당기자, 나리의 상체가 침대쪽으로 기울었다.
나리의 몸에서 처음 맡아보는 진한 향기가 풍겨왔다.
그 향기는 완벽한 여자의향기였다.
한참 물이 오른, 절정의 여자에게서 풍겨져 나올 것 같은 그런 아찔한 향기였다.
나리의 도톰한 입술이 내 입술 위에 살짝 닿았다.
기다릴 수 없어, 닿기도 전에 혀가 흘러나와 나리의 입술을 깊게 빨았다.
나리의 입술이 심하게 떨렸다.
내 혀가 나리의 입술을 비집고 들어가자 그때서야 내가 바라던 진한 키스가 시작되었다.
“아음.....음......”
나리의 입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숨이 내 입으로 고스란히 삼켜졌다.
긴장하듯 떨리던 나리의 입술과 혀도 이제 더이상 그러지 않았다.
둘만이 있는 병실에서, 짙은 키스 소리가 계속 울려 댔다.
나리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내 손이, 팽팽하게 늘어져 있는 승무원 스커트 속으로 들어갔다.
부드러운 팬티스타킹이 손끝에 닿자,
이 와중에 문득 섹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한 키스를 하며, 팬티스타킹으로 빡빡한 나리의 그곳을 손으로 문지르고 있으니,
당장이라도 일어나 타이트한 스커트를 위로 걷어 올리고, 짙은 살색 스타킹을 찢어내고, 작은 팬티를 벗겨.........젖어 있을 나리의 보지를 마음껏 쑤시고 싶었다.
절묘했다.
너무나 절묘한 순간이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 발기된 내 자지를 나리가 만져 주기를 바란 그 순간.
너무나 절묘한 그 순간,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나리의 손이 그곳에 파고들었다.
그곳에 닿은 나리의 따스한 손이 얼음같이 차갑게 느껴졌다.
나리가 살며시 내 자지를 쥐고 천천히 쓰다듬었다.
모든게 완벽했다.
부드럽게 내 혀와 입술을 빨고 있는 나리의 혀,
팬티 없이 헐렁한 환자복속에 이미 발기되어 있는 내 자지를 쓰다듬는 나리의 손길....
그리고....나리의 타이트한 스커트속에 박혀 그곳을 문지르는 내 손끝에 느껴지는 짙은 습기까지....
지민씨가병실로 다시 돌아왔는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는 그 황홀한 느낌속에........갑자기 한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은 내가 꿈에서 봤던 그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이었다.
여신처럼 아름답고....늘씬한 몸을 가지고 있는 그 여자....
그리고 곁에 있던 인형 같은 아이들......
스커트속에서 나리의 보지 아래를 문지르던 내 손이 그 답답한 곳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러자 내 혀를 입속에 담아 쪽쪽 빨아대던 나리의 입술도 천천히 멈췄다.
터질 듯 발기되어 있던 내 자지가 형체도없이 순식간에 쪼그라들자, 그곳을 부드럽게 쓰다듬던 나리의 차가운 손도 슬며시 빠져 나왔다.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멈출 수가 없었다.
“오...오빠?”
희미하게 풀린 나리의 눈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은색의 링거 스탠드에 몸을 의지해 겨우 슬리퍼를 신었다.
“오빠? 화장실 가요?”
나리가 침대를 건너와 내 팔목을 부축하듯 꼭 감싸 안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나리의 얼굴이 귀신처럼 뭉개져 보였다.
한 발씩 힘겹게 문을 향해서 나아갔다.
“오빠!”
귓가에 들리는 나리의 목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놔......”
“오빠!!”
“놔!!!!”
병실이 떠나갈 듯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에 놀라 내 팔을 꼭 감싸고 있던 나리이 팔이 풀려져 나갔다.
내 고함 소리를 들었는지 병실문이 살짝 열렸다.
“왜....왜 그래요?루아씨? 나리야?”
지민씨 인 거 같았다.
“흐흑....”
눈물과 함께 동시에 울음소리가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지민씨가 서있던 문을 빠져나와 병실문 앞에 붙어 있는 이름을 확인했다.
‘TA (Traffic accident) / 강루아 / 28세 / 남’
나와 함께 있어야 할 그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혜.....린........혜린아!!!!!”
복도를 바삐 지나치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춰 모두 나를 보고 있었다.
“혜린아!! 유혜린!!!!!”
목이 터질 것만 같았다.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다른 병실 문 앞에 붙어 있는 이름을 하나씩 확인했다.
“혜린아!!!!”
아무리 불러보아도.....그 누구도 내게 그녀가 어디 있는지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저기 멀리서.....이쪽을 걸어오는 두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아버지였다.
그리고 아버지 바로 옆엔 아버지 비서.....서연씨가 서 있었다.
아버지와 서연씨는 누군가의 장례식이라도 다녀온 듯, 검은 옷이었다.
서연씨는 새까만 원피스.......아버지는 검은 수트에 검은 타이까지 매고 있었다.
나를 보던 아버지가......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내.....내가.....안아 줬는데......택시에서.....혜린이 꼭 안아 줬는데.........엉엉엉........엉엉.........
혜린아........혜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