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7화 〉The Garden of Paradise (10) (57/102)



〈 57화 〉The Garden of Paradise (10)


 인생 중에 세번째로 처참했던  하루가 모두.....지나갔다.


첫번째는 추모공원의 푸르른 소나무 아래 엄마를 남겨놓고 왔던 그날이었다.

두번째는 나리와 그 남자의 관계를 알았던날.

그리고 어제가.....그 세번째였다.

새벽에 집에 도착해, 그대로 소파에 쓰러졌다.

몸은 너무나 피곤했지만, 나는 잠들 수가 없었다.


소파에 누워 눈을 감은 채, 머릿속엔 세번째 날의 하루가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스마트폰엔 혜린이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메시지가 도착한 건, 새벽녘단 하나.....지민씨였다.


[같이 있던 남자가 나리를 자꾸 데리고 가려고 해서....내가 숙소로 나리 데리고 왔어요. 궁금해할까 봐 메시지 보내요.

그런데....루아씨. 어떻게 애를 그렇게 때릴 수가 있어요?  앞으로 루아씨 다시는 보기 싫어.]


바닥에 쓰러져,

내게 맞은 뺨이 새빨갛게 부어올라,
두 손을 달달 떨며 나를 보던 그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대충 샤워를하고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 새벽에 그쳤던비가 줄기차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차가 한참을 달려가,
오르막도로의 가장 높은 곳쯤.

새벽에 남겨놓은 아스팔트  스키트마크가, 퍼붓는 빗물에 젖어 어렴풋 표시가 났다.

간밤에 꾼 악몽이었으면, 좋았을 것을......남겨진 그 흔적이 그때의 나로 완전히 되돌려놓고 있었다.



누런 황토가 빗물에 쓸려 좁은 포장길을 완전히 뒤덮고 있었다.


멀리서 그곳이 보였다.

천국의 정원에 있던 하얀집이 오늘은 시커먼 하늘 아래 지어진 악마의 요새 같이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혜린이 차 옆에 주차를 했다.

쏟아져 내리는 빗방울을 그대도 맞으며 현관으로 걸어갔다.

내가 달아 놓은 IP CCTV가 장대처럼 쏟아지는 빗속에 나를 가만히 비추고 있었다.



매일 커다란 창가에서 서서 웃으며 나를 반기던 혜린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초인종을 눌러도 소식이 없었다.

도어락 번호를 누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엔 불이꺼져 있었다.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테라스에 있는 테이블 위에,

항상 나와 함께 마시던 자줏빛 블루베리 술이 담긴하얀 자기 술병과.......비어져 버린 소주병 몇 개가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혜린아.....”

거실 중간에 서서 이름을 부르곤 잠시 기다려봐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침실문을 살짝 열어 보았다.

하얀 베개 위에 기다란 머리칼이 흐트러져 있는 걸 보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올 뻔했다



조용히 침대로 다가갔다.

하루만에 핼쑥하게 변한 혜린이가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얼굴이 엉망이었다.

눈가엔 말라버린 눈물의 흔적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마에 손을 가져가자, 뜨거운 열기가 단번에 내 손을 타고 전해졌다.


“으으음.......”

내 손길 때문인지 혜린이가 뒤척였다.

“왔어요?”

“어.....”


“어디 아파? 뜨거워....열있네....”

잠에서 깬 건지......술에 취해 이제 깨어난 건지......흐릿한 눈이 나를 향해 있었다.

“가슴 만질래요?”

“어?”

혜린이가 덮고있던 이불을 아래로 끌어내리고, 한쪽 어깨에 걸려 있던 얇은 슬립 끈을 풀어 가슴을 완전히 드러내 놓고 있었다.


“여기 만지는 거 좋아하잖아....루아씨....”

그 말에 손이 자연스레 가슴 위로 올라갔다.

가슴 또한 열기에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좀  자요. 나 밖에 있을게. 아름이  때 됐네.....”

다시 이불을 깊게 덮어 주고 침실을 빠져나왔다.


테라스로 나가 혜린이가 밤새 혼자 마신 것 같은 빈 술병을 하나씩치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혜린이는 어둠 속 이곳에 홀로 앉아 술을 마시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병을 치우고, 테이블 위를 깨끗이 닦아내고 다시 거실로 들어가니, 침실문이 열렸다.


혜린이가 슬립 위에기다란 카디건 하나를 걸치고 거실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루아씨....할 말 있어요.......”

“몸살기 있는데 좀 쉬어, 있다가 이야기하자....”

하지만 내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혜린이의 저 표정.......

밤새도록 힘겨운 고민을 한 것처럼 잔뜩 굳어 있는 저 얼굴,

그리고평상시와는 다르게 나를 나지막이 부르는 저 존댓말....


혹여나....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라......내가모르는 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줄까 봐, 나는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루아씨.....지금 이야기해요.....”

혜린이가 소파에 앉아, 나를 보며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소파에 앉자,

혜린이는 계속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붉은 입술이 열렸다가....다시 닫히기를 계속 반복했다.


“루아씨.....하아.....”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루아씨....어제.....밤에 그 아저씨 여기 왔었어요......”

떨리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시선을 피해버렸다.



“나.....사...사실은.......그......그 아저씨하고.......잤어요......여러번.....”

지붕위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더욱 세차게 변해 있었다.



“여기...이사 왔을 때......나....정상이 아니었어요.
매일...매일....술이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외로웠어요....

그 아저씨가 계속 찾아와도 그러려니 했어요.


혼자사는 여자....남자 없이 애를 키우는 여자...

쉬운 여자.....

그 아저씨가 매일 찾아오는 이유도 알고 있었어요.

가끔 그 아저씨가 술에 취해서 올 때는 무섭기도 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냥 먹을 거 가져다주고....그게 다였어요.



여기 이사 와서 두어 달 정도 지났을 때.

너무 답답해서.......아름이 재우고 저녁부터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어요.

늦은 시간에  아저씨가 왔어요.

매일 뭔가를 가져다주는 그 아저씨가 고맙기도 했어요.

그 아저씨가 술 한잔 달라기에 그러라고 했어요.

테라스에서 술을 마셨어요. 그 아저씨하고.....

집에 있던 술이  떨어지자,  아저씨가 술을 잔뜩 사왔어요.

그렇게 또다시 마셨어요.

그렇게 계속 마시다 보니 술에 취했지만,...핑계는 대지 않을게요....

그 아저씨가 자꾸 이상한 이야길 했어요,

나.....몇년간 남자하고 자본 적이 없었어요.

그 아저씨가......나.....만지고 그래도......그냥가만히 뒀어요.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인데.....그땐......정말.......루아씨는 절대 이해가 안 되겠지만.......나는 어쩔  없었어요.


 아저씨가 내 몸을 만지고.....옷을 벗기고....

그 아저씨가 하는 대로.....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그날....

그 아저씨하고 테라스에서.....했어요........여러번......새벽까지.....”



잠시 말이 끊겼지만,

나는 다시 혜린이의 얼굴을 돌아볼 자신이 없었다.

지금 혜린이의 얼굴이 어떨지 고스란히 상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서......술이 깨고.....아침 늦게 일어나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그날이후,  아저씨는 더 자주 찾아왔어요......밤에만.....

불이 꺼져 있으면, 그 아저씨는 기다리다 그냥 돌아갔어요.

하지만.....

나도 미친년인 게........
그날 이후에 자꾸 그 생각이 났어요.

그 아저씨하고 그걸 하던  생각...


며칠을 계속 참다가.....견딜 수 없을 때쯤엔,
늦은 밤에 테라스에서 혼자 술을 마셨어요.

그때 그 아저씨가 이곳에 오면.....

문을 열어줬어요.

그리고 또다시.....섹스를 했어요.



한달에....두세번......

가끔은 내가 그 사람 집에 찾아가기도 했어요.

너무 외로울 때....
남자가 필요할 때....
너무 하고 싶을 때....

그렇게 2년을 지내왔어요. 이곳에서....”


한없이 떨리는 목소리에 다시 혜린이를 돌아봤다.

혜린이는 고개를 떨궈 놓고,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내가 처음 이 집에서 잤을 때...

침실에서 혜린이와 나누던 대화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힘들지 않았어요? 혼자 아름이.....]

[조금.....]


[남자친구......없어요?]

[그런 거 없어요....]


[그럼 외로울 땐.....어떡해요?]

[외로울 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하하하....둘다요....]

[음...여기서 내가 담은 마셔요........너무 맛있어....

그리구......음......자주는아닌데.....가끔 남자가 필요할 땐.....]

[그럴 땐?]

[아이...몰라요...그런 말 하기 싫어요....이상해....]

그날.....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 말을 얼버무리던 혜린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흐흐윽....정말 미안해요.......흐흑......

루아씨가 여기 오고나서.....그 아저씨가 세번 찾아왔어요.

첫번짼......간신히 그냥 돌려 보냈고....
두번짼.....루아씨하고 있을 때...

그리고 어제.....흐흑.....

그 아저씨가.....어제 와서.......2년동안 내가 그런 거...

루아씨한테 다 말해버린대요......흐으흐흑.......흐흐흑......”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와 혜린이의 커다란 울음소리가 거실에 한참 동안 가득 차 있었다.

한가지 궁금한 건.

혜린이가 왜 그런 남자를 선택했는가였다.

자기보다 거의 스무 살이나 많은......늙고 지저분한......그 남자를.....

그렇게 화려한 외모에......마음만 먹으면 괜찮은 남자들과 그럴  있었을 건데....

“정말...미안해요....정말 미안해요......”

갑자기 현관에서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름이가 올 시간이란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빗소리와 혜린이의 울음소리에 묻혀, 매일 울리던 유치원 차 경적 소리를 들지 못한  같았다.



“오빠!!!! 엄마!!!!  많이 와요!!!”

현관문이 열리자 아름이 소리가 들렸다.


“오빠......”

비에 잔뜩 젖어 있는 아름이가 현과 입구에 서서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보기 좋은미소가....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아름이가 소파에 앉아 서럽게 울고 있는 혜린이를 보고 있었다.



아름이가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거실을 가로질러 걸어나갔다.

아름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조심스레 닫았다.

혼자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버린, 아름이의 얼굴이 계속 마음에 걸렸지만, 우선 이야기를 끝내야 할 거 같았다.


“미안해요......정말 미안해요.”

“왜 나한테 미안한데?”

내 말에 울고 있던 혜린이가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뒤덮인 젖은 얼굴이 완전히 엉망으로 변해 있었다.

“나 만나기 전에 있었던 일이잖아.
 하곤 상관없는 이야기잖아.

내가 처음 이집에서 자고 갔을 때....
그 이후에......다른 남자하고 그런 적 있어?”

“아니요...아니요......”

혜린이가 서둘러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니가....나 만나기 전에 뭘 하고 다녔던지 상관없어.....관심도 없고......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는 내게 할 필요도 없어.......이렇게 울면서 미안하단 소리도  필요 없고.....

중요 한 건....내가 이 집에서 너 하고 처음 잔.....그 날부터 만.....나는 본다......

그만 울어........아름이 왔잖아.....”


“루아씨......흐흑....”

“나 아름이한테 가볼게....”




조금 전 아름이가 들어간 방문을 조심스러 노크를 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문을 열어보았다.

빗물에 잔뜩 젖어 있는 아름이가......그 작은 가방을 그대로  채.....책상에 엎드려 두 팔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가방을 메고 있는 아름이의 등이 계속 들썩였다.

“아름아?”

비단같이 반짝이는 아름이의 긴 머리를 찬찬히 쓰다듬었다.


“엉엉엉.........엉엉엉.....

엄마가 오빠한테 잘못했어요? 엉엉....

엄마하고 오빠....싸웠어요?

오빠 이제 여기  와요?
이제 우리 못 만나요?

나는 오빠하고 같이 살고 싶은데...

엉엉엉......”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들어 놓고 나를 보며 울고 있는 아름이의 모습이.....조금 전 혜린이의 얼굴과 너무나 똑같았다.


서럽게 울고 있는 아름이를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흘러나왔다.



“아름아.....그런 거 아니야....”

“그런데....엄마가 왜 저렇게 울어요?
엉엉...어제도 엄마 술 마시고 울었어요.”

“아...엄마가 좀 아파서 그래.......
내가 여길 안 와....
내가 아름이 얼마나 사랑하는데...”

“흐흑....네? 사...사랑해요?”

“그럼....”

“으아앙앙!!!!”

아름이가 두 팔로 내 목을 꼭 끌어안았다.


그 작은 두 팔이......내 목을 감싸오는 순간....

나는 결심했다.

다시는 아름이의 이 예쁜 눈에,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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