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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핀 그곳에 있었다-10화 (10/38)

00010  2. 붉은 저택  =========================================================================

2.3

이 저택에서 은서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계단에서의 정사였다.

은서는 저택의 계단난간을 닦는 일을 했는데, 아민은 그때마다 종종 다가와 허리를 붙잡고 치마를 들추고 속옷을 끌어내렸다. 주변에서 일하던 노예나 시종들은 그 순간 자리를 피했다.

한낮의 대저택의 계단 한가운데에서 은서는 걸레로 문지르던 난간을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 아민을 밀치고 발로 걷어차고 양 팔을 내저었다. 치맛자락을 붙들고 억지로 벗기려는 앞섬을 쥐었다. 기어이 속옷이 벗겨져도 비릿한 웃음을 짓는 아민의 얼굴에 주먹을 내질렀다.

사실 그 모든 것은 크게 소용이 없었다. 언제나 은서는 아민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혹은 허리를 굽혔다. 난간을 붙잡고 신음에 허덕이며 그의 정액을 받아내면, 축축해진 그곳을 채 닦아내지도 못하고 다시 난간을 닦아야 했다.

아민은 언제나 뒤에서 덮쳐왔다. 머리를 짓누르고 기껏 묶은 머리카락을 풀렀다. 자신은 바지 앞부분만 내린 채 은서의 치마를 걷고 양 팔을 옥죄었다. 그는 저택의 왕이라, 어디에서든 섹스를 했고 어디에서든 여자를 벗겼다.

은서는 하루에도 두 어 번씩 그의 몸을 받아들여야 했다. 채찍 자국이 아물면 그 위에 또 상처가 생겼다. 어쩔 때에는 가축을 길들이는 말채찍으로 허벅지와 엉치 부분을 쳤다. 넓은 마찰로 훨씬 큰 소리가 나면 그는 더 흥분했다.

팔목에도 줄로 메인 흔적이 가시질 않았다. 아민은 결박시키는 걸 좋아했다. 온 몸을 꼼짝 못하도록 붙잡고 농락하는 걸 좋아했다.

"개새끼.."

은서는 시큰거리는 팔목을 문지르며 난간을 거칠게 문질렀다. 이 저택에 온 지 꼭 일주일이 된 날이었다.

방으로 기다시피하여 돌아오니 문틈에 꽃이 끼여 있었다.

꽃은 자택 내에 흐드러지게 핀 흔한 종류였다. 은서는 버리려다가 냄새가 채 빠지지 않는 곰팡이 핀 방구석에 꽃을 놔두었다.

다음날에도 꽃은 있었다.

양 다리를 묶인 채 아민에게 시달렸던 은서는 그 꽃을 품에 안고 잠이 들었다.

아민이 외출을 한 날, 은서는 할일을 마치고 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에 갔다. 아무도 없다. 도망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저택의 정원만은 아그랑의 것보다도 넓고, 담 또한 높고 두꺼웠다.

은서는 도망갈 수 있는 길 대신에 사람을 발견했다. 저와 비슷한 또래,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어린 것 같은 소년이었다. 소년은 매양 제 방에 있던 그 꽃을 한 아름 뜯어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뒤돌아섰다가 은서와 마주쳤다.

-아!

놀랐는지 가슴팍에서 꽃들이 흩어졌다.

-아, 저기, 그게...

소년은 당황하여 꽃을 주어 담았다. 은서가 다가가 함께 꽃을 주웠다.

-이거 당신이 줬어요?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요?

소년은 머리를 벅벅 긁다가 양 다리를 비비 꼬다가 은서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거 다친데 좋아요.

소년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얼굴이 새빨개져 어쩔 줄 모르고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자, 잠깐! 여기서 일해요?

옅은 갈색머리, 조금 탄 피부, 말랐지만 튼튼해 보이는 몸, 소년과 청년의 중간쯤에 있는 소년의 눈매는 한없이 유약해보였다.

-일브라이에라고 해요.

소년은 쑥스러운 듯 망설이다가 앉았다. 은서도 조심스럽게 그 옆에 앉았다.

일브라이에는 꽃잎을 잘게 뜯어 작은 조약돌 두 개로 짓이긴다. 그 채로 은서의 입에 넣었다. 손이 입술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는 모양에 은서는 피하지 않았다.

조금 쓸 뿐 별 맛은 없었다. 그러고보면 향기도 없었다.

-일브라이에? 이름이 어려워요.

-당신 이름도 이상해요. 은.서.

-어떻게 알았어요?

-주인님이 부르는 걸 들어서...

은서는 곧바로 물어본 걸 후회했다. 이 저택의 누구도 제 신분과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어색한 침묵을 은서는 말을 더듬거리며 깨뜨렸다.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요? 치료하는 일을 해요?

-아니, 나는 정원에서 일하고, 이건 예전에 있었던 라본다에서... 그곳은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이 있어요.

라본다에 대해 어렴풋이 생각나는 건 무슨 사막을 지나면 나오는 마법왕국이라는 것뿐이다.

-진짜 마법이란 게 있는 건가요?

일브라이에가 은서를 의뭉스러운 얼굴로 쳐다본다.

-라본다의 길은 마법으로 만든 거예요.

-라본다의 길?

-라본다에 있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길인데, 원하는 곳 어디든 보내주거든요.

-어디든?

-네.

-아주 먼 곳도?

-네. 마법이니까.

은서는 처음으로 심장이 뛰는 것 같았다. 마법이니 뭐니, 이곳이 자신이 살았던 그곳이 아니라는 것은 그저 불안한 추측만이 아니었나보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 충격보다도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먼저 솟아났다.

'라본다의 길'. 그곳을 잊지 않으려 몇 번이나 되새겼다.

둘은 한참을 더 이야기했다. 대부분은 일브라이에가 얘기하고 은서가 들었다. 그는 정원수를 보는 노예였는데, 라본다의 약초상에게 길러지다가 약초상이 죽고 나서 형과 함께 팔렸다고 했다.

일브라이에는 때 없이 순했다. 목소리는 다정하고 따뜻했고, 추억을 되새기는 얼굴 위로 햇볕이 스며들었다.

은서는 저녁때가 되어서야 돌아갔다. 오래 자리를 비웠다고 노예장에게 혼났지만 그건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이틀 후에 돌아온 아민이 복도에서 은서의 허리를 붙잡을 때, 은서는 저도 모르게 주변을 살폈다.

혹시나 일브라이에가 보는 건 아닐까. 누군가에게 또 이 남자에게 덮쳐지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들을 하는 사이에 아민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은서를 놓았다.

-여유가 생겼군.

덜컥, 은서는 겁을 먹었다. 아민의 그런 얼굴과 그런 말투를 들으면 또 무언가를 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닥친다. 그러나 의외로 그는 더 이상 농락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벗겨진 속옷을 입고 은서도 비틀비틀 자리를 피했다.

============================ 작품 후기 ============================

딩가딩가딩가딩가님 첫 코멘트 감사합니다.

남주...당연히 있습니다! 있고 말고요..하하.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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