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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주인이 필요하다-131화 (131/132)

131.

데제는 축 늘어진 에라블을 끌어안고 쪽쪽 대며 코를 비비다가, 더 꼭 끌어안았다. 지친 에라블은 아예 축 늘어졌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얼굴을 밝히더니….”

그는 전혀 모르겠지만, 버밀리언들도 그렇고 개들도 그렇고 에라블과 똑같이 닮았다는 중년 여자는 아내를 보자마자 울어댔다.

에라블은 그렇게 많이 울진 않았다.

눈물을 찔끔하긴 했지만, 우는 제 부모를 안아주며 덤덤하게 버텼다. 그리곤 방에 돌아와 그를 끌어안고 펑펑 울어댔다.

“흐으윽….”

부모 앞에서 울기엔 이쪽 세계에서 무국적자로 강하게 성장한 에라블은 생각이 너무 많았다.

그 앞에선 괜찮은 듯했다.

사실 별별 꼴을 다 보였기 때문에 눈물 좀 흘리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뭐, 어쨌든 아내가 우는 건 싫지만 이렇게 제 품에서만 운다는 사실은 그를 아주 만족스럽게 했다.

“괜찮아, 괜찮아요.”

데제는 품에 안은 채 끝도 없이 토닥여주었다. 에라블은 제풀에 질려 눈물을 그쳤다.

“애, 애들은….”

그들은 아이 둘을 보았다.

에라블이 직접 낳은 건 아니었다. 그녀의 몸은 온전한 생식 활동은 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문득 떠오른 그 생각에 메슥대는 제 속을 데제는 따끈한 에라블의 등허리를 쓸며 달랬다.

어떻게 보면 다행이긴 했다. 에라블 뱃속에 제가 아닌 것이 들어있었다면 자신은 분명히 긁어내려고 들었을 테니까.

“백작가에서 챙기고 있으니까 안심하고 잠이나 자요.”

아이는 그녀의 입대 시기 채취해놓은 표본으로 인큐베이터에서 배양했다. 그의 표본은 후작가에 남아있던 것을 사용했다. 그가 온전한 인간이었을 적의 표본이었다.

후작 부처가 희망을 버리지도 못하게 만드는 데에만 쓰이던 그 표본을 데제는 제 손으로 꺼내 배양기에 넣었다.

“…데제….”

안 그럴 수가 없었다.

“몸은….”

“내 몸?”

“균열을 또 열었으면….”

에라블은 눈치가 빠르기 때문이다.

“그날, 날씨가 안 좋았던 게 역시 이것 때문….”

“아, 그날.”

그가 눈을 흘기며 코웃음을 쳤다.

“자기가 백작가에서 또 덕질하다 걸린 그 날?”

“…….”

“왜, 걱정돼요?”

에라블이 정말 그렇다는 듯 조심스럽게 올려다보았다. 맑은 밤 갈색 눈이 순하게 그를 향해 있었다.

“확인해 볼래요?”

하지만 묻자마자 질끈 눈 감고 자는 척을 한다.

“그래요, 확인도 안 해줄 거면 잠이나 자.”

그는 투덜대며 말랑한 살을 잘근잘근 씹어 놓았다. 그래, 너무 눈치가 빨라서 아이들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 * *

2년 전, 연구소 제한 구역.

“건강해야 해.”

데제는 세포 배양 중인 인큐베이터를 보며 다정한 말을 줄줄 해대고 있었다.

배양 책임을 떠맡게 된 케이는 죽상을 했다.

“그, 왜 내가….”

“내가 할 순 없잖아? 오염되면 어떡해.”

케이는 일단 수긍을 하긴 했다.

그야 그렇긴 한데…, 하지만 그렇다고 어째서 내가 해야 하는 건진 모르겠다.

“아픈 곳 없이, 아주 평범해야 하고. 보통 인간들처럼. 혹시 이질감을 느낄지 모르니까. 아무래도 자연 임신이 아니잖아.”

“그런 거면 그냥 주술 체계 조정해서 배 속에서 자라는 게- 악! 새것이라고!”

치지직, 놈이 물고 있던 담배를 새 기계에 비벼 껐다.

“잘 키워 줘. 우리 아이.”

“저, 그러니까 어째서 내가….”

“잘 키워주면 빚은 내가 대신 변제 해드리지.”

“열심히 키울게.”

케이는 큰 열의를 느꼈다.

물론 느끼지 않았더라도 결국 했겠지만. 놈이 시키는 데 버틸 의지 따윈 이미 오래전에 사그라졌다.

“근데 축복은 왜 안 내려 주는데?”

“어린 생명에 우리가 관여할 수는 없잖아. 오염되면 어떡해.”

놈은 어깨를 까닥거리며 좀 전과 똑같은 말로 변명을 했다.

얼버무린 것밖에 되지 않는다. 놈은 판테온 신들의 축복까지 모두 거절했기 때문이다.

‘…설마 이 새끼.’

확신에 가까운 의심이 피어올랐다.

“말했다시피 아주 평범한 인간에 가까운 아이면 딱 좋겠어, 아주 노멀한.”

놈은 성자 같은 얼굴로 잘도 지껄여댔다.

“등급은 약간 떨어지고?”

“그럼 더 좋고.”

역시 이 새끼…, 아이를 인질로 삼으려는 것이다.

“버밀리언들로는 부족해서?”

에라블의 가족이 될 평범한 인간 아이, 그러니까 마치 버밀리언들처럼.

“그걸 굳이 묻네.”

케이는 놈의 눈깔을 타고 도는 것을 보며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왜, 내 고해 성사라도 듣고 싶어?”

“…혹시 나 오늘 죽나?”

“아니. 우리 아이 키워줘야지.”

놈이 곱게 눈을 흐리며 웃었다.

“나는 이 아이를 아주 예뻐할 거야. 이런 실수도 한번은 넘어가 줄 정도로.”

“…….”

“왜냐하면, 에라블이 아이를 예뻐할 테니까.”

그러니까 무사히 길러내란 협박이다. 에라블 버밀리언이 예뻐할 평범한 인간 아이로.

“…좋은 부모가 되긴 틀렸군.”

놈은 어깨를 까딱거렸다.

“그럴 리가. 나 요새 공부한다고 육아 프로그램까지 돌린다니까?”

미친놈….

놈은 그 미친 소릴 끝으로 가볍게 배양실에서 나가버렸다. 저 끔찍하게 아름다운 우주적 재앙이 완전히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케이는 식은땀으로 축축한 목덜미를 닦아냈다.

“…….”

그의 시선이 담뱃불에 지져진 기계와 안쪽에 든 배양 수조를 차례로 바라본다.

수조에 든 작은 생명은 어쨌든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진짜, 버밀리언 둘로는 부족하다 이거지?

케이는 코웃음을 쳤다.

어처구니가 없다. 그는 공기 정화 시스템을 돌리며 인상을 구겼다.

“미친, 애 있는데 담배는 왜 물고 지랄이야….”

괜히 수선을 피우다가 의자에 기대앉으며 축 처졌다.

사실은 아직도 별로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 모든 게 다 멈췄다는 사실이.

눈만 감아도 아직 생생했다.

그 모든 것들이-….

저 괴물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죽였다.

한 번, 두 번, 셀 수도 없이 계속 되풀이해서….

“…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케이는 제멋대로 떠오르는 것들을 보다가 슬그머니 감았던 눈을 뜨며, 제 앞에 선 판테온의 어린 신에게 시선을 돌렸다.

“생츄어리가 저들의 발아래 짓밟혔습니다. 어째서 그들을 돕지 않으시는 겁니까.”

갓 태어난 어린 신이었다.

“진정 두려워 그러십니까?”

분기점이 지나고 태어난 어린 신.

“…두렵지.”

“이카식 레코드가 있지 않습니까.”

“아, 그거.”

그 개 같은 거.

케이는 사납게 얼굴을 구겼다.

차라리 그게 없었으면…, 물론 이카식 레코드는 오래전 망가지긴 했지만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데제브낙 니힐 아브가니스.

그 괴물은 항상 종말의 끝에서 그 개 같은 법칙을 고쳐냈다. 산 것들로 제단을 쌓아 그것들이 죽을 때까지 빌게 했다.

삶을….

그리하여 삶은 또다시 시작되고, 또다시 시작되었다.

끝도 없이.

정말 끝도 없이….

칼리투스는 몹시 지쳐있었다.

“너와 같은 생각을 하는 자가 또 있니.”

그러니 간신히 얻어낸 이 끝을, 진짜 마지막일지 모르는 이 기회를 어린아이들 몇몇 때문에 놓칠 순 없었다. 안타깝지만 절대 그럴 순 없었다.

“물론입니다. 그들을 규합하면 분명 길이 있을 겁니다.”

“그래.”

케이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만나보자꾸나.”

* * *

“엄마-!”

에라블은 낡은 캠핑카 문을 벌컥 열어젖히는 큰아이를 보며 움찔했다.

“또 여기!”

“하하….”

아이는 이 좁고 낡은 캠핑카를 아주 질색했다.

엄마는 가끔 동굴이 필요하다고 설명해봤지만, 아이는 ‘엄마가 곰이야?’ 하며 사람을 야생동물 취급했다. 한민족의 시조에 대해 알려줄 때가 된 모양이었다.

문제는 캠핑카만은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벽면에 TV를 설치해 두고 데제와 좁은 캠핑카 침대 위에 붙어서 게임을 하던 중이었단 사실이었다.

동굴은 그렇지만 게임은 정말 할 말이 없었다. 극혐하는 아이의 눈을 피해 그녀는 슬그머니 게임 패드를 감췄다.

그래 봐야 어린 나이에 이미 신체 레벨 9를 돌파한 큰아이의 감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 와중에 옆에 늘어져 누워있는 데제도 문제였다.

“자기야, 이러다 나 죽겠어.”

그가 약한 척을 하며 아주 우는소리를 해댔다. 빤스만 입혀놓은 캐릭터로도 최종 보스까지 혼자 잡는 남자가 진짜…, 어쩔 수 없이 그녀는 화면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아, 엄마!”

“딱 5분만!”

데제가 몬스터는 안 잡고 웃으며 자꾸 장난을 치는 탓에 5분 뒤에 그대로 게임 오버 되고 말았다.

뭐…, 약속대로 딱 5분 만에 게임이 끝나긴 했다.

어이가 없어 바라보니 그가 아주 연약한 표정으로 허벅지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더 보다간 홀려 넘어갈 것 같아 냉큼 다시 아이에게로 주의를 돌렸다.

“할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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