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142)

제39화

나흘 후.

평화로운 오후의 집무실.

“앗! 여기 드래곤 레어가 발견되었다는 문서가!”

막 점심을 먹고 노곤해지려는 시점이었다.

의자 위로 늘어지려던 행정관들이 나디아의 목소리에 용수철이라도 단 듯 퍼뜩 뛰어올랐다.

“드, 드래곤 레어요?”

“맙소사, 그게 정말입니까?”

글렌을 비롯해 집무실에 있던 이들의 얼굴이 전원 창백해진다.

영지 내에서 드래곤 레어가 발견되었다는 건 절대 희소식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드래곤이란 말은 안 통하는데 무식하게 힘만 세고, 심지어 욕심까지 많은 특급 몬스터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자연재해라는 소리다.

글렌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쩐지 모든 일이 너무 술술 풀린다 했지……. 하지만 드래곤 때문에 이 지역을 버릴 수는 없다. 어떻게든 해결을…….”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주인이 사망한 지 오래된 둥지 같다고 하네요.”

“뭐?!”

이번엔 사람들의 눈이 다른 의미로 커다래졌다.

드래곤은 욕심이 많은 몬스터다. 온갖 보석, 광물, 금화, 약초 등등…… 진귀한 것이라면 죄다 레어에 쌓아 두는 성향이 있었다.

모험가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드래곤 레이드에 나서는 것은 그때문이었다.

성공하기만 하면 말 그대로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드래곤 레어에 드래곤이 없다고?

그건 문지기 없는 보물창고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보물창고.

“주인이 없는 드래곤 레어라고? 주인이 없어?”

“네, 한참 전에 사망한 것 같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이제 그게 우리 거다?”

“당연하죠. 알테어 백작이 이 지역의 소유권을 우리에게 넘겼으니까요.”

“허…….”

기뻐서 날뛸 만한 일인데도 이상하게 현실감이 없다.

글렌이 멍하게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자꾸 좋은 일들만 생기는 거지? 이럴 리가……. 나한테 이런 행운이 생길 리가 없는데…….”

작위를 물려받은 이후, 그의 인생은 항상 고난의 연속이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두 번째 문제가 터졌고, 두 번째 문제를 해결하면 또 세 번째 문제가 터졌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일이 술술 풀리기만 한다.

흑사병의 치료제를 독점해 재정난을 해소하고, 오랜 골칫거리였던 발롱 성을 점령하고, 이제는 드래곤 없는 드래곤 레어를 발견하기까지…….

나디아가 얼떨떨한 표정의 글렌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거 전부 내 덕분이야.’

내가 직접 밥상을 차려서 떠먹여 주고 있는 덕분이란다.

그가 제발 이 사실을 깨닫고 위자료 책정 시에 고려해 주길 바랄 수밖에.

겨우 정신을 차린 글렌이 물었다.

“한데 그 문서는 어디서 발견한 건가?”

“그냥 이 책장 사이에 끼여 있던데요. 필요한 서류가 있어서 뒤적거리니까 나왔어요.”

“뭐?”

그 말인즉 떡하니 집무실 안에 있는 중요 서류를 나흘이 지난 지금에서야 발견했다는 소리였다.

그가 행정관들을 뒤돌아보며 꾸짖었다.

“왜 여태 발견하지 못한 거냐! 그것도 버젓이 성주의 집무실에 있는 서류를!”

“그, 그것이…… 저희가 정리 작업을 할 때는 정말 본 적 없는…….”

“저, 정말입니다! 지난 사흘 간 모든 서류를 검토했지만 드래곤 레어에 관한 것은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너희 눈에는 이게 보이지 않는단 말…… 응?”

글렌의 말소리가 갑자기 멎었다. 나디아에게서 건네받은 문서를 직접 두 눈에 담은 시점이었다.

“왜 그러세요?”

“…….”

한참 말없이 서류를 들여다보던 그가 마침내 고개를 들어 나디아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어떻게 읽은 거지?”

“예?”

하지만 어리둥절한 건 나디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읽긴? 그냥 읽었지. 설마 단체로 문맹인 건 아닐 텐데?

나디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건네준 문서를 다시 받아드는 순간이었다. 세상 억울한 행정관들의 목소리가 곁에서 울렸다.

“저, 저희도 후작님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저 보고서를 보긴 했지만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서……!”

“낙서인 줄 알았습니다.”

“예, 바로 그겁니다! 누군가 업무 도중에 지루해서 낙서를 하다가 실수로 책장에 넣어 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그 정도인가? 나디아가 다시 제가 쓴 글씨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왼손으로 썼기에 조금 엉망인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오른손으로 쓰면 제 필체라는 것이 금방 드러날 것 아닌가?

‘낙서라고 착각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그건 나디아 혼자만의 의견이었다.

글렌이 믿기지 않는다는 어조로 묻는다.

“정말 이 글씨를 해석할 수 있는 건가?”

“…….”

해석이라니. 독해도 아니고 해석이라니! 어두운 램프에 의존해서 열심히 서류 위조에 힘썼는데 너무하잖아!

하지만 억울한 것과는 별개로 등허리에는 식은땀이 조금씩 맺히는 중이었다.

나디아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아, 그건…… 제 아버지가 원체 악필이라서……. 어릴 때부터 아버지 필체에 적응돼서 그런 것 같아요.”

급히 짜낸 탓에 형편없는 변명이 나왔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서류를 발견한 것도 그녀고, 다들 낙서라고 생각했던 글씨를 읽어 낸 것도 그녀다. 의심이 들 법한 상황이다.

사실 원래는 나디아도 다른 행정관들이 몰래 끼워 둔 문서를 발견할 때까지 기다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록 그 누구도 날조한 서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아닌가?

이대로라면 끝까지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일 누군가 나디아가 몰래 서류를 가져다놓고 우연히 발견한 척 한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면…….

그런데 그때였다. 글렌이 진심으로 경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그대는 정말 다양한 방면으로 재주가 많군.”

“예?”

그러자 곁에 있던 파비안과 행정관들까지 합세한다.

“마님께서 윈터펠에 오신 것은 정말 크나큰 행운입니다!”

“조상님들이 가문을 비호하고 계신 게 틀림없습니다.”

이런 분이 윈터펠의 안주인이 된 건 단지 행운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반짝거리는 행정관들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나디아는 슬쩍 시선을 피해야 했다.

하지만 낯 뜨거운 상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글렌이 말을 잇는다.

“그러고 보니 윈터펠에 좋은 일만 생기기 시작한 것도 그대가 북부로 온 이후였지.”

“아, 그건…….”

“진심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이번에도 그대가 아니었다면 미처 드래곤 레어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넘어갔을 거다. 노다지광을 놓치는 꼴이나 다름없지.”

“…….”

그야 내 글씨니까 내가 읽을 수 있는 건 당연한 거죠…….

어쩐지 얼굴이 뜨거워졌지만 어찌 됐든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점만은 다행이다.

나디아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 그보다 빨리 탐사대를 보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저희가 윈터펠로 돌아가기 전에 규모를 파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아, 그렇군. 그 문서엔 정확한 위치까지 다 포함되어 있는 건가?”

“네, 여기 적혀 있네요. 제가 따로 적어 드릴게요.”

나디아가 나흘 전 어둠 속에서 위조했던 서류를 다시 옮겨 적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오른손으로.

그러고는 지도 위에 드래곤 레어의 위치를 표시했다.

“이곳, 레이나 지역의 남단에 위치한 산이에요. 꽤 깊은 계곡 속이네요.”

“철광맥이 있는 산도 아닌데 용케도 거기까지 들어가서 찾아냈군. 아직까지 보고만 올라가고 발굴이 시작되지는 않은 건가?”

“그런 모양이에요. 타이밍이 좋았어요.”

그 말에 행정관 한 명이 진심으로 안도했다는 듯이 말했다.

“발롱 성을 하루빨리 점령해서 다행입니다. 저 레어에 있는 보물이 알테어 백작의 손에 들어갔다면…… 으으, 생각만 해도 배가 아프군요!”

“이하동문일세.”

그야 실제로 백작가에서 주인 없는 드래곤 레어를 발견해 낸 것은 2년 후의 일이니까.

나디아는 내친김에 미래의 정보를 조금 더 풀기로 했다.

“본래 레어 주변에는 몬스터나 큰 맹수가 살지 않지만, 드래곤이 죽으면서 가디언 역할을 하던 몬스터가 풀려났을 가능성이 높아요. 기사들을 충분히 동행시키는 게 좋을 거예요.”

주인 없는 레어의 발견에 즐거워하며 탐사대를 보냈던 알테어 백작은 1차 탐사대 전멸이라는 쓰디쓴 결과를 얻게 된다.

산속을 배회하던 가디언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진 것이다.

하지만 가디언은 어디까지나 가디언일 뿐, 실력이 좋은 기사 몇 명을 대동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전투가 끝나서 할 일 없이 빈둥대는 놈들 천지거든. 마침 시킬 일이 생겨서 잘됐군.”

“1차 탐사대 인원은 어떻게 선발하시겠습니까?”

“일단 지원자부터 받는 게 낫지 않겠나?”

“그럼 기사들에게 지원 의사를 물어보겠습니다.”

글렌과 행정관이 1차 탐사대의 규모와 선정 방식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디아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혔다.

‘좋아. 일단 드래곤 레어를 발견하게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어.’

레이나 지역의 풍요로운 농경지를 얻긴 했지만 수확철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남아 있다.

레어에서 얻어 낸 금은보화는 수확철 이전까지 후작가의 재정을 뒷받침해 줄 것이다.

넉넉한 자금이 확보되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벌일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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