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넌 내가 만만하냐?”
예상대로 중대장은 기뻐했다.
눈치 없이 외박증을 쓴다는 말에 그는 격하게 칭찬해 주었다.
“이, 씨X 진짜.”
욕도 좀 첨가된 칭찬이었다. 하지만 41사단과 관계된 일이라 거부는 못 했다.
여기처럼 제국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부대는 뒷거래가 밥줄이었기 때문이다.
정의롭게 굶어 죽는 것을 택하기엔 80콜로니의 행성신은 담배와 맥주 등의 사제품에 중독되어 있었다.
“밖에 나가시나 봐요.”
지갑 사건 이후 호감도가 대폭 오른 자곤이 아는 체를 했다. 이 인간은 왜 맨날 중대장실에 있는 건지.
돈은 나누고 덤터기는 혼자 쓴 에라블은 최근 그에 대한 호감도가 바닥이었다.
“예, 개인적인 볼 일이 있어서.”
하지만 언제나처럼 공손하게 대꾸한 뒤 중대를 빠져나왔다. 안타깝게도 혼자 나온 건 아니었다.
“…넌 왜 따라왔냐?”
기름 냄새 풀풀 풍기는 다운타운의 낡은 스테이션 4층에 셔틀을 대고 삐걱대는 철제 계단을 내려오며, 에라블은 창백한 얼굴로 뒤를 졸졸 따라오는 마지아를 쳐다보았다.
“괘, 괜찮으세요?”
“됐고, 왜 따라왔….”
에라블은 고개를 내젓다가 후회했다. 입을 틀어막고 잠시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이건 다 중대장님 때문이야.”
울렁대는 속을 다스리며 에라블은 상사 뒷담을 깠다.
“오늘은 자진해서 나오신 거잖아요.”
“요새 중대장님 머리 좀 벗어지시는 것 같지 않냐?”
에라블은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풍성하시던데요?”
“됐어,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이뤄준댔어.”
“…우주가 탈모를요?”
이건 왜 따라와서 말끝마다, 에라블은 마지아를 노려봤다.
“왜, 왜요.”
“너 왜 따라왔냐고.”
“우, 우리 얘기 안 해요? 소위님 휴가 다녀오고 벌써 한 달이나 지났잖아요. 저 계속….”
에라블은 듣다 말고 갑자기 들어온 통신을 받았다. 요새 이것저것 떠맡은 잡일이 많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예, 웨이브 수치 말씀입니까? 그거 다 정리해서 보고서 올려놨습니다. 예, 지금은 전부 안전선입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대충 통화를 끝내고 돌아보니 마지아가 뚱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응? 뭐라고?”
“됐어요.”
애가 어려서 그런지 감정 기복이 심하다. 에라블은 또 고개를 내젓다가 다시 입을 틀어막고 웅얼거렸다.
“이왕 온 거…, 따라와.”
스테이션을 빠져나오니 다소 번잡한 상점 거리가 나왔다.
번잡함에 비하면 매우 조용했다. 춥기 때문이었다. 입 열면 목젖 깊숙이 찬바람이 들어오니 닫고 있는 게 최선이다.
중대에서 셔틀로 40분 거리에 있는 이 다운타운은 평범하게 후졌다.
에라블은 중대에서 가장 빈번하게 이 후진 다운타운을 방문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부상이 잦았고 중대 의무실은 고레벨 전투병 위주로 우선순위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에라블은 스모그로 어둑한 다운타운 골목 골목을 지나, 낡은 건물, 한사람이나 겨우 드나들 법한 좁은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저, 저 몸 안 좋아요.”
마지아가 무서운 듯 계단 아래에서 머뭇거렸다. 뭐, 입구부터 음산한 것이 들어가면 장기라도 털릴 분위기이긴 했다.
“왜, 멀쩡해 보이는데. 신장은 하나만 있어도 괜찮대.”
“악! 소위님!”
질색하는 마지아를 보며 에라블은 해맑게 웃었다. 삐걱대는 업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작은 미용실 비슷한 곳이 나왔다.
“또 왔네.”
“저 보고 싶었죠?”
“어휴, 오늘은 또 어디가 다쳐서 왔는데.”
“오늘은 저 아니에요.”
에라블은 업소 주인인 여자와 잠깐 얘기를 나누곤 마지아에게 손짓했다.
“앉아.”
“저, 저요?”
“손가락 계속 통증 있다며. 여기 통증 치료 잘해. 처음 한 번은 무료고. 피부 이식 비용도 다른 데보단 그래도 저렴하니까, 생각 있으면 고민해보고.”
“소, 소위님….”
“뭘 또 그렇게 감동을.”
“진짜 장기 매매 아니죠?”
“사장님, 얘 신장 하나만 떼주세요.”
돌아보며 하는 말에 사장이 깔깔 웃어댔다. 에라블은 그녀 손에 애를 맡기고 싸구려 가죽 소파에 몸을 묻었다.
‘…내일 오전 10시 23분.’
이곳에서 거래가 있다. 어떻게 하면 될지 모르겠지만, 만약….
‘아니.’
설마 그렇게까지 재수가 없겠어. 그럴 리가 없지. 에라블은 편하게 몸을 기대고 패드를 꺼내 마지아가 치료를 받는 동안 조금이라도 밀린 일을 치우기 위해 애썼다.
“같은 데 계속 다쳐서 그래요. 그럼 나아도 아픈 것 같고 그렇게든. 손을 안 쓸 수는 없을 테니 보호 장비라도 바꿔봐요.”
“중대 사정이 좀.”
“하긴 좀 그렇죠? 망할 것들. 사람이 이렇게 다치고 죽어 나가는데 수도에선 왜 분쟁지역은 신경도 안 쓰는 건지.”
지들은 따뜻하고 안전한 데 있으니 속 편한 거라고 사장은 잠시 불평한 뒤, 소위님이 누굴 데려온 건 처음이라며 신기해했다. 마지아는 발갛게 얼굴을 붉혔다.
“노력을 좀 더 해봐요. 겨우 한 명은 너무하잖아.”
“소개료 올려주시면요.”
겨우 10cp 주면서 노력까지 바라면 곤란하다. 한 15cp 정도면 모를까.
어쨌든 지폐를 챙겨 받고, 에라블은 가게를 빠져나왔다. 갑자기 또 우울해진 마지아가 흠칫하더니 뒤를 졸졸 따라왔다.
“또, 또 어디 가시는데요.”
“넌 이만 복귀해.”
“소위님은요?”
“호텔.”
“호텔에서 뭐 하시려고요!”
“일해야지.”
당연한 건 왜 묻냐는 듯 대꾸하니 마지아가 기가 찬 듯 입을 벌렸다.
“대체 맨날 무슨 일을 그렇게 하시는 건데요?”
“기밀.”
“아, 뭔데요? 예? 조금은 알려주셔도 되잖아요!”
“나 숨 쉴 기운도 없다. 빽빽대지 말고 복귀 안 할 거면 너도 숙소나 잡아.”
애 취급에 입이 댓발은 나온 마지아를 등에 붙이고 에라블은 미리 잡아둔 호텔로 향했다.
호텔이라고 하기엔 굉장히 민망한 2층 건물이었다. 그대로 올라가려는 걸 마지아가 붙들었다.
“저, 저녁은 드셔야 하잖아요.”
“먹어야지.”
에라블은 손을 뻗어 로비 자판기에서 저질 초콜릿 바와 탄산음료를 뽑으며 대꾸했다.
“그게 지금 저녁이라고요? 그게요?”
“맛있고 배부르면 그만이지. 쬐끄만게 잔소리는.”
“소위님보다 20cm는 크거든요!!”
어휴, 시끄러워. 에라블은 귓등을 긁으며 카운터에서 키를 받아 방으로 올라왔다.
신발을 대충 벗어 던지고 잠깐 침대에 드러누워 있다가 안정제와 융화제부터 꺼냈다.
‘…….’
안정제 한 알을 대충 삼키고 융화제를 팔오금에 찔러 넣다가, 소위님, 문밖에서 저를 부르는 마지아의 목소리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 또 왜, 가서 잠이나 자.”
“저 들어갈게요.”
“안 돼. 나 옷 갈아입고 있어.”
걷어 올렸던 소매를 내리고 주사제를 치우며, 에라블은 대충 둘렀댔다.
“돼, 됐어요? 저 들어갑니다?”
당황한 마지아가 말을 더듬었다.
“아니, 가서 잠이나 자라니까 그냥 들어왔네. 어차피 니 맘대로 할 거면 뭐하러 묻니.”
나도 참 정신이 없다. 문도 안 잠그고.
“할 얘기 있다고요….”
멋대로 문을 열고 들어온 애가 서운한지 입을 삐죽였다.
“왜, 무슨 얘긴데.”
“소위님 완전히 잊고 계시죠? 그렇죠?”
“뭘?”
“휴가 다녀오면 대답해주기로 하셨잖아요.”
“대답?”
무슨 대답?
“이것 봐, 잊고 있을 줄 알았다니까. 소위님은 어떻게 그걸 진짜로 잊을 수가 있어요?! 예? 사람 진심을 정말 어떻게 그래요!”
“뭔 소리, 아.”
아아.
“안 잊었어.”
“거짓말 마요!”
안 속네.
“좋아한다고요….”
내가 잘못했네. 아까 안과를 데려갔어야 했는데. 울 것 같은 마지아의 얼굴을 보며 에라블은 반성했다.
지배욕은 시그눔 등급의 영향을 받지만, 미모는 온전히 신체 레벨에 영향을 받는다.
에라블은 2레벨이었고, 이 울기 직전인 꽃다운 20세 영혼은 나름 예쁘장한 미소년이었다.
저런 애가 왜. 미인들이 우글거리는 군부대에서만 살다 보니 시신경에 이상이라도 왔나? 폭격에 머리라도 다친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난 남자가 있어.”
“왜 자꾸 거짓말해요? 소위님한테 남자가 어딨어요? 여태 연애도 한 번 안 해봤으면서!!”
이 새끼가. 사실이지만 왠지 울컥한다.
“너 왜 오밤중에 와서 시비야?!”
“시비가 아니라! 고백인데요….”
제가 말하고도 이상한지 말끝을 얼버무린다.
“됐어! 다 필요 없어!”
“왜, 왜요! 소, 소위님 좋다고 할 남자가 저 말고 있기나 할 것 같아요?!”
역시 시비네. 저걸 그냥 확…, 어떻게 하기엔 신체 레벨이 두 배나 차이가 난다.
특수능력 계약자는 진짜 여러모로 쓰레기 같다.
“있든 말든 니가 무슨 상관이야?”
“조, 좋아한다니까요!”
벌게진 얼굴로 마지아가 크게 소리쳤다.
“누구도 안 좋아할 것 같은 사람을 왜.”
에라블은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뭐, 자선사업 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