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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주인이 필요하다-87화 (87/132)

87.

“씨X, 소리 지르지 말랬지.”

“나만 이상하냐니까?! 너도 아까 봤지? 어? 데제 상처를 막, 손으로 막, 촉수 비집어 나오는데 그걸 막! 나 꿈꾼 거 아니지? 어?”

“이 미친 새끼는 뒤늦게 뭔 헛소리야. 넌 왜 맨날 뒷북이세요. 어? 취미생활이야?”

“말도 안 돼, 어떻게….”

“접근하면 진짜 뒈진다 했다.”

슬그머니 들리는 촉수를 잘라내며 아리에스가 군용 나이프를 꺼내 휘둘렀다.

“씨X, 접근 안 했거든!”

“했잖아, 개새끼야.”

“너 근데 아까부터 왜 자꾸 나한테 지랄이야?!”

“안 하게 생겼어, 씨X 새끼야? 니네가 연락만 빨리했어도, 씨X. 대가리는 뭐하러 달고 다녀. 도로 떼, 병X아!”

에라블은 그런 둘을 보며 다시 조용히 간식을 챙기기 시작했다.

둘이 싸우다가 파편이라도 튀면 사망…은 아니겠구나. 황자 몸은 고레벨이니까.

그래도 휘말려서 험한 꼴 보고 싶진 않다. 어디 조용히 처박혀 있을 창고나 화장실 같은데….

“들고 어, 어디 가세요?”

화장실에요….

에라블은 싸우는 두 팀장 대신 허옇게 질린 얼굴로 저를 만류하는 감시팀원을 걱정스럽게 쳐다 보았다. 진짜 괜찮은 걸까.

“그냥 여기서 편히 드세요, 제발…, 어디 가시지 마시고….”

“예….”

뭐…, 다치면 알아서 고쳐 놓겠지. 사실 내버려 둬도 알아서 고쳐지긴 할 거다. 신체 레벨 9는 재생 속도도 초고속이니까.

에라블은 두 인간형 괴수가 끊임없이 서로를 비난해대는 상황 속에서 가만히 앉아 핫바를 뜯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씨X새끼가, 야, 너 나와.”

“나가면 여긴 애들한테 맡기고? 진짜 빠가사린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만히 핫바를 뜯으며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그녀는 소파에 조용히 웅크려 새로 받은 패드로 포럼에 접속했다.

덕질이 시급했다.

* * *

“헉헉….”

같은 시각 우주 최외곽, 디핏의 교도소.

이 악명 높은 곳에서 왕처럼 지내던 교도소장은 네발로 기다시피 하며 도망치고 있었다.

디핏은 범죄자를 수감 해놓는 일반적인 교도소와는 달랐다. 황실이나 유력 가문의 이런저런 이유로 죽일 수는 없는, 그러니까 일종의 타지 않는 쓰레기를 모아 놓는 시설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왕처럼 지냈다.

원래라면 눈도 못 마주칠 황족과 노블을 서로 접붙이기도 하고, 그들의 높은 레벨의 신체 조직을 팔아 재미도 좀 보면서.

교도관들에게 이곳은 외부와는 비교도 안 될 천국이었다. 그랬다. 바로 20분 전까지는.

“헉….”

어째서…, 교도소장은 지금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등 뒤에서 비명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뭔가가 씹히는 듯한 소리도.

“어, 어째서-….”

어째서 여기에 괴수가. 어둠 속에서 수백, 수천 마리의 벌레 날개 부딪히는 소리가 자글자글했다. 그 사이사이로 괴수의 촉수가 사람들을 꿰어 가고 있었다.

교도소장은 피가 흐르는 몸을 끌고 기듯 달렸다. 심각한 부상이었지만, 그보단 시그눔 슬롯이 블락 된 것이 더 문제였다.

그는 여태껏 누리던 위치 이상의 본능적인 무력감에 진저리쳤다.

피해자의 노이즈를 끌어올려 시그눔을 블락 시키는 건 전형적인 괴수의 특징이었다.

교도소장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디핏은 제국에서 가장 척박하고 이동이 어려운 곳에 위치한 행성이지만, 그만큼 분쟁지역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행성이기도 했다.

보호도 철저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죄수들이 살아는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컥…!!”

내달리던 교도소장의 목이 촉수에 꿰인다. 여태껏 필사적으로 달린 것이 무색하게 그의 사지가 축 늘어졌다.

“이게 여기 책임자 맞는 것 같은데, 그치? 응? 되게 빨리 끝났네!”

비르고는 관리소장을 꿰고 활기차게 말했다.

“예에….”

그를 팀장으로 두고 있는 개들은 죽상이었다. 특히 교도관으로 의태 한 개들의 얼굴이 제일 죽상이었다. 간지러운지 그들은 살가죽 밑을 연신 긁어댔다.

“한참은 걸릴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그치?”

비르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조잘댔다.

그들은 올에게서 신성의 회수 시기가 당겨졌음을 통보받았다. 그래서 보다 단순한 방법의 사용이 허용되었다.

“원래였으면 인간 흉내 낸다고 이것들 다 뒷조사 하고 작전 짜고, 어휴. 생각만 해도 싫다. 맞지?”

“예, 뭐, 맞겠죠….”

개들은 벅벅 긁어대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저희가 이걸 최소 반년은 뒤집어쓰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작전만 빨리 끝나면 뭐 하냐는 항의에 비르고는 그게 뭐 기냐고 반박했다.

“반년 눈 깜빡이지.”

개들은 우거지상을 썼다.

“무슨 눈을 반년 동안 깜빡여요.”

“솔직히…, 이게 다 팀장님 때문입니다.”

“대체 왜 우리까지….”

“분명히 디핏엔 팀장님이 오신다고 하셨잖아요!”

몇 달이나 답답한 거죽을 뒤집어쓰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모두가 좌절했다.

“어차피 나 아니었어도 여기엔 우리가 오게 돼 있었어. 험한 일은 대체로 다 우리 몫이잖아.”

“…그러게 왜 그럴까요. 왜, 험한 일은 대체로 우리의 몫일까요.”

“응?”

“그것도 다 팀장님 때문이잖아요!”

개들은 여태껏 그들이 팀장이 저지른 사건 사고를 줄줄이 읊어대며 서럽게 짖어댔다.

“내가 그랬어? 진짜? 와, 나 머리를 두 개나 해 먹었더니 기억력이 많이 안 좋아졌나 봐. 하나도 기억이 안 나네.”

비르고의 뻔뻔한 반응에 분위기는 한층 더 우중충해졌다.

들이박고 탈락이라도 할 기세라 비르고도 약간 눈치가 보였다. 팀원이 빠지면 남은 일은 자기가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 뭐, 얼마나 답답하고 그래.”

형태를 무너트린 비르고가 죽은 교도소장의 입 구멍으로 파고들었다. 살가죽이 한차례 요동 후, 자리를 잡은 그는 의태 한 다른 개들과 마찬가지로 벅벅 긁어대며 말했다.

“하, 하나도 안 답답한데?”

“…….”

“진짜 안 답답하다니까? 와, 아늑하고 좋네!”

“…그냥 말을 하지 마세요.”

“…응, 미안.”

* * *

개들 중 일부가 우주 최외곽에서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동안, 에라블은 황자의 몸에 처박힌 채 치킨, 맥주, 냉동 피자와 스낵 등을 끌어안고 천국을 맞이하고 있었다.

무려 9레벨짜리 몸이었다. 생리 현상조차 없는 몸에 튀긴 가금류나 발효 보리 따위가 범접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남아 적당히 자제하긴 했지만, 그 적당히 만으로도 에라블은 충분히 행복했다.

그리고 의외로 그녀만큼이나 감시팀도 행복해했다. 물론 모두가 다 행복하진 않았다.

“…어떻게 하루 종일.”

경호팀은 감탄했다.

데제의 방문 이후 벌써 며칠이 지났다. 당연한 얘기지만, 개들은 에라블 버밀리언이 함부로 밖을 돌아다닐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에라블 버밀리언은 매사 협조적인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곤 해도….

“안 답답하세요?”

“예, 전혀 안 답답합니다.”

그래 보였다.

“산책이라도 좀 하시는 건 어떠세요.”

“정말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만 한다는 뜻인 듯 했다. 그녀는 이불 속으로 더욱 파고들며 대답했다.

“받아들이면 편해.”

경호팀은 약간 초점 잃은 눈으로 조언해주는 감시팀을 돌아보았다.

“…너넨 왜 익숙해 보이냐.”

“그야 익숙하니까.”

두 팀 간의 불화는 일찌감치 종식되었다. 누군가가 감시카메라에 이것도 다 잡힐 거란 얘길 꺼낸 뒤로 두 팀은 급속도로 화목해졌다. 연대책임이란 추가 단어 역시 큰 역할을 해주었다.

“감사한 일이야.”

감시팀은 아련한 얼굴로 말했다.

“소중한 건 잃기 전엔 모르는 거지.”

에라블 버밀리언이 방구석 애호가인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겪어보기 전엔 모르는 것이다. 감시팀은 몇 번이나 했던 말을 되풀이 했다.

“아, 그래….”

만찬을 겪은 그들의 아련하고 서글픈 얼굴이 경호팀은 약간 떨더름했다.

어쨌든 자신을 둘러싼 개들의 사담을 귓등으로 흘리며, 에라블은 행복해했다.

이틀 전 개들에게서 백작가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갔다는 얘길 전해 들은 게 주요했다.

백작은 때마침 가문에 생긴 일을 수습하기 위해, 산체는 때마침 터진 노이즈를 수습하기 위해, 두 버밀리언은 무사히 백작령으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갑자기 밝은 미래가 찾아온 건 아니었다.

이 소설은 하드코어 피폐물이고, 식인, 고문, 자살, 재생 등 온갖 고난을 한 몸에 겪는 주인수의 몸에 기약 없이 들어와 있는 현실은 정신을 그저 아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로 인생의 기대치가 대폭 낮아져 이젠 거의 발바닥에 가 있는 에라블은 두 버밀리언이 무사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그리고 지금 상황도 최소한 두 가지 정도는 좋은 점이 있었다.

“무슨 몇 날 며칠을 연예인 얼굴만. 봤던 걸 또 보고, 또 보고, 또 보는데, 어떻게 볼 때마다 저렇게 집중할 수가….”

바로 제한 없는 간식과 제한 없는 취미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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