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한 여자...아니, 두 여자를 만나다 (7)
“갑자기 연락 오셔서....조금 걸렸어요...”
“아니야, 나도 방금 왔어...허허....”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 향수 향이 잔뜩 수분을 머금고 있는 바람을 타고, 내가 앉아 있는 여기까지 은은하게 번지고 있었다.
작업중인 워드를 저장하고,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을 환하게 밝히고 있던 노트북 전원을 눌러 껐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노트북을 살며시 들어, 뒤에 있는 작은 문을 통해 호텔로 들어갈지, 아니면 세차게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이곳에 가만히 앉아있을지를.....
“정말깜짝 놀랐어. 어떻게 여기를 너를 만나냐......”
“네. 저도 그날 감독님 보고 너무 놀랐어요.”
“한 6~7년 만인가....우리 마지막으로 본지가....”
“네. 그쯤요...”
“그땐.....참....내가 미안했어. 내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데.....어쩌다 보니.....”
남자의 말에 여자는 답이 없었다.
내게 등을 반쯤 보인 채, 앉아 있는 남자의 나이는 50은 넘어 보였다.
내가 이 남자의 얼굴을 기억하는 건, 조금 전 SUV에서 내려, 비를 피해 호텔 현관 쪽으로 뛰어가던 그 찰나의 순간과,
이틀 전 빠뚜싸이에서 나와 아름이를 스쳐 지나가던 그때 보았던 그 얼굴 때문이었다.
“그날이 마지막이었지 아마? 너무 취해서 말이야....너도....나도.....다른 놈들도.....”
“네에....이젠 오래전 이야긴 걸요....”
“하하하.....그래 그래. 니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그나마 내 마음이 좀 편해진다....”
남자가손에 들려 있던 담배를길게 빨아, 비가 쏟아지는 허공을 향해 진하게 뿜어냈다.
“그래....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저는 지방으로 내려와서.....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이쪽 일은 완전히 접은 거야?”
“지역방송국에 가끔 나가구요.......지면광고 같은 거.....뭐....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남편은 어떤 사람이야?”
“그냥.....평범해요.....호호....”
“니 남편은 참 좋겠다. 집에 가면 너 같은 여자가 항상 기다리고 있어서.....허허허....”
“호호호....감독님도 참....”
“너 그때 참 예뻤는데.....똑똑하고.....”
“이젠 시간이 많이 흘렀죠....”
“아냐 아냐! 나는 말이야......지금 니가 더 예쁜 거 같은데?
뭐랄까....좀 더 색이 짙어 졌다고 해야 하나?
왜 그런 거있잖아. 남자들 환장하게 하는 거.......니가 20대 초반, 그때도 그랬지만 말이야....“
“호홋...”
“담배 하나 줄까? 오랜만에 우리 맞담배 필까?”
“아니요, 아니요....괜찮아요...감독님은 어떻게 지내셨어요?”
여자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밝은 하이톤을 유지하기 위해......노력하는 거 같았다.
그리고 그 목소리엔 아주 미묘하게......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애교가 담겨 있었다.
“나는 뭐......2년전에 종편으로 옮겨와서....하던 일 계속하고 있지 뭐.
이번에 새로운 프로그램 하나 들어가는데. 밑에 애들 몇 명 데리고 사전답사, 섭외 겸, 휴가 겸....그렇게 왔어....”
“아....그러시구나.......”
“너....복귀하고 싶지?”
“네?”
“니가 했던 일....그일 계속 하고 싶지?”
“호호호......그....그 럼요. 근데......지금은....”
여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서 말이야......이번에 들어가는 프로그램이...
30대 이상 한물간 퇴물, 솔로 남자 여자 연예인들 몇명데리고, 해외 관광지에서 미팅......아니지 짝짓기지 짝짓기......
우리가 현지에서 섭외한 외국인 남자 여자하고 우리가 데리고 간 연예인들하고 소개 시켜주고, 어떻게 지내는지 관찰하는 프로그램인데.......완전 리얼이야 리얼.....
19금이고 둘이 눈맞아서 뭘 하든.....섹스를 하든......뭐 그런 건데.
메인 MC는 벌써 섭외 됐고. 리포터 비슷하게 보조 MC가 필요한데......어때?”
“네....네? 저...저요?”
“그래....너 영어도 꽤 잘하잖아.”
“감...감독님.....정말이에요?”
“하하하....19금 이라서....우리도 좀 신선하고, 섹시한 그런 여자를 찾고 있었는데.....
좀 그래....노출도 좀 있고....왜 있잖아....옷도 야하게 입고....몸도 좀 보여주고....
너 보니까...딱 인 거 같은데.......니가 몇 년 공백은 좀 있긴 하지만......”
“어머.....어떡해......감독님.....저,...너무 하고 싶어요....”
“그래서 말이야. 우리 프로 컨셉도 좀 설명해주고.........우리 조용한데 가서 술이나 한잔하면서 마저 이야기할까?”
“지..지금요?”
“왜? 안돼?”
“아........어떡하지....지금 애 자고 있어서......나가기가.....”
“아...맞다.....너 딸래미 데리고 왔다고 했지?”
“네에...”
“음......그러면 어떡하나..........이리와봐...”
“네?”
남자가 옆에 있던 의자를 뒤로 당겨 빼자.....드르륵하고 의자가 마룻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앉아봐. 가까이서 한번 보자”
잠시 후.
남자가 빼놓은 의자 위에 여자의 엉덩이가 살포시 올려졌다.
“이야....너....가까이서 보니까.....관리 참 잘했다. 너 키가 70정도 되지?”
“171요.”
“운동했어? 어떻게 아가씨처럼 군살이 하나도 없냐....”
“하아....다른 여자들 하는 정도....그 정도는 해요.”
남자의 팔이 여자 뒤로 넘어와,
코너 벽면에 가려 더이상 보이지 않는 여자의 어깨를 쓰다듬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쩜 피부도 이렇게 부드럽고......그때하고똑같네.....허허허.....”
“아이....감독님도.....”
“어......너...가슴 수술 했어?”
“아아아.....”
여자의 흐트러진 소리가 빗소리에 잠깐 들렸다.
“이야....수술 너무 잘 됐다.
너 그때도 가슴은 참 예뻤는데....
야들야들한 몸매에..가슴 크고...
“아아아.....감...감독니...임....”
“너 애까지 있으면서....젖꼭지는 아가씨 젖꼭지네? 모유 안 먹였어?”
“아아아!!!!”
“가까이 와봐.....”
“아.....누...누가 봐요....”
“보긴 누가 봐...아무도 없구만....”
보이지 않던 여자의 긴생머리가 살짝 드러나 있었다.
남자의 얼굴이 여자의 얼굴 쪽으로 넘어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작게 질척이는 소리가 빗소리에 묻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지금 무슨 나쁜 짓을 하고 있는거 같았다.
관음증 환자처럼, 타인의 사생활을 몰래 지켜보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나는 테이블 위에 있던 노트북을 살며시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발소리를 죽여 뒤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뒷문을 통해 호텔 로비로 들어갔다.
밤새도록 세차게창가를 두드리던비는 거짓말처럼 그쳐 있었다.
새파란 하늘이 발코니 창을 통해 룸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는 작은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 소리가 누구인지 이젠 알고 있었다.
키가 작은 아름이는 벨에 손이 닿지않아, 여기 올 때 항상 이렇게 문을 두드렸다.
“오빠. 오빠! 우리 같이 밥 먹어요!”
예상대로 문 앞에 아름이가 방긋방긋 웃으며 서 있었다.
“오빠? 이제 아저씨 아니고?”
“네.”
“왜 갑자기?”
“엄마가.....아저씨가....아니 오빠가 엄마보다 어리다고......오빠라고 부르래요....”
“뭐? 하하하하......”
객실 복도에 갑자기 터져 나온 내 웃음소리가 기분 좋게 울리고 있었다.
아름이의 손을 잡고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하얀 접시에 음식을 담고 있던 그여자가 우릴 보고 있었다.
그 여자의표정이 조금 변해 있었다.
항상 무표정하고 차갑기만 했던 그 표정에.........알 수 없는 아주 미묘한 변화가 있는 것 같았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조식을 먹으며,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름이는 언제 한국에 돌아가?”
사실 이 질문은 아름이가 아니라, 그 여자에게 한 질문이었다.
“엄마..엄마....우리 언제 집에 가요?”
“한 일주일 정도 있으려고 했는데......아직 모르겠어요.....”
여자는 아름이가 아니라, 내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곤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여자는 말없이 내게 똑같은 질문을 한 것임을 몇 초 시간이 흘러서야 알아차렸다.
“아네....저는 별 계획 없이 갑자기 와서....저도 잘 모르겠어요....언제 돌아갈지....”
“저기....있다가....시간 되면.....나 수영 가르쳐 줄래요?”
“네? 아......네네......”
여자 입에서 수영이라는 말이 나오자, 어제 수영장 안에서 여자와 했던 수중 섹스가 갑자기 떠올라......얼굴이 화끈거렸다.
여자는 어제 수영장에서부터 계속 내게 존댓말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비키니가 아니라......햐얀 일반 수영복이었다.
“아아아.....그만. 그만요......거기 말구....”
푸른 하늘빛 매니큐어가 발린 여자의 기다란 두 손을 잡고 나는 뒷걸음질로 물속을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잡고 있어서 안 빠져요....천천히 발을 움직여봐요. 그러면 조금씩 앞으로 나갈 수 있어요”
뒤에서 첨벙첨벙 되는 여자의 물장구 소리가 들렸다.
“아아....몸이 자꾸 물속으로 깔아 앉아요....무서워요....손...손 놓지 마요.....”
여자의 말에 앞으로 다가가, 여자의 쇄골과 아랫배를 두 손으로 받쳤다.
그러자 물속으로 천천히 가라 않던 여자의 몸이 수면위로 바짝 올라왔다.
“아아아.......왜 손...손...놔요....아아.......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아름이는 커다란 오리튜브를 타고서........우리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손! 손....떼지 마요...네? 네?”
“네....계속 받치고 있어요.....”
물위에서 버둥거리는 여자의 움직임에,
쇄골 바로 아래를 받치고 있던 내 손이 여자의 물컹한 가슴에 닿았다가.....
아랫배를 받치고 있는 다른 손은, 여자의 볼록한 치골에 닿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여자가 수면에떠있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져 갔다.
수영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몸 때문인지 여자의 의식이 아니라.....몸이 자연스레 물에 적응하고 있었다.
이제 조금씩 자신감이 붙은 모양이었다.
순간 순간, 여자의 몸을 받치던 손을 떼도, 여자는보채지 않았다.
“아름아...너 어디가?”
“엄마 화장실.....”
어디론가 달려가는 아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내 어깨를 잡고 수면 위를 유영하던 여자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췄다.
직선으로 펼쳐져 있던 여자의 긴 몸이 수면 아래로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어제 그랬던 것처럼. 여자의 두팔이 내 몸에 깊게 둘러졌다.
내 눈앞에, 하얀 수영복을 커다랗게 밀어내고 있는 여자의 가슴이 와 있었다.
여자의 붉은 입술이 내 입술에 잠깐 닿았다 떨어지자 ‘쪽’ 하는 소리가들렸다.
“고마워요....”
여자가 너무나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 여자도 이렇게 웃을 수 있구나........’
물속에서 여자의 허리를 끌어안자, 여자의 다리가 내 허리를 감싸왔다.
자신에게 다가가는 내 얼굴 보자, 여자의 입술이 살짝 열려 작은 혀가 살며시 삐져나왔다.
또다시 입술이 포개어져, 두 개의 혀가 진하게 엉켜 갔다.
여자의 허벅지 사이, 하얀 수영복이 얇게 감싸고있는 그 부분에 내 물건이 깊게 닿아 있었다.
“엄마! 엄마!”
멀리서 아름이 소리가 들렸다.
내 혀를 자신의 입속에 담아, 정성스레 빨고 있던 여자의 도톰한 입술은 쉽게 떨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문득,
나는......
어젯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1층 테라스에서의 그 일이, 머릿속에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