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4 3. 카마의 약속 =========================================================================
3.2
은서는 다리 사이에 좋아하는 남자의 머리를 두고 한없이 곤두서있었다. 그의 입술과 코와 이마가 그곳에 닿았다. 심지어 그의 속눈썹이 깜빡이는 것마저, 예민해진 감각이 모두 붙잡고 있었다.
그 수치심은 계단이나 마차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오히려 무기력에 가까운 절망감.
일브라이에가 아민의 말을 따라 그와 함께 자신을 농락할 것이 두려워서 은서는 차라리 기절하고 싶었다. 찬바람과 바람이 싣고 오는 꽃가루와 그리고 남자의 냄새. 은서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러나.
-멍청한 놈.
일브라이에는 눈을 감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민은 끝까지 움직이지 않는 일브라이에를 옆으로 밀쳐버리고 자신이 그 자리에 들어선다.
평소보다 힘없는 은서의 몸이 그의 움직임에 맞춰 흔들렸다. 아민 또한 평소와는 달리 앞에서, 은서의 가느다란 양 다리를 위로 올리고 성기를 집어넣었다.
남자의 절정은 금방 왔다. 그동안 은서는 널부러진 일브라이에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살이 떨리는 부끄러움과 모욕에도 그와 은서 사이에서 흔들리는 카마만이 몸을 가려주고 있었다. 그것은 일브라이에도 마찬가지라 이를 악물고 오로지 은서의 얼굴, 눈만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은 무시하고 아민은 사정하는데 온 신경을 썼다. 평소보다도 심하게 몸을 떨며 온 몸의 액체를 쏟아냈다.
사정을 한 뒤에도 그는 계속해서 은서의 가슴을 빨았다. 손가락을 입에 집어넣고 혀를 만지다가 입술을 댄다. 아민의 혀는 은서의 혀를 어르다가 빠져나와 귀와 눈과 목을 지났다. 그는 마치 들뜬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의 혀가 은서의 몸을 뒤집고 엉덩이 사이로 향했다.
-으..으...
처음 느끼는 감각에 은서의 몸도 크게 움츠렸다. 팔과 다리가 늘어져 무거울 법도 한데, 아민은 인형을 들듯이 은서의 엉덩이를 들었다. 설탕을 녹여먹는 것 같은 혀놀림.
다시 부푼 성기를 항문으로 억지로 집어넣었다. 은서가 움직이지 않는 몸뚱어리를 억지로 비틀자, 꽤나 지지부진하게 앞을 헤맨다.
한 손은 유두를 꼬집었다. 거의 동시에 귀두가 비집듯이 들어갔다.
-읏! 하....아..
앞부분이 들어가자 다음으로는 금방이었다. 은서의 몸이 들썩였다. 아민은 송곳니까지 드러내며 웃었다. 헐떡이는 여자의 어깨를 깨물면서 몇 번이나 성기를 넣었다 뺐다. 그때마다 은서는 반동으로 크게 몸이 흔들렸고 신음소리도 점점 커졌다.
어느새 아민은 은서를 엎드리게 하고 엉덩이를 쥐고 움직였다. 물기가 없이 빽빽한 그곳에서는 외려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그건 두 사람의 숨소리와 함께 더 커지고 더 빨라졌다.
-읏!
-흐..
두 번째 사정을 마치고 아민은 일어섰다.
히죽이죽 웃으며 땅에 박혀있던 칼을 뽑아 칼집에 넣었다. 일브라이에의 가슴팍을 발로 질근 밟고 혼자서 휘적휘적 저택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불타버린 정원과 애욕의 정원 모두 불쾌하리만큼 조용해졌다.
이틀 후, 은서는 노예장을 따라갔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은서의 팔에 자물쇠를 채우고 마차에 밀어 넣었다. 마차에는 은서 말고도 여자 서넛이 쭈그려 앉아있었다.
붉은 저택을 떠나는 날까지도 일브라이에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살아는 있다고 노예장이 귀띔해 주었다. 물론 그것조차 아민의 계산이었겠지만 은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목을 매려고 했다. 간신히 팔다리가 풀어져 골방에서 눈을 떴을 때, 실오라기 하나 없는 제 몸을 부여잡고 한참을 울었다. 그러나 목을 매 것이 없었다. 흉기도 없었다.
그때 밖에서 노예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죽으면 그놈도 죽을 거라고, 주인님께서...
은서는 잘 움직이지 않는 입을 억지로 움직였다.
-어차피 인질이 없어도 그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 일브라이에는 내버려둬요.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 주인님 성정을 알잖냐. 얌전히 있어라.
은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아도 선택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노예장이 가버린 후 은서는 바닥 귀퉁이에 말라비틀어진 카마를 발견하고 오열했다. 시든 꽃의 이파리가 잘게 부서져있었다.
바로 다음날 노예장을 따라 은서는 저택을 나섰다. 두 발로 그토록 나오고 싶었던 붉은 저택을 나왔지만 마음은 텅 비어있었다.
결국 제 뜻대로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일브라이에를 위해 살아야만 하는 육체가 너무나 무거웠다.
그러나 카마. 저택을 떠나는 날의 방문 앞에 놓인 싱싱한 카마 한 송이를 떠올리며, 은서는 다시 한번 이를 악물었다.
============================ 작품 후기 ============================
전편 끝이 애매하여 짧게 한번 더 왔습니다.
분위기가 마냥 밝진 않지만 이야기는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려고 합니다.
뵈주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추석 잘 쇠세요.
jingjing2님. 여주를 응원해주시니 저도 힘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