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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주인이 필요하다-69화 (69/132)

69.

그야 당연히 아프시겠지. 누를 때마다 뭉친 근육에 끙끙거리면서도 에라블의 눈이 다시 감겼다. 잠을 이기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손에서 조금 힘을 빼고는 목덜미부터 날개뼈 어귀를 눌러 주었다. 오일을 좀 더 부으니 조금 잠이 깬 에라블이 슬그머니 묻는다.

“…약입니까?”

목소리에 약간 희망이 배어 있다. 데제는 코웃음을 쳤다.

“평범한 마사지 오일이야.”

그 버릇 못 고치면 아주 후회하게 해줄 거라고, 그는 약간 짜증을 냈지만 에라블이 통증에 덜덜 떨자 적당히 힘을 덜어가며 근육을 눌러주었다. 그래도 에라블은 끙끙거렸다.

그러게 적당히 할 것이지. 진짜 자기가 A급 센터 프로그램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뭉친 종아리를 눌러주며 그는 다시 불평했다.

에라블은 이제 아주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데제는 개의치 않고 그녀의 다른 쪽 다리 근육까지 전부 눌러서 풀어주었다. 아주 조용하다. 숨은 쉬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살아 있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여간. 데제는 에라블의 여린 뒷목을 이로 꽉 깨물어 주었다. 에라블이 이 와중에 또 구급차를 불러 그를 웃겼다.

* * *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센터의 이용 시간이 갑자기 변경되었다.

미수료자에만 적용되는 룰이었다. 센터 내 미수료자는 에라블 뿐이었으므로, 그녀 혼자만 변경된 룰에 적용받아 칼퇴를 당하게 됐다.

빈 시간은 생각할 여유를 줬기 때문에 에라블은 이 상황이 매우 공포스러웠다. 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여유 시간을 없애 버렸다.

“30cp입니다.”

“좀 깎아 주시면 안 됩니까?”

“30cp면 공짜나 다름없습니다. 수리점 가시면 50은 내셔야 됩니다. 전 진짜 부품값만 받는 겁니다.”

물론 아직도 센터 관리원이라고 오해받는 건 아니었다.

부탁 아닌 부탁을 몇 번 들어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비스에 만족한 고객님들이 늘어난 것뿐이다. 1석 2조였다. 돈도 벌고 생각할 시간도 없애고.

이래도 사이사이 데제가 던져 놓은 핵폭탄이 자꾸 수면 위로 기어 올라왔기 때문에, 에라블은 매우 적극적으로 빈 시간 공백을 없애버렸다.

“다른 지원형은 친절하던데.”

“저도 친절하게 30cp에 모시겠습니다. 서비스로 넷 이용 내역도 깔끔하게 지워 드립니다.”

“그럼 뭐, 프런트에 맡겨 놓으면 되죠?”

“예. 바로 수리해서 제가 오늘 중으로….”

띠띠-, 에라블은 말하는 도중에 울리는 알람을 껐다. 다시 트레이닝 룸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 되지도 않는 훈련은 대체 왜 하시는 거예요? 어차피 맨날 79점 나오면서.”

에라블은 제게 관심을 보이는 고객님께 공손히 답변을 드렸다.

“저 남자친구 있습니다.”

“예, 잘해드리세요! 세상 숭고하신 분이네! 아주 희생정신이 대단하신 분이야!!”

“랩탑, 지금 주십시오.”

“왜요? 우리 존슨한테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이름 한 번 직관적이다. 무슨 용도인지 너무 투명한 거 아니냐고.

“참! 혹시 출장 서비스는 안 하십니까? 우리 집 인덕션이 고장 나서요.”

존슨을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과잉 반응을 보이던 고객님이 갑자기 다른 수리 문의를 해왔다.

“제가 장거리는 좀….”

주 함선은 거대했다. 2레벨의 인지로는 광활한 하나의 세계나 다름없었다. 이 인간형 괴수가 어디 사는지 알게 뭔가. 에라블은 돈 몇 푼에 머나먼 여정까지 떠나고 싶진 않았다.

“100cp 드릴게요.”

“어디든 달려가겠습니다.”

“성격 참, 투명하시네요.”

존슨만 할까.

남자는 어쨌든 100cp 짜리 고객 지원에 만족했는지 친근하게 웃으며 어깨를 툭 쳤다. 검사해서 어깨뼈에 이상 있으면 바로 상해진단서를 끊기로 했다.

“저녁 전에만 와서 고쳐 주세요. 별로 멀지도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센터에서 이동 레일로 10분 거리에 있거든요.”

하긴 인덕션이면 저녁 식사 전에는 고쳐야겠지. 사실 잘 이해가 되는 건 아니었다. 뭐하러 굳이 음식을 해 먹는 것인지, 음식은 사 먹는 건데….

뭐, 하지만 이세계는 불가해의 연속이다.

퇴근 후 대충 짐작되는 문제 부품을 구해 고객님 댁으로 이동했다. 저녁 걱정에 안절부절 중이던 하사의 애인 분을 보니…, 데제 생각이 났다.

인덕션을 수리해주니 그녀는 고맙다며 보수로 100cp와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솔직히 제대로 수리됐는지 확인하려는 듯해 순순히 공짜 밥을 받아들였다.

<일이 있어 조금 늦을 것 같습니다.>

밥을 얻어먹으며 그녀는 별생각 없이 데제에게 문자나 한 통 넣었다.

하사의 애인만큼이나 그도 식사에 진심인 데다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같이 저녁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에라블은 별생각이 없었다. 아니 별일이란 생각 자체가 없었다. 왜냐하면 진짜 별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요.>

그의 짤막한 메시지에 괜히 귀찮게 한 건 아닌가 하고 잠깐 걱정하기도 했다. 귀가할 때까지도 그랬었다.

* * *

‘……?’

조금 늦은 시각, 고객님 댁에서 수리와 저녁을 마치고 귀가한 에라블은 현관으로 들어서다 말고 멈칫거렸다.

집안이 이상하게 조용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다시 조심스럽게 어둡고 고요한 집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제 손으로 직접 다 고른 집이 낯설게 느껴지긴 어려웠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온통 불이 꺼진 집안에 왠지 침실 쪽 전등만 켜져 있어 더 섬찟했다. 공포 영화에서 자주 봤던 장면이었다.

그땐 그냥 문 닫고 다시 나갈 일이지 뭐하러 왜 가까이 가는 건지 이해를 못 했었는데, 이 순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도 나가면 더 큰 일 날 것 같단 불안감에 시달린 것일 수 있다.

“저….”

계십니까. 그냥 아무도 안 계셨으면 좋겠지만…, 침실에 붙어있는 욕실 쪽에서 구역질 소리가 들려왔다.

에라블은 걸음을 빨리했다.

“데제?”

그리고 놀라 얼어붙었다.

그가 변기를 붙들고 엎어져 구역질하고 있었다. 엉클어진 머리, 그 머리를 느슨히 감싸고 있는 긴 손가락. 이쪽을 흘려보는 눈가가 붉다.

“왔어요?”

그가 아무렇지 않게 묻곤, 다시 우엑-…, 구역질을 해댔다.

“당장 병원에 연락하겠습니다.”

“병원 무서운데.”

키득거리고 또 쏟아내는 구역질에, 비틀대는 그를 에라블이 황급히 부축했다. 제 체구에 두 배는 족히 넘는 남자를 부축하는 덴 무리가 있었다.

그가 작은 몸에 코를 들이대며 길게 냄새를 맡았다. 짐승에 살갗이 샅샅이 훑어지는 기분이 들어 에라블은 바짝 긴장했다.

“아, 나 점점 더하네. 정말 큰일 났네요, 에라블.”

“무슨 일 있으십니까? 제가 올 부관님을….”

“그건 또 왜 이름으로 불러? 둘이 친해?”

뭐랑 제일 친한데. 머리? 손? 발? 올의 신체 부위와 친분이 없는 에라블은 고개를 저었다.

“안 친합니다.”

약을 하신 건가. 그의 몸은 약한 취기가 오르는 것 이상으로는 약이 듣질 않는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갑자기 이러시는 이유가.

“뭐 하다 왔어요?”

“TV 고치고 왔습니다.”

“또 시작이네. 재밌어요?”

“그렇게 재밌진 않았습니다.”

그가 투덜대는 말에 빠릿빠릿 대답을 하고 있긴 하지만, 에라블의 손발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데제가 그 손에 얼굴을 묻었다.

“데, 데제 열이.”

“왜. 나 열나요?”

“부, 불덩입니다.”

그가 푸스스 웃었다. 그의 가벼운 숨결이 닿은 손바닥이 간질간질했다.

“별걸 다 하네.”

몸을 일으켜 뜨거운 머리를 작은 어깨에 얹고, 그가 바지 뒷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에라블.”

“예?”

타닥타닥 불을 붙이려다 포기하며, 그는 다시 축 늘어졌다.

“나 달래 해봐요, 토닥토닥.”

에라블은 곧바로 탄탄한 그의 등허리를 아이 달래듯 토닥였다. 그가 길게 숨을 뱉어냈다.

“센터 다닌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아는 사람들이 생겨선.”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원만한 사회생활은 선택이 아니었다. 신원 불명 무국적자에게 그건 생존을 위한 필수 스킬이었다.

그가 에라블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다시 길게 숨을 삼켰다. 온몸이 삼켜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에라블.”

“예.”

“저녁 먹었어요?”

“마침 야식이 땡기던 참입니다.”

눈치 빠른 대답에 그가 또 푸스스 웃었다.

그리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히 일어나 양치를 하고 입안을 헹구고, 오랜만에 피자와 맥주를 시켜서 쇼 프로나 볼까 하고 물었다.

에라블은 당장에 그러자고 대답했지만, 욕실은 침실 안에 붙어있었다. 나가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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