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는 주인이 필요하다-103화 (103/132)

103.

“그, 그건….”

에라블은 이내 눈을 홉뜨며 바들바들 떨었다.

“하-.”

그가 그 모습을 보며 느리게 숨을 뱉었다.

“-…!!”

그녀는 곧 숨도 쉬지 못하고 벌벌 떨어댔다.

“왜 울어요?”

그가 몸을 지그시 놀리며 물었다.

“기억 다 잃은 약혼자 두고 잘 놀다 와서, 응? 왜 울어.”

에라블은 반쯤 초점을 잃는 눈으로도 서럽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그가 혀로 핥아냈다. 눈알까지 닿는 감각에 에라블은 질끈 눈을 감았다.

“걔가 마음에 들어요?”

“누, 누구….”

“아니면 다른 새끼야? 응?”

그렇게 물으면서 그는 에라블의 손을 꽉 그러쥔 채 이죽거렸다.

“나는 다른 사람 상대로 되지도 않는 몸을 만들어 놓고.”

“흐….”

에라블은 고개를 틀며 흐느껴 울었다.

“왜, 싫어도 상대 좀 해줘요.”

시선을 맞추지 않는 그녀의 입술에 그가 쫓아 고개를 틀어 따라붙으며 입술을 맞췄다.

“당신 때문에 노이즈가 얼마나 쌓였는 줄 알아? 응?”

“…예?”

그제야 에라블이 그를 바라보았다.

“주당 90시간씩 일하는 게 진짜 괜찮은 거라고 생각해?”

“무, 무슨 말씀…, 잘-….”

데제는 그 눈을 보며 허리를 지그시 굴렸다.

“…….”

그러다 팔꿈치로 약간의 체중을 덜며 잠시간 또 빤히 내려다보았다.

작은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넘친 눈물은 연신 흘러내리고 있었고, 눈동자는 초점이 풀리다 못해 약간 뒤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고장 난 것처럼 자꾸 무슨 말이냐고 묻는 입술에 그는 또 가만히 입술을 눌렀다.

그러다 몸을 일으켜 무릎으로 체중을 지탱해 앉으며 가는 허리를 움켜쥐고 제 쪽으로 꽉 잡아당겨 눌렀다.

에라블이 울며 뭐라고 또 소리를 질렀지만, 소리가 멀다.

그는 저를 받아내고 있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만 빤히 내려다보았다.

‘…정신 나가게 예쁘네.’

한참 그러다가 다시 상체를 숙여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에라블의 입술에 가만히 입을 맞췄다.

너무 예뻐서 제 머리 위에 올려놓는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단 생각을 하면서도, 기분이 아주 녹을 듯 달았다.

그는 제 품에 잡힌 온기에 옅게 웃으며 계속, 계속 입을 맞췄다.

* * *

“당신 때문에 쌓인 노이즈야. 당신이 책임져 줘야지.”

에라블은 변명 같은 그 말 뒤로도 한참을 더 그를 받아내다가 툭, 의식이 끊기듯 잠들어 버렸다.

“…….”

그는 감긴 눈가에 고여있는 눈물을 손끝으로 쓸었다.

“…데제.”

내내 자신을 불러대던 눈이 감겨있었다.

“데제…, 저 집에.”

마치 그렇게 잠들 듯 감겨선…, 두 번 다신….

“집에 좀….”

“…집, 집에, 가고 싶어. 우리 집….”

다물린 입가, 쉬지 않는 숨, 핏물에 잠겨 감겨있는 그 두 눈이…. 그는 다급히 여자의 숨을 확인하고, 손바닥을 코끝에 댄 채 얼어 있었다.

옅은 호흡이 손바닥을 간질이자, 그는 그제야 허리를 비틀어 침대 밖에 속을 게워냈다.

“이건 또 무슨.”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데제는 고개를 치켜들어 치쳐 잠든 여자를 노려보았다.

노려보는 두 눈에서 눈물방울이 툭툭 떨어져 내렸다. 눈을 굴려 제 턱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쳐다보았다.

“…이만 이쪽으로 돌아와요.”

그는 황급히 여자의 몸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따끈한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가냘프게 뛰고 있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그저 살아있는 흉내만 내게 만든 것, 집착에 실소하게 만들었던 것에 절박하게 얼굴을 묻었다.

“영애.”

기절하듯 잠든 여자는 깨지 않았다.

“에라블, 영애.”

“…흐.”

그래도 여러 번 시도하니 작게 소리를 낸다. 그것도 잠시뿐, 다시 잠들고 말았지만.

데제는 그제야 몸에서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미치겠네.”

그는 여자의 품에서 눈을 감고 축 늘어졌다. 무게에 끙끙대던 여자는 그래도 도무지 깨지 못 하겠는 듯 눈을 뜨지 않았다.

그녀가 눈을 뜬 건 7:10, 작은 시계가 아주 시끄러운 소리를 냈을 때였다.

* * *

“으….”

에라블은 허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며 손을 더듬었다.

7:10.

어김없이 울리는 알람을 간신히 끄고 비틀비틀 침대를 빠져나가려는데, 남자의 팔이 느슨하게 허리를 휘감아 왔다.

“…어디 가요.”

정말 그가 기억이 없긴 없구나 싶어졌다.

“출근합니다….”

“출근? 아.”

그가 헛웃음을 흘렸다.

“여기 당신 직장이었지.”

“사단장님 직장도 여기십니다.”

“내가 인간으로 보여요?”

어, 이거 공포 영화에서 되게 자주 나오던 대사다. 어쨌든 난 가야 하는데….

“…저, 출근.”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허리를 감싸 안은 채 에라블의 허벅지에 머리를 괬다. 먹빛 머리칼이 허벅지 위로 부드럽게 흩어졌다.

눈앞이 조금 흐릿해져서, 에라블은 꾹 입술을 깨물었다.

“나 이렇게 혼자 두고?”

“사단장님께서도 출근하셔야….”

“다녀와요.”

에라블은 조금 눈을 껌벅거렸다. 어쩐지 말이 조금 이상하신데.

“…예?”

“다녀오라고.”

“저, 그럼 사, 사단장님께선….”

“기다릴게요.”

기다린, 여기서?

그가 고개만 틀어 옅게 웃었다. 꼬리가 붉은 눈가가 흐려지며 사람을 꼬이듯 바라보았다.

“왜, 싫어요? 먹었으니 이제 버리겠단 거야?”

“일찍 돌아오겠습니다.”

“그래요.”

그가 다시 흘리듯 웃었다.

그제야 팔도 풀어주었다. 에라블은 서둘러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다 침대 밑에 누군가 토해놓은 토사물에 화들짝 놀랐다.

‘…설마 내가 어제 술을 마시고.’

그럴 수도 있지. 술 마신 사람을 흔들면 그런 꼴을 보게 되는 것이다.

침대에 토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눈치를 보며 얼른 치우고 출근 준비를 했다.

그는 담배를 꺼내 무는 것 외엔 내내 엎드려선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저, 그럼.”

“응, 다녀와요.”

준비를 마친 에라블은 문 앞에서 어색하게 그에게 인사를 했다.

뒤에 남은 그는 여전히 그녀의 좁은 보급형 침대에 누워 살랑살랑 손을 흔들어댔다.

* * *

“…….”

에라블이 출근을 하고 숙소에 혼자 남은 데제는 한참 더 담배를 문채 눅눅하게 젖은 침대에 엎어져 있다가, 또 미식거리며 올라오는 쓴물을 뱉어냈다.

“…하.”

담배를 끼운 손으로 뒷목을 감싸고 뱉어내다가, 쓴물이 감도는 입에 다시 담배를 물었다.

“대체.”

뭐야.

감겨있던 눈, 쉬지 않는 숨, 파리하게 식어가던 몸, 축 늘어진 그 몸… 그는 다시 구역질을 해댔다.

“웨엑-.”

급히 심장 소리에 집중했다. 건강하게 뛰고 있는 심장 소리에….

그러면서 동시에 살아 흉내만 내게 만든 게 본인을 위한 것이기도 했단 사실을 자각했다.

다시 끌고 와 제 품에 넣고 있고 싶었다.

“…너무 그러면 안돼지.”

의처증 같잖아? 평범하게 굴어야지, 평범하게.

느리게 숨을 뱉어내며 그는 고개를 틀어 방 한 칸짜리 숙소를 돌아보았다.

디핏의 수용소가 이보단 나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뭐, 좁으면 좁은 대로 좋은 점도 있지. 히죽거리며 그는 몸을 일으켰다.

눈치를 보던 여자처럼 구토한 흔적을 치우고 그 김에 청소도 같이 좀 하면서, 그는 이 집에 뭐가 많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단 담배를 물고 없으면 없는 대로 대충 수건 몇 장을 써서 방을 치우던 중 개들의 연락을 받았다.

“뭐, 후작이?”

개들은 지금 행성 외부에서 대기 중이었다.

[예, 후작부인의 시그눔을 닫은 문제로 항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게 왜, 행성신은 살려뒀잖아.”

그러자 행성신 쪽에서 재허가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란 보고가 이어졌다.

[소위님께 직접 접촉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데제는 허리를 피고 헛웃음을 흘리며 물고 있던 필터를 짓씹었다. 그리곤 몸을 돌려 후작을 표적으로 공간을 잡아당겼다.

희게 질린 후작이 서 있는 집무실과 그가 있는 작은 숙소의 공간이 서로 맞붙는다.

마치 딱 절반씩 그려놓은 그림처럼.

“너, 너…!”

당황한 후작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그의 눈알을 타고 검은 뱀이 느릿느릿 돌아갔다.

마주 보던 후작의 눈과 코와 귓구멍에서 핏물이 줄줄 새기 시작했다.

“후작님.”

그는 후작이 보고 있던 서류에 담배를 비벼 껐다. 종이 타는 냄새가 조금 피어올랐다.

“똑똑하신 분이 왜 자꾸 실수를 하실까.”

바닥에 주저앉은 후작에게서 눈을 떼고 서류를 들여다봤다. 서류에 에라블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 그걸 전하려고….”

변명해보려던 후작의 입이 다물렸다. 그가 보여주는 환상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늙어가는 것처럼 후작의 외형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나, 난… 우린….”

네 부모야.

“그건 서로 의미 없다고 합의 본 것 같은데.”

데제는 자신에 대한 기록을 모조리 다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갖지 못한 기록은 단 하나뿐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