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먹이를 찾고 있어….”
케이는 검게 물들어가는 몰린시를 올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먹이를 찾고 있다고…!”
마지아는 땅바닥에 엎어져 구토를 하다가, 홱 고개를 돌린 그와 시선을 마주하고 덜덜 떨었다.
“계약자 불러.”
“예, 예?”
“당장 계약자 부르라니까! 너 AT 계열이잖아. 생츄어리 소속일 거 아니야!!”
마지아는 허둥지둥 시그눔을 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슬롯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 창고를 벗어났는데도 여전히 시그눔은 닫힌 상태였다.
“빨리 부르라니까 뭐 하는, 아, 하아. 이 X 같은 새끼들. 또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케이는 손짓으로 마지아를 부르곤, 가까이 다가온 그의 멱살을 잡아채 윽박질렀다.
“당장 기어 나오지 않으면 바로 헬 근처로 가서 포탈을 열어버릴 거다. 지금 원형질 범람 중인데 열면 그쪽으로까지 다 쏟아질걸? 그러면 그쪽도 이렇게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는 못하시겠지.”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
마지아는 기절할 것만 같았다. 단숨에 막혔던 시그눔 채널이 열리며, 노이즈가 짙게 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제 앞에 생츄어리 교재에서나 보던 존재가 서 있었다.
‘무, 무슨…?’
사제는 황족보다 더 어려운 존재였다.
국가 기념일에나 잠깐 왕림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존재였고, 최근엔 그조차도 해주지 않아 제국의 위상이 날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 대단한 존재에 중대장은 그 어떤 감흥도 없는 듯했다.
“아니면 뭐 하는 거겠어? 내가 지금 그쪽하고 사이좋게 담소나 나누게 생겼나.”
오히려 그는 빈정거리고 있다.
[당신들께서 생츄어리에 적대적인 것에는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13황자의 행동에는 저희 책임이 없….]
기계 질의 목소리에 케이는 헛웃음을 흘렸다.
“뚫린 입이라고.”
[칼리투스 님. 이런 식의 무례한 태도는 대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화할 생각 없으니까, 닥쳐. 너희와 오래 말 섞으면 속이 안 좋아져.”
[부디, 언사를 조심하십시오.]
재차 경고한 사제는 이어 달래듯 말했다.
[저흰 이미 몇 차례나 황자에게서 신성을 회수해 반환하려 했습니다. 그것을 거부한 것은….]
“염병,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내가 진작.”
퉤, 케이가 욕설과 함께 바닥에 침을 뱉어냈다.
“하나 마나 한 소린 됐고, 저 위에 보이시지? 미허가 행성 하나 통째로 먹히고 있는 거. 저기에도 너희 소속 어택커들이 족히 수백은 있었을 거야. 얘를 포함해서.”
[…….]
“그러니 너희가 본 걸 얘기해봐. 다 보고 계셨을 거 아니야. 계약자들 기지국 삼아서.”
남의 집에 불났으니 당연히 관음 병자들이 구경을 오셨겠지, 들으라는 듯 중얼거린 케이가 계속 말을 이었다.
“뭔가가 일어나고 있어.”
분명 변곡점이 생겼다.
헬이 저런 식으로 본체를 드러냈던 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던 일이다. 그 괴물은 멸망의 끝에서도 본체를 드러냈던 적이 없었다.
이게 무슨 종류의 새로운 절망인지 케이는 확인해야 했다.
“인간의 인지로는 보지 못한 것, 그가 저 땅에 와 저렇게 본체를 다 쏟아낸 이유. 너흰 분명히 봤을 거야. 그러니 말해봐. 판테온 1신위로 정식 요청하는 거야.”
이미 수도 없이 되돌아온 세계였다. 이미 셀 수 없는 멸망을 겪었고, 다시 반복되었지만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었다.
[불가합니다.]
멈칫한 케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불가하다고?”
[이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쪽과 양가 불가침인 것 아시지 않습니까. 임계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입니다. 자극하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사제님. 무슨 문제인지 알아야 해결을 할 것 아닙니까. 이대로면 임계점 오기도 전에 다 죽을 판이라고.”
[일부 희생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일부가 아니면?”
[과하게 확산되면 저희 쪽에서 나설 겁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못 막아. 너희는 사냥개들의 상대가 못 돼. 단 한 번도 돼 본 적이 없다고.”
[화가 나신 건 이해합니다.]
“아니, 댁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니까? 너희들이 대체 뭘 만들어 놓은 건지, 전혀 모르고 있어. 항상 몰랐지. 뭐, 아무래도 없어. 생츄어리가 도움이 된 적도 없었으니까.”
[칼리투스 님, 진정하십시오.]
“진정이고 뭐고, 그냥 상황이나 알려달라고.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아니면 쟤 데리고 위에 올라가서 그냥 포탈 열고. 어차피 망한 거 다 같이 죽자고.”
지목당한 마지아가 벌벌 떨었지만, 케이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불가합니다.]
케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대꾸했다.
“좋이. 그럼 지금 올라 가…!”
[죄송합니다만, 그 역시 불가합니다.]
케이는 몸이 묶이는 것을 느꼈다. 그는 오래 살았다. 견딜 수 있는 것보다 더 오래. 개들을 견뎌왔고 그 괴물을 견뎌왔다. 그런 그를 고작 생츄어리의 어린 것이 묶을 순 없었다.
하지만 구속 가능 여부와는 별개로 이런 상황에 신물이 치밀었다.
“네놈들은 항상 이런 식으로…!”
케이의 얼굴이 세게 어그러졌다.
구속 때문이 아니다. 사제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기 때문이었다. 빼곡히 이빨이 달린 그림자가….
사제가 이상함을 눈치챘을 즘엔 새카만 촉수가 이미 그를 휘감고 난 뒤였다. 케이는 틈새로 공포에 질려가는 사제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조차 이내 촉수에 가려 곧 사라져버린다.
“…너.”
케이는 사제를 먹어 치운 비르고를 노려봤다.
목 위로 촉수 다발을 늘어트린 비르고가 그 자리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를 목격한 마지아는 다시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구역질에 비명까지 질러대느라 아주 분주하다. 그 꼴을 가만히 보던 놈이 마침내 잘린 머리를 재생시켰다.
“역시 에라블 그게 이상한 거야.”
“네 놈 앞에 두고 간식이나 구워 먹던 애한테 비하면 누구든 정상이지.”
“지도 처먹고선.”
“안 처먹었어, 개새끼야. 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디 처박혀 있다가 이제 기어 나와.”
비르고가 관심이 부끄럽다는 듯 몸을 배배 꼬았다.
울화가 치밀었지만, 어쨌든 잘된 일이었다. 이 개새끼가 있으면 사제 따윈 필요 없다. 하지만 개새끼는 달리 개새끼가 아니었다.
“나도 몰라.”
“뭐?”
“모른다고, 자기야. 자꾸 짖어대면 이번엔 신전으로 안 끝난다?”
“씨X, 진짜 이 새끼가.”
다시 울화통이 터졌지만, 말싸움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대체 너 사제는 왜 처먹은 건데?”
“내가 안 먹었어. 배달이었지. 고열량 먹이가 필요하거든.”
“그게 왜?”
“주인님 몸도 일단은 인간 베이스잖아. 생체 활동이 늘면 그만큼 열량이 필요하거든. 라이프 베슬 구성에 열량 소모가 엄청나더라고.”
“…뭐, 뭘 해? 라이프 베슬?”
“에라블이 죽었어.”
케이의 눈이 커다랗게 홉떠졌다.
“이젠 죽지도 못하게 되겠지.”
“그래서 베슬을 구성한다고? 네 주인이?”
어이가 없었다.
“그럼 진짜…, 걔한테 진짜 진심이었다고? 어째서?”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비르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도 미스테리라고. 근데 뭐든 여기서 더 나빠질 것도 없잖아.”
“그야….”
그렇긴 하지만, 케이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쟤도 먹이로 배달해 버리기 전에 네가 말리든가.”
비르고의 지적에 그는 제 다리를 붙잡고 아직까지 구역질을 해대고 있는 마지아를 내려다보았다.
“사, 살려…. 사, 살려 주세요….”
“…….”
“괴, 괴수가… 중대장님 저, 저 괴수가…!”
우웨엑-, 구토하는 틈틈이 비르고에 대한 비난도 하느라고 일병은 아주 바빴다.
그 꼴을 보며 비르고가 미간을 구겼다.
“그냥 쳐다보지 마, 개새끼야. 얜 저칼로리야.”
케이는 퀭한 눈으로 섬뜩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씨X,’
하지만 비르고의 말대로 여기서 더 나빠질 것은 없었다. 이제 몰린시는 원형질에 완전히 검게 덮였다. 담배를 빼 입에 무는 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어지간하면 여기서 도망치는 게 좋을 거야. 번질 수도 있거든. 휘말려서 너처럼 상한 게 우리 주인님 뱃속에 들어가면 어떡해.”
“씨X, 라이프 베슬 하나 만드는데 무슨….”
“그냥 베슬이 아니라서.”
“그건 또 무슨 개 같은 소리….”
케이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비르고는 이미 사라져버린 뒤였다. 개새끼가 말을 하다 말고 갔다.
“망할 새끼.”
퉤, 그는 고개를 틀어 침을 뱉어냈다. 침엔 핏물이 섞여 있었다. 원형질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고 있었던 탓이었다.
* * *
“잡아 왔습니다.”
아리에스가 함선 안에 들어서며 하는 말에 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여섯 마리째네요.”
“일곱이에요, 비르고가 하나 더 잡아 왔습니다.”
아리에스는 못마땅한 얼굴로 함선 한 켠에 서 있는 비르고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