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5 1. 카나리아 =========================================================================
1.4
처음 은서가 방 안에 들어왔을 때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둡고 넓은 방에는 창문너머로 달빛만 스산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잠시 후 아그랑이 들어와 초에 불을 밝혔다. 아그랑은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은서를 한손으로 잡아 일으켰다.
-내 말 알아듣지?
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자신의 나태함을 원망하며 은서는 마음을 다잡았다. 도망가기로 했으니 시키는 대로 하면서 기회를 보자. 그러나 팔다리가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벗어.
역시 알아들었다. 그건 세 번째로 배운 말이었다. 은서는 망설였다. 아그랑이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다. 순결이라는 것은 목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어차피 이곳에 와서 몸 구석구석에 남자의 손길이 닿지 않았나. 수치스럽다거나 치욕스러움은 이미 지나갔다고, 은서는 스스로를 달랬다.
심호흡을 하며 은서가 어깨에 묶인 끈을 풀자마자 겉옷이 통째로 흘러내렸다. 어슴푸레한 빛이 흰 가슴 위를 둥글게 비추었다.
창문 옆에 선다. 뛰어내린 여자를 생각하며 은서는 가만히 기다렸다.
-나머지도.
은서는 그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고갯짓으로 이해했다. 더 오래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아그랑은 다시 명령한다.
그 눈과 그 표정. 꼭대기에 있는 자의 무심함과 명령하는 자의 폭력적인 분위기는 은서로 하여금 버틸 수 없게 한다. 은서는 팔을 아까보다 심하게 떨며 허리춤에 묶인 속옷까지 끌러냈다. 완전히 나체가 되어 고개를 숙였다.
-고개 들어.
고개를 들었다. 아그랑은 계속 은서를 훑었다.
-노래 불러봐라.
-노래요?
은서는 말을 배울 때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이곳의 말로 되물었다. 말은 하지 않기로 했지만 의외의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네 나라 말로 불러. 부드러운 걸로.
은서는 망설이다가 간신히 기억나는 발라드 곡을 불렀다.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알몸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건 미칠 듯이 부끄러운 일이지만, 은서는 안심했다.
이런 거라면 할 수 있어. 괜찮아.
노래가 중반쯤 지나자 아그랑이 손짓을 했다.
다가갔다.
-더.
더 다가갔다.
아그랑이 일어났다. 한 손으로는 은서의 엉덩이를 쥐고 한 손으로는 가는허리를 붙잡는다. 놀라 노래가 멈추었다.
-멈추지 마라.
말하자마자 아그랑의 입이 머리카락 사이로 솟은 유두에 닿았다.
은서의 몸이 경직된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역시 실제로 경험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뻣뻣하게 굳고 노래하는 목소리도 떨리기 시작했다. 멈추지는 않았지만 느려지고 띄엄띄엄 작아졌다.
아그랑은 신경 쓰지 않고 가슴을 애무했다. 입술과 혀가 젖가슴을 거칠게 빨다가 물었다.
"읏!"
-계속!
아그랑이 소리쳤다. 어느새 노래를 멈추고 있었다. 은서는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아그랑은 은서의 몸을 들어 침대 위에 앉혔다. 무릎 꿇고 앉아 새처럼 노래를 부르는 은서의 무릎을 벌리고 가슴을 빨던 입술을 내려 다리 사이로 가져간다. 검은 수풀 아래로 크게 숨을 들이쉬며 냄새를 맡던 아그랑이 혀가 가운데에 닿는다.
그 느낌, 골방에서 느꼈던 그 불쾌감이 한순간에 밀려들었다. 이번에는 그때처럼 입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 아그랑의 축축한 혀와 쩝쩝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은서는 아까 창문으로 뛰어내리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결심은 나약했다.
아그랑은 은서를 눕혀 크게 부푼 제 성기를 축축하게 젖은 곳으로 쑤셔 넣었다. 입구가 아직 막혀서 쉽게 들어가지 못하자, 양 팔로 은서의 어깨를 꾹 눌렀다. 그곳도 움찔거렸다.
"아, 아파!"
은서가 소리쳤다. 노래를 멈추고 소리 지른다.
"아파! 하지! 하지, 마아!"
그런 말은 배우지 않은 것도 있지만, 배웠다하더라도 처음 느끼는 고통에 모두 잊어버렸을 것이다. 치욕이나 부끄러움, 분노도 잊어버렸다. 은서는 자유로운 양손으로 그를 밀어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는 거대한 바위처럼 어깨를 찍어 누르고 집어넣는 데에만 집중했다. 자지러지는 비명을 즐기는 듯, 아그랑은 입꼬리를 올리며 강제로 귀두를 밀어 넣었다. 붉고 뜨거운 성기가 문 앞에서 질근거리다가 불쑥 들어찬 순간, 비명이 멎었다.
은서는 몸을 뻣뻣하게 세웠다.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양 팔을 늘어뜨렸다. 반면 사타구니에는 바싹 힘이 들어섰다.
아그랑이 허리를 곧게 세우고 양 손으로 젖가슴을 문지른다.
-언제까지 입을 다물 셈이야!
가만히 있으려는 은서의 마음과 달리 긴장된 허벅지가 아그랑의 움직임에 따라 들썩였다. 아그랑이 뺨을 때렸다. 은서는 노래를 불렀다. 울면서 사랑노래를 불렀다.
아그랑이 주문을 바꾼다.
-웃어라! 새라면 기쁨의 노래를 불러야지.
아예 말을 알아듣지 못했더라면.
고통에 의한 반발과 무력감 사이에서 은서는 망설였다.
-으흣...
그러나 고민 할 여유도 없이, 아그랑이 허리를 밀어 넣을 때마다 노래는 계속해서 끊겼다. 중간 중간 신음소리를 참으려 입술을 악물었다. 가사가 흐려진다. 노래박자에 맞추어 엉덩이가 허리가 온 몸이 들썩였다. 위로 아래로, 아그랑은 피 묻은 아랫도리를 내려다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아, 아파....”
아그랑의 엉덩이가 점점 거칠게 움직였다. 숨소리가 커지면서 가는 노랫소리가 묻혔다. 목이 막히고 숨이 들쉬면서도, 절정에 치달은 아그랑이 부르르 떨며 몸 깊숙하게 정액을 뿌릴 때까지 노래했다.
-좋으냐, 카나리아야.
아그랑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은서의 몸을 제 배 위에 앉혔다. 본래 한번이면 끝내버리지만, 이 외지인이 원체 맘에 든 탓이다.
-움직이면서 노래해.
첫 번째 섹스에 대한 강박이 없는 은서였지만, 역시 울적했다. 즐거운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미 그곳은 피와 정액과 땀과 애액과 침으로 범벅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가뿐 숨을 몰아쉬느라 가슴이 들썩였다. 동그랗게 솟은 유두를 손가락으로 만지며 아그랑은 재촉했다.
은서는 어설프게 움직이지만 그의 성에 차지 않는다. 결국 양 손으로 허리를 잡고 억지로 움직인다.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이라 은서는 또 다시 새된 비명을 질렀다.
양 손으로 침대 위를 버티고 비스듬히 엎드려 허리를 움직이는 사이, 아그랑의 가슴팍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허벅지 안쪽이 뻐근하게 당겨오고 다리 사이가 축축하니 젖어든다. 어둔 방은 가느다란 목소리와 텁텁한 냄새, 뜨거운 공기로 가득 찼지만, 은서는 그저 시키는 대로 지저귀며 춤을 추었다.
============================ 작품 후기 ============================
독자분들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