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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주인이 필요하다-91화 (91/132)

91.

그들은 놀이공원 주차장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정비소에 잠깐 들린 이후로 쭉 한낮의 모래 바다를 달리고 있었다.

‘…….’

모래색 건물들과 낙타를 끄는 주민들을 스쳤고, 몇 대의 지프차도 스쳐 지났다.

‘차라리 아무도 없었으면 좋았을걸….’

터덜대는 캠핑카로 모두의 주목을 받으니 가슴이 웅장해졌다.

데제는 해지는 방향으로 계속 차를 몰았다.

모든 구릉과 협곡, 오르내리는 비탈길… 그리고 그 위로 조금씩 붉게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한 사막은 아름답긴 했다.

하늘이 완전히 붉게 물들자, 그는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자연스럽게 식사 준비를 했다.

뭔가 도우려고 하니 방해하지 말고 심심하면 앉아서 다음 여행지나 골라보라고 했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꿨다.

“양파 껍질은 깔 줄 알죠?”

“제가 그래도 술집에서 2년이나 일했습니다.”

“서빙만 했잖아.”

그렇죠. 어떻게 아시는 거지. 하지만 그건 다 톰 아저씨 때문이었다. 어린애가 무슨 요리냐고 서빙과 청소만 시킨 톰 아저씨에게 이 모든 책임이….

“주황색 부분만 까고, 썰어요. 주사위만 하게. 잘하네.”

원래 손재주는 좀 있다. 다만 시간 비용 대비 왜 굳이 요리를 해먹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를 뿐이다. 재료 값에, 들이는 시간까지 더하면 사 먹는 게 개이득이다.

음식은 원래 사 먹는 거지.

대 우주 시대에 그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최첨단 냉동 보존 식품은 인간 문명의 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걸 두고 굳이 왜.

에라블은 양파를 썰며 마음속으로 의문을 가졌다.

그는 이어 썰어놓은 양파를 달군 프라이팬에 붓게 했다. 그리고 한번 해보라며 실리콘 뒤집개까지 넘겨주었다.

“고기만 적당히 익히면 됩니다.”

건네주는 소금 후추까지 받아 설설 뿌리고 대충 마무리하자, 그가 손질된 샐러드용 채소와 소스를 넘겨주었다. 채소에 소스를 얹어 또 열심히 뒤적거렸다.

“귀찮아도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좀 해 먹어요.”

“예, 알겠습니다….”

“목소리가 슬퍼졌네? 테이블 꺼낼 테니까 접시나 들고나와요.”

밖은 완연한 붉은색에서 점차 어둑해져 가고 있었다.

테이블을 편 데제가 남은 샐러드 그릇과 음료를 가지고 오며 캠핑카의 외부 전등을 켰다.

아무도 없는 모래사막 한가운데.

작은 캠핑카의 노란 불빛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그 밑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그는 낮에 산 싸구려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또 몇 장이나 사진을 찍어댔다.

“나중에 다 확인할 거니까 잘 모아놔요. 내가 뽑아준 인형하고 전부 다. 아, 그거 만들면 되겠네, 박스. 그 덕질 박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그러게, 왜 그런 생각을. 계속 못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에라블은 먼저 식사를 마친 그가 차 지붕에 담요를 까는 것을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올라와요.”

“예….”

설마, 아니었으면 했지.

남은 고기 조각을 입에 쑤셔 넣은 에라블은 벌벌 떨며 차 사다리를 탔다.

“진짜 겁 많네요, 에라블.”

고작 캠핑카 지붕에서 높다고 덜덜 떨고 있는 모습에 데제는 약간 황당해했다.

“전 여기서 떨어지면 목이 부러질 수….”

“안 떨어져요.”

바닥에 담요 깔고 누워있는 건 어떠냐는 조심스러운 제안에 데제는 모래 때문에 싫다고 대꾸했다. 모래가 싫으면 사막엔 대체 왜 오신 걸까.

“누워요, 빨리.”

생각이 많아졌지만 몸은 시킨 대로 재빨리 눕고 있었다. 데제는 픽 웃고는 옆자리에 늘어져 누웠다.

별이 쏟아질 것처럼 떨어졌다.

“예쁘죠?”

“예에.”

사실…, 우주선 타고 다니면서도 안 보는 별을 왜 굳이 이 낮엔 덥고 밤엔 추운 데까지 와서 보고 있는 걸까 의문이었다.

“좀 더 감탄해 봐요. 로맨틱하잖아.”

“예, 어, 굉장히 아름답고 신비롭….”

에라블은 감탄을 쥐어 짜냈다.

“됐어요. 하여간 삭막하긴.”

“죄송합니다.”

“당신도 소녀였던 시절이 있을 거 아니야. 동심을 좀 찾아보라고.”

동심…, 15세에 미성년자 관람 불가 소설을 읽어대던 해맑은 소녀였던 에라블은 이 주제에 관해 할 말이 별로 없었다.

“첫사랑 얘기나 좀 해봐요.”

그런 얘기가 나올 분위기이긴 했다.

캠핑카 지붕 위, 고요하게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

깔아놓은 두툼한 담요 위에 누워있다 보면 높은 확률로 튀어나올 주제인 것이다. 이세계에서도 첫사랑은 역시 특별한 것이지.

“제가 9살 때 TV에서 어린이 드라마를 했는데, 거기 주인공 남동생의 친구 역으로 나온….”

“…그때부터였구나.”

“…….”

“내가 언젠간 진짜 다 불 싸지를 거야.”

데제가 이를 갈며 말했다.

“근데 왜 주인공도 아니고, 주인공 남동생의 친구역이야?”

“제일 잘생겼었습니다.”

“얼굴은 참 드럽게 밝히네요. 제일 잘생겼으면 그냥 제일 좋은 거야?”

“그야….”

사막의 달빛에 물든 데제의 깎아낸 듯한 아름다운 얼굴이 심술 궂게 웃었다.

“그럼 에라블은 내가 제일 좋겠네요? 내가 제일 무서운데다가 내가 제일 잘생기기까지 하니까?”

“그….”

“왜, 거짓말이었어요?”

“사실이었습니다.”

얼굴이 새빨개져 거짓말을 늘어놓는 에라블을 두 팔 사이에 가두고 엎드려 내려다보며 그가 키득거렸다.

“내가 그렇게 제일 좋아요?”

“예, 제, 제일 좋습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에라블.”

뭐가 다행이란 건지 약간 모호했다.

분명한 건 그는 이 자세에서도 미모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이 아닌 듯한 그의 얼굴을 달빛이 희게 비추었다.

“지금 한 말 잘 기억하고 있어요.”

그가 고개를 기울여 입을 맞춰왔다. 밥 먹은 지 얼마 안 돼 또 양치가 신경 쓰였다. 솔직히… 키스에 약간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았다. 뭐, 그것도 얼마 안 가 흐려지고 말았지만.

“제일 좋아하는 남자하고 키스하는 기분은 어때요?”

“야, 양치….”

“그냥 조용히 해요. 확 여기서 벗기고 안아버리기 전에.”

에라블은 희게 질렸다.

“지붕 무너집니다.”

“됐으니까, 조용히 하라고.”

그가 다시 고개를 기울여왔다. 그러면서 문득 속삭였다.

“…첫 키스네?”

고작 이틀 전에 몇 시간씩 키스만 당하는 바람에 최애 중 하나를 포기한 에라블에겐 좀 당황스러운 소리였다.

“사막에서 첫 키스잖아.”

그게 원래 그렇게 장소별로 따지는 것이었나….

어쨌든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그렇게 로맨틱하진 않았다. 모래 먼지에 등은 배기고 낡은 차 지붕이 무너질까 걱정되고, 무엇보다 그와 함께 하면 모든 게 다 약간씩 호러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사막의 밤은 겁 많은 지구인의 눈에도 아름다웠고, 곁에 있는 남자는 그보다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차 지붕은 피했지만, 침실은 피할 수 없었다.

거친 숨소리,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 거무룩 어둠에 잠긴 작은 캠핑카 침실 안.

현실감각이 몽롱하게 붕 떴다.

다소 서늘한 그의 체온과 눌러 오는 무게, 그리고 그의 목소리만이 유독 선명했다.

“에라블. 일어나요.”

그리고 다음 날.

조금 지친 에라블은 아침 늦게 눈을 떴고 데제가 가져다준 음식을 침대 위에서 먹으며 게으름을 피웠다.

그녀가 침대에서 밍기적 대면 데제는 마냥 내버려 두는 경향이 있었지만, 평소와 달리 오늘은 점심때까지만이었다.

점심이 되자 데제는 또 식사 준비에 그녀를 동참시켰다.

몸이 힘들단 이유로 흐느적거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어제 적당히 봐준 덕분에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아 어지간한 연기력으론 무리였다.

결국 마늘 꼭지를 잘라 써야 한다거나 올리브 오일을 높은 온도로 가열하면 안 된다는 등의 잔소리…, 아니, 조언을 받아 가며 오일 파스타로 아침을 해 먹은 뒤.

“…….”

그는 유적군 팸플릿을 가지고 왔다.

* * *

진짜 이유를 모르겠다. 물론 내 인생에 이유 모를 일이 원래도 한둘이 아니긴 했지만…, 이쯤 되면 도저히 의문을 품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진짜 왜 이러시는 거지.

왜 갑자기 관광에 이렇게 열을 올리시는 거냐고. 입대 6년 차(그중 일 년은 의식 불명이었고 더 해 몇 개월째 휴직 상태긴 했지만), 에라블은 단 한 번도 그가 휴가 가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지난번 후작가에서 버밀리언들 데리고 놀러 가자며 짠 관광 코스가 무산된 영향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캠핑카에 빙어 낚시로 모자라, 목장 놀이공원, 사막 투어, 이젠 유적지까지. 내가 꽈배기 들고 하교하다가 무국적자가 된 것만큼이나 뜬금없는 코스였다.

그래, 그렇게 몇 년이나 휴가를 안 간 게 문제였던 거지.

사람이 너무 일만 하면서 살면 이렇게 급발진을 하게 되는 거야. 적절히 쉬어줘야 인간답게 작동을 할 수가 있다고….

이해는 가지만, 나까지 금붕어 똥처럼 끌고 다니실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에라블은 심란한 눈으로 유적군 팸플릿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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