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만할래요, 공작님-92화 (9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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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시아?”

“오늘부터는 일찍 일어나려고요.”

델시아는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에드윈은 조금 놀란 낯으로 델시아를 바라보며 입을 벙긋거렸다.

“더 자지 않고요? 몸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아직은…….”

“괜찮아요. 계속 자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편이 덜 추울 것 같고요.”

델시아가 배시시 웃으며 말하자 에드윈이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래도 춥잖아요, 델시아.”

에드윈은 델시아를 꼭 끌어안다가 품에서 떼어내고는 그녀의 몸에 이불을 칭칭 둘렀다. 델시아는 이불을 덮은 것인지 이불에 속박당한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인 제 상태를 가만히 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뭐예요?”

“그렇게 하면 바람이 스미지 않을 테니까요.”

델시아는 여전히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에드윈을 바라봤다. 잠시 잊고 있었다. 일전부터 에드윈은 제 아버지 못지않게 저를 걱정한다는 사실을.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나서는 조금 덜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음, 델시아.”

델시아는 저를 조심스럽게 부르는 에드윈과 눈을 맞췄다. 에드윈은 무언가 중요한 말을 하려는 듯 결연함이 담긴 눈을 하고 있었다.

“왜요?”

“겨울이 다가와서 하는 말인데요.”

“네.”

“겨울에는 당신이 본관에서 지냈으면 좋겠어요. 델시아 당신이 별채라는 공간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는 잘 알지만…… 별채의 시설이 잘되어 있다고는 해도 본관보다는 춥잖아요.”

걱정 가득한 목소리에 델시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하기는, 제 고집대로 버티기에는 별채가 점점 추워진다는 게 살갗으로 느껴졌다. 델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긍정을 표하자 에드윈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오늘 당장……!”

“제가 할게요, 에드윈. 에드윈은 업무만으로도 힘들잖아요. 그리고 저택 내부의 일은 제 몫이라고요.”

이불을 칭칭 두른 델시아가 진지하게 말하는 모습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워 에드윈은 그만, 그녀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말 타이밍 좋게도 테오가 문을 두드려 왔다.

“주인님.”

“그래. 일어났어.”

에드윈이 그렇게 대답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업무를 시작할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에드윈.”

“네, 델시아.”

“오늘은 저도 함께 아침을 먹을래요.”

“아.”

설렁줄을 당기려던 에드윈의 그녀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주인님, 저는 식당에 가 있겠습니다.”

“잠깐만, 테오.”

“예?”

“델시아의 자리도 준비하도록 일러 둬라.”

“마님의 자리라면…….”

“나와 아침을 함께할 것이다.”

“아, 예.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테오가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에드윈이 설렁줄을 당겼다.

“오랜만에 아침을 함께하네요.”

“네. 이제부터는 매일 함께할 거예요.”

“무리하지 않아도 돼요, 델시아.”

“아니요. 겨울이 되면 자꾸만 늘어져서, 에드윈처럼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해요.”

어느새 이불 안에서 나온 델시아가 벽난로 앞에 섰다.

“네, 주인님. 세숫물을 대령했습니다.”

“하나 더 가져올 수 있겠나? 부탁하지.”

“그럼요. 금방 내오겠습니다.”

이제야 신혼의 느낌이 났다. 에드윈은 벽난로 앞에서 하품하며 팔뚝을 쓸어 대는 델시아를 보다가 픽, 웃었다.

“마님과 오랜만에 아침을 함께하시는군요.”

“그래. 앞으로는 매일 함께할 수도 있을 것 같군.”

“좋으시겠습니다.”

“테오, 너도 어서 짝을 찾아 인생의 행복을…….”

“제 인생의 행복은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깔끔히 처리하는 것입니다.”

“일 중독자가 따로 없군.”

자리에 앉은 에드윈이 테오의 단호한 대답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식기를 들었다. 식탁 위의 음식들이 오늘따라 더욱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아마도 델시아와 함께하기 때문이겠지. 그녀와 식사를 함께하는 것은 퍽 오랜만이었으니…….

에드윈은 델시아가 음식을 먹는 것을 지켜보다가 찬찬히 식사를 시작했다. 그는 맛을 느낄 겨를도 없이 늘 의무적으로 먹어 치우던 음식을 오래간만에 음미했다.

에드윈의 앞에 놓인 접시가 반쯤 비워지자 테오가 들고 있던 일정표를 쭉 읊었다.

“오늘은 대외 일정이 있습니다. 켈리안 후작저에서 이뤄질 예정이며, 주인님께서 투자하신 사업 중 하나인…….”

에드윈은 테오가 일정을 하나씩 말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델시아 역시 그 일정을 귀 기울여 들으며 식사를 마쳤다. 에드윈이 일정을 소화하는 사이, 델시아는 본관 침실을 꾸밀 생각이었다.

아침 식사를 끝낸 델시아와 에드윈은 별관 식당 앞에서 헤어져 각자의 자리로 향했다. 별관 침실로 들어간 델시아는 설렁줄을 당겨 엘라를 불렀다.

“네, 마님.”

“엘라, 본관 침실로 옮겨갈 거야.”

“아, 본관으로 옮겨가시는 거군요. 따로 필요하신 물품이 있으신가요?”

“그런 건 없어. 대신…….”

말끝을 흐리는 델시아의 뺨이 붉었다.

“호, 혹시…….”

말끝을 흐리며 부끄러워하는 델시아의 모습에서 엘라는 눈치챈 것이 있는지 귓바퀴를 붉히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그것을 준비하면 될까요?”

그 물음에 델시아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테오와 에드윈의 하루는 치열했다. 바쁜 업무로 오후를 정신없이 보낸 덕에 다행히도 야근은 면할 수 있었다. 에드윈은 아쉬움이 가득 남은 얼굴로 떠나기를 주저하는 테오의 등을 두드렸다.

“테오, 푹 쉬다 와라.”

“일하는 게 쉬는 거라던 일 중독자 주인님은 대체 어디를 가신 건지…….”

“가정이 생겼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얼른 가 봐, 테오.”

“주인님과 달리 저는 반겨 줄 사람이 없습니다. 분명 농땡이 피우러 온 것이냐고 꾸중이나 듣겠죠.”

“그럴 리가.”

에드윈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젓고는 테오가 마차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봤다.

“마차까지 내주시고……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마차를 내주실 바에는 동관의 작은 방을 내주시는 편이 더 나으실 텐데요.”

“어림없는 소리.”

테오는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만, 에드윈의 강경한 태도에 한숨을 내쉬며 체념해야만 했다. 에드윈은 테오를 태운 마차가 공작저를 벗어나는 것을 지켜보다가 몸을 돌렸다. 어느덧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에드윈은 저를 기다리는 델시아가 있을 본관 침실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보폭만 크던 걸음은 점차 빨라졌고, 이내 뜀박질이 되었다. 에드윈은 공작으로서의 체통도 잊고 델시아에게 달려갔다.

“후…….”

쉬지 않고 달린 덕분에 금세 침실 앞에 당도한 에드윈이 매무새를 다듬고는 찬찬히 문고리를 돌렸다. 드디어 델시아와 오롯이 함께할 수 있는 나날이 허락된 것이다. 비록 사흘뿐일지라도.

문고리를 돌린 다음, 침실의 문을 활짝 연 에드윈은 본래 델시아에게 성큼성큼 다가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벙긋거릴 수밖에 없었다.

“……델시아?”

연보랏빛의 가벼운 슬립 차림을 입은 델시아가 침대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입었다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무리 별채보다 따뜻한 본관으로 잠자리를 옮겼다고는 하지만, 슬립 차림으로 저를 기다렸다니.

에드윈이 그녀의 어깨에 걸쳐 줄 외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델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리 와요, 에드윈.”

에드윈은 두리번거리던 것을 멈추고 델시아를 바라봤다. 꼭 이리 와서 안기라는 듯 두 팔을 쫙 벌리는 델시아의 모습에, 에드윈은 홀린 듯 그녀에게 다가갔다. 무릎을 살짝 꿇은 에드윈이 그대로 델시아의 품에 안겼다.

“고생했어요, 에드윈.”

“델시아, 춥지 않아요? 아무리 본관으로 옮겼다지만…….”

“괜찮아요.”

델시아는 에드윈의 머리카락을 찬찬히 쓰다듬으며 물었다.

“에드윈, 씻기 전이죠?”

“네.”

“잘됐네요.”

“……예?”

델시아가 살짝 웃으며 에드윈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욕실로 가요, 에드윈.”

귓가에 닿는 숨결이 너무나 뜨거워 에드윈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델시아의 허리를 감싼 손이 움찔거렸다. 에드윈은 턱을 들어 델시아와 눈을 맞췄다. 찬란한 쪽빛 눈동자가 다정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서요.”

그 눈과 마주하자 에드윈은 무조건 긍정만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델시아와 에드윈은 커다란 욕실로 향했다. 욕실의 공기에는 훈기와 습기가 적절히 섞여 있었다. 내부에 마련된 탈의 장소에서 가벼운 차림으로 갈아입은 에드윈이 욕조 안에 발을 들였다.

따뜻한 물이 피부에 닿자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욕조에 반쯤 누운 채로 있던 에드윈의 어깨를, 델시아가 뒤에서 끌어안았다.

“욕조 안으로 들어와요, 델시아.”

“저는 이미 목욕했어요.”

“그럼…….”

“제가 왜 왔겠어요?”

에드윈은 그제야 델시아가 슬립 차림으로 저를 기다리고 있던 이유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델시아는 페티아 제국의 관습을 따르고 있는 것이었다. 에드윈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델시아가 저를 유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주체할 수 없는 설렘과 흥분으로 심장이 뛰었다.

에드윈은 제 가슴께에 놓은 델시아의 손을 꼭 쥐었다.

“조금만 기다려 줘요, 델시아. 금방 씻고 나올게요.”

에드윈의 음성이 살짝 떨리는 것을 느낀 델시아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 말에 괜히 심장이 간질거렸다. 에드윈은 델시아에게 말했던 대로 빠른 속도로 목욕을 마쳤다. 그러고는 델시아를 안아 들고 침실로 향했다.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하나둘 떨어졌다.

델시아를 침대에 눕힌 에드윈이 찬찬히 심호흡했다. 흥분을 가라앉히려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쉽지 않았다.

델시아와 가까이에서 숨결을 나누는 행위조차 큰 자극으로 다가왔다. 에드윈은 정염이 그득 담긴 눈으로 델시아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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