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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주인이 필요하다-102화 (102/132)

102.

웃으며 같이 퍼마시는 것관 별개로 개들은 마지아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에라블이 먼저 손 털고 일어섰다.

된통 취하고 싶었는데.

“저 갑니다.”

“어?”

홀린 듯 정신없던 마지아가 일어서는 그녀를 보곤 퍼뜩 몸을 세웠다.

“애기야, 더 마셔, 더. 잘 마시네?”

하지만 카밀이 어깨를 감싸 다시 주저앉혔다.

“중위님, 아시죠. 민간인이에요.”

“…여기 군부대거든?”

“믿고 갈게요.”

내가 나가는 게 차라리 빨랐다. 에라블은 고개를 내젓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습기로 후덥지근했던 안과 달리 바깥의 찬 공기가 서늘했다.

“…되는 일이 없네.”

술이나 좀 마셔보려고 나왔더니.

“소위님!!”

진짜, 에라블은 욕을 참으며 어떻게 빠져나온 마지아를 돌아보았다. 밝은 데서 보니 애가 여기저기 깨물린 자국이 수두룩하다.

아주 즐거운 밤을 보냈나 본데?

적합자도 필요 없다던 청년은 잠깐 안 본 사이에 어른이 다 되어 있었다.

“가, 가시게요?”

“어.”

“안, 안 가시면 안 돼요?”

아무리 환경 조정에 신체 4레벨이라고 해도 웃통 까고 있는 건 추운지, 애가 어깨를 움츠리며 눈치를 봤다.

“저랑 한 잔만 더 해요, 딱 한 잔만. 여기 조금 있으면 쇼도 하거든요? 그거 되게 재밌어요!”

뭔, 쇼까지… 다들 아주 치열하게 사는 구만. 그나저나 얜 무슨 쇼 스케줄까지 꿰고 있어.

“나 내일 출근이야.”

“…출근은 저도 하거든요.”

“너랑은 신체 나이가 다르지.”

레벨은 더 다르고. 같이 놀다간 응급실에 실려 갈 거다.

“그러지 말고 조금만, 그냥 1층에서 딱 한 잔만….”

“나, 간다.”

“소위님은-”

돌아서는 뒤통수에 대고 마지아가 툭 말을 던졌다.

“전, 절대 안 되는 거죠?”

에라블은 슬그머니 뒤를 돌아봤다. 마지아는 입을 꾹 다물더니, 곧 그답지 않게 냉소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분한테 버림받았어도 소위님은 전 안 되는 거잖아요.”

“뭐.”

그건 그렇지. 그녀의 대답에 마지아는 숫제 비웃기 시작했다. 그렇지, 슬슬 올라간 텐션이 떨어질 때가 됐지. 높이 올라갈수록 낙차가 크다. 이래서 취객은 상대하면 안 되는 건데.

“소위님도 소위님인데, 참. 그분도 진짜 되게 웃기네요.”

“말 가려서 해.”

“왜요.”

왜긴, 니가 내일 아침 변사체로 하수구에서 발견될까 무서우니까.

“그렇잖아요. 나한테 고맙다, 가족에게 소개를 시킨다, 아주 별 소릴 다하더니. 어떻게 사람을 또 여기다 버려요?”

“내가 내 발로 온 거야.”

“이 식인 괴수가 득시글거리는 곳엘요?”

니가 지금 거기서 살아 나왔어.

말 없는 표정에서 뭘 읽은 건지, 마지아는 우리 같은 인간은 주제 파악을 하고 살아야 하는 거라고 충고했다.

“어차피 그런 대단한 사람들한테 우리 같은 인간은 장난감밖에 안 된다고요.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소위님 진심으로 생각할 사람 저밖에 없다고, 제가 말했잖아요.”

우리 부모님 있는데, 네가 왜. 애가 갑자기 사람을 고아 만드네. 내가 국적이 없지 부모가 없냐.

갑자기 짜증이 확 났다. 되는 일도 없고, 머리도 복잡한데, 기름을 확 끼얹은 느낌이다.

내가 군수 물자 빼돌려서 연방에 팔아먹었단 얘길 다시 해주면 진짜 저딴 소리는 쏙 들어갈 텐데. 내가 이래 봬도 이완용 못지않은 매국노라고. 다음 생도 망했네….

“저랑 해요.”

“뭘?”

“정 안 되면 뭐, 제가 그냥 싸, 싸게 해줄게요.”

갑자기 할인을 제안 받았다.

“뭐?”

“저 보조 슬롯에 지원 라이센스 땄어요. 제가 싸게 해드릴 테니까… 하, 한 번 해요.”

“…너 요새 설마.”

“예, 그게 뭐 별거…, 악! 왜, 왜 때려요!”

딱 얘만 한 동생이 있는 에라블은 얼굴을 구겼다.

“이, 쬐끄만 게 어디서 나쁜 것만 배워서는!”

“소위님은 무슨 부족 시대 사람이에요? 아악! 아파요!”

맨 등짝을 꿈틀거리던 마지아가 항의했다. 그래도 야단맞는 게 싫진 않은지 잘도 아픈 척이다. 아, 진짜 이 손 많이 가는 인간들….

“어차피 해야 하잖아요! 여기 오고 한 번도 안 했을 거 아니에요! 노이즈 그럼 쌓일 대로 쌓였을 텐데!”

그 말에 순간 이상해졌다.

“또 약 드실 건 아니잖아요.”

생각해 보니 노이즈가 안 들린다…. 아니, 고작 몇 달 편하게 살았다고 아예 잊은 건 둘째치고, 진짜 전혀 들리질 않고 있었다.

에라블은 혼란스러워졌다.

이것도 초능력인가…? 이렇게 형편이 좋다고?

“어차피 해야 할 거면, 제가 해, 해드린다고요.”

“…어, 안 해.”

하여간 그 문젠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얘부터 치우고.

“왜요?”

“위자료 때문에.”

“저 또 왜 안…, 예에?”

바람피면 소송 걸려서 안 된다. 심지어 양쪽에서 소송당한다. 재수 없게 나랑 엮인 불쌍한 버밀리언들을 파산까지 시킬 순 없었다. 안 그래도 손 많이 가는 인간들 돈도 없으면 어떻게 살라고.

“그리고 나 눈 되게 높다. 너도 봤잖아, 사단장님 얼굴.”

“…거기가 기준이면 높은 정도가 아니잖아요. 거의 제정신 아닌 거 아니에요?”

“맞아, 제정신 아닌 거. 그니까 계속 그딴 짓 할 거면 나 말고 딴 데 알아봐라.”

“씨! 나, 나도 사실 소위님 별로거든요!”

자존심이 상하는지 마지아가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혹시 또 피를 토할까 봐 걱정됐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무슨 기준인 건진 모르겠지만, 사람만 무사하면 됐지.

“나라고 뭐 진짜 좋은 줄 알아요? 소위님 진짜 별로예요! 별로라고!”

“그래, 고맙다.”

에라블은 걸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애가 어쩐지 뒤에서 엉엉 우는 것 같았지만, 흑역사는 모르는 척해주는 게 최선이지.

뭐…, 어쩌면 쟤도 어느 정도까진 진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을 말아먹을 정도로 진심은 아니라는 걸 이미 몰린시 창고에 갇혔을 때 확인해서, 별로 미안하지도 않았다.

나랑 얽혀서 좋을 일이 없다고.

버밀리언들만 봐도 그렇다.

그냥 해묵은 감정에 이것저것 다른 게 뒤엉킨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이 자기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내 문제를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진짜 위자료 문제도 있었고.

그 혼전 계약서에는 온갖 조항이 다 걸려있었다. 특히 외도에 관해선 아주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범위가 적용되어 있었다.

‘…아니, 근데 약도 먹지 말라면서 하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고.’

뭐 어쩌라는 건지. 플랫폼 완성됐단 보고는 대체 왜 씹어? 상부야 지금 정신없다고 해도 총괄2팀이나 3팀쯤에서 처리해줘도 되잖아. 어차피 적합자 관리도 다 거기서 하면서. 왜 씹냐고, 왜.

이제 대체 뭘 해야 하지? 067이 돌아가면서 이젠 정말 할 일도 없는데. A급 수료증도 있는데 현장에서 뛰어볼까? 사람한테 총질하면서? 그렇게 업보를 쌓아 진짜 내생도 말아먹는 거지.

“…….”

숙소에 돌아온 에라블은 굳게 닫은 문에 이마를 기대고 숨을 골랐다.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가라앉길 반복했다. 열심히 숨을 고르는데 그저 버겁기만 하다.

“후-….”

다시 크게 숨을 내뱉고, 불을 켜려 손을 뻗다가 그대로 몸이 얼어붙었다. 뒤에서 몸을 휘감고 지그시 눌러 오는 단단한 체중에, 에라블은 무력한 작은 짐승처럼 파르르 몸을 떨었다.

* * *

제 몸피의 족히 두 배는 될 듯한 커다란 몸이 틈 없이 체중을 붙이며 눌러왔다. 두꺼운 팔이 가슴과 허리를 휘감고, 턱은 쥐어져 돌아갔다.

“흐-…!”

그의 혀가 끈적하게 입술을 핥아왔다. 놀라 바둥거렸지만, 턱관절만 더 눌렸다.

눈앞이 점점 아득해졌다.

숨, 숨이-….

상태를 알아채고 잠깐 떨어져 준 입술 사이로 숨을 몰아쉬며, 에라블은 자신을 쥐고 있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데, 데제?”

창밖에서 새어들어 오는 희미한 빛만으로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그의 눈동자가 어둑하다.

“굳이 여길 왜 왔나 했더니.”

그가 눈을 흐리고 웃고 있었다.

“바람피우러 온 거네?”

“아, 아닙….”

“나 가지고 놀면 재밌어요?”

그가 말하는 사이사이에 입술을 깨물고 혀를 내어 뺨부터 귓까지 핥아댔다.

“응?”

들러 붙어있는 그의 움직임이 더 노골적이 되어갔다.

놀라 몸을 뒤틀려 했지만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흑-!”

에라블은 저도 모르게 그의 손을 움켜쥐었다.

“자, 잠깐-….”

지퍼가 열린 채로 몸이 어린애처럼 들려 그대로 침대에 눕혀졌다.

“데, 데제, 잠깐…!”

제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그를 에라블은 아연하게 올려다보았다.

“영애.”

“예, 예?”

“우리가 무슨 사인지 모른다고 했죠.”

그가 버둥거리는 양손을 머리 위에 모아, 한 손으로 틀어쥐고 다시 몸을 붙여왔다.

“근데 우리 페어 맺기로 했다던데? 당신은 허락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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