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칼릭스는 잠시간 당황하다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원래의 목적이었던 첩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태연하게 서 있는 그녀의 발밑에 검은 덩어리가 쓰러져 있었다. 목이 완벽하게 뒤틀려 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검을 다룬다고 해도 완력이 약한 여자의 몸으로는 성인 남자의 목뼈를 이렇게까지 비틀어 꺾을 수 없었다. 심지어는 흉기를 들고 있는 사람을 상대로 상처 하나 없이.
쾅!
칼릭스는 그녀를 붙잡아 벽으로 세게 밀어 넣고 턱밑에 검을 바싹 대었다. 그녀는 말똥말똥 눈을 뜬 채 그를 올려보기만 했다.
맑은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속에서 치솟는 불길을 느꼈다. 이빨이 덜덜 떨리는 걸 막기 위해 턱에 꾹 힘을 줘야만 했다. 분노가 그녀의 목을 계속 파고들려 했지만, 자신을 닮아 있는 그녀의 그 얼굴이, 달빛을 받은 녹음의 눈동자가,
“칼릭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이렇게나 선명했다.
칼릭스는 어느새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화가 나고 슬프고 답답하고 괴로웠다. 칼릭스는 그녀의 어깨를 조금 더 세게 그러쥐었다. 무시무시한 완력으로 압박하고 있음에도 그녀는 일말의 불편한 기색조차 없었다. 첫날 이후부터 이 순간까지, 변하지 않는 그녀의 표정이 그를 끝없이 자극했다. 나는 당신이 아는 그 사람이 아니야.
온몸으로 말하는 것만 같았다. 칼릭스의 턱을 따라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한 자 한 자, 씹어 먹는 듯 말을 내뱉었다.
“네가 혈육의 모습이라고 베지 못할 것 같나? 말해! 아니면 목을 날리겠다. 무슨 목적으로 여기에 온 거냐! 감히, 그 모습을 하고서!”
칼릭스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녀를 다그쳤다. 알 수 없는 감정이 그의 온몸을 두드려 댔다.
“너는 대체!”
거친 손길에 밀리고 흔들려 그녀의 머리는 더 흐트러졌다. 칼릭스는 그 머리카락이 반쯤 가리고 있는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대체, 누구야!”
마지막 물음은 비명과도 같았다. 뒤에서 보면 그녀를 품에 안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지만, 그와 그녀의 사이는 칼 한 자루로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다. 칼릭스는 그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시계 초침의 소리조차 몇 번 들리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다. 그와 조우한 순간부터 줄곧 침묵을 지키던 로젤린이 움직였다. 그녀의 손이 가볍게 칼릭스의 검을 쓸었다. 칼릭스는 흠칫 떨었지만, 뒤로 물리지는 않았다. 눈싸움이라도 하는 것처럼 줄곧 마주 닿아 있던 그녀의 시선은 검신 위를 떠돌았다. 손질이 잘 되어 있는 금속의 표면에 로젤린의 모습이 비쳤다.
그녀는 잠시간 제 모습을 응시한 후 입을 열었다.
“나는 그림자.”
그리고는 웃었다. 칼릭스는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웃는 모습이 누군가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눈썹이 살짝 처지며 날카로운 눈이 부드러워지고,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 있는 아주 잔잔한 미소였다.
“나는 로젤린의, 그림자다.”
* * *
‘그것’은 가끔은 새의 모습이었다가, 혹은 벌레였다가, 때로는 커다란 야수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깊은 산, 사람이 발길이 닿지 않는 태고의 숲에서 오랜 시간 존재해 왔다. 마력의 성질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그것’은 마수라고 불러야 할지도 몰랐다.
붉게 빛나는 눈, 맹수보다 강한 힘, 공격성까지. 마수라고 정의 지어지는 틀 안에 아슬아슬하게 비껴서 있는 이것이 마수로 규정지어지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을 마수라고 부를 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슴, 호랑이, 원숭이, 멧돼지, 때로는 곤충까지. ‘그것’은 자신이 과거에 먹었던 것으로 의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많은 인간들은 이를 한 번씩 스쳐 지나가면서 봤을지는 모르나 ‘그것’의 진정한 모습은 알 수 없었다.
검은 연기 같기도 했으며 살아 있는 모래의 집단처럼 보이기도 했다. 검은 ‘그것’은 정확한 경계를 가지지 못하고 부서지듯 흩어지듯 보였으나, 부서지지도 흩어지지도 않고 간신히 뭉쳐 있는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과거 누군가는 이것을 귀신이라고도 했고 과거의 또 다른 누군가는 나무의 그림자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것’들이 의태를 풀고 본 모습을 드러낼 때는 음식을 흡수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더더욱 발견된 적이 없었다. 때로는 일 년 이상 먹지 않기도 했으므로. ‘그것’이 섭취 하는 것은 죽어 있는 생물뿐이지만, 사냥이라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오래 굶주려야만 했던 이유였다. 어떤 동물, 어떤 마수도 자신이 사냥한 사냥감을 바닥에 버리고 가지 않았다.
‘그것’은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것을 먹었으며 때로는 영역 싸움의 패자들 근처에서 그들의 죽음을 기다리기도 했다. 굶주림이 극심해지면 풀이나 과일 따위를 먹기도 했지만, ‘그것’이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었다. 그저 행운만을 기다리다가 소멸하는 개체도 있었다. 지능이 낮은 편은 아니었지만 다소 게으르다고 평가할 만했다.
마른가시나무 백작령, 비스타에 자리한 ‘마의 산’. 그 높고 험한 깊은 곳.
‘그것’은 조금 오래 굶었다. 2년 전에 작위를 물려받은 마른가시나무 백작은 마수 토벌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자였다. 사냥꾼과 용병들이 산을 드나든 결과, 마수와 동물의 개체 수가 급감했다. 그 때문에 ‘그것’은 오랜 시간 굶주렸다.
세달 전쯤 썩어 가는 과일을 발견해 조금 먹었다. 하지만 허기를 채우기에는 부족한 양이었다. ‘그것’은 지쳐서 잠들었다. 오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이 일어난 이유는 날카롭게 제 감각을 찔러 오는 위험 때문이었다. 산의 마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하나둘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그것’은 과거에 먹었던 파랑새로 의태해서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건 아주 옳은 선택이었다. 얼마 후, ‘그것’이 머물던 곳까지 인간들이 거칠게 밀고 들어왔다. ‘그것’은 무당벌레로 변해서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찬란하게 빛나는 은색 갑주들이 저 멀리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인간들은 번개처럼 거대한 산맥을 정벌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숨죽인 채, 그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몇 시간이고 몇 년이고 숨어 지내는 것은 ‘그것’들의 특기였다. 길지 않은 기다림 끝에 조우한 것은…….
“…….”
죽어 가는 생물이었다. 검은 머리를 가진 인간이었다. 부서지고 찢어진 신체는 절벽 아래의 바위 무덤. 그중 가장 큰 바위에 걸쳐져 있었다.
하얀 꽃 한 송이를 가지고 놀던 ‘그것’은 여자를 발견하고 바위 무덤에 다가갔다. 여자는 봄에 막 싹트는 어린잎과 비슷한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깜박거리며 느리게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흐려지는 눈빛에 당황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그것’은 멀지 않은 곳에서 기다렸다. 살아 있는 것을 먹는 건 유일한 금기였다. 쓸리고 부서지고 뒤틀리고 베인 상처로부터 바위는 점점 피로 젖어 갔다.
‘이 인간은, 곧 죽는다.’
‘그것’은 이런 장면을 제법 많이 보아 왔다. 높은 절벽은 인간을 단번에 죽여 주는 자비로움이 없었다. 어떤 때는 노인, 어떤 때는 건장한 젊은 남자, 어떤 때는 길을 잃은 아이.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찌르고, 입에서 피를 토하는 중에도 그들은 두려워했다. 눈앞에 떠도는 그 새카만 덩어리를 무서워했다. 인간들은 기어서라도 도망갔다. 비명을 지르고 돌을 던져서라도 그것을 쫓아내려 했다. 살고자하는 욕구가 아닌 미지의 생물에 대해 느끼는 원초적인 두려움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어떤 누구도 이런 눈을 한 적 없었다. ‘그것’은 이런 눈동자를 처음 보았다. 아주 투명하고 예쁜 구슬 같은 눈이었다. 인간들이 흔히들 이런 상황에서 흘리는 눈물 같은 것도 없었다. ‘그것’이 그녀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녀 또한 ‘그것’을 관찰하듯 눈을 떼지 않았다.
“……당신…….”
검은 머리의 인간은 ‘그것’을 불렀다. 바람이 색색 새는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그것’은 조금 주춤거리다가, 평소보다 빨리 움직였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 조금 더 가까이 섰다. 인간은 겁도 없이 ‘그것’을 덥석 잡았고 ‘그것’은 살아생전 처음 놀랐다. 그녀 또한 놀랐다. 잡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검은 연기는 마른 모래, 마른 나무 같은 익숙한 듯 생경한 감촉이었다. 부서지는 입자가 그녀의 손안에서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일부는 붙잡을 수 있었다.
“도, 도와주세요…….”
‘그것’은 곤란했다. 인간의 언어는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가 무엇을 바라는지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치료해 줄 수단이 없었다.
검은 형체가 스르르 움직였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대류 하는 것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것’은 곧 어린 여자아이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고 검은 부분이 점점 사라지며 이윽고 완벽한 인간이 되었다. ‘그것’이 몇 년 전 먹은 어린아이였다. 그녀는 자신이 잡고 있던 부분 또한, 아이의 팔로 변했음을 깨달았다. 따뜻한 온기가 돌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확장되었다. 그녀는 알았다. 이 존재를 알고 있었다.
“너. 피 많다. 죽어. 나는. 안 돼.”
너는 죽을 것이고 자신은 도와줄 수 없다. 그녀는 아이의 뜻을 읽었다. 그녀는 눈을 질끈 한번 감고 떴다. 그 맑던 눈동자에 불티 같은 것이 탁탁 튀었다. 남아 있던 두려움의 한 자락, 공포의 파편이 활활 타올랐다. 출혈로 인해 점점 멀어지는 의식과 가빠지는 숨. 그녀는 자신의 상태와 상황을 제대로 인식했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닳아 가는 의식 속에 한마디를 겨우 내뱉었다.
“……저를 먹어도 좋아요.”
아이는 이 인간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누군가에게 허락을 맡고 먹은 적도 없었고 그 허락이 내려진 것도 처음이었다. 여자는 컥, 컥 하며 피를 토하더니 웃었다.
“대신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아이는 왜 그녀가 웃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 더 알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떠듬떠듬 그녀와 몇 마디를 더 나누었다.
마른가시나무 백작령, 비스타.
그 깊은 숲 어딘가.
금기의 계약이 이루어졌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