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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날이 풀림과 동시에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는 각종 야생동물과 마수는 많은 사람들의 골칫거리였다. 연에 몇 번씩 토벌대가 파견되기는 했지만 마른가시나무 백작령, 비스타는 유독 그 횟수가 잦은 편이었다. 험준한 산세 때문에 잘 훈련된 기사들도 며칠을 버티지 못하기도 했거니와, 그것들이 몸을 숨길 만한 곳이 많은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얼추 정리가 되었다 싶어도 얼마 뒤에 다시 슬그머니 기어 나와 극성을 부리곤 했다.
사냥꾼과 토벌대가 마른가시나무 백작령을 다녀간 이튿날, 산 뿔 멧돼지의 형태를 띤 마수 한 마리가 산 아래 마을을 초토화시켰다. 토벌로 인해서 먹이가 줄어들어 마을로 내려온 듯했다. 마수는 비쩍 마른 소년을 잡아먹다가 마른가시나무 백작 휘하의 기사에게 사살당했다.
황실 주최의 사냥 대회가 이곳에서 열리게 된 것은 그러한 연유였다. 술렁이는 민심을 잠재우고, 황실의 건재함을 알리고자 열린 이 사냥 대회에는 많은 귀족과 황족, 또 황실 기사단이 출진했다.
2황자 소속의 ‘하얀밤’ 기사단과 5황자를 호위하는 황실 제2기사단 ‘깊은숲’, 그 외에도 황실 제4기사단 ‘물보라’, ‘마른가시나무’ 기사단, ‘강철발굽’ 기사단까지. 전쟁이라도 치른다고 생각될 정도로 대거의 무력이 이동했다. 짧은 일정 동안 사냥 대회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험준한 산길 때문에 발목이 삔 하인 몇몇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사상자조차 없었다.
사냥 대회 5일차. 사건이 일어났다. 제국 일라베니아와 이웃한 거대한 왕국 발타. 그 발타를 거점으로 하는 암살 부대가 일라베니아의 권력이 응집되어 있는 산을 침범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에 하나둘 횃불이 늘어나며 전투는 시작되었다. 기습을 당해 잠시간 흐트러지긴 했지만, 곧 진열이 가다듬어지며 형세가 역전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수의 차이도 차이거니와, 무력 또한 한낱 암살 부대와 비교할 수 없었다.
새벽이 찾아올 즈음, 소란은 점차 잦아들었다. 습격자들은 모두 소탕되었고, 황자들은 생채기 하나 없이 무사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에 취하기에는 아군의 피해 또한 상당했다. 아침 해가 비추어진 땅 위에는 적아를 가리지 않는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수십밖에 되지 않는 암살자들은 독과 암기를 써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피해를 남겼다.
더 이상 사냥 대회는 지속될 수 없었고 황자들은 급히 환궁했다. 각각의 기사단은 호위를 위해 수도 티가드로 향했지만, 일부의 인원이 남아 부상자와 사망자를 수습했다.
사망한 하얀밤 기사단의 부단장. 그의 부관은 기사단의 명단 위로 하나둘 선을 그었다. 열다섯이 다치고, 일곱 명이 사망했다. 아니 부상자 열넷과 사망자 여덟 명이다. 방금 치료받던 단원 한 명이 사망하였노라 의사가 선고했다. 그는 참담함을 미처 감추지 못하고 사망한 단원의 이름을 찾아 선을 그었다.
반나절 정도 지나자 어느 정도 명단이 분리되었다. 호위를 위해 떠난 자, 다친 자, 죽은 자. 부관은 종이에 적혀 있는 이름 중, 그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은 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붉은수레바퀴의 로젤린. 붉은수레바퀴 백작의 장녀로,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하얀밤 기사단에 들어 올 정도의 실력을 갖춘 단원이었다. 무력은 남자 기사들에 비하면 약했지만 성실하게 일하는 태도를 높이 사 이번에 죽은 부단장이 아끼던 자였다.
부관은 다른 기사단 쪽으로 시체가 잘못 흘러갔나 싶어 사방팔방으로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검은 머리는 어디서도 찾아낼 수 없었다.
붉은수레바퀴 백작가로부터 수색대가 파견되어 숲속 아주 깊은 곳, 절벽 아래 큰 부상을 입은 그녀를 찾아낸 것은 전투가 있던 날로부터 6일이 지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