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는 주인이 필요하다-61화 (61/132)

61.

[…미친 게냐.]

에라블은 전화기에 귀를 대고 눈치를 살폈다.

[감히 분쟁지역으로 자진해서 전출을 해?! 네가 진정 미친 게야?! 거기가 대체 어딘 줄 알고!!]

백작의 소송을 막기 위해, 에라블은 자진해서 80콜로니로 전출해 온 것을 이실직고했다.

사단 간의 이동은 대체로 불가능하지만 분쟁지역은 예외였다.

핑계 댈 게 있어서 다행이었다.

에라블은 세계 평화와 더 나은 월급을 위해 분쟁지역으로 왔다고 백작에게 고백했다.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자기가 듣기에도 꽤 설득력 있는 개소리였다.

다행히 속아 넘어간 백작은 그간 오해했던 41사단장에게 미안해했고, 자신의 양딸에겐 미친 듯이 화를 냈다.

[이참에 연을 끊자!! 끊어!! 어차피 네 멋대로 할 거면 적은 둬서 뭣해! 그냥 끊어-!!]

라블은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아니, 난 진짜 이렇게 위험할지 모르고 그랬지. 응? 양아버지도 알다시피 내가 상식이 좀 부족하잖아요….”

이럴 땐 정말 이동자라 다행이었다.

[…….]

백작은 내가 이제 무려 14년 차(그중 1년은 의식 불명이었지만)임을 까먹고 설득당했다. 화가 풀렸단 뜻은 아니었다.

[그러니 애초에 그딴 군 생활을 왜 해, 왜!! 그냥 집에 있으면 어련히 먹여주고 재워주고! 대체 네가 뭐가 부족해서!!]

당장 오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백작은 더욱 분노했다.

현재 제2155 행성계 전체가 락 다운된 상태였다. 분쟁지역 인근으로 모든 민간인의 출입이 전부 통제 중이었고, 노블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야 나는 돈이 부족….”

에라블은 질끈 눈을 감았다.

타이밍 좋게 수화기를 귀에서 뗄 수도 없었다. 데제가 직접 백작의 전화를 연결해 귀에 대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라블은 이 우주적 재앙에 저항할 힘이 없었다.

“잘못했어요….”

진짜 고막 터질 뻔했다.

숙연히 기다리며 백작이 있는 대로 소리를 다 지르게 한 다음, 풀 죽은 목소리로 죽는시늉을 했다.

“내가 진짜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요-. 응?”

데제가 개수작하는 에라블을 빤히 쳐다봤다. 어쩐지 이상하게 개꿀 노하우를 털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에게는 감히 쓸 일도 없는데. 왠지 이상하게 유용한 방법 하나가 상장 폐지되는 기분이었다.

“진짜 다시는 안 그럴게. 영상통화? 그건 통신 문제 때문에….”

에라블은 사지에 연성로를 매단 채 변명했다.

“아, 우, 울지 말고. 차라리 소리를 지르지, 아니, 울지 말라니까…. 아, 알았어요. 상황 봐서요. 아니, 진짜 상황을 봐야 휴가를 내든 말든, 아, 울지 마. 응? 자꾸 울면 내가 너무 속상하잖아…. 응? 울지 마요.”

살살 달래는 중에 데제가 슥, 전화기를 가져갔다.

“아브가니스입니다.”

에라블은 얼어서 백작과 통화를 시작한 그를 바라보았다.

“소위는 이제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치료도 잘 되고 있고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백작이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닙니다. 애초에 분쟁지역에 오지 못하도록 제가 막았어야 했는데….”

이어진 데제의 사과에 에라블은 덜덜 떨었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님이 일 년 넘게 연락이 되질 않는데, 당연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군 기밀상 상황을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왜…, 왜, 데제께서 사과를.

“소위는 이제 제가 잘 보호하도록 하겠습니다.”

데제께서 절 왜요…? 아니, 그냥 예의상 하시는 인삿말 같은 거겠지. 불안하게 떨고 있는 에라블에게 그가 상체를 기울이며 낮게 속닥였다.

“아버지한테 금방 돌아가겠다고 말씀드려요.”

에라블은 눈을 껌벅이며 그가 입력해준 말을 녹음기처럼 송출했다.

“금방, 돌아갈게요.”

“내가 잘 보살펴주고 있다고, 되게 잘해 주신다고도 말씀 드리고.”

속닥이는 그의 말을 에라블은 계속 복사해 붙이듯 읊었다.

“사, 사단장님께서 잘 보살펴주고 계세요. 예, 진짜, 되게 잘해 주세요….”

뭐가 재밌는지, 그가 웃으며 미간에 입술을 눌렀다.

하여간 뭐가 됐든 금방은…, 못 돌아갈 것 같은데. 에라블은 몸에 꽂혀있는 시커먼 링겔 줄을 힐긋 보며 생각했다.

“저, 데제. 혹시 실험체로서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까.”

“없어요, 에라블.”

데제가 잠시 더 웃었다.

“정말 한치도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네요. 내 몸뚱이 갈라서 실험하는 취미는 없습니다.”

“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에라블은 저도 모르게 그의 몸을 쳐다봤다가 움찔했다. 그가 셔츠 단추를 풀렀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아버지 목소리 들으니까 좋습니까.”

“예, 예….”

쇄골부터 명치, 그 아래까지… 마치 일부러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차례로 셔츠 깃을 벌리며 그가 미끈한 상체를 드러냈다.

“걱정 많이 하시던데.”

그는 벗은 셔츠를 의자에 툭 던지며 말했다.

“하긴, 하나밖에 없는 딸이 일 년 넘게 연락도 안 됐는데. 속 많이 상하셨을 거야. 앞으로 좀 잘해드려요.”

그녀가 입양아인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입양이 고등급 시그눔 소유자를 흡수하기 위해 노블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식의 비지니스란 사실 따윈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다른 누구보다 이 시스템을 잘 알고 있을 그가 입양아에 대한 양부의 자연 발생적인 부성애를 주장했다. 물론 그는 친자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친자든 양자든 어쨌든 그가 할 만한 말은 아니었다.

악어가 사람 말을 흉내 내는 광경을 목격한 듯 굉장히 당황스러웠는데, 당장은 훤히 드러난 그의 팔이 더 신경 쓰였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니면서 볼 때마다 그랬다.

“연락도 자주 드리고.”

그의 팔은 여전히 타고 남은 목탄처럼 검고 차가웠다. 팔 뿐만 아니라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 일부도 그랬다. 마치 자신처럼….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아요.”

그가 턱을 쥐고 입을 맞춰왔다. 에라블은 숨을 죽였다. 시트에 무릎을 대고 그가 침대 위로 올라왔다. 늘어지는 묵직한 체중에 숨죽인 몸이 가늘게 떨렸다.

“노이즈 좀 떨어트리죠.”

“가, 갑자기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쳐다보니까.”

“저는 진짜 그런 뜻이….”

“너무 눈을 못 떼던데. 부끄러워 혼났잖아요.”

자기 손으로 툭하면 옷을 벗어던지는 남자가 말했다.

“노이즈도 좀 올라갔고.”

“안, 안정제를 주시면….”

“아아. 약 달라고?”

그가 바지 버클을 풀며 되물었다. 에라블은 싸늘한 그의 말투에 꾹 입을 다물었다. 귓가에서 들리는 금속제 버클이 풀리는 소리에 등줄기가 오싹했다.

“난 약 먹기 싫은데.”

그, 같이 먹잔 뜻은 아니었는데…. 그가 바짝 언 귓가에 대고 키득거렸다.

“양보해요, 난 지금 하고 싶으니까. 감각 체크도 하는 김에.”

그리고 에라블은 곧 더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 * *

“…하.”

머리가 복잡하다. 에라블은 한숨을 삼켰다.

데제는 아주 정신 나갈 정도로 잘 해주고 있었다. 노이즈 관리는 물론이고, 심지어 온갖 시중까지 직접 다 들어주었다.

“…….”

한숨을 삼키던 그녀는 재생된 팔을 바라보았다.

재활 과정은 지루하고 고됐다.

그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성로에 손을 넣어 그녀의 감각을 확인했다.

“느껴져요?”

검게 타버린 그의 차가운 손이 연성로 안, 단절된 부위를 눌러 감각을 확인했고, 그 부위는 날이 갈수록 아주 조금씩 조금씩 미세하게 길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깨에서 팔꿈치로 내려와 있었고, 또 정신을 차려보니 팔꿈치에서 손끝으로 내려와 있었다.

그렇게 아주 느리지만 차근하게 팔다리가 재생성됐다.

그 길고 지루한 모든 과정을 데제는 찬 손끝으로 오로지 혼자 다 돌봐주었다.

마침내 감각이 느껴졌을 때, 그의 손끝에서도 온기가 느껴졌다. 그 뒤 연성로가 떼어지고 재활 치료에 돌입했다.

링겔은 여전히 떼지 못했지만….

에라블은 링겔 줄을 따라 몸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검붉은색 액체를 바라보았다.

그 불길한 색이 어쩐지 눈에 익었다. 분명히 데제 피가 저런 색이었던 것 같은…,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비록 링겔 줄이 달렸지만 이젠 제법 자유롭게 움직이는 손으로 오랜만에 패드를 켰다.

물론 머리가 복잡해서 제임스를 봐도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가 완결 나 있었다.

일 년은 생각보다 꽤 긴 시간이었던 모양이었다. 드라마도 완결이 났고 최신 로맨틱 시리즈도 VOD로 풀려 있었다.

순수하게 그냥 보던 드라마 뒷 내용이 궁금해서, 에라블은 패드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정말 순수하게 궁금증 때문이었다.

“미로야-”

그녀는 드라마 정주행을 시작했다. 먹은 간식 쓰레기를 미로의 입속에 던져 넣으면서.

당연히 첫 편부터였다. 뒤의 내용을 제대로 보려면 앞에 부분을 숙지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치료가 덜 끝난 탓인지, 노이즈가 없는데 왠지 노이즈가 잔뜩 낀 것처럼 정령 소환에 렉이 걸려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궁금증이 너무 커서 곧 그런 것도 다 잊고 제임스의 얼굴에 완전히 집중했다.

그러다가 데제한테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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