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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주인이 필요하다-50화 (50/132)

50.




“야, 됐고. 중대장님 어디 가셨어?”



밤새 있었던 일에 관해 토론하고 싶지 않다. 에라블은 그냥 화제를 돌렸다.



“왜요? 진짜 없애버리신대요?”



“뭔 소리야.”



“밤새 중대장님 뒷조사했다면서요!”



내가?



에라블은 의아한 얼굴로 퉁퉁 부은 마지아를 쳐다보았다.



“중대장님 옷 벗긴다면서요! 근데 캐 봤자 개털이라서 밤새 보급품 축소 계획 짰다던데 다 사실이에요? 예?”



이건 또 뭔 소리야.



“어떻게 우리 사이에 그럴 수가 있어요! 안 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데! 중대장님은 아무래도 좋으니까 나는 봐줘요!”



마지아의 외침이 이어질수록 에라블의 시선은 차게 식어갔다.



하여간 찌라시들이란. 그녀는 고개를 내저으며 마지아를 그냥 지나쳐갔다.



“뭐야? 왜 그냥 가요?”



뭐, 하긴. 이런 데서 뺑뺑이나 치고 있는 신체 2레벨짜리랑 사단장이랑 뭐가 있다고 누가 상상이나 할까.



한방에 밤새 둘이 있든 말든. 아예 보는 데서 들러붙어 있어도 엮는 놈이 이상한 놈이지.



“아, 아니면 소위님 진짜 어디 가요? 다, 다시 전출 가는 거예요?”



그래서 울었구먼. 사단장과 무슨 일이 있다고는 아예 의심도 못 하는 눈치다. 쪽팔림을 면했으니 다행이긴 한데, 괜히 울컥했다.



내가 뭐가 어디가 어때서? 이 정도면 2레벨 치곤 양호하지!



“나, 나도! 나도 어떻게 그쪽으로 좀 안 돼요? 예? 다리라도 좀 놔주세요!”



“내가 그럴 능력이 있었으면 여기서 구르고 있겠냐?”



“…아.”



뭔데 바로 수긍하는 건, 근데 이게 진짜 아침부터 왜 시비지.



“그, 그럼 안 가시는 거죠? 그렇죠?”



“갈 건데.”



“예?”



“떠나버릴 거라고.”



“무슨…, 아.”



식당으로 떠나가는 에라블을 보며 마지아가 우거지상을 썼다.



“아, 소위님!”



빽, 소릴 지르는 걸 보며 에라블은 작게 웃어댔다.





* * *



“쟤가 에라블 본처인 모양인데?”



꼬리를 달고 식당 쪽으로 내달리는 에라블을 보며, 함선 창에 기대선 데제가 이죽거렸다.



개들은 그런 주인 곁에서 쥐 죽은 듯 조용히 침묵했다.



데제 혼자 태평하게 자신을 후처나 첩쯤으로 지칭하며 재밌어하고 있었다. 그가 정말 즐거워하는 게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누구…, 말씀입니까?”



누가 됐든, 시한폭탄은 재빨리 치워버릴 생각으로 올이 물었다.



“쟤. 지난번에 나한테 전화한 애가 쟤 같거든, 에라블 본처.”



데제는 못 알아들을 소리를 하며 또 혼자 이죽거렸다.



“여기서 바람피우고 있었네.”



저쪽이 본처면 바람은 이쪽하고 피우는 거 아닌가…, 듣던 개들은 문득 의문을 품었다.



뭣 보다 사귀었어야 바람이지.



가끔 그 비슷한 얘길 감시팀 애들이 해대긴 했지만, 그냥 농담에 불과했다. 꺼낸 놈이 비웃음당하는 그런 농담이었다.



그런데 그런 농담이 데제 입에서 나오니 아무도 웃질 못했다.



“정리시킬까요?”



“굳이?”



데제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되물었다.



“쟤 아니어도 본처가 몇 명인데. 내가 어젯밤에 또 하나 새로 찾았지.”



“…예.”



무슨 말인진 모르겠지만, 뭔가 웃긴 듯 데제는 또 한참을 혼자 웃어댔다.



그 사이 에라블 주위로 몇 놈이 더 붙었다.



“하여간.”



사람이 너무 유용해도 문제지. 쯧, 데제가 혀를 차는 소리에 올은 바짝 긴장했다.



“어젯밤에 소리라도 다 들려줄 걸 그랬나?”



길게 연기를 내뿜어내며, 데제는 나지막이 투덜거렸다. 음 소거 괜히 걸었잖아.



“데제, 웨이브 수치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동해.”



이번엔 꽤나 진행이 빠르다.



담배를 문 잇새로, 인간의 것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길고 축축한 혀가 필터를 훑었다.



“웨이브가 벌써 터지면 곤란하지. 우리 2황자님께서 많이 놀라실 텐데.”



그는 여전히 에라블 버밀리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아, 이참에 소위님 좋은 구경이나 시켜드릴까.”





* * *



오늘의 아침 메뉴는 달걀과 베이컨, 그리고 붉은 콩이었다.



마지아가 아침부터 눈물 바람이었던 게 메뉴 때문은 아니었을까.



벌써 삼 일째 나오고 있는 끈적한 붉은 콩을 포크로 헤집으며 에라블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나도 울고 싶다.



“…….”



통화 가능한 시간을 기다리며 대충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시간에 맞춰 대충 식판을 치우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잠시 차가운 외벽에 기대 길게 숨을 고른 뒤, 전화기를 켰다.



연락처가 단순해서 뭐 고를 것도 없었다.



저장되어있는 번호는 딱 다섯 개였다. 백작, 산체, 카밀, 술집 톰 아저씨, 보험사.



“…뭐해요?”



에라블은 백작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냥, 심심해서.”



전화를 받은 백작은 저 좋을 때만 연락한다며 신경질을 냈다.



“남자는 만났음? 뭐야. 당연히 새 남자 얘기지. 지난번엔 만난 도박쟁이를 아직 만나고 있진 않을 거 아니에요. 엥? 왜 소린 지른대. 그럼 뭐 아직 만나고 있어요? 그거 봐. 그러면서 뭘.”



에라블은 킬킬거렸다. 칼바람이 너무 차서 모자를 더 꽉 눌러썼다. 입에선 입김이 희게 새어 나온다. 하여간 빌어먹게 추운 행성이었다.



“백작님은 멀쩡한 남자 고르긴 틀렸어요. 포기하고 그냥 한 달에 한 번씩 갈아치워요. 리스크를 줄이는 게 맞지. 이쯤 되면 포기하는 게 맞다.”



울며 어리광부리는 대신, 그녀는 시비를 걸었다.



“응? 왜 수신자 부담이냐고? 내가 돈이 어딨어요. 돈 많은 사람이 다 내요.”



[돈 없다! 끊어!!]



버럭 화내는 목소리에 에라블은 또 깔깔 웃어댔다.



“거, 오랜만에 목소리 좀 듣자니까. 돈 없다고 끊으라고나 하고, 어휴. 그럼 뭐 끊어야지.”



[…집엔 언제 오는 게냐.]



“휴가받으면?”



[그냥 사표를 내어라. 지금 배 보낼 테니까 그거 타고 돌아와.]



“전화 요금이나 내줘요.”



[…….]



잠시 조용히 있던 백작은 다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에라블도 다시 깔깔 웃다가 인사를 건넸다.



“알았어, 이만 끊어요. 나도 일하러 가 봐야 해요. 돈 벌어야 전화 요금을 내지. 됐어요, 뭘 또 진짜 내준대. 하여간 이렇게 마음이 여려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아, 나 진짜 가볼게요.”



조금 더 바짝 수화기에 귀를 대고 백작의 목소리를 들었다.



“밥 잘 챙겨 먹고요.”



잘 지내요.



“산체보고 공부 좀 열심히 하라고 하고. 이번엔 졸업해야지.”



잘 지내라고 전해줘요.



“나 갈게요.”



꼭 건강히 지내라고….



툭, 전화를 끊은 에라블은 잠시 더 차가운 외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꽉 전화기를 틀어쥔 손이 덜덜 떨렸다.



추워서 그렇다. 핫팩이라도 몇 개 더 붙여야겠네.



“…후.”



에라블은 다시 길게 숨을 뱉어냈다. 작별 인사도 했고, 이제 할 일 해야지. 생각하며 움직이려던 차였다.



먼 곳에서부터 찢어질 듯한 굉음이 밀어닥쳤다.



쿠구궁-, 쿵-…!!



평소 들려오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지축이 무너질 것만 같은 굉음이었다.



충격파에 유리창까지 다 깨져 나갔다. 에라블은 놀라 머리를 가리고 몸을 웅크렸다.



“외부 채널 연결해!”



여기저기서 중대원들이 서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비상! 비상!!”



“실드 에너지가 떨어집니다!”



“20, 19%-!!”



쿠구궁-, 중대의 혼란을 가중하듯 무언가, 거대한 생물이 우는 듯한 괴음이 길게 이어졌다.



고오오오오오오-….



본능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소리였다. 중대원들이 그 소리에 구역질을 쏟아냈다.



하지만 소리는 사람들을 두통과 이명에 비틀거리게 하다가, 거짓말처럼 뚝 멎었다.



콰르릉…, 산발적인 잔음만이 불길하게 남았을 뿐이었다.



“웨, 웨이브! 웨이브 수치 확인해!!”



“실드부터!”



중대원들이 비틀대며 다시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에라블 역시 비틀거리며 중계기가 있는 방향으로 뛰었다.



‘아. 제발, 제발.’



마음이 다급했다. 부서지면 답이 없다.



‘제발.’



이 와중에 ver. 067부터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제발 아니기를 바라며 에라블은 APU에 의지해 쓸모없는 몸을 달리게 했다.



중대 외곽의 건물들은 그럭저럭 멀쩡했다.



뼈대 정도는 남아있었다. 어둑한 스모그에 휩싸인 채 무너져 있는 높고 낮은 건물의 잔해를 보며 마음이 점점 초연해졌다.



‘남은 활력 증강제가 6개쯤 되니까, 사흘에 한 번씩만 자면….’



탈속한 티벳 여우처럼 철야 계획을 세우며 달리던 에라블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했다.



중대 외곽에 저런 건물들이 있었던가…?



그리고 잔해 사이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틀어져 있는 지축을 유심히 보았다.



땅이 아니었다. 저건, 뭔가 거대한 생물의 허물 같은…. 저게 대체 뭐지…?



“세상에, 여기까지 쫓아온 거야?”



초점을 잃어가던 에라블은 제 앞을 막아선 비르고에 움찔했다.



“너 정말 안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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