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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주인이 필요하다-60화 (60/132)

60.

“안 죽었네?”

“응, 나 다음 회차에도 팀장 달아야 돼.”

“다음 회차가 없으면?”

“그럼 더 바랄 게 없고.”

반박할 수가 없어서 아리에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걸로 끝이라면 더 바랄 게 없었다. 그는 비르고와 더 말을 섞지 않고 올에게 마저 보고했다.

“근처에 두 개체 더 있습니다. 위치도 확보해 두었고요. 몰린시 처리는 결정되었습니까?”

“아직. 상위계에서 압박이 들어오고 있긴 해요.”

“이제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합니까?”

“모르죠, 이제 어떻게 될지.”

맞는 말이었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아리에스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발밑으로 검은 원형질이 우글거리는 행성이 보인다.

그들조차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소모되고 있었다. 더 볼 수가 없어 아리에스는 고개를 돌렸다.

“남은 두 마리마저 잡아 오겠습니다.”

어쨌든 이제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날 것이다.

아직 이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아리에스는 그 가능성에 안도감을 느꼈다.

* * *

찔걱, 찔걱찔걱-.

쏟아낸 검붉은 핏물에 잠긴 채, 링크선에 뒤엉켜 있는 그는 아주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쏟아진 핏물은 가닥가닥 링크선이 되어 실패처럼 그의 내부로 다시 엉켜 들어갔다.

잘박잘박하던 핏물이 바닥을 드러내면 그는 조금씩 다물어가는 피부를 찢어 콰르르…, 다시 핏물을 쏟아냈다.

“이제 코뼈가 붙었네요.”

그가 에라블의 뺨을 다정하게 쓸었다. 그러다 빈 잇몸을 매만졌다.

“이는 아직이고.”

잘라낸 혓바닥에서 흐른 검붉은 피를 잔뜩 먹이고, 근육이 드러난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뱃속이 그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주 귀여웠다. 그는 조금 웃었다.

“팔다리는 깨어나면 연성로를 붙여야겠어요.”

보통 팔다리는 잘리고도 한참은 적응을 못 하는데, 에라블은 포기가 빨랐다.

덕분에 스스로 팔다리가 다시 붙었단 사실을 재인지 하기 전까지 온전한 재생은 무리였다.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요.”

살아 움직이는 게 보고 싶다고, 그는 귓가를 핥으며 작게 속삭였다.

이제 그만 울고. 가끔 정신을 차릴 때마다 에라블은 울기만 했다.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며 우는 에라블의 몸에서 데제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조금씩 느리게 완성되어 갔지만, 그는 긴 시간 동안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그 모든 것에 공을 들였다.

식어있던 살갗은 주술 문자를 흡수해 혈색을 띠기 시작했고, 심장은 다시 살아있는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군사법원에서 에라블의 소환장이 날아왔다. 무단이탈에 관한 소환 명령이었다.

모두가 에라블의 상태에 대해 과도하게 신경을 쓰고 있다 보니 오히려 그런 쪽의 일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황당한 헤프닝이었다.

분쟁지역 이상 상황에 휘말려 부상당한 것으로 처리하자, 이번엔 버밀리언가 쪽에서 소송을 하겠다고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2황자 쪽부터 싹 정리해.”

“아브가니스 가도 처리할까요?”

올이 조심스럽게 물었고, 데제는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정상적이고 장기적인 관계를 위해선 가문이 필요하다.

“곧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려.”

“예, 알겠습니다….”

올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거두고 물러 나갔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2황자의 살해 혐의로 13황자가 기소되고, 다시 몇 달이 지났을 때쯤.

에라블이 마침내 의식을 회복했다.

* * *

의식은 끊겼다가 붙으며 드문드문 이어졌다.

완전히 정신을 차렸을 때, 에라블은 자신이 중대 내 의무실 안에 누워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백색 등, 숨쉬기 적당한 온습도…, 그리고 검붉은색 링거.

다음으로 인식한 것은 그 링거였다.

핏물처럼 검붉은 액체가 링거줄을 따라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링거줄은 길게 내려와 오른쪽 발등 혈관으로 이어졌다. 하나 남은 그….

에라블은 흡-, 숨을 몰아쉬었다.

그것뿐이다. 몸뚱이에 링거 바늘이 꽂힌 그 오른쪽 다리 하나뿐이었다. 식은땀이 올라왔다.

우습게도 도리어 그것이 현실감을 일깨웠다. 눈앞이 핑 돌며 시야가 어그러졌다.

“그만 울어요.”

에라블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데제가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계…, 계셨습….”

목소리가 나와서 에라블은 되려 이상했다.

“네, 있었어요.”

그는 지그시 시선을 마주하며 뭔가를 기다렸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 몰라 에라블은 눈치를 보며 저도 같이 기다렸다. 그 꼴이 어이가 없어 데제는 실소를 흘렸다.

“이번엔 진짜 정신을 차린 모양이네?”

“…저, 이번이라면.”

“깊게 생각하지 말아요. 머리도 별로 안 좋으면서.”

그래도 아카데미 장학금 받으면서 다녔는데…. 조심히 말씀을 드려볼까 고민하는 중에, 데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뭔가 익숙하게 의료기기를 조작했다. 그의 두 손이…, 이상하다.

에라블은 다 타버린 재처럼 새카만 그의 두 손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왜 손이….

“내일부터 다른 부분도 신체 연성에 들어가죠. 의식이 없을 땐 인식을 못 해 보류 중이었습니다. 연성과 재활은 당분간 여기서 진행할 겁니다. 익숙한 환경이 나을 테니까.”

“저….”

에라블은 조심스럽게 입을 떼다가, 다가온 그가 아래 눈꺼풀을 내리며 동공을 확인하자 도로 가만히 다물었다.

눈가에 닿은 그의 손끝에 온기가 없다. 식은 고깃덩이처럼 섬뜩하게 차가웠다. 에라블은 눈을 깜박이며 파악할 수 없는 일을 파악하려 애쓰는 대신, 해야 할 말을 찾았다.

“제가 아까. 자료를 몇 가지 전송했습니다. 2황자쪽에서 저희 소대 일을 알아낸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에라블.”

“제가 2황자 쪽 메인 서버에 접속해 증거를 폐기하고…, 예?”

“내 얼굴 보면 보고 할 것밖엔 안 떠오르나 봅니다?”

“죄, 죄송합니다.”

에라블은 어쨌든 각오를 다졌다.

잘 죽는 것도 실패했으니 남은 건 처분뿐이었다. 왜 죽지도 못하고 살아났는지 억울해할 상황이 아니다. 어떻게든 나 하나만으로 처벌이 그칠 수 있게….

“왜 죽고 싶었어요?”

이 말은 조금 어폐가 있었다.

“저 안 죽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왜 자살 시도를 했어요. 타겟 안 되게 내가 밤새 봉사도 하고 적합자 등록도 다 해뒀더니, 작정을 하고 제 발로 죽으러 나섰잖아. 얘기 들어보니까 원래 부소대장 불렀다던데?”

“저, 자살 시도가 아니라 순직을 노렸습….”

“아, 순직.”

그는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분명히 웃으면서 긍정을 해주고 계시는 데 불안했다.

“괜찮지. 순직 보상 시스템이 잘 돼 있잖아, 우리. 그래서 잘 죽어 보려고 했어요?”

“그….”

“그렇게 잘 죽고 나면 남은 가족들은 잘살 것 같아서?”

예…, 라고 대답하면 왠지 안 될 것 같았다. 바짝 굳은 에라블의 귓가에 대고 데제가 달게 속삭였다.

“그거 다시 생각하는 게 좋을 텐데.”

얼굴을 감싼 그의 차디찬 두 손에 에라블은 숨을 죽였다.

그가 굳은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춰왔다. 어둑한 손과 달리 입술은 따뜻했다.

하지만 그의 몸속, 그 안쪽에서 뭔가가 기어 다니는 듯했다. 건드리면 밖으로 터져 나와 사방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것만 같았다. 간이 졸아붙고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런데도 닿아 오는 입술은 또 너무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에라블은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데제가 그녀의 굳은 뒷목을 차가운 손으로 가만히 주물러주며 가볍게 입을 맞추다가, 이내 작은 턱을 열고 혀를 깊게 넣어왔다.

에라블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뭔가….

‘…어.’

뭔가가, 목 안쪽을 훑고 있었다. 잇새로 가는 신음이 샜다. 그가 버둥거리는 몸을 가만히 찍어 누르며 목구멍을 싹싹 훑었다.

깊숙이, 더 깊숙이-.

공포가 치밀었지만, 동시에 뜨거운 적합자의 체온에 몸은 녹아내렸다.

“…흐읏.”

열이 오르고, 숨이 가빠지고…, 그렇게 흐릿흐릿해진 눈으로 미형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뿌연 시야로도 저를 빤히 응시하는 그의 시선이 선명했다. 목 안쪽을 훑던 두툼한 혀가 입천장을 긁었다.

“다음 달에 보자고 하더니.”

“…예?”

숨을 헐떡이며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나한테 다음 달에 보자고 해놓고선 일 년씩이나 잠들어 있으면 어떡해요.”

웃으며 데제가 똑똑 떨어지는 눈물을 손끝으로 쓸어주었다.

“…일 년.”

에라블은 눈을 껌벅이며 정신 나가게 아름다운 그의 얼굴을 살폈다.

“일 년 말이십니까…?”

그는 턱을 기울여 점점 더 커다랗게 눈이 홉떠지는 얼굴에 쪽쪽, 입을 맞추며 이죽거렸다.

“아까는 무슨, 당신 의식 불명 되고 벌써 일 년 지났어요. 참다못한 백작이 날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지.”

섬뜩한 소식이었다.

에라블은 다시 정신을 잃고만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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