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한 여자...아니, 두 여자를 만나다 (18)
“수...수현아....너 왜....모자 쓰고 있어? 밤에.......지금 몇 시야....”
아직 무엇인가에 깨어나지 못한 어눌한 발음.
내 손목을 잡고 있는 그 손의 힘이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반면, 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 두 여자는 처음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물....물....물 좀 줘.....아....목말라....”
내 손목을 잡고 있던 남자의 손이 힘없이 침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아앙....아앙...아앙!!!!]
TV속에선 혜린씨의 그 소리가 다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침대 위에 상체가 비스듬하게 서 있는 이 남자의 얼굴이 헤린씨의 신음이 울리는 TV쪽을 향해 천천히 돌아갔다.
나는 주위를 돌아봤다.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빈 맥주병들이 몇 개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문 쪽으로 걸어가 빈 맥주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침대 위에 있는 남자가 입을 멍하게 벌려 놓고 TV를 보고 있었다.
TV속에선....
이 남자가 수현이라고 불렀던 그 조연출이, 혜린씨의 발목을 잡아 큰 V자로 벌려 놓고, 엉망이 된 혜린씨의 보지속을자신의 자지로 정신없이 쑤시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남자가 자지를 혜린씨의 입속에 억지로 밀어 넣었지만, 신음이 터져 나올 때마다 그 검은 자기가 혜린씨 입에서 계속뱉어내 졌다.
나는 맥주병을 들고 다시 침대로 다가갔다.
상체를 일으켜 놓고 있는 남자의 윗머리칼을 쥐어 잡았다.
그리고 내 손에 쥐어 진 남자의 머리칼을 침대 아래로 바짝 끌어당기자, 남자의 대가리 힘없이 끌려왔다.
남자의 대가리가 침대 위에 바짝 닿아 있었다.
“어어어.......”
‘퍽!!!’
둔탁한 소리가 방에 한번 크게 울렸다.
내가 들고 있던 맥주병이 산산조각나 그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더이상 그 남자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하던......
내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경계를 결국 넘어버린 순간이었다.....
[아아아.....아앙!!!]
TV에선 조연출이 혜린씨의 허리를 잡고 끌어당기자, 침대에 닿아 있던 혜린씨의 머리가 위쪽으로 가볍게 올라왔다.
나는 노트북 스페이스키를 눌렀다.
그러자 방안에 떠나갈 듯 울리던 그 소리들이 단번에 그쳤다.
내가 이 방에 처음 들어와 봤던 것처럼,
TV와 노트북이 같은 화면으로 멈춰 있었다.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 얼굴이 고통스레 잔뜩 찌푸려졌다.
수영장이 있는 바깥의 불빛이 넓은 발코니 창을 타고 들어오자, 침대 위 조각난 맥주병 파편들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더이상 이곳에 머물 순 없었다.
노트북에 열려 있던 영상을 닫고,
계정 설정으로 들어가 입력되어 있던 로그온 비밀번호를 삭제했다.
노트북엔 대용량 마이크로SD카드와, USB메모리가 꽂혀 있었다.
노트북을 전원 버튼을 누르자, 방을 환하게 밝히고있던 TV 화면이 시커멓게 변했다.
한발 내디딜 때마다 신고있는 스니커즈 아래로 무엇인가 잘게 부서지는 저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아마도 방바닥까지 퍼진 맥주병 파편 때문인 것 같았다.
발코니가 있는 그 앞 소파에 캐리어와 가방이 몇 개 놓여 있었다.
노트북 가방처럼 생긴 것을 들고 아래로 뒤집어 흔드니, 속에서 잡다한 것들이 테이블 위로 떨어져 내렸다.
여권이 보였다.
여권 속에 하얀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E-Ticket.....항공권이었다.
종이를 펼쳐보니, 귀국편은 바로 오늘 밤 비행기였다.
나는 여권과 그것을 다시 노트북 가방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들고 온 노트북도 그 가방 속에 넣었다.
이 방안에.....혜린씨의 어떤 흔적이 남아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디지털카메라.....스마트폰.....방송카메라......
나는 스마트폰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스마트폰이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장소인 3명의 남녀가 뻗어 있는 침대 위를 훑어봤다.
축 처져 있는 여자의 몸을 침대 안쪽으로 밀쳐내자, 여자의 엉덩이에 깔려 있던 스마트폰이 하나가 보였다.
버튼을 누르자, 잠금 화면에 침대 위에 대가리를 처박고 있는 남자의 웃고 있는 사진이 떠있었다.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 스마트폰 전원을 껐다.
마지막으로 방을 한번 둘러본 후......나는 그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문 안쪽에 달린잠금 버튼을 눌러 문을 잠근 후.......밖에서 그 문을 꼭 닫았다.
1층으로 내려오자. 조금 전 이곳에 왔을 때보다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아...좋아.....그렇게.....아.....아음......너무 좋아.....]
한국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빠져나가는 입구, 소파 위에 두 사람이 엉켜 있었다.
여자는 다리를 활짝 별러 놓고,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검은 남자가 벌어진 여자의 다리 사이에서 ‘퍽퍽’ 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자신의 자지를 박아 넣고 있었다.
[아......자기야.......더.......더......아아앙....]
내가 옆에서 그 광경을지켜보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눈이 완전히 풀려 있는 여자는 그렇게 미친 여자처럼 섹소리를 질러 내고 있었다.
여자의 보지를 열심히 쑤시고 있는 검은 남자.
조각 같은 얼굴.....보기 좋은잔 근육......핏줄이 바짝 올라와 있는 검은 자지.....
2층 그 방 TV에서 봤던......그 남자였다.
수영장이 있는 야외엔 여전히 DJ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서로부둥켜안고 키스를 하고 만지고........그 모습도 여전했다.
아이스박스에 박혀 있던 비어라오 한 병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여자가 웃으며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호호호.....”
내 말에 그 여자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노트북 가방이 들려 있는 손으로 검은 유리문을 열었다.
또 다른 세계로 통하는 긴 터널......
나는 그곳을 걸어가고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내 룸으로 올라갔다.
밖에 있는 내내 계속 혼자 있을 아름이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다행이도 아름이는 내 침대에서 처음 그 모습대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4시 12분.....
노트북 가방을 소파 뒤 구석에 숨겨놓고 룸을 빠져나왔다.
3층....룸.
문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초인종이 있었지만, 이편이 더 나을 거 같았다.
잠시 기다리자. 걸쇠가 걸린 문틈 사이로, 눈이 빨간 지민씨의 얼굴이 반쯤 보였다.
“지민씨.....오늘 돌아가는 비행이잖아요......미안해요....못잤죠? 어디 가서.......아니 숙소로 가서 조금이라도 자요......”
지민씨가 문을 열어주자마자, 담고 있던 그 말이 빠르게 흘러나왔다.
하지만 지민씨의 시선은 내 얼굴이 아니라 아래를 행해 있었다.
“왜....이래요?”
“네? 뭐가요?”
“손.....손에....피나요..”
“네?”
지민씨의 말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오른손 끝에서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손을 펴보니 피범벅이었다.
아마도 손에 꼭 쥐고있던 맥주병.....산산조각 나던 그 맥주병 때문인 거 같았다.
나는 바로 욕실로 향했다.
“괜찮아요? 어쩌다 그랬어요? 어디 갔다 온 거예요?”
뒤에서 욕실까지 따라 들어온 지민씨의 물음이 이어졌다.
차가운 물에 씻어지는 손바닥이 너무나 쓰라렸다.
손바닥이 군데군데 베여, 그곳에서 새빨간 피가 계속 스며 나왔다.
지민씨가내 손에 붕대를 감아주고 있었다.
아래로 내리 깔린 그 눈이 너무나 피곤해 보였다.
내가 없는 사이, 엉망이던 혜린씨의 얼굴과 몸이 깔끔하게 변해 있었다.
아마도 지민씨가 꼼꼼하게 닦아 내준 모양이었다.
“저기...지민씨...미안해요....피곤하죠?”
“괜찮아요.”
지민씨는 아무렇지 않은 듯,하얀 테입으로 내 손에 감긴 붕대를 고정하고 있었다.
“루아씨....”
“네?”
지민씨가 내눈을 잠시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니다......다음에 이야기해요. 다음에.......”
발코니 창을 통해 보이는 하늘에 짙은 어둠이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루아씨. 좀 더 있고 싶은데.....비행 때문에......가서 몇 시간이라도 좀 쉬어야겠어요.”
“네. 당연히 그래야죠. 괜찮아요.....”
“언제 귀국해요? 티켓은 주말이던데....”
“아.....아직.....”
“그래요. 귀국하면 연락해요.”
“네...알겠어요.”
“참 그리고, 저분 깨어나시면......꼭 이 병원에 가서 새벽에 봤던 그 여자의사 찾으세요.”
“알겠어요...고마워요 지민씨....”
지민씨가 병원로고가 찍힌 명함 하나를 내게 건네줬다.
지민씨가 호텔 앞에 서 있던 택시에 올라탔다.
나는 지민씨가 탄 그 택시가 내 시야에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4층 내 룸으로 올라와 자고 있는 아름이 곁에 메모를 하나 적어 놓았다.
[아름아. 일어나면 침대 옆에 전화기로 이쪽으로 전화해.
*317# 이렇게누르면, 엄마가 있는 방에 연결되니까 일어나면 꼭 전화해....]
다시 3층으로 내려와 혜린씨가 있는 룸으로 들어서자......소리가 들렸다.
흐느끼는 소리였다.
“흐흑......흐으흑.......”
혜린씨가 침대에 누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고 있었다.
“혜린씨.......깼어요?”
“흐으흑.....미...미안해요.......”
인젠 완전히 깨어난 모양이었다.
“아름이.....아름이는요?”
“지금 내방에서 자고 있어요....아름이는괜찮아요. 걱정 마요...”
얼굴을 가리고 있는 기다란 손 틈에서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나는 티슈를 뽑아, 얼굴을타고 내리는 그 뜨거운 눈물을 닦아 주었다.
“흐흑........다시는......다시는 안 해.......이젠 정말 다시는.....내가 미쳤나 봐.......흐으흑....”
룸에 혜린씨의 울음소리가 한참 동안 울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혜린씨가 조금씩 진정되어 갔다.
“손....손은 왜 그래요?”
“아....이거...뭐 좀 하다가...넘어졌어요”
“혜린씨....여기어떻게 왔는지 기억....나요?”
“네....”
어쩌면 다시 떠올리기도 싫을 기억일 건데......생각해보니 괜히 물은 것 같았다.
“혜린씨....좀 더 자요...”
“7년 전이었어요.........”
이제 막 아침이 밝아 오는 빛이 환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불을 끄려고 일어나려는 순간,
혜린씨의 담담한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