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는 주인이 필요하다-74화 (74/132)

74.

“진지하게 만나고 있습니다.”

“그래?”

다행히 데제의 의심은 셔틀 안에서 휴대폰 모서리로 처맞고 있는 산체르타 버밀리언에게로 다시 돌아갔다.

“왜 이렇게 붙어있어?”

데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새 새 담배를 빼물었다. 그야 리치가 짧으니까 붙어있을 수밖에. 에라블은 못생긴 게 팔도 짧다. 생각이 읽힐까 봐 아리에스는 슬쩍 고개를 숙였다.

“빨리 치우라고.”

신경이 곤두선 데제는 괜한 트집을 잡았다.

이미 그러고 있었지만, 처리팀은 더욱 열심히 청소했다. 데제는 바디백에 사체를 발로 차 밀어 넣으며 계속 짜증을 부려댔다.

“이것들은 인간 껍질을 입고 있다고 내가 진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뭐야.”

먹잇감도 안되는 인간들을 전력이랍시고 자꾸 보내오는 생츄어리 사제들을 욕했지만, 눈은 스크린에 고정돼 있었다.

그나마 버밀리언 중 하나가 바로 와서 다행이었다. 백작가의 통신을 다 끊어놓은 보람이 있다.

아리에스는 이제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날 거라고 안심하고 있었지만, 그 생각에 조금씩 의심이 들고 있었다. 안심해도 되는 건지 진짜 모르겠다.

* * *

“…….”

산체는 초점이 흐린 눈으로 멍하니 앉아 이 사태를 이해해 보고자 노력 중이었다.

호텔 내부에 있는 레스토랑 안이었다.

에라블 버밀리언의 최고 상관인 41사단장은 엄청난 미모의 남자였다.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성적 지향도 잊고 욕 탄사를 뱉으며 사랑을 고백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산체는 이 엄청난 미인이 어째서 누나의 식사 시중을 들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이것도 먹어요.”

그리고 에라블 버밀리언은 그걸 또 왜 자연스럽게 받아먹고 있는 건지….

역시 인지 부조화가 왔다.

“오느라 많이 피곤했겠어요.”

“예? 아, 아닙니다.”

멍하니 있는데 사단장이 불쑥 말을 걸어왔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는 듯했다. 산체는 저도 모르게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채, 채널이 그래도 좀 안정되어서 편하게 왔습니다.”

최근 이동 채널은 불안정할 때가 많아졌다. 1년 전 터진 웨이브의 영향이라는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다행이네요.”

그는 부드럽게 대꾸하며 또 누나의 빈 잔에 물을 따라주고, 빈 접시엔 샐러드를 덜어 놔주고 있었다. 웨이터도 손이 있는데…, 그러니까 대체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냐고.

“작년에 졸업했다면서요.”

“예? 예. 졸업했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후계 교육을 받느라 정신없겠네요.”

“예, 어, 조금씩 나누어서 천천히 받고 있습…, 저, 그런데 사단장님…. 그, 왜…, 사단장님께서….”

누나 밥시중을? 산체는 도저히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 직접 안 챙기면 자꾸 대충 먹어서. 하여간 속은 나만 탄다니까. 참, 편하게 불러요. 곧 한 식구 될 사인데.”

콜록, 그가 사레 걸려 기침하는 누나 쪽으로 더 가까이 물잔을 밀어주었다.

웬 한 식구? 산체는 어리둥절했다.

“나 혹시 입대해?”

상체를 가까이 기울여 누나에게 작은 소리로 속닥거리며 묻다가, 산체는 그와 눈이 마주치곤 움찔했다.

몸이 굳었다. 꼭 뱀을 맞닥트린 쥐처럼 머리가 하얗게 비고…, 그리고 마치 다 착각이었다는 듯 그가 또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머릿속이 그저 몽롱해졌다.

“다! 다 먹었으면 이제 집에 가봐야지.”

빠르게 접시를 비운 누나가 환기라도 시키듯 말했다.

“그래요.”

그는 다감하게 대꾸하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미리 계산을 끝낸 수행원들 몇몇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어쩐지 복도가 고요한 느낌이었다.

“식사는 괜찮았어요?”

그의 부드러운 분위기가 표정 하나 없는 수행원들의 선득함과 대비되어 더욱 다감하게 느껴졌다.

“예…, 좋았습니다.”

그들이 탄 엘리베이터는 프런트가 있는 1층을 그대로 지나쳐 지하로 내려갔다.

“난 좀 별로던데.”

“어….”

“맥주나 한잔할래요? 집 가는 길에 치킨이나 좀 사서.”

어영부영하는 사이 낯선 차 뒷자석에 앉혀졌다.

그리고 이쪽 의견도 묻지 않고 차가 멋대로 출발했다. 산체는 등 뒤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저, 전 괜찮습니다. 피곤하실 텐데….”

“애들 시키면 되지.”

애들…, 아마도 그의 수행원들을 말하는 듯했다. 눈앞의 남자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벌한 미남들을 지칭하는 말로 적절한 것 같진 않다. 그러고 보니 내 수행원들은 다 어딨는 거지….

“치킨 별로면 뭐 다른 건?”

“예, 예?”

“다른 건 어떻냐고. 집에 누나가 사다 놓은 맥주 엄청 많아요. 이 기회에 다 먹고 가. 나 없으면 누나가 자꾸 몰래 먹어대서.”

“…예?”

차는 상위계 도로를 타더니 거리를 숙숙 지나 일반 주거 지역으로 들어섰다.

“여긴 왜….”

“아.”

그가 여유롭게 차에서 내려서며 웃었다.

“역시 자택이 편하겠어요? 그래도 수도까지 올라왔는데, 누나 집은 한번 봐야지.”

“누나…, 집이요?”

당황한 산체는 107S에 누나의 집이 있다는 정보를 느리게 상기했다.

“아.”

맞아, 그랬지. 아까 여기 오려다가 중간에 저녁을 먹으러 가게 됐었다. 잊고 있었네.

‘…생각보다 괜찮은데?’

산체도 100번 대 위성에 상류층 평민들이 거주한다는 상식 정도는 알고 있었고, 그래서 군 생활 좀 오래 하더니 무슨 혜택이라도 받은 건가 싶었다.

에라블 버밀리언의 주거지로 중고 캠핑카부터 낡은 모텔까지 차례로 겪어본 산체는 한 단지에 수십 명씩 붙어사는 건 여전히 이해가 안 되지만 그나마 본 중엔 제일 낫다고 생각했다.

사단장이 여길 왜 직접 데려다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감사하단 말을 하려던 차에 그가 먼저 선수를 쳤다.

“들어가죠.”

그러고는 성큼성큼 앞서 걸어가 버리는 것이다. 그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뭐지…, 산체는 작게 미간을 찌푸리며 사단장의 뒤를 따라 맨 위층으로 올라왔다.

에라블 버밀리언은 아주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산체의 미간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

곧 집 현관문이 나왔고, 그리고 사단장이 자연스럽게 지문을 누르고 있었다.

누나 집이라며?

“오른쪽 방 중에서 아무 데나 편한데 써요. 왼쪽엔 우리 침실이 있어서.”

“우리 침실…?”

홱, 고개를 돌려보니 에라블이 시선을 피하며 절대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다시 고개를 돌려 태연히 먼저 집 안으로 들어서는 늘씬한 남자를 바라보며, 산체는 말을 골랐다.

“저, 죄송합니다만. 아까 누나 집이라고….”

“누나 집이에요.”

“그런데 왜….”

“우리 집이기도 하고.”

산체는 심호흡을 한 뒤 다시 말을 골랐다.

“굉장히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혹시 저희 누나와 같이 지내시는 건 아니겠….”

“우리 집인데 당연히 같이 지내죠?”

아까부터 의심스럽긴 했는데, 혹시 S등급 보조계열인 걸 들켰나? 그럼 이럴 수도 있다. 귀한 S등급 보조계열인 걸 알게 됐다면 이렇게 살살 꼬시는 게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아브가니스가 후계에 사단장 자릴 꿰차고 있는 남자가 고작 계약자 하나 얻겠다고 이런 일까지 하는 건 말이 안 되지만, 뭔가 사적으로 특별히 쓸 일이 생겼다면 아주 또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편하게 부르라니까. 아 참, 에라블. 건조기에서 빨래 다 빼놨어요. 양말 좀 뒤집어서 넣지 말라니까.”

그럼. 살살 꼬시면서 사단장이 양말도 대신 빨아 주고 뭐,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리가 있냐! 산체는 폰을 꺼내 띡, 띡,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백작이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를 질러댔다.

“아빠! 누나 동거 한대!!”

에라블은 제 폰을 던져 산체의 이마에 명중시켰다. 인간이 극한 상황에 몰리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더니. 에라블은 5레벨 어태커의 이마를 한 방에 맞췄다.

“손 다쳐요.”

그리고 데제는 태연하게 때린 에라블을 걱정했다.

* * *

집 안 구석구석, 생활감이 아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담요와 에라블 같은 덕후가 아니면 기념품으로도 안 살 몇 개의 DVD 케이스, 그리고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금속제 라이터까지.

“언제부터야?”

경호진들은 좀전의 호텔에서 그대로 머물며 대기 중이라고 전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집이 경호원들까지 들어올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다.

100번 대 위성은 제국민 치고는 나름 상류층의 거주 구역이긴 했지만, 그래 봤자였다. 이름도 없이 넘버로 관리되는 곳이 다 그렇지.

그러니까 이런 노블과는 상관도 없는 곳에서 누나가 지금 후작가 직계와 살고 있다는 것이다.

“너 설마 세컨드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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