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는 주인이 필요하다-58화 (58/132)

58.

“…대체 널 어떻게 해야 할까.”

의료 기기에 눕혀놓은 에라블은 아주 고요했다. 덤덤한 목소리도, 담담한 시선도 없다. 체온처럼 싸늘해지는 기억뿐이다.

“…데제.”

왜요.

데제는 제 기억 속에서 떠드는 에라블에게 대꾸했다.

“데제…, 저 집에….”

“집에 좀….”

“…집, 집에, 가고 싶어. 우리 집….”

에라블.

“그만, 집에….”

에라블, 에라블…, 그렇게 소중한 곳에 내가 쫓아가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래도 가고 싶어?

버밀리언들조차 내 눈에 띌까 무서워서 이 꼴이 됐으면서. 나한테 진짜 가족을 보여줘서 어쩌려고.

“아브가니스!!”

데제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느릿느릿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황금으로 치장한 황족이 제게 한참 이런저런 말을 쏟아내는 것을 빤히 보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쟤가 누구였더라, 아, 알 것 같은데. 데제는 좀 전 에라블이 전송한 자료의 내용을 되짚었다.

- 현재 몰린시에 28개의 소형 포탈을 운영 중. 좌표 첨부.

- 제국 감찰부와의 커넥션 증거 첨부.

- 6개의 중소 무기상을 규합, 재고를 압수한 정황 포착. 관련 자료 첨부.

- 13황자 쪽의 보급로를 탐색 중으로 파악.

- 세력 규모는 기본 프로토콜 기준 1127점.

‘아, 2황자.’

에라블이 목숨 바쳐 보내온 소중한 2황자에 대한 정보를 더듬으며, 그는 잇새로 메케한 연기를 뱉어냈다.

‘역시 유용하다니까.’

“저를 살려두시면 유용한 쓸모가 있습니다!”

에라블 버밀리언은 본인이 첫 만남에 장담했던 대로, 유용하고 쓸모 있는 여자였다.

“전 특수능력 계약자입니다!”

흔치 않은 특수 능력 계약자, 황궁 정원, 소매가 한 뼘은 작던 녹색 체육복과 샛노랗던 운동화. 바닥에 밀쳐지고 굴려져 엉망진창에 머리도 다 엉클어진 채로 살려 달라고 외치던 그 순간에도, 균열의 틈바구니에 신경이 다 가 있던 작은 여자.

‘당신은 그때도 내내 집에 가고 싶었던 거겠지.’

사실 어느 순간부터 데제는 그녀를 미워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했다. 죽일 수만 있었다면 아마 내 손으로 죽였을 거다.

“겁도 없이 황당한 짓을 저지르는군!”

왜냐하면…. 내가…, 정말 너 때문에 이것들을 다 받아들이고 싶어져서.

“아나나사가 대체 널 어디까지 감싸줄 거라 생각하는 게냐!”

너 때문에 자꾸 내 등에 올려진 이 구더기를 다 감당하고 싶어져서. 내가 너 때문에 이것들을 위해…, 내가…, 이 꼴로 계속 살고 싶어졌거든.

정말 너 때문에.

그러니 우린 여기서 헤어지는 게 맞다.

데제는 웃으며 몸을 숙여 뭉개진 에라블의 입속에 혀를 집어넣었다.

“대체-!”

해진 잇새를 깊숙이 헤집는다. 살 젖은 소리가 질척했다.

“당장 이, 이리… 끄…, 끕-….”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주변 소리를 다시 다 누르고 나니, 그 소리뿐이다.

그는 여자의 싸늘한 뺨을 손바닥으로 깊이 감쌌다.

“에라블.”

반응 없는 눈동자를 다정히 마주 보며, 그는 자꾸 말을 걸었다.

“대답해 봐요.”

미끈한 고개를 기울여 다시 반응 없는 입술에 입을 맞췄다. 나한테 질린 게 맞나 봐?

“차갑기는.”

그는 키득거리며 으드득, 제 혀를 깨물었다. 잘린 혓바닥에서 쏟아진 피가 에라블의 입속으로 떨어진다. 목구멍을 열어 고인 핏물을 잔뜩 먹였다. 그러면서 의료기기 위로 올라가 셔츠 단추를 풀었다.

“…페어 맺죠.”

엉망이 된 몸과 몸을 겹치며 그가 말했다.

“우리 만난 지도 벌써 몇 년짼데. 슬슬 맺을 때도 됐지. 프로포즈는 나중에 깨어나면 해줄게요. 다시 기절이나 하지 않을까 모르겠네?”

그는 웃으며 손톱을 세워 제 상체를 갈라냈다.

갈라낸 내부에서 괴수의 촉수가 우글거린다. 그 사이를 비집고 검붉은 핏물이 잠잠한 에라블의 몸속으로 콰르르 쏟아졌다.

“하.”

제 핏물에 젖어 드는 그녀를 보며 그가 제 입술을 핥았다.

망가진 몸이 더 심하게 부서지지 않게 움직임은 느릿느릿 했다.

막대한 열량을 소모하며 링크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완성 시키려면 더 많은 칼로리가 필요하다.

“아아…, 여기가 그 집이었구나?”

곧 정신도 연결되어 갔다.

“작은데. 여기도 수감소로나 쓰면 될 것 같네요. 뭐, 융자? 그럼 은행 집이잖아.”

방 3개짜리 작은 아파트, 식탁 위엔 낯선 모양의 음식들. 곳곳에 행복했던 가족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잔뜩 힘줘 색칠해놓은 가족 그림 같은 것들이….

“…에라블, 그림 진짜 드럽게 못 그리네요.”

동그랗게 그려놓은 부모 사이의 어린 딸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

하지만 당신은 이미 늦었어. 아주 늦었지. 그는 웃으며 몸을 숙여 이가 빠진 에라블의 치열을 훑었다. 낯선 음식들 대신 제 살덩이를 먹이려는 듯 깊숙이 훑었다.

“허기지네요….”

속삭이며, 그의 입가에 고인 침이 젖은 소리를 낸다.

이어진 링크가 다시 막대한 열량을 소모하며, 그의 혈관 곳곳에 수억 가닥의 실타래처럼 뒤엉켰다.

“라이프 베슬이에요.”

안구가 빠지고 으깨진 작은 머리를 감싸고 피와 뇌수에 젖은 머리칼을 가만히 넘겨주면서. 그는 입을 맞춘 채 다정히 속삭이고 있었다.

에라블의 얼굴이 조금씩 원래대로 돌아간다. 그리고 딱 그만큼 그의 얼굴이 망가져 가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당신의 생명이고 숨이니까 소중히 다뤄줘야 해요.”

발밑으로 무언가 검고 우글거리는 것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싫어도 별수 없어.”

사고 친 건 당신이니까, 그는 조그마한 턱을 움켜쥐고 초점 없는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러니까 이만 이쪽으로 돌아와요.”

그 발밑으로 넘친 어둑한 것이 먹이를 찾아 몰린시 밖 다른 행성에까지 사방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 * *

“소위님!!”

사출구 밖으로 밀려난 마지아는 닫히는 두꺼운 철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

밀려난 건지 아니면 그냥 그런 척을 한 건지 본인도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보조 장비 켰다고 신체 2레벨에게 무력하게 떠밀린 건 말이 안 된다.

그러니까 그녀를 버려두고 그냥 혼자 빠져나온 것이다.

마지아는 혼란스러웠다.

이제껏 봐왔던 소위님은 대체 누구였는지.

연방, 무기 밀매, 상위 정령, S등급, 41사단장의 적합자…. 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돌아간 발목뼈를 맞추던 모습은 대체….

마지아는 신음도 없이 뒷머리 살을 후벼 파 작은 기계 조각을 꺼내던 그녀의 모습까지 떠올리곤 치를 떨었다.

‘…그래, 다 거짓말이었어.’

그는 사출구에서 몸을 돌렸다.

다 거짓말이었던 거야! 계속 우리를 속이고 있었던 거라고! 다, 다, 전부 다! 무기를 빼돌려 팔아먹고 있었어! 우린 다 속은 거야! 속으로 악을 쓰며 그는 에라블이 알려준 좌표를 찾아갔다.

그녀의 말대로 임시 거점이었다.

지하 두 번째 방에서 감자 박스를 찾은 마지아는 울음을 터트렸다.

“이거 갖고 어떻게 버텨요….”

“감자라도 심든가.”

안 심으면 굶어 죽게 생겼다. 마지아는 감자를 끌어안고 히끅대며 울었다. 이게 정말 마지막이라고, 잘 살아, 히죽 웃던 그 얼굴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그럼, 소위님은…, 혼자 버려두고 온 주제에 마지아는 울어댔다. 하지만 돌아가도 다른 선택을 할 것 같진 않았다.

그렇게 히끅거리다가 머릿속을 뒤흔드는 굉음에 놀라 몸을 웅크렸다.

“…어.”

뛰쳐 나가보니, 도망쳐 온 먼 방향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소, 소위님…?”

폭팔음과 동시에 검붉은 연기가 이 거리에서도 보일 만큼 치솟고 있었다.

“소위님!!”

뛰쳐나가려 했지만, 더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소리가 들렸다.

고오오-.

행성의 대기를 일그러트리는 소리가…. 하늘은 어두웠다. 그리고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고오오오오오오―.

마지아는 코를 훔쳤다. 이어 눈과 귀도 훔쳤다. 몸의 모든 구멍에서 갑자기 피가 새고 있었다. 여기저기를 훔쳐대며 눈을 껌벅였다.

그 눈을 껌벅인 찰나, 검은 타르와 같은 것이 지평선을 덮으며 수해처럼 밀어닥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벌레와 같았다. 마치 구더기와 같았고, 키틴질의 갑각을 가진 파충류와 같았다. 혹은 마디가 짧은 뱀과도 같았고 점액질의 환형 생물과도 같았다.

알고 있는 그 어떤 생물과도 닮지 않은 것이 한순간에 현실을 덮고 있었다.

이게 현실 같지가 않았다.

현실과 유리되어 그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마지아는 알 수 있었다. 이제 자신의 차례란 사실을.

죽음은 마땅했다. 다가올 죽음에 살과 피와 뼈를 바치는 게 마땅했다.

그는 몸에 힘을 빼고 기꺼이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런 그를 잡아챈 것은 중대장인 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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