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142)

제12화

“아아, 이거? 이게 뭔지 궁금해?”

“그건 내 어머니의 유품이야. 그런 물건을 왜 네가 갖고 있지?”

“아, 그래. 몰랐는데 집사가 알려 주더라. 네 어미가 널 임신했을 때 아버지한테서 받은 선물이라며? 아들을 임신한 줄 알고 선물한 거라더라. 그런데 여자인 네가 태어났으니 선물은 다시 반납하는 게 맞지 않아?”

카레인은 그리 말하며 목걸이를 풀어냈다. 그러고는 그것을 든 손을 연못을 향해 뻗는다.

무슨 의도인지 뻔히 보이는 행동이었다.

그녀가 손에서 조금만 힘을 푼다면 목걸이는 연못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개선식에 이 목걸이를 하고 갔지.”

“…….”

“이게 갖고 싶어? 천출끼리도 혈육의 정은 있나 봐?”

나디아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카레인의 미소에 승리감이 더해졌다.

이거다. 이게 저년의 약점이구나.

“무릎 꿇고 빌어 봐. 천출 주제에 재수 없게 행동해서 죄송했습니다, 다시는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 뭐 그렇게. 내 마음에 들게 용서를 빌면 이거 너 줄게.”

“…….”

“어서. 계속 꾸물거리면 이거 연못에 던져 버릴 거야.”

나디아는 대답하는 대신 눈을 감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어머니의 유품을 인질 삼은 카레인.

죽은 어머니의 흔적을 되찾고 싶었던 그녀.

기댈 만한 상대 한 명 없는, 커다랗고 외로운 저택 안.

그래, 예전에도 일어났던 일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뜨며 물었다.

“내가 무릎 꿇고 빌면…… 정말 목걸이를 돌려줄 거야?”

“물론이지. 이깟 물건 너한테나 중요하지, 나한텐 넘쳐 나거든.”

과거에서 돌아온 나디아는 미래를 알고 있었다.

그녀가 제게 어머니의 유품을 돌려줄 리가 없다는 것을.

‘너무 어렸지. 너무 외로웠어. 어머니의 유품이라도 의지하고 싶어서 비굴하게 애원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레인은 목걸이를 망가트린다.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나 뭐라나. 하인을 시켜 망치로 목걸이를 내려치는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했다.

분노한 나디아는 무작정 이복자매에게 달려들었고, 그녀의 발악은 하인들에게 간단히 제압당했다.

심지어 그녀는 소란을 피웠다는 죄로 보름 동안 별채의 다락방에서 근신을 해야 했다.

발라지트 공작은 첫째 딸이 왜 화를 냈는지 따위의 사소한 문제에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므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나디아의 눈빛이 차게 가라앉았다.

“잘 생각해 봐. 또 이런 기회가 올 것…… 아악!”

카레인의 말을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나디아가 그녀의 발목을 걷어찼기 때문이다. 균형을 잃은 카레인의 몸이 휘청거린다.

나디아는 휘청거리는 동생을 연못 속으로 냅다 떠밀었다.

풍덩!

깊은 연못은 아니지만 파티용 드레스의 무게는 꽤나 무겁다. 물을 먹으면 두 배는 더 무거워진다.

그 탓에 카레인은 쉽게 일어서지 못하고 허우적거려야 했다.

“이, 이게 무슨짓이푸흐흡!”

“어차피 돌려주지 않을 거잖아.”

나디아는 발을 들어 허우적거리는 이복자매의 머리를 꾹 눌렀다.

겨우 일어서나 싶던 카레인이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허둥대는 얼굴이 속 시원하다고 느끼는 건, 딱히 그녀의 성격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리라.

“푸흡! 커헙!”

“어렸을 때는 굉장히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었어. 너는 왜 날 싫어하는 걸까?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굴면 네가 나를 가족이라고 인정해 줄까? 가족의 일원으로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나디아는 여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구두는 착실하게 이복자매의 머리를 꾹꾹 밟고 있었다.

정말로 죽으면 곤란해지니까 조금씩 숨을 쉴 수 있게 해 줬다.

“아니겠지. 어차피 너, 뭘 해도 나 싫어할 거잖아.”

과거의 경험으로 얻은 교훈이었다.

반쪽짜리인 서녀는 절대 공작가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것.

무슨 짓을 해도 진실한 애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

그때 사람들이 다가오는 듯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기에, 나디아는 카레인을 꾹꾹 밟고 있던 행위를 멈췄다.

카레인의 고함 소리를 듣고 모여든 모양이다.

그녀가 발을 떼자 카레인의 머리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금방이라도 죽여 버리겠다는 듯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콧물과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이라 그리 무섭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나디아는 곧장 허리를 숙여 그녀의 팔을 잡아끌며 구조해 주는 척을 했다.

그러면서 자매의 귀에 대곤 조용히 속삭였다.

“너는 예전부터 나를 이유 없이 싫어했으니까.”

“이, 미, 미친년……!”

“괜찮아, 카레인. 내가 지금부터 만들어 줄게. 네가 날 싫어할 만한 이유를 말이야.”

나디아가 신문지처럼 구겨진 얼굴을 향해 환히 웃어 보였다. 아주 환하게.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이가 있거든, 반드시 그 이유를 만들어 주리라.

그녀가 과거로 돌아온 이후 세운 두 번째 원칙이었다.

곧이어 사람들이 연못가 주변으로 들이닥쳤다.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

“덮을 것을 가져와! 얼른!”

물에 빠진 생쥐 꼴인 카레인을 발견한 귀족들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어느 가문의 영식은 제 겉옷을 벗어 그녀의 어깨 위에 둘러 주기도 했다.

나디아는 다른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는 동안 풀밭 위에 떨어져 있는 목걸이를 주워들었다.

파티의 호스트인 발라지트 공작이 등장한 건 바로 그때였다.

“나디아! 카레인! 이게 무슨 일이냐!”

“으허어어엉! 아, 아버지!”

카레인이 발라지트 공작의 품 안에 안겨들며 서러운 듯 펑펑 눈물을 터트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쫄딱 젖은 모습이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공작은 그런 친딸의 모습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지, 짜증 섞인 어조로 대답을 재촉할 뿐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 않느냐!”

“으흑, 흑, 그게, 나디아 언니가…….”

“울지 말고 말을 해!”

“저, 저를 연못에 떠밀었어요! 그걸로도 모자라서 제가 못 올라오게 발로 밟기까지…… 흐어어어엉!”

사람들의 시선이 나디아에게로 향했다. 동생을 연못에 떠민 사람으로 지목되었는데도 그녀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발라지트 공작이 미심쩍다는 듯 물었다.

“이 말이 사실이냐, 나디아?”

“거짓말이에요.”

“뭐?!”

울먹이던 카레인의 목소리가 앙칼지게 변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네가 날 떠밀었잖아!”

“아무리 실수로 혼자서 미끄러진 게 부끄러워도 그렇지, 그런 거짓말을 하면 안 돼. 내가 이 좋은 날에 왜 너를 물에 빠트린단 말이니?”

“이…… 이 뻔뻔한 게……! 내 목걸이가 탐나서 그랬잖아!”

카레인은 다시 아버지에게 매달리며 울먹였다.

“언니가, 흐윽, 제 목걸이를 뺏으려고 했어요! 저거 봐요! 제 목걸이를 들고 있잖아요! 억지로 뺏으려고 마구 잡아당기면서…… 흑, 저는 그저 안 뺏기려고 저항했을 뿐인데, 몸싸움을 하다가 연못에 빠지고 말았어요.”

“저것도 거짓말이에요.”

나디아가 차분하게 덧붙였다.

“제가 억지로 목걸이를 뺏으려고 했다면 카레인의 목에 체인이 쓸린 자국이 남아 있었겠죠. 제게 자랑하기 위해서 자기 손으로 목걸이를 풀었는걸요. 연못에 미끄러지면서 목걸이를 놓쳤고, 저는 그걸 주워 들었을 뿐이에요.”

“……!”

사람들의 시선이 카레인의 목덜미로 향했다.

잘 관리 받은 귀족 영애의 목은 잡티 하나 없이 말끔하기만 했다.

카레인이 제 손으로 목걸이를 풀었다는 증거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의심쩍다는 듯 변하자, 카레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역으로 누명을 쓰게 될 줄은 몰랐던지라 당혹스러움에 사고가 마비된다. 그녀는 뭐라 반박하지도 못하고 입만 벙긋거려야 했다.

나디아가 안타깝다는 듯 눈썹을 늘어트리며 말을 이었다.

“카레인, 네가 나한테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내가 시집가는 게 서운해서 이러는 거니?”

그러고는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무릎을 살짝 굽히며 사과했다.

“제 약혼을 축하해 주러 오신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릴게요. 유일한 자매인 제가 멀리 떠난다고 하니 심술이 났나 봐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뭐…… 뭐……!”

카레인이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그보다 발라지트 공작이 나서는 게 좀 더 빨랐다.

“카레인, 조용히 하거라!”

공작이 생각하기에도 조용하고 욕심이 없는 나디아가 목걸이를 탐내 몸싸움을 벌였을 가능성은 지극히 적었다.

게다가 카레인의 목에는 체인이 쓸린 자국도 없으니 나디아의 말에 더 믿음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가 이복언니인 나디아를 싫어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 앞에서까지 소란을 벌이다니!

체면을 중요하게 여기는 공작이 분노하는 건 당연했다.

“몸이 차구나. 감기에 걸리기 전에 방에 들어가서 쉬는 게 좋겠다.”

“아, 아버지!”

축객령이나 다름없는 말에 카레인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다.

“저, 전 억울해요! 정말 억울하다고요!”

“뭣들 하느냐! 얼른 카레인을 침실에 데려가라.”

공작의 명령을 받은 하인들이 발버둥 치는 카레인을 양옆에서 부축했다.

부드러운 몸짓이었으나 여자인 그녀가 당해낼 수는 없는 힘이었다.

결국 그녀는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로 퇴장해야 했다.

카레인이 반강제로 끌려 나가자, 싸늘한 침묵이 빈자리를 대신했다.

서로 눈치만 보는 어색한 분위기. 공작이 큼큼 헛기침을 하며 상황을 수습하려 애썼다.

“자매끼리 작은 다툼이 있었던 모양이오. 좋은 날에 이런 소란을 일으켜서 미안하군. 다들 파티장으로 되돌아가서 이 자리를 즐겨 주길 바라오.”

그러고는 민망하다는 듯 서둘러 자리를 떴다.

공작이 파티장으로 되돌아가자, 모여 있던 사람들 역시 하나둘씩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모여 파티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주된 대화 주제는 단연코 카레인이었다.

평소 카레인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었던 여인들이 조소를 날리며 수군거렸다.

“세상에나, 이게 웬일이래? 그 귀하신 발라지트 공작가의 적녀께서 망신을 당하다니!”

“보통 성격이 아니니까요. 언젠가 한 번쯤 일을 저지를 줄 알았어요.”

“단단히 망신당했으니 한동안은 조용하겠군요.”

아무래도 평소 카레인에게 이를 갈았던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어머니의 유품을 챙겨 돌아가는 나디아의 입가에 잠시 미소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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