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없는 밤-20화 (20/220)

20화.

소문은 발이라도 달린 것처럼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호위 임무에 막 배치된 상급 기사 로젤린 경이 암살자를 떡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바닥에 뿌려진 피를 치우던 시녀 몇 명, 암살자를 인계받은 병사 몇 명. 그 목격자들에게서 그녀의 무용담은 확대되어 퍼지기 시작했다.

리카르디스를 향한 암살 시도는 언제나 열렬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환한 대낮에 암기를 들고 직접적인 공격을 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더군다나 성 내부 사람의 모습으로 변장하기까지 했으니. 그를 감싸고 있는 악의가 거세짐은 물론이요, 수법 또한 치밀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처음이자 성공으로써 마지막이 될 수 있었던 위험한 시도는 한 명의 호위 기사로 인해 단숨에 무너졌다. 일개 신입 호위 기사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낮았던 탓이었을까. 로젤린의 공은 더욱 빛났다.

로젤린의 수습 기사인 에버하르트와 레티시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식을 들었다. 암살자 다섯이 리카르디스 전하를 해하려고 하자 로젤린 경이 마치 팔이 여덟 개라도 된 것처럼 휘둘러 모두 잡아내었다고 했다. 독과 암기가 난무하는 사이에서 로젤린은 생채기 하나 없었을 뿐더러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피가 강처럼 흘렀다나 뭐라나. 과장이 섞인 진실이 자극적으로 변해 사람들의 입을 오르고 내렸다.

레티시아는 막 연무장으로 들어오는 로젤린을 발견하고 에버하르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제복의 단추를 몇 개 풀고 느슨한 복장을 하고 있던 에버하르트가 급하게 몸단장을 했다.

“검은 달을 가르는 이델라브힘의 영광을!”

“검은 달을 가르는 이델라브힘의 영광을!”

성안에 자자하게 퍼진 소문처럼 그녀는 작은 상처 하나 입지 않은 듯 했다. 흰 제복 위로 마른 피가 엉겨 붙어 있어서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로젤린은 평온한 얼굴로 그들에게 인사했다.

“이델라브힘의 영광을 그대들에게.”

로젤린은 붉은 노을이 퍼진 하늘을 등지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반나절 만에 월장석 성의 사신으로 불리고 있는 그녀의 별명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존경의 눈빛으로 로젤린을 쳐다보았다.

호위 임무 첫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암살자와의 격전에도 불구하고! 바쁜 시간을 쪼개어 연무장에 수습 기사들을 살펴보러 와 주다니. 그들은 기합이 들어 빳빳하게 서 있었다. 로젤린은 그들의 모습을 쭉 훑어보았다. 열심히 검을 휘둘렀는지 서늘한 바람에도 땀이 식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로젤린은 레이몬드와 칼릭스에게 여러 가지를 들었다. 하얀밤 기사단에는 많은 수습 기사들이 있다. 하지만 기사단 내부에서는 기사라고 불리지도 못하고 고작 수습생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했다.

그러니 기사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하급 기사로 승급하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큰 목표인 셈이었다. 레티시아는 몰락 귀족 출신에다가 여자. 에버하르트는 평민. 수습 기사들 모두가 절실했지만, 그들 또한 매우 절실했다. 노력해 봤자 뒷받침해 주는 가문이 없다 보니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았다. 재정적인 부분은 차치하고 검법을 배울 수 있는 환경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다.

어떠한 신념. 그리고 그 신념을 밑받침하는 파벌 이전에 하급 기사와 수습 기사를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검술 실력이었다. 그들이 아직 수습 기사에 머무르는 것은 하급 기사와 수습 기사 사이를 가로질러 놓은 기준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로젤린은 그런 둘을 하급 기사로 끌어올려야만 하는 과제를 가지게 되었다. 로젤린은 어제 자기 전 곰곰이 생각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 인간에게 부족한 것. 로젤린은 그것이 무엇인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수습 기사들의 실력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녀는 연무장 구석에서 뒹굴고 있는 목검을 들었다. 둔탁한 목재의 감촉이 익숙했다. 그녀는 목검의 표면을 만지작거렸다.

“일단 봅시다. 레티시아, 에버하르트.”

레티시아와 에버하르트는 허둥지둥 당황했다. 그사이 로젤린은 자신의 얼굴 앞에 검을 세웠다. 대련 전의 준비 자세였다. 두 수습 기사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네가 먼저 할래? 내가 먼저 할까? 눈빛으로 서로에게 순서를 미뤘다. 얼마 전 그녀에게 쥐어 터졌던 네스터의 모습이 아른아른거렸다. 그 자는 아직까지 얼굴에 멍을 달고 다녔다. 수습 기사 두 명을 지켜보던 로젤린이 입을 열었다. 잔잔한 목소리가 연무장에 쿵, 무겁게 떨어졌다.

“둘, 다.”

“예? 예!”

“예!”

두 사람은 서두르며 목검을 잡아 들었다. 1:2의 대치. 로젤린은 검을 들고 긴장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쭉 훑었다. 겉핥기로만 배운 듯 어설픈 자세였다. 여기 저기 빈틈 투성이라 마수가 앞에 있었다면 진즉에 잡아 먹혔을 것이다.

로젤린은 팔에 힘을 실었다. 그녀의 근육이 아주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두 사람은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으나, 이미 주위에는 그 작은 움직임과 상반되는 흉흉하고 거대한 기운이 떠돌았다. 당장에라도 그들의 목을 베어 낼 듯 날카로웠다.

“…….”

로젤린은 할 말을 잃었다. 이들은 마치…… 아기 사슴 같았다. 아니 아기 사슴보다도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떨어졌다. 이렇게 왼쪽, 오른쪽, 밑, 위. 다양한 방향으로 위협을 해도 ‘응? 언제 공격하는 거지?’라고 말하는 낯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로젤린은 검을 거둬들였다. 목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은 채, 대련이 종료되었다. 레티시아와 에버하르트는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로젤린에게 그들의 능력을 판별할 만한 탐색전은 이만하면 충분했다.

수습 기사들에게도 공통적으로 기본 검술을 배우는 시간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검을 어떻게 휘두르느냐에 관한 기본기에서 그쳤다. 유일하게 다른 사람들과 검을 맞대는 대련시간조차 방어구와 목검을 사용해, 실전보다는 말 그대로 ‘대련’ 에 익숙해질 뿐이었다.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며 뭉툭한 나무 검을 휘두르는 것에서 위기감을 느끼기는 여간 힘든 게 아닐 것이다.

로젤린이 인간이 된 이후 느낀 것도 그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생명의 위협이라는 것이, 위기감이라는 것이, 본능이라는 것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었다. 어지간히 강한 인간이 아니고서야 인간은 정말 약한 종족이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필요한 과제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심각합니다.”

수습생 두 명이 눈에 띄게 축 처졌다.

“……어디가…… 심각…….”

“모든 게 매우 심각합니다.”

“아…… 네…….”

에버하르트와 레티시아는 힐끗 힐끗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로젤린은 한숨을 쉬었다.

“이제부터 에버하르트와 레티시아를 공격합니다.”

“네?”

“아침부터 자는 순간까지 긴장을 늦추지 마십시오.”

언제 어디서든 제가 당신들을 노립니다. 로젤린의 높낮이 없는 고요한 말투와 내용이 오싹했다. 그들의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이게 무슨 소리지? 다른 상급 기사에게 소속된 수습 기사들에게서는 이런 이상한 내용의 훈련 방법을 듣지 못했다. 수습생들이 검을 휘두르면 상급 기사가 부족한 점을 말해 준다던가 검법을 가르쳐 준다던가 하는 일반적인 가르침뿐이었다. 레티시아가 머뭇머뭇 손을 들었다. 로젤린이 고개를 까딱하자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음, 로젤린 경. 조금 더 상세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로젤린은 조금 고민하더니 주머니에서 꽃이 잔뜩 수놓아진 손수건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레이몬드가 손수 자수해서 그녀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의아하다는 듯 지켜보는 수습 기사들의 시선아래, 그녀는 몸을 구부려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잡기 전 바로 한치 앞에서 멈췄다.

“제가 뭘 하는 것 같습니까, 레티시아.”

레티시아는 눈을 마구 굴리다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손수건을…… 주우시려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로젤린은 손수건을 잡아 올렸다. 그리고 연무장 옆에 있는 수풀에 다가가 얇은 나뭇가지를 콱 잡았다. 나뭇가지가 당장이라도 꺾여 질 듯 휘어져 있었다. 로젤린은 더 이상 힘을 주지 않고 또 멈췄다.

“제가 뭘 할 것 같습니까, 에버하르트.”

“나뭇가지를 꺾으려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로젤린은 나뭇가지를 꺾었다.

“방금 대련할 때에도 제가 여러 번 레티시아와 에버하르트를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네?”

“예?”

그냥 가만히 서 있었잖아? 둘은 혼란스러웠다. 분명 그냥 서 있기만 했는데…….

“전혀 모르고 있더군요.”

“아…… 네…….”

에버하르트는 로젤린이 한 행동과 말을 이제야 이해했다. 물론 손수건을 잡지 않았고 나뭇가지를 꺾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후에 취할 행동은 누구든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했다. 대련했을 때에도 그것만큼은 아니지만, 그녀는 공격전의 징조를 뚜렷이 내보였을 것이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눈동자, 한쪽 발에 실리는 무게. 검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며 수축, 팽창하는 근육의 움직임 따위로.

로젤린 그 징조를 읽어 내지 못했다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레티시아 또한 그녀가 하고자하는 말을 깨달은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얼굴을 붉혔다. 여러모로 부족하단 것이 낱낱이 드러났다.

“읽어 내십시오.”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본능이 얘기하는 그 영역까지.

“네!”

“예!”

레티시아와 에버하르트의 목소리가 연무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월장석 성의 사신이라고 불리는 로젤린은 소문처럼 정말 굉장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들은 그녀에게 경례한 후, 뿌듯하게 기숙사로 귀가했다.

방심한 채 돌아가는 도중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로젤린에게 공격당하는 걸 기점으로 그들의 세상은 180도 바뀌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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