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0화 〉한 여자...아니, 두 여자를 만나다 (19) (40/102)



〈 40화 〉한 여자...아니, 두 여자를 만나다 (19)


“대학 홍보모델이 시작이었어요.
우연히 그 일을 시작하게 되고, 조금씩 알려지게 됐어요.

몇몇 잡지사에서 학교로 절 찾아왔어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 사람들 따라가서 스튜디오에서 정신없이 찍은 사진들이 패션잡지에 실리면서부터, 평범했던  일상은 완전히 바꿔버렸어요.

워킹도 제대로  하던 내가 모델에이전시에서  2주만 교육받고, 바로 무대에 섰어요.

사람들은 그런 저를 타고난 모델이라고 항상 칭찬했어요.

내가 그런 일을 할 거란 건, 나 스스로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으니까요.

저는 그 일이 너무 재미있고 행복했어요.

아.....이 일이....바로 내가 해야  일이구나....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거라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일은 점점 많아졌고, 작지만 괜찮은 소속사도 생겼어요.

그리고 학교도 휴학하고 본격적으로 그쪽 일을 하기 시작했죠.



화보....잡지......광고.....

제가 하는 일마다 너무  됐어요.

잠깐이지만 가끔 TV에도 나왔어요.

유명한 모델....선배들 촬영 나온 연예방송화면에 제가 같이 나온 거죠.

방송은 또 다른 세계였어요.

너무나 빛나고 화려한.....


어느 날 소속사에서 미팅을 잡아 줬어요.

방송국에서 프로그램 섭외가 들어 왔는데, 같이 미팅을 한번 해보자고 해서 나갔어요.

그날 그 사람을 처음 봤어요.

그 PD하고 여자 작가들이 몇 명이 나왔는데,

작가들이 프로그램 설명을 해 주더군요.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남자 연예인을 도와 방송을 진행하는 보조 MC 정도였는데,  당시 방송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겐 너무 큰 역할이었어요.


소속사에서는 너무 좋은 기회라 무조건 해야 한다고하고....

나는 겁나고.....무섭고......첫날은 그렇게 내가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하고 미팅이 끝났어요.


며칠 후, 그때 만난 PD가 바로 저에게 연락이 왔어요.

시간 괜찮으면 방송국으로 한번 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가봤더니, 그 사람이 방송국 구경을 시켜줬어요.

내가 너무 겁먹고 있는 거 같아서........방송을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보라며, 녹화하는 것도 보여주고, 유명한 연예인들하고 인사도 시켜줬어요.


 이상한 게....

 날  사람 따라 하루 종일 방송국을 돌아다녀 보니까.......두렵기만 하던 마음이 조금씩 편해지더군요.

그 사람이 말했어요.

자신이 나를 직접발탁했다고.

자신이 졸업한 대학 홍보 책자에서  사진을 보고 연락을 한번 해보려다 잊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패션 잡지에서 다시 나를 봤다고....

그래서 연락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 사람은 나와 20살 이상 차이 났지만, 내게 굉장히 젠틀했어요.

그날 그 사람하고 단둘이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어요.

자기를 믿고 한번 해보자고 하더군요.

만약 내가 방송 나가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유명해질 거라고 하면서....

자신은 그런 촉이 있다고.....지금까지 자신이 찍은.......방송에 데뷔시킨 여자들이 모두 하나같이 잘됐다면서.....

그 사람 말에 자꾸 욕심이 났어요.

그 사람 말처럼 정말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같았어요.


내게 꿈이 생긴 거죠.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서.....그 사람 프로그램에  녹화를 했어요.

강원도 어디 첫 야외 촬영을 하고, 스텝들과 출연한 연예인들 모두 펜션에 모여 뒤풀이를 했어요.

그 사람과.....다른 분들 모두 내가 첫 촬영인데, 참 잘했다고 계속 칭찬을 해줬어요.

평사시엔 절대 입어보지 못할 협찬 받은 예쁜 옷.....눈부신 조명, 나를비추는 카메라........그리고 나를 보고 있는 모든 스텝들....

너무나 기분이 좋았어요.

그 날...

술을 너무 많이 마셔버렸어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기억이 나는 건, 작가 언니가 나를 부축해서 룸에 있는 침대에 데려다  거....



눈을 떠보니, 그 사람....그 PD가 있더군요.

침대 위에....
 몸 위에....

 사람이 한참 동안 그걸 했어요.

나는 눈만 뜰 수 있었어요, 하지만 몸은 전혀 움직일 수 없었어요.


그때. 생각한 건...

‘아......이런 거구나.....방송을 하려면.....이렇게 해야 되는구나....’


그게 내....첫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다시 잠들어 버렸어요.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창가에 푸른 빛이 도는 이른 새벽이었어요.

그런데 이젠 내 침대 위에......그 사람....한사람만이 아니었어요.

처음 보는 남자들.....분명 스텝들은 아닌데....같이 촬영했던 그 연예인분들도 아니고....

정말 처음 보는 남자들. 나이가 많은.......



하나씩....하나씩.....그리고 같이....


윤간이라고 하죠...

내가 기억하는 건, 여섯 명이었어요.  PD를 포함해서...


아침까지 몇 시간을 계속.....그랬어요.....훗......”


이젠 더이상 혜린씨는 흐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호텔룸에 담담하게 울리는 혜린씨의 그 목소리가내겐, 울먹이며 발버둥치는 고통스런 그런 소리같이 들려왔다.




“아침에.....나 혼자 남겨진 그 방에서.....나는 일어날 수도 없었어요.

거기가너무나 아파서....내 몸이 완전히 부서져 버린 거 같았어요.

어쩌면 죽어버릴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 정도로...

작가 언니가 들어와서 침대에 그렇게 누워있는  보고는 난리가 났어요.

여자 스텝들이 들어와서 무슨 일이냐고 계속 묻는데, 난 눈물만 계속 흘렸어요.

내 꼴을 보고......강간 당한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 작가 언니가 신고를 하려는데, 그 PD들어와서 모두  보냈어요.

그 사람이 처음 내게 물은 건, 기억이 나냐. 였어요.

그리고, 남자들 얼굴을 봤냐고 물었어요.


그때. 나는 너무 무서웠어요.
나를 보는 그 사람의 눈빛......

자기는 나하고 관계를 가지고 다른 방에서 자서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나는 분명.....그 남자들과 내 침대 위에 있는 걸 봤는데....


22살....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그냥 달아나는 거....그거 밖에 없었어요.

너무 무서웠거든요.

작가 언니한테 아무도 모르게 터미널까지만 태워 달라고 해서  길로 바로 집으로 내려갔어요.

그리고 미친년처럼 방에 박혀죽은 귀신처럼.....그렇게 살았어요.

엄마....아빠가....무슨 일인지 계속 물었지만, 말할 수도 말하기도 싫었어요.



 달....두 달....세 달....시간은 그렇게 계속 흘러갔어요.

그리고......

임신을했단 것도, 배가 불러와서야 알았을 정도였으니까.......그 정도로 난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엄마 손에 끌려서 산부인과에 갔더니, 벌써 4개월이 훨씬 넘어서 중절은 불가능하다는 소리.....

수소문해서 다른 병원을 찾아갔지만, 해 줄 수는 있는데 너무 위험하다......

그래서....아름이.....아름이를 어쩔 없이 가졌어요.

윤간당해서 생긴 아이....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사생아....”


정말 상상하지도 못한혜린씨의  말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혜린씨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터져 나와 계속 아래로 흘러내렸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나 정말 미친년이죠?

그래놓고......7년 전에 그런 일을 당하고서도......

빠뚜싸이에서 7년 만에 그 PD를 다시 만났을 때,

그 사람이 내게 일을 제안했을 때.

나는 내 발로 또.....그 사람을 찾아 갔어요.

미친년처럼.

아마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나조차도....내가  그랬는지 이해가 안 되니까...

그리고 또, 똑같은 일을 당했어......흐으흑....흑.......

이제는 정말 안 해........이제는 다시는 안 해........흐으흑.....”

 처절한 울음소리가 또다시 룸을 가득 채워 나갔다.


울고 있는 혜린씨의 얼굴을 보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얼굴을 뒤덮고 있는 뜨거운 눈물을 닦아 줄 수조차도.....













한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4층  문을 열었다.

아름이가 언제 일어났는지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름아. 언제 일어났어? 왜 전화 안 했어?

“아까요.....”

아름이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아름이의 얼굴은 벌써 세수를 한 거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


“엄마는요?”

“응. 엄마는 괜찮아.”

“아름이 배고프지?”

“아니요...”


“조금 있다가 엄마가 있는 방에 음식이 올 건데....아름이가 가서 엄마하고 같이 먹을래?”

“오빠는요?”


“나는 배  고파....조금 있다가 내려갈 거니까.....아름이는 지금 엄마한테 갈래?”

“네....”

아름이가 그 작은 발을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룸을 빠져나갔다.

풀이 잔뜩 죽어,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 아름이의 뒷모습이 마치 혜린씨의 모습 같았다.






아름이가 룸을 빠져나가가 마자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7시 54분....

조금 전, 3층 그 방에서 들었던 혜린씨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말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소파 뒤에 구석에 숨겨놓은 노트북 가방을 꺼내, 테이블로 가지고 왔다.

스마트폰 귀퉁이를 누르자, 유심칩과 마이크로SD카드가 튀어나왔다.


노트북을 켜자 마자, 노트북에 꽂혀있던 USB와 마이크로SD카드 폴더를 확인했다.



USB엔 워드 문서와 PDF 파일이 가득했다.

방송기획안과 계약서 파일 그리고 일정에 관한 문서들이었다.


마이크로SD카드엔 모두 사진과 동영상 파일이었다.


가장 빨리 생성된 폴더는 5일 전이었다.

[비엔티안 1일차  코디미팅]



그 폴더 중에 내 눈길을 끈 마지막 폴더 하나.

[비엔티안 - 쫑파티]

 폴더엔 사진과 동영상 파일이 가득했다.

시간별로 정렬된 사진부터 열었다.

내가 새벽에 갔던....풀빌라....

사진에 찍힌 하늘엔 저녁의 붉은 노을이 깔려 있었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수많은 남여들이 풀장 주위 테이블에 모여 있었다.

새벽에 보았던, DJ가 서 있던 곳에 PD가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다음 파일로 넘기가 동영상이 시작되었다.

[여러분...오늘이 비엔티안에서 마지막 밤입니다.

며칠 동안 장소, 현지 출연자 섭외 그리고 코디해 주신, 라오스 방송사쪽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많이 도와주신 우리 한인 조사장님에게 감사드리고, 오늘은 며칠 동안 우리 스텝들을 위해 고생해주신 현지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리는 자리입니다.

오늘 밤은 우리 모두 한번 화끈하게 놀아봅시다.

3주후에 본 촬영 올 때, 그때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D말이 끝나자, 옆에 서 있던 여자가 라오스어로 통역을 하는  같았다.


[아...참 참.....중요한 걸 빼먹었네요.

그리고 조사장님이 오늘 밤을 위해, 귀한 걸 준비해 오셨네요.

오늘여기 CCTV 모두 오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안심하시고......마음껏.....무슨 말인지 다들 아시죠?]

이곳저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자가 라오스어로 통역을 하자, 현지인들에게서도 같은 한국인들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PD가 무대에서 내려갔다.

화면이 그대로 PD를 따라가고 있었다.


가장 앞쪽에 있는 테이블.....

리본으로 곱게 매듭지어진 등이 활짝 파인 분홍색 원피스를입은 여자의 뒷모습.


PD가 그 여자의 잘록한 허리를 바싹 끌어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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