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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핀 그곳에 있었다-3화 (3/38)

00003  1. 카나리아  =========================================================================

1.2

은서는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 있었다. 남자가 제 물건을 입에 집어넣어도, 가슴을 주물러도, 그곳을 만져도 모든 반응을 억눌렀다.

처음 은서를 때린 이후로 그는 매일 손을 댔다. 반항하고 악을 쓰고 막아서고 발버둥 치다가도 맞아서 팔 다리에 멍이 들었다. 그렇게 맞은 것은 은서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니, 이곳에 와서 겪은 모든 것들이 다 처음이었다.

학생 때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옆 반 애였는데 은서 반에 친구가 있는지 자주 놀러왔다. 잘 웃는 애였다. 그 애가 고백한 다음날 키스를 했다. 그건 생각만큼 달콤하진 않았지만 싫지도 않았다. 입술은 거칠었지만 따뜻했고 수줍게 들어온 혀는 금방 빠져나갔다. 어색한 웃음. 인적 드문 공원에서, 또 다른 커플이 뒤엉켜 키스를 하는 걸 보며 은서와 남자친구는 슬쩍 손을 잡고 걸었다.

세 번째 키스 때 남자친구는 은서의 가슴을 만졌다. 은서는 어찌해야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남자친구의 손을 막았다.

"아! 미안..."

남자친구는 어색하게 사과했다.

고3을 앞둔 겨울, 방학이 되면 잠깐 놀러가자고 했다. 알았다고 했지만 차마 일박이일이냐고 묻지 못했다. 좋은 건지 싫은 건지 확실히 몰랐다. 다만 조금 무서운 것만은 확실했다. 이미 남자친구와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괜찮다고 부추겼다. 그러나 채 방학이 되기도 전에 은서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아마도 대수롭지 않았던 싸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벌써 너무나 먼 얘기 같아서 생각이 잘 나질 않았다.

하루하루가 지옥같이 길고 길어서 기억은 더욱 더 옛날처럼 멀어졌다. 죽으려 해도 방법이 없었다. 머리를 박는 것도 소용이 없다. 어차피 아무것도 먹지 못하니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은서가 반항을 멈추자 남자는 구타를 멈추고 약을 바라주었다. 이후로는 남자의 성기가 입속에 들어와도 은서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남자는 삽입하지는 않았는데, 대신 은서의 손을 들어 제것을 만지게 했다. 머리색과 같은 색의 불쾌하게 꼬인 털이 손에 엉켰다.

은서는 배가 고팠다. 목도 말랐다. 너무 울어서 목도 쉬고, 며칠간 벌거벗고 있어서 몸도 아팠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했다. 턱을 움직여 징그럽게 큰 남자의 성기를 만지고 핥았다. 노린내가 나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러나 토해도 나올 건 신물뿐이라 억지로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다 끝내면 먹을 것을 주겠지, 아니면 이대로 죽던가.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은서는 망연자실하게 생각했다.

그날 저녁에 은서는 처음으로 음식을 받았다. 구수한 냄새가 나는 스프 그릇을 마시는데 비어있던 속이 울렁거렸다. 미색의 스프가 마치 남자의 양물 같아서 결국 다 토해냈다. 그러자 이번엔 따뜻한 물과 부드러운 빵을 주었다. 목이 쓰렸지만 차라리 이게 먹을 만했다. 턱을 움직이는 건 힘들었지만 종이를 씹듯 억지로 삼켰다.

그 후로도 이틀을 더 은서는 남자의 성기를 빨았다. 빨았다기 보단 그저 입에 넣었다 뺀 것뿐이지만 가가르는 만족했다.

-그 정도면 돼. 처녀니까 어설픈 게 나아.

은서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목욕을 했다. 희고 얇은 원피스를 입었다. 안 그래도 마른 팔다리가 더욱 가늘어졌다고 가가르가 투덜거렸다.

옷을 입고 푹신한 침대에서 편하게 잠들고 깨면 기름진 음식이 있었다. 은서는 놈들의 속셈을 알지 못했지만 일단 먹어야 도망이든 반항이든 자살이든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얼굴에 혈색이 돌때쯤, 은서는 가지각색의 여자들이 있는 큰 방으로 안내되었다. 여자들은 하나같이 젊고 예쁘거나 몸매가 풍만했다. 그러나 개중에는 팔다리의 멍자국이 선명한 여자들도 있었다. 은서는 어느새 멍이 사라진 제 팔뚝을 한동안 내려봤다.

왜 여자들을 모아놨을까. 왜 때리고 먹였을까. 왜 끝까지 관계를 가지지 않았던 걸까. 은서는 생각했다.

여자들은 피부색이나 머리카락색도 제각각이었지만, 하나같이 자포자기한 얼굴이었다. 몇 명만이 활력이 솟아 웃고 있었다. 그것 또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들 죽상이네, 죽상이야.

금발을 다듬으며 여자가 말했다.

-차라리 이쪽이 낫지. 잡노예여봐, 몸만 뺏기는 줄 알아? 매일매일 노동에 상대하는 것도 냄새나는 천민들이지. 심지어 밥도 굶는데.

다들 대꾸하지 않는다.

-부자 하나 잘 잡으면 좋은 걸 왜 이리 뻗대는지 몰라. 하여튼 쥐뿔도 없으면서 고결한 척 하는 것들이란.

-네년 같은 창년이야 좋겠지!

한 여자가 참다못해 소리쳤다. 눈물 때문에 뺨이 얼룩덜룩했다.

-부자 놈이 잘도 넘어가겠다. 밤노예가 얼마나 간다고!

-그럼 어디 끝까지 고결한 척 해봐! 사내한테 다리 벌리기 싫음 먹지 말고 죽지, 왜 살아 징징거리니? 배 곪으니 정신이 바짝 드질 않더니?

대꾸 받은 여자는 입술을 바르르 떤다. 그러나 욕설만 지껄일 뿐이다. 침울해져있던 방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폭발하여 시장통처럼 변해버렸다. 날이 선 여자들의 악다구니를 은서는 멍하게 보고만 있었다. 마치 자신은 그들에게 속하지 않았다는 듯, 현실감이 영 들지 않았다.

그때 방안으로 바람이 화악- 뻗쳤다.

모두가 창문이 열린 곳을 보았다. 창문을 연 여자 하나가 다른 여자들을 훑어보더니 웃는다. 은서를 포함한 모든 여자들은 아마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때마침 소란에 달려온 남자들이 방문을 열었다. 창문 앞에 선 여자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말리기도 전에, 붙잡기도 전에, 한 마디 말을 건네기도 전에, 여자는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여자들은 소리를 질렀다. 은서도 놀라 창가에서 확 멀어졌다가 이내 창문께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층 정도의 높이. 멀리 흰 옷과 붉은 물결이 퍼지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남자들은 거칠게 여자들을 밀치며 창문을 닫고 문 쪽으로 몰아세웠다.

-다들 창문에서 떨어져!

은서도 밀려났다.

-헛생각들 말아! 기껏 얌전해졌다 싶더니만.

-가만가만. 좋은 주인 만나면 잘먹고 잘사는데 왜들 그리 뻣대어? 어차피 남자한테 몸팔아 살아야하는 것들이. 사랑까지 받으면 좋기나 할텐데.

은서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들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창문 너머를 힐긋거렸다. 죽으면 원래 곳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왔다. 이것이 꿈이라면 깨어날 것이다. 아니더라도, 여기를 벗어날 수는 있을 거라고.

그러나 이대로는 어디로도 가지 못했다. 떨어진 시체는 여전히 이 땅에 머물러 있었고 저 여자는 이곳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꿈도 환상도 아니었다. 지독했던 며칠과 여자의 죽음 모두 현실이었다.

"여기서 죽으면, 여길 떠날 수 없어."

아이러니하게도 은서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죽는 것보다도 끔찍하다는 것을. 이곳에서 뼈를 묻는 것만은 할 수 없다고, 은서는 마음을 바꾸어 이를 악물었다.

돌아가자. 죽더라도, 돌아가서 죽자.

곧 소란이 가라앉고 경매가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다음 편은 사정상 토요일 밤쯤 올라올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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