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분쟁지역인 제2155 행성계의 80콜로니는 살이 에일 정도로 추웠다.
괴수 균열에서 발생하는 스모그와 두터운 망자 군체로 대기는 어둑하게 그늘이 져 있었고, 빛이 들지 않는 땅 위론 칼바람이 몰아쳐 다녔다.
입김을 불면 그조차 얼어붙을 듯한 행성이었다. 항성이 네 개나 되는 사중성계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중대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베리어 생성기엔 땜질 흔적이, 방어용 입자포엔 생활기스가, 콘크리트 건물 여기저기엔 폭격의 여파가 남아 있었다.
빈말로도 형편이 좋아 보인다고는 못 하겠다. 행성만큼이나 살림살이 추워 보이는 부대였다.
“…좌천이야?”
아래위로 에라블을 훑어보던 중대장이 불쑥 물었다.
“왜, 대달라던 상급자가 없었나? 그만하면 2레벨 치곤 나쁘지 않은데 좀 열심히 살지 그랬어.”
“…….”
“아양도 좀 떨고. 그랬으면 이딴 데로 보내지진 않았을 거 아니야.”
질 나쁜 말을 툭툭 내뱉던 중대장이 전출 명령서를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그만 나가 봐.”
그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옆 책상에 앉아있던 상병에게 고갯짓했다.
“이쪽입니다.”
중대장 근처에 있던 불운한 상병이 안내를 떠맡았다. 그래서 상사 근처에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재수가 없다니까.
상병의 뒤를 따라 나온 에라블의 얼굴에 어둡게 그늘이 졌다. 속이 울렁거렸다. 안정제 부작용 때문이다.
이쪽으로 넘어오면서 그와 마지막 관계를 한 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한동안 편했던 몸이 안정제를 거부하며 심한 구토를 일으켰다. 노이즈가 불안정하게 낄수록 몸은 더더욱 그를 그리워했다.
아주 조금이라도 틈만 나면 그가 떠올랐다.
함선을 타고 오는 내내 그녀는 된통 멀미를 앓았다. 오는 함선에서 입에 든 토사물을 내뱉고 여러 번 새 안정제를 삼키며 에라블은 의문을 가졌다.
내가 이러는 게 노이즈 때문이야 아니면 그냥 단순히 데제의 몸이 그리워서야? 세상에…, 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그에게 미치는 사람들이 다 무슨 지능이라도 딸려서 그러는 게 아니다. 다들 그냥 그렇게 그에게 낚여 인생이 망해가는 것뿐이지.
“…….”
다행히 사단 본부 부관실을 벗어나니 데제브 아브가니스는 손에 닿을 수 없는 별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사실 본래가 그런 존재이긴 했다.
수천 개의 항성을 아우르는 이 거대한 제국에서 촉망받는 젊은 지휘관이란 본래 그런 존재다.
심지어 좌천된 지휘관이라 해도 행성 몇 개쯤은 자산으로 가지고 있었고, 그건 내 집 마련이 평생의 소원인 평범한 서민들에겐 상상하기조차 힘든 괴랄한 규모였다.
소박한 지구인의 입장에서 보기에 그들은 마치 신과 같았다.
심지어 데제브 아브가니스는 유서 깊은 아브가니스 후작가의 후계이기까지 했다.
그 실체는 둘째치고 표면적인 위치만으로도 이미 닿을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에라블은 마음속으로 이미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해 둔 뒤였다.
‘…저거 근데 괜찮은 건가.’
아무리 이세계라지만, 그녀는 저게 진짜 괜찮은 게 맞는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어둑하게 그늘진 사방에서 망자 군체와 뒤엉킨 괴수가 바글거렸다.
그것들이 실드막에 부딪히며 희뿌연 빛을 낼 때마다 끔찍한 광경이 잔상처럼 머리에 남는다.
‘꼭….’
벌레 같았다. 아니면 파충류 혹은 마디가 짧은 뱀, 또는 점액질의 환형동물 같기도 했다.
여기에 날벌레가 부딪히는 듯한 자글자글한 소리까지 더해져서 이게 진짜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무슨 종말의 한가운데 서 있기라도 한 기분이 드는데….
“징그러우시죠?”
에라블은 상병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너무 오래 보고 계시면 안 됩니다. 약간 정신병 생기거든요.”
“그렇습니까.”
“자곤입니다.”
자신을 소개한 불운한 상병은 친절하게 말을 이었다.
“여기 처음이시죠?”
당연한 걸 묻고는 이런저런 정보를 자세히 얹어 주었다.
“여기서 내항용 셔틀로 40분 거리에 다운타운이 있습니다. 그나마 제일 가깝긴 한데, 안 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뭐가 있습니까?”
“그렇다기보단 가난한 동네니까요. 좀 위험하죠. 보조계열이면 좀 더 그렇고요.”
하긴 보조계열은 어딜 가나 좀 그렇지.
“클리닉이라고 해봤자 별거 없고 위생도 나쁩니다. 근데 이렇게 말해도 다들 그냥 가시더라고요. 참, 저도 보조 슬롯에 지원 있으니까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상병 자곤이 초면에 아주 좋은 제안을 했다. 왜 친절했는지 단번에 이해가 갔다.
‘영업 중이셨구만.’
그래도 뭐 친절하긴 친절한 제안이다. 안 하면 생체 기능이 정지되는 세계에서 이것보다 친절한 제안도 없다.
하여간 가지가지 하는 세계였다.
“말씀 감사합니다.”
“서로서로 돕고 사는 거죠.”
에라블은 꽤 붙임성 좋아 보이는 듯한 자곤을 따라 야트막한 높이의 빈 건물로 들어섰다.
“숙소는 여기 쓰시면 됩니다.”
낡았지만 독립된 건물이었다. 시비조던 중대장과 수뇌부들이 어쨌든 얘기가 됐단 뜻이겠지.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아,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천천히 해보겠습니다.”
큰일 날 소릴 하고 있었다.
3년 가까이 알고 지낸 소대원들과도 말을 안 놨다.
보통 군 전투병과의 신체 레벨은 평균 4를 기록하고 있다.
고작해야 신체 2레벨인 에라블은 그들이 실수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했다. 실수하는 순간, 바로 요단강이다.
이게 바로 고등급 시그눔 보유자가 메인으로 보조, 지원 계열 라이센스를 따지 않는 이유였다.
지배욕이 골수에 미쳐서 하극상이 곧 폭행 상해진단서와 직결되는 세계에서 보조, 지원 계열은 등급과 상관없이 항상 겸손해야만 했다.
솔직히 고등급이 메인 슬롯에 보조, 지원 계열을 넣는 건 목숨 걸고 하는 등신짓이었다. 바로 내가 한 짓이지.
‘…….’
에라블은 함께 온 소대원들과 흩어져 2층의 적당한 방 하나를 차지했다.
방은 말끔했다. 침대 하나와 옷장 하나, 책상 세트 하나. 작게나마 개인 욕실도 붙어있었고.
그녀는 바닥에 백팩을 내려놓은 뒤 팔뚝을 비비며 스토브 뚜껑부터 열었다.
“…어우, 추워.”
바깥보다 어째 건물 안이 더 추운 것 같다. 일단 비치돼있던 석탄을 스토브에 넣고 불을 올렸다.
세상…, 고속 워프로 성간 이동이 상용화된 시대에 석탄 스토브라니. 이 중대의 추운 살림살이가 칼바람 저리 가라였다.
“으.”
그녀는 스토브 앞에 쪼그리고 앉아 빨리 온기가 올라오길 기다리며 잠시 멍하니 있었다.
전출 사실을 알게 된 카밀은 욕을 바가지로 퍼부었었다.
제정신이냐, 혹시 미친 거냐, 그녀는 욕을 하기 위해 송별을 해주었다. 죽고 싶으면 여기서 죽어라, 뭘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죽냐, 차라리 그냥 지금 내 손에 죽어라…, 등등.
‘역시 그때 머리채를 잡혔어야 해.’
죽기는, 무슨 내가 자살 기도자도 아니고. 에라블은 투덜거리며 가방에서 패드를 꺼냈다.
여긴 자신의 쓸모를 입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나름 여러 가지 면을 다 고려해서 신중하게 내린 결론이다.
개들의 내기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에라블은 근력 향상제, 스피드업 앰플 및 각종 스펠 디스크와 마력 순환제 등 온갖 종류의 종합 생존 키트를 준비하며, 관심도 없던 분쟁지역에 관한 온갖 자료를 다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바로 여기라고.
그래, 바로 여기다. 사성계에 괴수 균열에서 새어 나온 스모그와 자의식 없이 우글거리는 두터운 망자 군체가 대기를 뒤덮고 있는 이곳.
해서 감시망을 피해 인공 정령을 사용할 수 있는 바로 이곳.
군 생활 3년, 에라블은 확신이 있었다. 그들이 최소한 일한 대가는 지불해준다는 떨떠름한 확신.
그녀는 이곳에서 인공 정령을 생성해 개들을 위해 통합 플랫폼을 구축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안전 퇴직을 제안해볼 계획이었다.
입대 후 처음 발견한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데제브 아브가니스에겐 크게 3개의 중요 사업체가 있었다.
군수업체인 크로노스 오퍼레이션, 제약회사인 리페이사, 그리고 ETAP 에너지.
41사단의 고질적인 보급 문제는 이 3사의 연계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어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었다.
물론 온갖 불법적인 일은 다 저지르고 있는 거대 무력 집단인 41사단은 무허가 시약과 에너지 팩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군수 물자를 사용했고, 그만큼 막대한 보급 라인을 필요했다.
대놓고 해도 문제가 생길 판국에 숨겨 놓고 하니 답이 없는 것이다.
에라블은 이 문제를 자신이 한 번 해결해 보기로 했다.
독자적인 플랫폼 정도면 적합자가 옵션으로 껴있는 S등급 특수 능력자와도 충분히 교환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아닐 경우를 대비해 플랜 B도 있었다.
30년쯤 열심히 일하다가 우주의 먼지 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