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4 6. 마지막 인사 =========================================================================
6.6
계속되는 입맞춤에 떨리던 은서의 몸이 천천히 달아올랐다. 은서는 제르바르의 등을 끌어안았다. 그의 것은 바짝 성이 나 있어서, 이미 단단하게 들어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괜찮아요.
은서가 속삭였다. 제르바르가 은서의 허리를 감쌌다.
-읏.
오랜만이라 한순간 찢고 들어오는 아픔이 느껴졌다. 은서의 표정이 찌푸려지자마자 제르바르는 멈추고 대신 가슴팍에 안았다. 자근거리는 숨소리가 몇 번, 이내 그의 것은 익숙한 듯이 안쪽으로 가득 들어섰다.
제르바르는 무척이나 천천히 움직였다. 손은 쇄골 근처와 가슴 밑을 어루만지고, 혀는 입술을 핥았다. 과일향을 담았는지 제르바르의 입에서는 에루비 특유의 냄새가 풍겼다. 달짝지근하고 농밀한 냄새는 확실히 이전의 피 냄새보다도 향기로웠다.
-괜찮아? 아프면… 말해.
은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땀으로 젖은 제르바르의 등을 쓸었다. 제르바르도 허리를 세우고 명치의 흉터를 어루만졌다.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사막에서는 필사적이었다. 도망가지 못하고 평생을 약에 취해 살아갈 뻔 했다. 그럴 바엔 싸우다 죽는 것이 나았다. 자신은 제르바르 같은 전사도 사막의 전사도 아니었지만 이곳에 온 이후로 내내 싸워왔다. 포기하려는 마음과 싸우고 자존심과 싸우고 남자들과 싸우고 사랑과도 싸우고 빌어먹을 제 운과도 싸웠다. 그렇게 싸우다 죽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은서는 생각했었다.
-그래도… 사는 게 나아.
제르바르는 간신히 한 마디를 덧붙였다.
-…사는 게 나은걸.
제르바르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은서는 양 다리에 힘을 빼고 제르바르의 움직임에 몸을 맡겼다. 질퍽한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고, 은서는 제르바르의 머리를 제 가슴팍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입술이 자연히 가슴에 닿았다. 뜨겁고 질척한 느낌이 아랫배를 뒤흔든다. 은서는 턱을 올리고 새된 비음소리를 내질렀다. 간지러움조차 옥좨는 자극이, 신경을 타고 발끝으로 흐른다.
종아리가 쥐가 난 듯 저려왔다가 금세 풀렸다. 은서는 헐떡였다.
제르바르가 그런 은서를 내려다봤다. 비트는 몸이 가늘고 얇다. 한 손에 조금 넘치는 가슴은 탄력이 있어 몸의 리듬과 함께 흔들린다. 땀이 차오르는 가슴골에 미끄러지듯 혀를 집어넣는다.
고개를 들자 은서의 입이 살짝 열려있다. 손가락을 넣자 달콤하게 빨아 감는다. 제르바르는 손가락을 물리고 그 혀의 감촉을 즐기며 더 깊이, 물건을 박아 넣었다. 질 벽을 오갈 때마다 저릿하게 조여온다.
사정감이 밀려왔지만, 제르바르는 조금 더 참는다. 은서의 찌푸려진 미간과 풀린 눈동자를 더 즐기고 싶었다.
-좋아…?
-아, 으…응…….
고양감이 오른 은서의 목소리는 남고원의 새소리 같아서, 괜스레 말을 시키고 싶어진다.
-응? 뭐?
-좋아…응…….
-읏……!
몇 번을 더 움직이다가 제르바르는 사정했다. 은서가 제르바르의 등의 세게 잡으며 손톱자국이 났다. 제르바르는 숨을 몰아쉬면서 은서를 안은 채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었다.
아직까지도 들뜬 기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은서의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땀에 젖은 나신이 그대로 몸에 붙어, 제르바르는 금방 또 입을 맞췄다.
열기를 쏟아낸 그의 몸 위는 아직도 뜨거웠다. 은서가 피곤한 듯 눈을 천천히 깜빡이고 제르바르도 노곤해져 은서의 등을 쓰다듬고만 있었다. 땀이 말라서 등의 솜털이 잔뜩 섰다.
-떠나면, 또 올 수 있어?
-아니요. 아마도 다시는.
라본다는 새벽도 밝다. 길거리에 떠있는 수정구가 방 안에까지 비쳐서 제르바르는 은서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기묘한 침묵을 이겨내고 제르바르가 물었다.
-일과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아직도 궁금해?
제르바르의 목소리는 안개마냥 낮고 잔잔하게 퍼진다. 은서는 “아니오….”라고 힘없이 대답했다.
-일에게 고백했어. 너를 좋아하게 됐다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네가 말하던 것과 달리 쉽게 포기하고 잘 울고 강하지도 않다고 했어. 그리고 그런 모습이 어느새 좋아져서, 네 여자가 아니어도 상관없다고 했어. 네가 먼저 떠나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고도 했어.
목소리는 느리고 무겁다. 그러나 다정하고 뜨겁다.
-은서를 만나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어.
제르바르는 은서의 턱을 붙잡았다. 은서는 숨이 막힌 듯한 얼굴로 제르바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가슴이 달싹거리며 가느다랗게 숨을 내쉰다. 제르바르가 속삭였다.
-네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벌써 새벽이었다.
라본다의 길이 있는 마법탑은 굉장히 붐볐다. 탑 1층에 전시되어있는 ‘라본다의 길 ’ 의 문은 듣던 대로 황금색의 둥근 원형으로 뒤쪽은 텅 비어있다. 안내자의 말로는 라본다의 길이 먼저 있었고 그 자리에 탑을 세운 거라고 했다.
-준비됐나요?
-네.
라본다의 길 안내자는 안경을 추켜올리고 주의사항이나 요금정책, 연혁,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이 길을 이용했는지에 대해 무수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 소리들을 흘려들으며 은서는 힐끔, 제르바르를 올려본다. 살짝 찌푸린 미간, 무심한 입매와 눈썹위로 자란 머리카락. 그 역시도 안내자의 말은 듣지도 않고 창문 너머를 하염없이 구경 중이었다.
-아시겠죠?
안내자의 말에 은서는 황급히 알겠다고 대답했다. 제르바르가 탁자를 톡톡 치며 물었다.
-두 사람이 한꺼번에 이용할 수도 있나?
은서와 눈이 마주친다. 제르바르는 다시 팔짱을 끼고 조금 고압적인 자세로 바꾸었다.
-같은 장소를 이동할 때는 종종 그러기도 합니다. 최대 2명까지는 저희 쪽에서 안전을 보장하지만 그 이상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물론 비용은 두 배가 되겠고요.
안내자는 영업용 미소를 짓고는 제르바르와 은서를 번갈아본다.
-어떻게, 두 사람 치로 해드릴까요?
제르바르가 툭 내뱉었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
달빛이 어슴푸레 빛나던 전날 밤.
-미안해요.
은서는 기어이 대답했다. 제르바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수긍했다. 한 마디 덧붙이기를.
-사과는 왜 해.
-나는…….
-알아. 그냥 물어본 거였어.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르바르가 고향에 대해 물어보았다. 은서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집과 학교, 친구들, 평온하고 안락한 삶. 노예가 없고 먹을 것이 풍족한 곳.
-좋은 곳이네. 확실히…….
제르바르는 한창 내분 중인 동쪽에서 싸우는 일을 할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평화로운 너의 나라로는 갈 일이 없겠다며, 싱겁게 웃어버렸다.
-일이 있었다면 너랑 함께 갔을까?
은서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한 번 더 할까?
또 다시 입맞춤으로 시작했다. 길고 긴 키스와 속삭임. 그야말로 달고 짧은 밤이었다.
한참 이어지던 안내자의 설명이 끝나자 마법소에서 만났던 에루미르이란 마법사가 다가왔다.
-아아, 힘을 불어넣느라 죽는 줄 알았어. 이건 다 좋은데 너무 마법소모량이 커서 말이지.
그는 제르바르에게 눈으로 인사하고 은서에게 말한다.
-그럼 아가씨, 입구에 종이를 넣고 문이 황금색으로 빛날때 들어가면 됩니다. 그럼 즐거운 여행 하세요!
여행이란 돌아와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은서는 여행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귀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이다.
은서가 문 앞에 작게 난 구멍에 주소를 적은 종이를 집어넣자 작은 진동이 울린다. 은서는 뒤를 돌아볼까 하다가 돌아보지 않았다.
문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시간은 꽤나 오래 걸렸다. 에루미르이조차도 얼마나 멀리 가는 거냐며 물어볼 정도였다. 그 오랜 시간동안 은서는 오로지 앞만 보았고, 제르바르 또한 말을 걸지 않았다.
‘잘 가.’
‘몸 조심히 잘 있어요.’
‘너도.’
인사라면 이미 했다. 어제 밤에도 했고, 아침에도 했다.
서로 삶의 방식을 포기하고 상대를 따라갈 만큼 깊이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이미 제르바르는 알고 있다. 아마 은서도 알고 있을 터였다. 조금 아쉽고 슬픈 것 정도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은서로서는 그토록 바라던 일이 아닌가.
문이 빛나기 시작했다. 은서는 문을 열었다.
그렇다. 조금 아쉽고 슬픈 것 정도는 돌아가지 못하는 것에 비하면 괜찮다.
한 발을 들여놓고서 기어코 은서는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등을 줄곧 바라보고 있던 제르바르와 눈이 마주쳤다. 언제나처럼 보고만 있었다. 은서는 입을 달싹거리다가 다물었다. 그대로 그의 품에 달려가 안기는 대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고마워요.'
나머지 발이 문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카락 한 줌을 아슬아슬하게 남겨두고 문이 닫히자 황홀하던 빛도 사라졌다. 문 앞엔 아무도 없었고 그제야 제르바르는 양 손에 얼굴을 묻는다. 에루미르이가 한숨을 쉬며 그의 어깨를 천천히 두드렸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마지막 한 편도 오늘 올립니다.
투표는 오늘까지 남겨두겠습니다.
vivianhu님. 허무함이 남지 않도록..용써보겠습니다.
행운행복님. 로맨스 장르에서 끝을 낼까 판타지 장르에서 끝을 낼까 갈팡질팡 고민했습니다.
시엔야님. 이번 챕터는 이걸로 끝납니다^^
nabi00님. 그런 마음도 저런 마음도 있겠지요.
냥꼬붕님. 씬은 오늘까지 이어집니다.^^
Habika님. 저도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