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없는 밤-169화 (169/220)

169화.

케틀린은 인상을 구깃구깃하게 만들고는 보이지 않는 어두운 허공을 훑었다.

그녀는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하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 일라베니아 황성의 지하 감옥은 악명 높기로 유명했고, 그만큼 감옥에 머무는 일 분, 일 초는 고통뿐이었다. 몸과 마음이 괴로운 나날뿐이었으나, 건국일이 되자 그 어느 때보다도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그건 지하 감옥을 지키는 병사들이, 건국일이랍시고 이델라브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 대기 때문이었다.

연일 계속되는 연회장을 가득 채운 음식들은 그날그날 바로 소비될 만한 양이 아니었고, 남은 음식은 자연스럽게 시종이나 시녀, 이런 말단 병사들의 앞까지 돌아왔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포식하는 기간. 귀족 나으리들이 먹는 고급스럽고 맛있는 걸 먹으니 절로 흥도 나고, 근무수칙에는 어긋나지만, 수통에 담아 온 술을 같이 마시니 더 신나고. 그래서 흥얼흥얼 지하 감옥을 가득 울리게 노래를 불러 대는 것이다.

그걸 더욱 괴롭게 만드는 요소는 가장 큰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병사 두 명 중 한 명은 음치고, 나머지 한 명은 박치라는 점이었다. 사람을 감동하게 만드는 훌륭한 가희가 부른다고 해도 짜증 날 판국이었던 터라, 케틀린은 누워서 감상하다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아, 못 들어 주겠네, 진짜……. 입 닥쳐 얼간이들아!”

술 취한 병사들이 노래를 멈추며 인상을 팍 찌푸렸다.

“이 건방진…….”

철컹.

케틀린은 병사들이 벽에 비스듬히 세워 두었던 창을 드는 소리를 들었다. 오늘도 온몸이 성하지 못하게 두드려 맞으리라. 그래도 그녀는 저들의 돼지 멱따는 소리를 멈춘 것만 해도 기뻤다.

“이런, 혼잣말을 한다는 게 그만.”

말투는 내가 실수를 했다는 듯 고분고분했으나, 그녀의 가운데 손가락이 기상 넘치게 그들을 향해 세워져 있었다. 일라베니아 거리에서 통용되는 욕으로, 해석을 하자면 네…… 를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남자들이 허리춤을 더듬어 열쇠를 다급히 찾는 소리가 들렸다. 케틀린은 가만히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 곧 익숙한 고통이 찾아오리란 사실을 알면서도 표정은 심드렁하기 그지없었다.

병사들이 열쇠를 구멍에 철컥 끼워 넣었다.

“오늘 그 고약한 성질 머리를 고쳐 주마,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건방진 것 같으니!”

남자가 황소처럼 씩씩거렸다.

쾅!

그때, 큰 소리가 감옥 안을 울렸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벽에 충돌한 것 같은 소리였다. 병사의 움직임이 딱 멎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이상은 없었다. 위층에서 난 소리가 아닐까. 수감자가 사고를 쳐서 혼쭐을 낸 것인가?

으아아악!

누군가의 비명이 계단 통로를 타고 실려 왔다. 병사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황급히 케틀린이 갇힌 감옥의 철창문을 다시 걸어 잠갔다. 평소 같았으면 네놈들이 그러면 그렇지, 여자 하나 못 이겨서 꽁무니 빼고 도망친다고 욕설이라도 해 주었을 케틀린도 가만히 입을 다물고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하얗게 변해 버린 눈이 천장 그 어디쯤을 훑었다. 남자들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마력이었다. 몇 개의 벽 너머, 한참 높은 위에서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쯤은 알았으나…….

거리, 위치. 모든 것을 혼동하게 만드는 이 거대한 마력의 기운이란! 케틀린의 등골을 따라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최하층을 지킬 네 명의 병사를 제외한 나머지 남자들이 모두 위층으로 올라갔다. 케틀린은 철창은 잡고 보이지 않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슨 일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금속음과 비명은 끊이지 않았다. 감옥 안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익숙한 소음과 상황이었으나, 소름 끼칠 정도로 강한 마력의 기운이 그녀의 감각에 섞여 전혀 다른 상황을 만들어 냈다.

마력은 가까워졌다. 한 층, 한 층 더 아래. 천천히 움직이는 마력은 여유롭다기보다는, 사냥감을 진득이 주시하는 뱀의 움직임같이 느껴졌다. 케틀린은 오랜만에 초조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그 거대한 마력보다 한 발짝 먼저, 소리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뚜벅뚜벅. 돌계단을 지그시 누르며 다가오는 느긋한 발걸음 소리였다.

동향을 살피며 숨죽이던 최하층의 수감자들과 남은 병사들이 꿀꺽 침을 삼켰다. 십 초 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냄새나고 더러운걸. 그다지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군.”

여유작작하게 감옥의 풍경을 품평하는 목소리가 익숙했다. 케틀린이 눈살을 찌푸렸다. 십여 년 만에 듣는 목소리였으나, 잊을 리 없었다.

하카브였다. 병사들도 얼굴을 알아봤는지 창을 들고 그에게 돌진했다.

“아악!”

하카브가 부나방 같은 병사들을 보며 쯧쯧 혀를 찼다. 몇 초도 채 지나지 않아, 병사들은 하카브를 둘러싼 호위들에게 공격받아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용감한 것과 무식한 건 종이 한 장 차이라더니. 그렇지 않나, 아순.”

“예, 전하. 정말 용감하군요.”

“……그래.”

지하 감옥의 왕처럼 떵떵거리던 병사들의 몰락에, 수감자들이 환호하며 철창에 달라붙었다.

“이봐, 나, 나를 꺼내 줘!”

“죽여주는데! 진짜 죽였으니까!”

“잘생겼네…….”

고문과 오랜 감금으로 약간 미쳐 버렸는지 독특한 감상평이 많았다. 하카브는 그들의 감상평에 씨익 웃고는 케틀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이다 키티. 살아 있을 줄은 몰랐는데.”

케틀린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 키티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저 인간이 진짜.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그녀는 하카브가 자신을 구하는 목적으로 일라베니아에 발을 들였을 거라고, 새끼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모든 인간은 쓰기 쉬운 도구와 다름없다는 사실은 정말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 이번 건국제에 흥미로운 게 있어서 보러 왔지. 겸사겸사 네가 살아 있는지도 확인해 보기도 하고. 그런데 왜 시선이 약간 빗겨 나간…… 아, 눈이 안 보이나?”

“한 오 년 전쯤부터요. 아니, 그렇다고 일라베니아에 직접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걸 또 아틸라크가 보고만 있던가요. 배를 두른 지방이 머리에도 꽉 차 버리기라도 했나 보죠?”

“말리고 싶어 하기는 하던데, 얘기는 못 꺼내던걸. 모두가 자네 같은 줄 아나, 이 사람아. 어디 보자…… 열쇠가…….”

하카브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죽지 않고 바닥을 기어 다니던 병사가 컥컥 거리더니 열쇠를 꺼내 집어삼켰다. 하카브가 미간을 찌푸리며 턱을 매만졌다.

“키티. 병사가 열쇠를 삼킨 것 같은데.”

“가르면 되잖아요.”

“더럽잖나.”

“옆에 애들은 뒀다가 수프 끓여 드시려고 그러시나. 원래도 직접 뭐 하시지도 않는 분이 왜 그러신대.”

“아니, 내가 직접 하려고 했다. 대충 십…… 년쯤 감옥에 갇혀 있던 내 사람을 구하는 감동적인, 그런 상황이니까.”

전혀 감동적이지 않았다. 애초에 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일라베니아에 발을 들인 것도 아니면서 감동은 무슨 감동. 케틀린이 철창을 잡고 흔드는 시늉을 했다. 대 마인용으로 설치된 두꺼운 강철이 깊게 박혀 있었다. 약해진 몸이 아닌 평범한 육체로 마력을 운용했다 하더라도 부수지 못했을 것이라 의미 없는 시도였다.

하카브의 호위들이 철창을 향해 발길질했다. 소리만 요란했고 꿈쩍하지 않았다.

“약해 빠진 놈들만 골라 데리고 다니시네요.”

“그 약해 빠진 놈 중에 아순이 있단다.”

“……개중 좀 힘찬 발길질 소리가 있더라니, 아순 너였구나? 오랜만이다, 세상에.”

하카브의 호위, 아순이 앞이 보이지 않는 케틀린에게 무릎을 꿇으며 인사했다. 이게 무슨 바보 같은 상황인지 모르겠어서 하카브는 하하 웃었다.

“전하, 빨리 꺼내 주세요.”

“알았다, 알았어. 하여간 성격 급하기는. 애들보고 침 좀 닦아서 가져오라 하마.”

십 년 이상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 보고 할 말은 아니었다. 케틀린은 어이없어서 별다른 말을 하지도 못하고 가만히 기다렸다.

쿵!

위층에서 또 소리가 크게 울렸다. 케틀린이 깜짝 놀라 위를 바라보자 하카브가 반색했다.

“아, 역시 느껴지나?”

“못 느끼는 게 이상하죠. 대체 저…… 저건 뭔가요?”

“떽. 키티. 저거라니. 그러면 못쓴다.”

케틀린은 눈이 멀어 하카브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나, 잔뜩 들떠 있는 목소리에서 그의 표정을 연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저분은 누구시죠? 머리털 나고 처음 보는 마력의 크기라서 좀 놀랐네요.”

“저…… 사람은.”

하카브가 말을 끌었다. 케틀린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나의 검은 달이다.”

어우……. 케틀린은 닭살 돋은 팔을 슥슥 쓸었다. 예전에도 시 같은 걸 좋아하더니, 그 기호는 여전한 듯했다.

그러나 케틀린은 ‘검은 달’이라는 이름을 하카브가 얼마나 귀중히 여기는지 잘 알았다. 으레 발타라는 나라가 마력을 숭배하기를 저를 낳은 어미보다, 제 목숨을 구한 은인보다, 수천 명을 살리고 죽은 위인보다 대단하다 여겼으나, 하카브는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띌 정도로 마력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력을 타고나는 자가 많은 발타 왕조에서, 미숙아로 다름없이 취급받는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난 설움이 표출된 것일까? 느끼지 못하는, 알지 못하는 힘을 숭배하는 그의 모습은 솔직히 케틀린이 보기에는 좀 우스운 감이 있었다. 동경, 갈망. 글쎄 그 끈적한 욕망을 표현하면 좋을지.

그런 하카브가 천천히 다가오는 위협적인 마인을 검은 달이라 칭했다. 그의 검은 달. 그의 크레안 티다니온.

통로에서 다시 한번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하카브처럼 보란 듯 느긋하지도 않고, 일라베니아 황실 한가운데에서 사고를 친 사람처럼 다급하지도 않았다. 그저 일상생활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자연스러운 걸음걸이에 케틀린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거대한 기운, 무서운 살육자, 피 냄새를 몰고 오는 사람의 행동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속을 완벽하게 가리는 위장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아 괴리감이 들었다.

발걸음 소리가 같은 공간안에 울렸다. 케틀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바짝 서 있는 긴장 속에서 하카브가 사랑에 빠진 듯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디에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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