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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주인이 필요하다-63화 (63/132)

63.

“그, 그랬구나. 어쩐지. 안 그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41사단이 일 년 넘게 여기 있어서…. 시, 싫은 건 아니었어요.”

마지아는 애써 변명거리를 찾았다.

“주변에 괴수 처리도 대신 다 해주셨거든요. 전투 능력이 진짜, 진짜… 싫은 게 아니라요.”

시선을 피하며 말을 쏟아낸다.

“그, 근데 애…, 애인인데 소위님이 왜 분쟁 지역에. 아. 여기 오고 나서 만난 거였나보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애가 알아서 다 꿰맞추고 있었다.

기억은 확실히 잃은 모양이었다. 에라블은 조금 안도했다.

“저, 저는 이만 일이 있어서….”

“어, 그래.”

서둘러 몸을 일으키는 마지아를 따라 에라블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아니에요. 나오지 마세요. 검사받으셔야 한다면서요.”

마지아는 배웅해주는 것도 거절하고 혼자 허둥지둥 의무실을 빠져나가 버렸다.

“…….”

뭐…, 잘된 일이다. 에라블은 마지아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드론 사출구로 떠민 것보단 나은 작별이었다. 이게 훨씬 낫지.

몸을 돌려 터벅터벅 의무실 안으로 돌아온 에라블을 데제가 비난했다.

“바람둥이.”

“…저, 말씀이십니까?”

“잡덕일 때부터 알아봤지.”

혹시 커뮤를 하시나…, 가까이 다가온 그가 그녀의 작은 귓가부터 목덜미까지 코끝으로 훑으며 냄새를 맡았다. 바르르 몸이 떨렸다.

“먼저 반한 내가 잘못이지.”

데제가 한숨을 내쉬며 목덜미에 입술을 맞춰왔다. 심한 자극에 에라블은 눈을 질끈 감았다.

* * *

다음 날, 중증 환자들부터 후방으로 우선 이송 조치 되기 시작했다.

에라블 역시 이 명단에 끼어 있었다.

다른 환자들과는 달리 그녀는 사단장의 함선인 안타레스를 타게 되었지만, 어쨌든 천만다행이었다.

내가 사단장 애인이라는 괴담이 퍼지기 전에 중대에서 탈출할 수 있어 진짜 다행이었다.

‘…….’

상승하는 함선 안에서, 에라블은 중대가 아닌 가까워지는 죽은 행성을 바라보았다. 가까워진 만큼 다시 빠르게 멀어져갔지만 생각이 많아졌다.

이거 진짜 원작에서처럼 아무 문제가 없는 게 맞을까.

원작에서 괴수나 균열은 단순한 깜짝 이벤트에 불과했다. 이게 큰 문제가 됐던 적은 없었다. 없을 리가 없는 것 같은데….

전에도 한 생각이지만, 아무리 이세계라지만 진짜 괜찮은 거 맞냐고. 그냥 생눈으로 종말을 보고 있는 기분인데.

‘하-….’

에라블은 유리창에 기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의식 불명이었던 기간을 포함해서 대략 3년. 결국 목표로 했던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했다.

플랫폼은 웨이브의 여파로 반파되어 가동이 중지돼 버렸고, 실패만 잔뜩 떠안은 나를 그는 살려놓았다.

그녀는 연성로에서 재생성된 팔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 속에 스민 수 병의 검붉은 앰플도 떠올랐다.

그리고 목탄처럼 검게 식었다가 같은 시기 원래대로 회복된 그의 팔도…, 끝도 없이 연성로 안에서 잘린 팔다리를 만져주던 그의 모습도….

‘…잘 움직이네.’

손가락이 아주 자유자재로 잘도 움직이고 있었다. 전등에 비쳐 보며 열 손가락을 꿈틀거려 보던 에라블은 흠칫 놀랐다.

“뭐 합니까, 손가락 운동?”

데제가 그녀의 어깨에 턱을 내려놓으며 움지럭거리는 손가락 사이에 제 손가락을 끼워 넣었다.

“나중에 하고 집이나 좀 골라봐요.”

“집, 말씀이십니까?”

“네, 결혼 전에 잠깐 쓰려고요. 한 몇 개월 정도? 작고 아늑한 걸로 골라요. 그쪽이 취향일 테니까.”

등 뒤에서 지그시 몸을 안아오며 그가 말했다.

“열심히 골라요. 보수도 꼭 줄 테니까, 몸으로. 미리 땡겨 받아도 좋고.”

잠시 말문이 막혀있던 에라블은 더듬거렸다.

“서, 선불은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난 좋은데.”

그가 목덜이에 입술을 묻고 키득거렸다. 왠지 기분이 좋으신 것 같았다.

“…….”

에라블은 기분이 이상했다.

생각은 많아지고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그래서 일단 일만 생각하기로 했다. 상황 봐서 이제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 될지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물어볼 타이밍이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 * *

“할 일?”

수도로 가는 도중 에라블은 휴가를 위해 안타레스에서 먼저 이탈하게 되었다. 데제는 경로까지 백작령의 영지 경계선으로 잡아 주었다.

“예, 제가 앞으로 어떤 일을….”

에라블은 그의 웃는 얼굴에 말끝을 흐렸다.

“잘 쉬고, 잘 놀고, 잘 먹고. 그리고 나한테 한 달 뒤에 건강하게 돌아오면 됩니다.”

“…예.”

“참, 안정제 먹지 말고. 안 먹어도 될 만큼 해 놨으니까.”

“예….”

중대에서 출발하고 지금까지 약 48시간가량, 그녀는 하느라 바빴다. 그러니까 카탈로그에서 집을 고를 때조차… 바빴다.

그는 정말이지 지나치게 보수에 후했다.

정작 말을 하는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지만. 뭐…, 그야 그런 사람이었고. 아무래도 에라블에겐 힘든 이야기였다.

“지금 하게 해줄 거 아니면 꼬시지 말고.”

“…….”

“얌전히 지내다 와요.”

열이 오른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그가 이어 느긋한 어투로 경고했다.

“바람 피지 말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음, 많이 노력해야 할 거야.”

그는 키득거리며 이어 눈가와 광대에 차례로 입술을 눌렀다.

“그럼 푹 쉬다 와요.”

그리고 담배를 빼물며 개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잠깐 사이에 그가 또 입술을 붙여 댔다. 그러면서 또 경고하는 것이다.

“진짜 사고 치지 말아요.”

에라블은 역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체 언제 사고를 쳤지….

“멋대로 APU를 열세 개나 박았죠, 자폭하셨죠. 팔다리 다 작살 내고 얻어낸 정보를 다이렉트로 데제께 쏘셨죠….”

함선에서 갈라져 나온 우주선 안.

감시팀장인 아리에스가 그녀의 행적을 줄줄이 읊었다. 고작 휴가받아서 집에 가는 건데, 감시팀 전체가 따라붙고 있었다.

‘요새 다들 한가한가….’

에라블은 전보다 더 개들과 같이 있는 게 떨떠름했다. 개들의 존댓말이 갈수록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유산 포기 각서에 서명하셨잖아. 분명히 무슨 문제가 있을 거야.”

그들은 자기들끼리 대화 중에도 존댓말을 써대며 백작령으로 가는 내내 왠지 좀 들떠 있었다.

“장로나 다른 친족들이 문제겠지. 백작과는 사이 좋으시잖아.”

“이번에 시제품으로 나온 꼭두각시 한 번 써보자.”

“아, 설레. 재밌겠다.”

가만히 들어보니, 무슨 백작가에서 무시당하는 평민 출신 양녀에게 반드시 시비를 걸어올 미지의 불특정 다수를 응대할 기대에 차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한 달….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당연했다. 방에서 나오질 않았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게 시비를 거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걸려고 해도 일단 만날 수가 없는 것이었다.

* * *

“와, 너 진짜 대박이다.”

휴가받은 한 달, 에라블은 정말 오랜만에 푹 쉬었다. 오랜만에 완전한 주말 모드였었다.

“인간이냐? 어? 인간이야? 어떻게 인간이 한 달 동안 단 한 번을 밖엘 안 나갈 수가 있어?!”

모든 주요 등장인물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지방 도시는 역시 평화로웠다.

“일어나, 좀! 일어나라고!!”

백작의 유일한 친아들인 산체르타 버밀리언이 이불을 잡아 뺏으며 소리를 질렀다.

“…몇 신데.”

“3시!”

“어후, 아직 새벽이네….”

“아니, 오후! 오후 3시라고!”

“왜 꼭두새벽부터 깨우고 난리야.”

에라블은 귀를 틀어막고는 밍기적밍기적 돌아누웠다.

“아 제발, 일어나 좀! 곰팡이 낄 거 같다고! 내가 미칠 것 같으니까, 제발 좀 일어나!”

그러든 말든 에라블은 당연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산책이라도 가자, 산책! 오늘 그 뭐야. 제임스인지 개나발인지. 걔 새 영화 걸리는 날이라며!”

“…새끼가 무례하게. 제임스 님이라고 불러라.”

“제임스 새끼.”

“…….”

산체는 벌떡 일어나는 에라블을 피해 도망쳤다. 효과가 개쩐다며 비웃는 산체를 보며 에라블은 간지러운 머리를 벅벅 긁었다.

“후환이 안 무서운가 보다? 요샌 아카데미에서 사고 안 치냐?”

“뭔 아카데미. 나 졸업한 지가 언젠데.”

“졸업을 했어?”

“어.”

에라블은 동생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사고 후 일 년, 역시 일 년이란 시간이 길긴 길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샀냐, 졸업장?”

“안 샀거든!”

“미리 말해라. 나중에 뒷처리 하려면 더 힘들다.”

“아! 안 샀다고! 들어가서 씻기나 해! 그만 긁고! 아, 진짜 더러워!!”

“내가 언제 긁었다고.”

허리를 벅벅 긁어대며 에라블은 투덜거렸다.

“씻어!!”

발작하는 산체의 등쌀에 결국 욕실로 떠밀린 그녀는 칫솔을 입에 물고 샤워기 온수를 틀었다.

어라, 샤워기가 낯선데. 그러고 보니 얼마 만에 씻는 거지? 에라블은 배를 벅벅 긁으며 기억을 더듬었다. 한 열흘쯤 된 것 같기도 하고….

“트라우마 때문이네.”

이게 다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인 거다. 사람이 그런 끔찍한 사고를 당했는데 멀쩡하면 말이 안 된다. 내가 씻지 않는 건 다 그런 외상 후유증 때문인 것이었다. 내 잘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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