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그렇군요.]
[저는 일단 감옥으로 내려갔습니다.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잡을 수 있으니까. 과거 마인 사냥을 할 때는 마인을 앞세워서 마인을 추적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서로를 감지할 수 있는 게 서로뿐이니까요.]
[네.]
[아무튼 그렇게 내려갔더니, 감옥 철창이 전부 열려 있지는 않은 거예요! 그게 다 특별 수감소 방침 덕분이죠. 감옥 열쇠를 모두 들고 있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 상부에 신청해서 허가받고 받아 오고…… 절차가 아주 복잡합니다. 운 좋게 열쇠 몇 개를 구했지만, 전부 구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 보이더군요. 철창이 다른 감옥에 비해서 두껍고 튼튼하다 보니, 약해진 몸으로는 부수지 못했던 것 같고요. 아무튼, 이거 됐다 싶어서 살펴보는데 세상에…… 갇혀 있는 수감자들이 다 죽어 있지 뭡니까. 병사들이 죽였을 리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놈들이 도망가면서 데리고 가지 못한 제 부모, 형제, 자매, 친구, 자식. 다 죽이고 간 겁니다. 얼마나 오싹하던지. 짐승도 그렇게는 안 할 겁니다.]
* * *
시간을 오래 거슬러 가야 하는 이야기이다. 축복의 밤이 매년 잊지 않고 찾아오던 그 시대.
이미 일어난 일이니, 그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했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황제는 축복의 밤을 불러오는 영광이 반으로 나뉘는 것을 탐탁잖아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권력자 밑에는 언제나 머리를 굴려 수를 쓰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니. 그때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으리라.
황실은 먹음직한 미끼를 걸어 두고 몇몇 마인을 사주했다. 권력이나 물리적인 협박으로 찍어 누르는 방식 또한 서슴지 않았다. 대륙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끔찍한 살인 사건의 배후에는 황실이 있었으나, 누구도 알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갔다.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기 시작했다. 돌을 던져야 하는 대상을 사건을 일으킨 몇몇 마인이 아닌, 그 힘을 가진 자들 전체로 확장한 것이다. 그들이 가진 힘이 온건하지 못하고 다소 위험성을 동반하고 있는 사실 또한 그 커다란 일의 배경이 되었다.
그중 강한 마력을 타고나는 혈족이 있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황제와 영광을 나눠 가지던 자들이었다. 몇 세대 걸쳐 쌓아 온 우정이 한순간에 꺾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들은, 보호라는 이름을 앞세운 황제의 거짓된 약속에 속아 넘어갔다.
사건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사람들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황실 깊은 곳에 숨어 있으라. 오랜 우정이 그대들을 지킬 것이다.
하지만 마인에 대한 원성은 잦아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인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마인을 향한 거부감은 더더욱 날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때가 무르익고서야 황실이 전면적으로 개입했다. 수천이 넘는 황실의 병력이 대대적으로 움직였다. 평화롭던 대륙에 피 냄새가 퍼졌다. 누구는 사냥이라 했고, 누구는 학살이라 했고, 누구는 정화라고 했다.
마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죽기도 하고 도망가기도 했다. 대륙에서 마력이라는 힘과 마인이라는 존재는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황실의 대신전, 그 깊숙한 곳. 강한 마인들은 감금되어 오랜 시간을 보냈다.
몇몇의 아이가 태어났다. 그중, 달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가 있었다. 다른 신생아들보다 가볍고 작았다. 산모가 제대로 먹지 못했던 탓이 컸다.
그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감옥 안의 모든 마인들이 눈물을 흘렸다. 아이의 작은 울음소리와 함께 엄청난 마력의 기운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들의 역사가 일렀다. 몇 세대에 걸쳐 강력한 왕이 태어난다. 마력을 타고나는 그들의 핏줄에서도 유독 강하고, 응축된 마력을 타고나는 자라 했다.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가 이 상황을 타개해 주리라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강한 마력과 함께 운명을 거머쥐고 있다는 왕의 탄생이 기쁘고, 또 슬퍼서.
아이는 자랐다. 이름도, 어떤 보살핌도 없이.
어린 마인들을 모아 두는 몇 개의 옥방 중 하나. 작은 방 한 개 분량의 감옥 안에는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누우면 다리도 제대로 펴지 못할 정도였다. 낮에는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다.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매질을 당하거나 물세례를 맞았다. 저녁에는 다닥다닥 붙어서 잠을 잤다.
아이는 유독 약해서 자주 앓았다. 다른 아이들이 더러운 천 조각 따위를 아이에게 덮어 주곤 했다. 아이의 사고는 마음껏 저 바깥의 공기를 맡으며 뛰어다니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더뎠으나, 더러운 천 조각의 온기로부터 배우지 못한 애정을 느끼기도 했다.
감옥 안은 춥고 습했다. 곰팡이가 펴 있고, 이상한 냄새가 났다. 아이가 보아 온 공간은 변함없이 이랬던 터라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그저 언제나 배고플 뿐이었다. 아이가 쥐나 벌레를 입에 넣으려고 하면, 아이보다 두어 살 많은 또 다른 아이가 서둘러 뺏었다.
아이가 열 살이 되었다. 언제나 조용했던 감옥이 시끄러워졌다. 무섭게 매질하고, 걷어차던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피가 고여 아이들이 있는 곳까지 흘렀다. 아이들은 갑작스런 상황에도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오랜 기간 학습되어 온 효과로, 그저 벌벌 떨며 굳어 있을 뿐이었다.
철창문 몇몇 개가 열렸고, 수감되어 있던 마인들이 감옥 안의 병사들을 모두 죽였다. 그들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일이었다. 탈옥.
아이가 있는 옥방의 철창문도 열렸다. 어느 여자가 아이를 안아 들었다. 아이는 두려움에 찰싹 매달렸다.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되는데, 소리를 내면 안 되는데, 혼날 텐데, 아플 텐데. 배가 고프고 괴롭게 되는데.
어른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울고 있었다. 그 무섭던 병사들을 죽이면서도 울었고, 열리지 않는 다른 방 앞에서 철창을 두드리며 울었다. 태어난 이후로 접해 보지 못했던 큰 소음과 소란. 아이는 혼란스러웠다.
어른들은 탈출하지 못한 마인들이 사냥개가 되어 자신들을 추적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또한, 도망친 자들을 잡건, 놓치건 간에 이미 탈옥은 일어났으며, 그로 인해 지내 왔던 것보다 더더욱 괴로운 나날이 그들에게 펼쳐질 거란 사실 또한 잘 알았다. 그들이 창을 들고 가족의, 연인의, 친구의, 자식의 심장을 꿰뚫은 이유였다.
여자에게 안겨 계단을 오르던 아이는 뒤에서 퍼지는 비명에 몸을 떨었다. 병사들은 진작에 다 처리했으니, 그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명백했다. 하지만 아이의 사고 능력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다. 그저 퍼지는 비명과 울음소리에 가슴이 덜컹. 절로 눈물이 날 뿐이었다.
아이는 곧 한 번도 벗어난 적 없는 지하를 벗어났다.
휘이이, 바람이 불었다.
둥그렇고 새하얀 무언가가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까만 천장에는 빛나는 조각들이 무수히 박혀 있다. 처음 보는 세계였다. 아이는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이동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근육이 퇴화한 탓에 넘어지는 일이 잦았다. 그들은 산 길목에서 상단을 급습해 마차를 얻었다. 야생동물을 사냥하거나 과일을 채집해 먹을 걸 구했다. 아이는 처음 맛보는 달콤한 과일을 허겁지겁 삼키다가 배앓이를 하기도 했다.
수일이 흘렀다. 몇 개의 마을을 지나쳤다. 간악한 마인들이 탈옥했다는 방문이 여기저기 붙었다. 포위망은 점점 좁아졌다. 필사적으로 도망가고 있으나 목적지는 없었다. 그들은 그저 그 어둡고 추운 공간에서 보다 멀어지길 바랐다.
그들은 산 깊숙이 들어갔다. 한두 명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흔적이 남았다. 저 멀리 사냥개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른들은 넘어지는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손으로 잡아끌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밤이 되었다. 검은 숲, 검은 나무 사이사이로 횃불이 빛나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하늘 위에서 별과 달빛이 찬란하게 내리쬐었다.
사람들은 울었다. 절망하고 화를 냈다. 하지만 종국에는 허름하고 녹슨 날붙이를 꽉 쥐었다. 스르릉, 날카로운 금속음이 아이의 마음을 무섭게 다그쳤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다가오는 불빛들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날에는, 영영 하늘의 빛을 잃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어둡고 무서운 공간 안에 다시 갇히게 될 것이다.
아이는 두려웠다. 두근, 두근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작은 몸 안에서 마력이 불안하게 요동쳤다. 다가오는 병사들이 소리쳤다. 저기에 있다! 저것들을 당장……! 화살이 날아와 아이의 옆에 있던 소년의 머리에 꽂혔다.
아이의 눈동자에 공중에 흩뿌려지는 핏방울이 비쳤다.
그들의 역사가 이른다.
몇 세대에 걸쳐 한 번씩, 강한 마력과 함께 운명을 거머쥔 왕이 탄생한다.
[아… 아, 아아아악!]
몸이 찢어지는 고통에 아이가 비명을 질렀다.
아이의 여린 몸은 그 거대한 힘을 감당해 내지 못했다. 육체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비명이 울린 숲속. 마인들이 손에 쥐고 있던 무기를 하나, 둘 떨어트렸다. 그들이 덜덜 떨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이에게 동조해 마력이 널뛰며 폭주했다. 모두의 안에 흐르는 마력이 몸집을 키우며 부풀어 올랐다. 사람들이 괴롭다는 듯 몸을 뒤틀며 피를 토했다. 오랜 세월 시든 육체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세포 하나하나가 무너져 내렸다.
아파, 괴로워, 무서워, 죽여! 도망쳐야 해, 복수를, 더 깊은 곳으로, 부디 누구라도! 기억이 산산조각 나며 부서졌다. 가리가리 찢겨 나갔다.
바닥에 작게 웅크려 제 몸을 할퀴고 있던 아이가 눈을 번쩍 떴다.
펑!
그와 동시에 무형의 기운이 터지듯 퍼졌다. 나뭇가지가 꺾이고, 작은 돌들이 바깥으로 밀려났다. 그들을 향해 다가오던 병사들은 갑자기 세차게 불어온 바람에 눈을 질끈 감았다. 몸이 밀려날 정도의 강풍이었다.
한차례 무언가가 휩쓸고 간 숲이 조용해졌다.
바닥을 기어 다니고, 풀숲에 숨어 찌르르 울던 벌레와 산새, 굴 속에 있는 작은 짐승과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맹수들이 숨을 죽이고 새로운 종의 탄생을 맞이했다.
사람들이 괴롭게 울부짖던 자리에는 수십 구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서 검은 덩어리들이 뭉글거리며 작게 흔들, 흔들거렸다. 뒤가 비쳐 보이는 그것들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나무의 그림자? 움직이는 검은 바위? 숲의 귀신? 어떤 이름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것들은 어둠을 헤치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피해 더욱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남은 기억의 잔재가 그들을 이끌었다. 더 깊게, 더 깊은 곳으로.
병사들이 원했던 것은 살아 있던 마인이었으므로, 시체는 필요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시체는 그대로 버려졌다. 그들의 시체 위로 햇살과 달빛이 지나기를 며칠. 그들의 시체는 순환의 법칙에 따라 짐승들의 먹이가 되었다. 검은 덩어리들이 벗어 놓고 간 광기 어린 감정의 파편 또한, 남김없이.
이후, 그 산에 서식하는 짐승들의 공격성이 매우 높아져 사람들의 근심거리가 되기 시작했다. 마치 인간이 원수라도 되는 양, 수년간 차곡차곡 쌓아 온 원한이라도 있는 양. 거칠고, 매섭게 인간들을 공격했다.
그 사나운 맹수들은 마인의 광기를 닮았다 해서 마수라는 이름으로 묶여 살아가게 되었으나, 검고 불투명한, 연기 같은 그것들은 흔적도 없이 그림자 속에 녹아들어 이따금 그림자나, 귀신, ‘그것’ 따위로 불릴 뿐이었다.
사람들의 입을 오가는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그렇게 시작한다.
아, 내가 숲에서 움직이는 그림자를 봤는데 말이야…….
이것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
터무니없어,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을 이야기이다.
ㅡ2부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