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는 주인이 필요하다-55화 (55/132)

55.

“그건…, 그건 또 뭐에요…?”

조금 멍한 목소리로 마지아가 물었다.

“인식표.”

턱관절에도 보조 장비를 넣어둘 걸. 제발 입 좀 다물었으면 좋겠는데. 에라블은 인식표가 남은 시간도 다 못 채우고 터지기 전에 다시 꽂아 넣으며 인상을 썼다.

벌어진 살점이 고기 치대는 소리를 내며, 달칵, 인식표가 맞물린다. 시간을 확인한 에라블은 두꺼운 콘크리트 벽을 올려다보았다.

남은 제한 시간은 약 4시간.

두꺼운 콘크리트 벽은 발신 신호를 완벽하게 차단시키고 있었다.

* * *

“버밀리언 소위의 신호가 끊어졌습니다.”

데제가 그 보고를 들은 것은 시험 무기의 최근 성능 테스트 결과지를 넘겨보고 있던 도중이었다.

두 황자가 서로 열심히 싸우기 위해선 막대한 지원이 필요했고, 그러려면 또 열심히 일을 해줘야만 했기 때문에 그는 늘 바빴다.

“왜, 인식표 빼고 튀었어?”

종종 있는 일이긴 하다.

“몰린시에 있는 것 같습니다.”

“에라블이 왜?”

데제는 결과지에서 눈도 돌리지 않고 물었다.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나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조심스런 대답에 그는 픽 웃었다.

“거기 있는 애들은 뭐하고?”

“이쪽과 연락이 안 돼서 대기 중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래?”

아리에스는 질끈 눈을 감았다.

80콜로니에는 중대장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요원 하나를 포함해서, 2황자의 요원들이 꽤 여기저기 퍼져 있었다.

그들이 매번 41사단의 꼬리를 잡고 늘어졌고 대부분의 회차에서 41사단은 군수물자 관리 미흡을 인정했다.

그렇게 41사단의 기세가 한풀 꺾이면서, 황제의 지지를 받는 13황자와 2황자와의 기울기가 조금 더 평형을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높은 확률로 소대원 한 명이 심문으로 희생당하곤 했다.

보통 이번 회차에서 심한 우울증으로 의욕이 없는 애가 떠맡고 일찌감치 탈락했다. 그랬는데….

이번엔 그 한 명이 에라블이 된 것이다.

“이번엔 우리 안 걸리겠네?”

에라블이 자백할 리가 없었다. 하면 차라리 다행이다.

“우리 황자님이 날 안쓰러워하는 눈빛도 이번엔 못 보겠고.”

황자는 그를 놓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막대한 손해를 봤지만, 황자는 오히려 매번 데제를 이해했다. 후작가의 진짜 적통이 아니니 사재 축적을 이해한 것이다. 심지어 이후로 더 퍼주고는 했다.

웃긴 일이었다.

그게 너무 웃겨서 데제는 항상 80콜로니로 소대가 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얼마나 남았어?”

인식표는 6시간 동안 신호가 끊기면 자동으로 터지게 프로그램되어 있었다.

“4시간 남았습니다.”

4시간.

그러니까 이대로 4시간 뒤면, 에라블 버밀리언은 죽게 될 것이다.

* * *

죽는다.

에라블은 이미 한 3주는 전에 내렸던 결론을 재확인했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그 안에 신호를 보낼 방법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여기서 나가서 신호를 보낸다 해도 어차피 결국엔 죽는다.

왜냐하면 내가 잡혔기 때문이다.

사중성계의 파장과 비 물리계 망자 군체의 방해도 뚫고 신호를 보내는 인식표가 인간이 만들어낸 4m의 콘크리트 벽과 차단기는 뚫지 못한다.

잡히면 터져야 하니까. 제한 시간 전에 터지든, 후에 터지든. 정체가 발각된 인식표 사용자는 처리된다. 인식표 사용자인 걸 들키지 않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쓸모가 없다고 판단돼 처분당하는 것이다. 인식표 사용자들의 말로가 다 그렇다. 유일한 예외는 원작의 황자 뿐이었고, 다칠지언정 죽지는 않는 그와 나는 처지가 많이 달랐다.

나는 있으면 편한 것이었지, 없으면 안 되는 그런 종류의 필수 불가결한 것이 아니었다.

꼬리가 잡혀 괜한 관심이나 끄는 나를 개들이 가만 놔둘 리가 없었다. 여기서 터져 죽지 않으면 나중에 개들이 터트릴 것이다.

그리고 폭사한 내 잔해를 보며 햄버거나 먹으러 가자고 지들끼리 떠들어 대겠지.

어차피 살 생각도 없긴 했지만, 생각하니 열 받는다….

에라블은 자리에서 일어나 발목과 무릎의 APU를 연결했다. 박살이 난 발목뼈가 강제적으로 맞춰진다.

“소위님!!”

앓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돌아간 뼈를 맞추는 모습에 마지아가 희게 질려 소리를 질러댔다.

“목소리 좀 낮춰. 사람 오면 둘 다 힘들어져.”

몸 안의 APU를 전부 기동시켰다. 기동이 끝난 후엔 발목뼈 맞추는 것 정도완 비교도 안 될 고통에 시달리겠지만, 뭐, 그때쯤엔 아무래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제가, 제가 힘들어질게 뭐가 있어요?”

고개를 돌린 채 마지아가 짓씹듯 물었다.

“왜? 넌 무사히 돌려보내 준다고 했어?”

“…….”

마지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거 안 믿는 게 좋을걸. 어차피 여기 있다간 너도 개죽음이야. 나 지금 되게 솔직하다. 자백제 맞아서.”

“…말 되게 잘하시네요. 아까 이빨 나가는 거 다 봤는데.”

“보조 장비로 인한 각성 효과야.”

마지아는 검게 핏줄이 올라와 있는 에라블의 얼굴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떨어트렸다.

“소위님 진짜 뭐에요? 진짜 뭐 하는 사람이냐고요!”

“5년 차 41사단 소속 보급 장교. 에라블 버밀리언. 27세. 소리 그만 지르고.”

“41사단 소속…? 전출 온 게 아니었어요…?”

떨리는 눈으로 날 쳐다보다가 마저 물었다.

“…나한테 팔아먹은 볼랴 맥주 원가가 얼마에요.”

“1.5cp.”

“6cp라더니!”

“더 물어볼 거 있으면 일단 움직이면서 해. 소리는 지르지 말고. 신체 4레벨이지? 잘 따라와.”

마지아는 시그눔 채널을 여는 에라블을 보며 눈을 크게 홉떴다. 신호가 전부 차단돼 있는데, 지금 채널링을 한다는 건 A등급 이상이란 뜻이었다.

“S, S등급…?”

제국에서도 특별 관리하는 S등급은 그 자체로 부와 명예를 모조리 거머쥘 수 있었다.

단승 작위까지도 받을 수 있는 게 S등급 사용자들이다.

“미리 말해 두는데, 아무것도 묻지 마. 뭐, 결국 네 마음대로 할 테지만, 알아서 좋을 거 없어. 난 분명히 경고했다.”

“소위님 S등급이에요?!”

“어.”

“그, 그럼 소위님이 진짜 사단장 적합자….”

“어.”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마지아는 조용히 움직이는 에라블의 뒤를 허둥지둥 쫓으며 연신 중얼거렸다.

그녀는 수월하게 통로를 빠져나갔다. 마치 제집처럼 너무 수월하게. 마지아는 그게 무서웠다.

S등급에 사단장의 적합자나 되는 사람이 무기 따위를 팔아먹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곤의 말처럼 그녀가 자기가 알던 사람이 아닌 것만 같아서. 두려움은 이내 현실로 드러났다.

출구였다.

수송용 드론이 오가는 지름 1m의 사출구에 불과하긴 했지만, 사람이 빠져나가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그녀는 복잡한 통로를 단 한 번도 헤매지 않고 드론 사출구로 그를 안내했다.

그리곤 또 두꺼운 철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열고 있었다. 꺼내 쓴 제어 박스의 스페어 키를 다시 숨겨져 있던 곳에 던져두는 것을 보며 마지아는 고개를 떨어트렸다.

“…근처에 셔틀이 있을 거예요. 저 여기 끌려오면서 의식이 있던 상태여서. 찾을 수 있어요. 가까운 콜로니를 찾아가서, 아. 좌표가 문제긴 한데….”

“447-63. 가까운데 콜로니 없어. 몰린시는 2황자 권역이라 출입이 통제돼 있으니까. 임시 거점 좌표야, 447-63. 일단 거기로 가.”

“거, 거기가 어딘데요.”

“임시 거점이라니까. 섣불리 외부로 나갈 생각은 하지도 말고. 단거리 셔틀로는 중력장 못 넘어. 그건 알지? 그렇다고 함선 건드리면 안 된다. 게이트도 안 돼. 발각될 테니까. 그럼 운 좋아야 사살이야.”

에라블은 빠르게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거점 지하 두 번째 방에 자원 좀 넣어놓은 거 있어. 비밀번호는 3337b. 생체 감식 안 걸려있으니까 안심하고. 잘 버티다가 몇 년쯤 뒤에 구조 신호를 보내 봐.”

“그게 무슨…?”

“감자라도 심든가. 달리 할 일도 없을 테니까.”

에라블은 히죽 웃었다.

“잘 살아.”

“소위님…?”

녀는 상황 파악을 못 하고 멍하니 서 있는 마지아를 사출구 밖으로 떠밀었다.

APU 성능이 얼마나 훌륭한지, 신체 4레벨인 애가 한 손에 떠밀린다. 에라블은 작게 실소했다.

“소위님!”

“소리 좀 그만 지르라니까. 아주 동네 사람들 다 불러라.”

투덜대며 그녀는 두꺼운 삼중 철문을 닫아버렸다. 문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닫혔다.

마지아가 움찔 놀라 손을 뻗었지만 에라블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소, 소위님! 소위님!”

마지아가 소리치며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두꺼운 철문에 가로막힌다.

에라블은 잠시 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잠깐 보였던 스모그 낀 어둑한 하늘도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이젠 못 본다고 생각하니 그조차도 아쉬웠다. 두꺼운 철문과 콘크리트 벽 앞에서, 에라블은 잠시 머리를 박고 서 있었다.

미안한 말이었지만 마지아보다 더럽게 스모그 낀 바깥 공기가 더 오래 잔상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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