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물론 대답해주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제 주인에 대해 입을 열거라고 기대도 안 한 케이는 개들을 보며 우거지상을 썼다.
“너넨 또 씨X, 왜 죽상인데?”
이를 갈면서도 케이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개들 표정이 아주 가관이었기 때문이었다.
“…보호 단계를 올리라고 하셨잖아요.”
“올리면 되잖아.”
“진짜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제 우연히라도 무슨 일 생기면 우린 진짜 다 죽을 거예요! 다 죽을 거라고요!”
케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네 탈락도 선착순이라며 제비뽑기하고 그러지 않았냐? 이 기회에 탈출해.”
“탈출하면 다른 개들이 가만있을 것 같으세요?”
분명 조각조각 이어 붙여 갖고 제일 밑바닥으로 강등시켜 버릴 거라며, 개들은 서로를 불신했다.
안 그래도 더러운 조직 생활 계급까지 떨어지면 그게 무슨 지옥이냐고 서로 욕하는 꼴이 웃기지도 않았다.
“미친 것들.”
하여간 우주에서 제일 이상한 생물이었다, 저것들은.
동족 포식을 하는 주제에 동족 의식이 강하고 서로 불신하는 주제에 저들 외에 모든 것에 배타적으로 군다.
13황자와 생츄어리가 만들어낸 괴수는 실로 끔찍한 것이었다.
“…씨X, 왜 또 연구소야.”
케이는 또 우거지상을 쓰며 그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봤다. 그는 연구소로 가고 있었다. 에라블 버밀리언이 연구소 있기 때문이다.
걘 왜 또 하필 연구소로 도망친 걸까….
“이젠 나도 모르겠다, 씨X.”
* * *
“어우….”
어지럽다. 에라블은 비틀대다가 우웨엑-, 기대 구역질을 했다. 재수가 없어도 진짜… 하필 딱 거기가 찢길 게 뭐야.
셔틀에서 떨어지던 상황을 떠올리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
멀미 때문에 어지러운 것 빼면 역시 상처는 없었다.
사실 공격 받았다기보단 떠밀린 것에 더 가깝긴 했지만, 그래도 뛰고 넘어지느라 분명히 상처가 났는데 없다.
그녀는 일단 머릿속에 복잡하게 드는 생각을 치우고 주변을 살폈다.
34-4포인트.
이 인근이라 다행이었다. 괴수들은 확실히 이 안쪽으로 오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왠지 가만히 있어도 공격당할 것 같진 않았지만, 그걸 몸으로 실험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거의 2년 만에 다시 본 연구소는 달라진 게 없었다.
뼈대만 남아있는 건물, 틀어져 있는 지축…, 묘하게 공기의 흐름마저 멈춰 있는 것 같다.
심지어 비르고 하그와 마주 앉아 피웠던 모닥불 자국까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것을 보니 못 받은 1만 cp가 떠올랐다.
“어….”
그러다 에라블은 순식간에 어둑해지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화 많이 나셨을까.’
거체에 기대 그녀는 가늘게 몸을 떨었다.
기대있는 등 뒤가 섬뜩했다.
거대한 괴수의 허물은 이 주변 사방을 움켜쥐고 있었다. 에라블은 허물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곧 구하러 올 테지만, 그전까지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멀쩡하게 있어 보기로 했다.
일단 춥기도 하고, 배도 고프고. 이렇게 오도카니 앉아있는 것보단 뭐라도 하고 있는 게 낫겠지.
비록 시그눔 교란으로 미로를 열진 못하지만.
한 번 낙오된 전적이 있는 에라블은 분쟁 지역 외부를 돌 때 꽤 많은 것들을 휴대하고 다니고 있었다.
* * *
“…뭐합니까?”
데제가 연구소로 찾아온 것은 에라블이 낙오되고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에라블은 그의 허물 속에서 아주 캠프를 차려 놓고 있었다.
빈 촉수 내부에 2인용 텐트를 치고, 텐트에 휴대용 램프를 걸고, 심지어 화로를 꺼내 불까지 피워놓고 있었다.
아주 살림을 차린 수준이다.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았다. 시그눔도 안 열릴 텐데 이걸 다 싸 짊어 지고 다녔단 사실도 황당했다.
그는 갈라진 허물 틈에 팔을 괴고 기대서서 삐딱하게 헛웃음을 흘렸다.
“자기, 출근을 아주 이상한 데로 하네요?”
“제가 절대 이러고 싶어서 이런 게 아니었습니다.”
“그럼 지금 이 상황은? 이것도 자의가 아니야?”
“이건 자의가 맞습니다….”
“왜, 아주 여기서 살게?”
에라블은 주섬주섬 변명했다.
“그게 춥고, 배도 고프고….”
그의 등 뒤로 콰르릉, 어둑한 하늘이 울었다. 에라블은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괴수 껍데기 속에서 이러고 있었어요? 이것보단 그래도 밖에 있는 애들이 귀여울 텐데?”
그가 벽 같은 허물을 퉁, 치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안 징그러워요?”
“솔직히….”
“징그럽죠?”
“예, 조금 그렇습니다.”
징그럽다던 에라블은 조금 옆쪽 허물로 비켜 앉으며 불가 앞자리를 내주었다.
“비 많이 맞으셨습니까?”
그리곤 허물에 기대놓은 압축팩을 뒤져 주전자와 인스턴트 커피를 꺼냈다.
“얼른 커피라도 한 잔 끓여 드리겠습니다.”
데제는 작게 눈을 굴렸다. 그녀가 꺼낸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도시락까지 꺼내고 있었다.
“전투 식량은 B형이 더 맛있습니다.”
“지금 괴수 껍데기 속에서 식욕이 땡겨?”
“식사 시간이 지나서….”
어이가 없어 빤히 쳐다보니 변명이랍시고 그런 말이나 하고 있다.
한 시간이 아니라 열흘은 내버려 둬도 여기서 잘만 지낼 것 같았다.
기어이 커피에 저녁까지 데우던 에라블은 또 갑자기 멈칫거렸다. 왜 그러나 쳐다보니 이번엔 눈치를 본다.
“저, 데제. 불편하시면 밖에서 드시겠습니까?”
“…왜요.”
“그게…, 제가 생각이 좀 짧았습니다. 바로 준비해서….”
“왜, 이게 내가 벗어놓은 허물이라서?”
그가 히죽 웃었다.
“역시 알고 있었네.”
웃으며 그가 팔을 잡아당겼다.
“아….”
에라블은 질끈 눈을 감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입술이 깨물리며 깊숙이 닿아왔다.
“흣….”
그가 단단한 두 팔로 넘어가는 몸을 안았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어지러운 머리가 뒤로 당겨지며 목이 열렸다.
에라블은 저도 모르게 손발을 버둥거렸다.
버둥대는 손도 이내 단단하게 얽어 쥐어졌다. 동시에 몸이 눌리며 옷이 뜯겨 나갔다. 와지끈,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도 들렸다.
“흣-…!”
반사적으로 확인하고 싶어져 몸을 뒤틀었지만, 그의 단단한 몸에 눌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흡, 흐읍-”
몸이 질척했다. 꿈틀거리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촉수 더미 위로 뜨끈하게 흐르는 끈적한 검은 타르 때문이었다.
“아흑-…!”
몸은 그래도 좋다고 저릿저릿 열리고 있었다.
다리 사이로 그의 무릎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두 손으론 그녀의 작은 머리를 쥔 채 귀를 온통 다 후비벼 빨고 있었다.
“데, 제….”
이름을 중얼거리니 그가 입술을 겹쳐왔다. 듣기 싫다는 것처럼. 에라블은 두 팔을 뻗어 그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괜찮다고 달래듯 그를 꼭 끌어안았다.
잠깐 멈칫하던 그가 낮게 신음을 뱉어냈다. 여러 번 다시 입을 맞추며 신음하던 그가 허리를 꿈틀거렸다.
“흐….”
에라블은 그의 입술에 대고 신음했다. 그가 그 입술에 다시 여러 번 입을 맞췄다. 에라블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그를 따라붙었다. 그가 한 것처럼 입맞춤을 되돌려주려 애썼다.
“흣-….”
에라블은 애썼다. 하지만 애쓰며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아흐으윽-”
더는…, 몸을 뒤틀며 뭐라도 잡으려고 애썼다. 붙들고 있던 촉수가 손에서 주르륵 미끄러졌다.
하지만 구명줄이라도 되는 양 에라블은 다시 그걸 붙들고 올라가려고 했다. 계속 당겨지면서도 계속, 계속….
“…….”
그는 잠시 도망가는 에라블을 빤히 쳐다보다가, 잠깐 놔줬다. 에라블은 자꾸 어디론가 기어갔다.
그러니까 그녀는 촉수 더미가 제일 많은 곳을 향해 바둥대며 기어가고 있었다. 그리곤 아예 그 속으로 파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는 또 앓듯이 신음했다.
“왜, 그 속에 숨으려고?”
그게 너무 예쁘고 귀엽고 안쓰러워서, 그는 다리를 잡아채 끌어당겼다.
“아, 아흐윽-!!”
주르륵…, 끌어당겨지며 에라블이 몸부림쳤다.
초점이 풀린 그녀가 그의 손을 마구 붙잡았다.
데제는 그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들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차가운 물방울에 그를 붙들고만 있던 에라블이 정신을 차렸는지, 간신히 눈동자를 돌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틀어 입술을 맞췄다. 에라블의 뺨 위로 또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에라블이 눈을 크게 홉떴다.
그게 마치 괴수의 해처리처럼 사방의 시야를 어둑하게 가리며 에워싸는 촉수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눈가에 고였다가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 * *
엉망진창이었다. 넘친 촉수 때문에 허물은 물론이고 에라블이 공들여 쳐놓은 텐트도 다 박살이 났다.
그는 대신 뜨겁게 체온을 올린 촉수로 동굴을 만들어 놓았다.
그 속에서 에라블은 잠깐 잠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