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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화 〉한 여자...아니, 두 여자를 만나다 (8) (29/102)



〈 29화 〉한 여자...아니, 두 여자를 만나다 (8)


비엔티안의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하기 가장 좋은 곳,

메콩강 길가의 노천 레스토랑.



우리는 그곳에 앉아 저 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가슴이 깊게 파인, 브라운컬러V넥 롱원피스, 한쪽이 길게 절개되어 있는 곳을 통해 여자의 뽀얀 허벅지가 반쯤 드러나 있었다.

여자의 몸에 빚어진 곡선이라는 모든 곡선을 완전히 드러내 놓고 있는 드레스.

화사하게 화장을 하고 있는 여자의 얼굴과.....이 멋진 옷차림은, 마치 중요한 누구에게 초대를 받아 파티장에서 만찬을 즐기는 그런 모습 같았다.

그에 비해.....내 모습은.....거지꼴이었다.

엉클어진 머리, 비엔티안의 뜨거운 태양에 그을려 까칠하게 변한 피부.....

헐렁한 반팔 티셔츠와 손빨래로 며칠을 돌아가며 입고 있는 보드 숏팬츠.



테이블에 각종 해산물이 가득하게 쌓여 있었다.

여자의 얼굴에 스며 있는, 조금씩 짙어 가는 석양의 흔적이........아름다웠다.

나는 얼음처럼 차가운 비어라오 한 병을 홀짝이며, 그 여자의 얼굴을 안주 삼아, 저물어가는 하루를 조용히 즐기고 있었다




느긋한 저녁 식사가 마무리될 무렵,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여자의 스마트폰에서 연이어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기다란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한동안 무언가를 계속 보고 있었다.

시종일관 옅은 미소가 스며 있던 여자의 얼굴이, 조금씩 변해갔다.


스마트폰을 다시 테이블에 올려놓고서도 여자는 계속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여자의 시선이, 빨대로 주스를 빨아 먹고 있는 아름이에게 계속 머물러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그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다, 여자에게 말을 꺼냈다.

“아....아니요.....”

여자는 싱긋 웃으며 답했지만, 또다시 표정이 심각하게 변해 갔다.





“저기.....죄송한데요....”

“네?”

모든 식사를 마치고, 석양의 흔적이 모두 사라져 하늘이 검게 변해있을 때.


여자가 말을 꺼냈다.


“음....죄송한데요....아름이 몇 시간만 좀 봐 주실 수 있으세요?”

여자의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에, 이 말을 속으로 수백 번 되뇌었음이 고스란히느껴졌다.


“네. 괜찮아요..”

나는 여자의 이런 마음을 알기에 아무렇지 않다는 듯 주저 없이 답했다.

“엄마....어디가?”

“응....잠깐......갔다올거야.....”


“어디 가는데?”

“음.....할머니, 할아버지 선물도 사고..........음....”

여자가 머뭇거렸다.



“아름아. 우리 맛있는 거 사서......호텔에서 파티할까?”

“파티요? 네! 네! 좋아요!”

그제서야 한동안 굳어 있던 여자의 얼굴이 다시 화사하게 피어났다......만개한 백합처럼.















나는 아름이와 야시장에 가서 애들이 좋아하는 간식거리와 그리고 아름이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하얀 강아지 인형을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내방보다는, 아름이가 머물고 있는 그 방이아름이에겐 편할거 같아. 노트북을 챙겨  방으로 갔다.



“오빠 뭐 하세요?”

한참을 먹고 놀고.....아름이가 하얀 강아지 인형에 대한 관심이 사라 질 때쯤, 노트북을두드리고 있던 내게 바싹 다가와 물었다.

“음....일하고 있어 글쓰기....”

“글쓰기? 그게 오빠 일이에요?”


“응...”

“우와......”

아름이 얼굴이 노트북 화면에 바짝 다가갔다.

[.........여자의 짙은 체취를 느끼며, 남자가붉게 벌어진, 여자의 젖은 그곳에 키스를 했다......]


순간 정사씬을 적어 나가던 글이 보여 급하게 마우스 휠 을 돌렸다.


“오빠 작가예요?”

“너 작가가 뭐하는사람인지 알아?”

“네.....동화책....소설.....쓰는 사람......”

6살짜리가 작가라는 단어를 안다는 게 신기했다.

갑자기 궁금한 것들이 떠올라,  여자에 대해 아름이에게 물어보려다 생각을 접었다.



아름이는한동안 내 옆에 붙어 앉아, 계속 노트북을 들여다보다 잠들어 버렸다.

나는 아름이를 안고 침대에 뉘었다.

밤 10시.....

여자가 우리를 떠난 지, 2시간이 지나 있었다.







[루아씨. 미안해요....많이 늦었죠?]

스마트폰이 소리 없이 반짝였다.


화면에 떠 있는 메시지가 누구에게서 발송된 건지  수 없었다.


첫 메시지....

메시지 옆에 여자의 사진이 보여 확인을 하니....

그 여자였다.

 여자와 헤어질 때, 내게 메신저 아이디를 가르쳐 달라고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여자의 사진은 프로필 사진 같았다.

화려한 투피스 정장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유혜린입니다]

그리고 사진 아래 모두에게 인사를 하는 것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내가 그 여자의 이름을 알게  순간이었다.

[괜찮아요.
아름이 한참 놀다가 지금 자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여자....아니....혜린씨에게 답장을 보냈다.

다시 메신저 초기화면으로 돌아오자, 무음으로 설정해 놓은 이후, 도착한 수많은 메시지들의 미확인 숫자가 보였다.


[루아씨.  연락이 안 되네요?
저 오늘 서울에서 나리 만났어요.
그날 일.....아니에요. 담에 만나서 이야기해요]

[루아씨 저 내일거기 도착인데.....]

[어디 거에요? 집이 엉망인데.....
걱정되니까 연락 좀 해요....]

며칠동안 계속 이어진 지민씨의 메시지.....



[강루아. 너 요즘 도대체 뭐하고 다니는 거야?

계속 전화도 꺼져 있고.......
나리도 너하고 연락 안 된다고 하고.....무슨 일 있는 거야?]

아버지......

복잡한 마음에......서둘러 창을 닫아 버렸다.

하지만, 그 복잡한 여러 생각들 중에 가장 앞서 있는 건,

너무나 뜻밖에도 혜린씨의 그 얼굴이었다.

















석양이 피어오르는 어느 초원,

그곳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코를 간지럽히는 그 진한 향기에  마음마저 평온해 졌다.

눈을 떠버리면,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질까 봐, 차츰 돌아오는 정신을 계속 어둠 속에 숨겨놓았다.




주위가 환했다.

희미하게 아름이의 얼굴이 보였다.

아름이는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나도 그 침대에 함께 누워있었다.

작업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이 침대에 누워 잠들어 버린 듯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 몸을 반대로 돌리는 순간.

“어! 놀래라....”

혜린씨가 침대 곁 의자에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깼어요?”

“언...언제 왔어요?”

하지만 내 물음에도 혜린씨는 따스한 시선만 내게 전해주며......아무 말이 없었다.

혜린씨의 얼굴은 나와 아름이를 떠나갈 때와 똑같았다.

완벽한 화장.....그르고 그 롱 원피스......

단지 뺨과 하얀 눈 속이 조금 붉게 변해 있는 걸 제외하곤...


“지금  시에요?”

“한시요.....많이 늦었죠? 미안해요...”

“아니요....깜박 잠들었나 보다......”

침대에 일어나려 몸을 뒤척이는 순간.

의자에 앉아 있던 혜린씨가 일어나더니, 옆트임이 있던 원피스 속에서 맨 허벅지가 나와 침대 위에 올려졌다.



혜린씨는 침대에 누워 나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잠결에 나를 깨어나게  그 향기가 바로 내 얼굴 앞에서 진동했다.

“내게 왜 이렇게 잘해줘요?’

“네?”


“그냥....호기심에.....애까지 있는 여자....한번 건드려 보려고......즐기려고 그런 거예요?”

“아...아니요..”

“그럼요?
루아씨.....나.....좋아해요?”

갑작스런 그 물음에 나는 잠시 꿈을 꾸고 있나 생각했다.



“여자친구하고는 언제 헤어졌어요?”

“얼마 안 됐어요”


“얼마나 만났는데요?”

“2년.....”


마치 지독한 최면에 걸린 것처럼 내 입에서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왜 헤어졌어요?”

“딴 놈하고 잤어요...여자친구가....”


“참 나쁘네요...그 여자......쌍년이네요.....”

“하아....맞아요. 쌍년이에요...흐흐”

그 예쁜 입술에서 그 말이 흘러나오자 웃음이 나왔다.

“예뻤어요?”

“아니요....”

“피이~ 거짓말.....”

“보고 싶진 않아요?”

“아니요....지웠어요.....모두....”


나리의 얼굴을 떠올린게 언제 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랑했던 사람을 지울  없어요.
잊을 수도 없고....

단지 그런 척할 뿐이죠...아프지 않기 위해서....”

“결혼을.....일찍 하신 거....같네요.
남편 분은.....뭐하시는.....”

“훗...남편 분? 나 그런 거 없어요.
세상에 아름이하고 나 둘 뿐이에요.”

혜린씨의 말에 비가 오던 어젯밤....그 남자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남편은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는.....혜린씨의 그 말.

우리는 말없이 한참 동안 서로의 눈만 보고 있었다.




“여기서....자고 갈래요?”

나는 내가 바싹 다가와 있는 그 얼굴만 보고있었다.


침대가 조금씩 움직이고.....

혜린씨가 내 품속으로 다가왔다.

내 팔 위에 비단처럼 반짝이는긴 생머리가 올려지고,

원피스 옆트임을 완전히 비집고 나온 긴 허벅지가 내 허벅지 속을 깊게 파고들었다.

나는 내게 완전히 안겨 있는 혜린씨의 허리를 꼭 감싸 안았다.

방금 샤워를  것 같은 좋은 향기가  품에 왈칵 쏟아져 들어왔다.


혜린씨가 고개를 위쪽으로 살짝 올려 나와 눈을 맞췄다.


붉은 입술 깊은 곳에서, 상큼한 양치향과........독한 술 냄새가 진하게 뒤섞여 있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룸 안이 가득 들어차 있는 햇빛 때문에 눈을  수 조차 없었다.




“오빠.....왜....우리 엄마........안고 있어요?”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름이었다.

혜린씨가 내 가슴에 얼굴을 깊게 묻고 내게 꼭 안겨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스커트 옆트임에서 흘러나온 혜린씨의 맨 허벅지가 내 허벅지사이에 완전히 끼워져 있었다.



“어......”

항상 생글거리며 웃던 아름이의 얼굴이 마치 화난 거처럼......심각하게 변해 있었다.

“아...그게.....”

“오빠....우리 엄마하고 사겨요?”

“어?”



그때.....


“아름아.....”

내 가슴 앞에서 작은 소리가 울렸다.


“엄마....”


“아름아....엄마 피곤해서 더 자야 되거든.....

“네....”


“아름이배고프면.....2층에가서 혼자 밥 먹고 올 수 있어?”

“네.....”

“모르는 사람하고 이야기하지 말고.....밥만 먹고 와.....”

“네.....엄마....”

아름이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름이가 내 얼굴을 보며, 다시 예전의 그 미소를 보여줬다.


“엄마....배고프면.....아름이가 맛있는  가지고 올까요?”

“아니....엄마는 괜찮아.....”


“오빠는요?

“어....나도 괜찮아....”


아름이가  쪽으로 가는 걸 보고서야, 조금 들려 있던 내 얼굴이 다시 배게 위에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나는 오빠가.......아빠였으면참 좋겠다.........”


아름이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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