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8화 〉The Garden of Paradise (11) (58/102)



〈 58화 〉The Garden of Paradise (11)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녹초가 되어 버린 몸은 여전히 너무나 피곤했지만, 이상하게 정신은 말똥말똥했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혜린이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새벽녘 그 Bar에 쓰러져 있던 나리의 얼굴도 잠깐 스쳐 지나갔다.



침실문을조심스레 두드리는 소리에 그쪽을 바라봤다.


“오빠....나 여기서 책 읽어도 돼요?”

목욕을 깔끔하게 하고, 노란 오리 한 마리가 프린팅 되어있는 귀여운 잠옷을 입은 아름이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어....그래.....이리와....”

“히히.....”

조금 주눅 들어 있던 그 얼굴이 다시 생글거리며, 침대로 달려왔다.

아름이가  옆에 자리를 잡자, 너무나 좋은 비누향기가 침대 위에 가득했다.


“아름아...읽어줄까?”

“아니요. 내가 읽을게요.오빠는...쉬세요....”

아름이가 책을중간쯤 펼쳐 놓고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 아름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마음이  이상했다.

만약 전생이 있다면,

‘나와 혜린이.....그리고 아름이는 전생에서 분명 어떤 인연으로 깊게 연결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그러지 않고서야우리가어떻게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가족처럼....’


나는 옆으로 누워, 책을 읽고 있는 아름이의 얼굴을 계속 보고 있었다.

아래로 흐트러져 내린 생머리.....

이따금씩 천천히 깜빡이는 기다란 속눈썹.

반짝이는 검은 보석 하나를 담고 있는 커다란 눈.

그리고언제나 작은 미소가 스며 있는 붉은 입술까지....

모든 것이 완전히 똑같았다. 혜린이와...




“오빠?”

“응?”


“궁금한게 하나 있는데요?

“뭔데?”

“오빠가 우리집에 처음 왔을 때.....책 읽어 줬잖아요?”

아름이에게 자주 책을 읽어주다 보니 무슨 책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무슨 책이었지?”

“천국의 정원요! 천국의 정원!!”

“아 맞다. 생각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돼요”

“뭐가?”

“왜 왕자가 천국에서......약속을  지키고, 요정을 따라갔어요?

약속을 지켰다면....거기서 계속 살 수 있었는데....나는 그게잘 이해가 안돼요.”

갑작스런 아름이의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그건......천국에 있던 그 요정이 너무 예뻐서, 왕자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거 아닐까?”

아름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요정이....엄마처럼 예뻐서요?”

“하하하...아니.....아름이처럼....예뻐서.....”

“끼아아악!!!!”

얼굴에 한가득 미소를 지은 아름이의 얼굴이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발갛게 변해갔다.



“그럼요.....왕자가 천국에 가기 전에 만난......그 동굴속에 할머니는 누구예요?”

“천사가아닐까? 왜냐하면......왕자를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도와줬으니까.....”

“아하......그렇구나.....”


하지만 나는 아름이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동굴에 있던  할머니는......

천사가 아니라 악마일 것만 같았다.

인간을 현혹하고, 시험에 들게 하고......결국 파멸로 이끄는 그런 악마.




침실문이 열렸다.

“아름아....방에 가서 자야지.”

젖은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두르고 있는 혜린이가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엎드려 있는 아름이 보고 조용히 말했다.

“싫어.....나 여기서 잘 거야....”

“한아름!”

또다시 그 낮은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번엔 아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아름이를 잠시 바라보다 혜린이가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품 여러개를 꺼내 놓고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침실에 은은한 화장품 냄새가 가득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름아. 어서 방에 가서 자....”

오랜 시간 동안 머리를 말리던 혜린이가 아름이에게 말했다.



“싫어!나 여기서 잘래....”

“너 정말 엄마한테 혼난다.”

조금 날카로운 그 소리에 아름이가 몸을 숨기듯 내 품을 파고들었다.



“나여기서 자면 안돼요? 무서워요.......”

“하하하....그래 오늘여기서 다 같이 자자.....”


“정말요? 와....신난다!!!”


혜린이의반짝이는 입술이 한  더 열릴 때, 내가 그러지 말라는 눈치를 주자,그 입술이 조용히 다시 닫혔다.


스탠드 하나만 켜놓고, 혜린이가 침대로 들어왔다.

아름이는  품에  안겨 있었다.

혜린이는 그런 나와 아름이를 따스한 눈빛으로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혜린이는 눈빛만으로 소리 없는 대화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내 목에 꼭 매달려 있던 아름이가 완전히 잠들어 버린 건, 불과 10분도 되지 않아서였다.

나와 눈을 맞추고 있던혜린이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혜린이가 잠들어 버린 아름이를 방으로 데려가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괜찮아. 여기서 재우자....”

“아니....자기 편하게 자.....”

혜린이가 아름이를 조심스레 안아 올려 침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사실 오늘 아름이와 함께 침실에서 자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오늘만은.....혜린이와 단 둘이 있는 게, 왠지 조금 서먹할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혜린이가 홀로 침실에 들어와, 나와 조금 간격을 두고 침대 위에 누웠다.

서로 바라보고 있을 뿐,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더...더럽죠?”

차분하던 혜린이의 눈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아니....”

“미안해....”

“또 그런다....”

“왜 안 물어봐....왜 그런 사람하고....그랬는지....”

사실 그게 너무나 궁금했지만, 내가 직접 물어볼 수는 없었다.

“안전할거라 생각했어....
이런 동네에 사는 그런 사람은....내가 뭘하든....

그리고 난....아름이 때문에 아무 곳에도갈 수가 없었어.

내가 가끔 일을 할 때도 아름이가 유치원에 간 시간에 맞춰서 그렇게 일했고, 일이 끝나면 바로 아름이 데리러 유치원에 가든지, 아니면 집에 와서 기다려야 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술을 마셨나 봐....혼자....여기서.....너무 답답해서....

친구들하고 연락을 모두 끊어버린 것도 오래전이고, 엄마 아빠하고 같이 살 수도 없고....

일할 때마다, 남자들이 계속 다가왔어,

근데, 그 사람들하고 그러면 문제가 생길 거 같았어.

휴......지금 생각해도 자신이 너무 한심해....”

“외로웠잖아. 혼자 아름이 키우는 거....

솔직히 말하면, 내가 널 다 이해할 수는 없어.

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을 거 같아.”


“너무 부끄러워.
세상에서 나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루아씨야.

어릴 때, 처음 방송 활동할 그때 일과, 그리고 비엔티안에서의 일, 그리고 이번일 까지..........

내가 살아온 삶이 너무나 더러운 거 같아서......자기 보기 너무 부끄러워.....”

나와 눈을 맞추고 있는 혜린이의 눈빛이 너무나 안쓰러워 보였다.


의도적으로나와 조금 간격을 띄어 놓고 혜린이에게로 다가가 꼭 끌어안았다.

“흑....흐흑.....
다시는 안 그럴게....
다시는 다른 남자들하고 그러지 않을게....”

나는 혜린이 등을 찬찬히 쓰다듬었다.

힘없이 들썩이는 그것이 멈출 때까지.....오랬동안....













이른 아침, 먼저 잠에서 깨, 조용히 침실을 빠져나왔다.

테라스에 새벽의 한기가 그대로 스며 있어,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위에서 흘러내려온 안개가 언덕 아래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스마트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여....여보세요?]

귀에서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빵빵!]

밖에서 귀여운 경적소리가 울려 댔다.

“아름아.오늘은 나하고 나가자...”

예쁘게 옷을 차려 입고, 소파에 앉아 있던 아름이의 손을 꼭 잡았다.



밖에 서 있던 노란 차에서 이제 막 내린 선생님이 아름이 손을 잡고 그곳으로 다가가는 나를 놀란 눈으로 보고 있었다.

“아름아. 오늘도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놀다 와.”

“네!!!”

노란 유치원 앞에 쪼그려 앉아, 아름이 볼에 살짝 입맞춤을 했다.


“아름아!!! 저 형아는 누구야?”

열린 문틈으로 장난기가 가득해 보이는 한 녀석이 얼굴을 바짝 내밀어 놓고 궁금한 눈빛으로 물었다.

아름이가 곤란한듯, 나와 그 녀석을 잠시번갈아 가며 보고 있었다.


“나.....아름이 아빤데?”

“네?”

내 말에 그 녀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짓말! 우리 아빠는 사십두살인데.....형아는 살인데요?”



아름이가 너무나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눈가에 금방 새어 나온 굵은 눈물 한 방울이 맺혀 있었다.










혜린이와 간단한 아침을 먹고,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곤, 홀로 침실로 들어와 버렸다.

혜린이는 걱정이 됐는지 자주 침실로 들어왔지만.좀 자고 싶다는 내 말에 불을  두곤 거실로 나가 더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자 나는 시계만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오전 10시 58분....

스마트폰 어플을 열었다.


천국의 정원.

아침의 안개가 모두 물러간 그곳엔 너무나 진한 원래의 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한 줄기의 바람도 불지 않아 고요한 그곳이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다.


언덕 아래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오토바이가  차 옆에 멈춰 섰다.


남루한 옷차림.....얼굴에 붉은 흔적이 얼핏 보였다.

화면이 그 남자를 천천히 따라가고 있었다.


그 남자가 현관으로 다가왔다.



[띵동.......띵동.....]

침실에까지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혜린이의 모습이 보였다.


혜린이가 그 남자의 옷깃을 잡아끌어, 서둘러 정원 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얼핏 보인 혜린이의 얼굴엔 다급함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거실이 들여다보이는 테라스 쪽을 한번 뒤돌아본 혜린이가 그 남자에게 계속 무슨 말을 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 스마트폰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말을 하고 있었다.

 남자가 혜린이에게 머리를 계속 깊게 조아리며 말을이어갔다.

그러자  남자를 밀쳐내던 혜린이의 손이 멈춰 섰다.

혜린이가 그 남자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조금 걱정이 되었다.

청소를 해놓지 않아, 엉망일 텐데.....

나는 혜린이와 아름이를 차에 태워, 우리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날.

집을 떠난 후. 3일 동안 연속으로 혜린이집에 머물렀다.

토요일인 오늘.

아름이가 우리집에가고 싶다고 계속 졸라대,  수 없이 그러자고 했다.



“정리 안 해서 엉망인데.....”

“호호호......내가 열심히 청소할 게......”

아름이와 마찬가지로 신이 난 혜린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와!!!!1”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아름이가 창가로 달려갔다.



“강이다!!!! 예뻐요!!!!”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이 따사로운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나와 혜린이....그리고 아름이가 그렇게 한동안 창가에 서서,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 여보야.....나 반찬 좀 냉장고에 넣고 올 게....”

“엄마! 여보야가 모야?”

아름이 말에 나와 혜린이의 얼굴엔 동시에 어색한 웃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름이 오늘 뭐하고 싶어?”

“여기서 하루 종일 놀래요.”

“그래...그러자.....”

아름이를 안아 올렸다.





[띵동! 띵동! 띵동!]

초인종이 연달아 급하게 울려 댔다.



“여보야! 밖에 누가 왔어.......오늘 올 사람 있어?”

주방에 있던 혜린이 말에 아름이를 안은 채, 현관 쪽으로 향했다.

혜린이가 인터폰 화면을 보고 있었다.

“누....누구야?”

바로 옆에서 혜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터폰속에 한 사람이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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