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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할래요, 공작님-79화 (79/94)

<79>

짧게 심호흡을 한 비안나가 진지한 낯으로 모두를 향해 말했다.

“미리 말하자면 나도 처음 다뤄 보는 심장이라 부작용이 있을지, 있다면 어떤 부작용일지. 그런 건 나도 장담 못 해. 예상 가는 부작용이 있다고 해도 그 또한 예상일 뿐이니까. 그래도 괜찮겠어?”

“괘, 괜찮소. 그런데 처음 다뤄 보는 심장이라니……. 심장이 없지 않소?”

페르도 백작의 물음에 비안나가 별것 아니라는 투로 대꾸했다.

“준비된 심장이 있어. 앞서 말했던 대로 처음 다뤄 보는 심장이기는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니까. 아무런 시도를 안 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아무튼 예측할 수 없는 부작용마저 감수한다는 거지?”

“델시아를 살릴 수만 있다면, 델시아가 다시 눈을 뜰 수만 있다면 그런 부작용쯤이야 감수할 수 있소…….”

페르도 백작은 그제야 델시아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어떠한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아델리오 공작을 살리고자 했던 델시아의 심정을……. 페르도 백작은 제 손에 찾아온 실낱같은 희망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간절한 눈으로 비안나를 쳐다봤고, 비안나는 그에 응하듯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좋아.”

고개를 끄덕인 비안나가 몸을 돌려 클라우드를 바라봤다. 클라우드 역시 고개를 주억거리며 비안나와 손을 맞잡았다. 둘을 제외한 사람들이 침대에서 조금 떨어졌다. 에드윈은 걱정 가득한 눈으로 델시아의 상태를 살피다가 가장 늦게 움직였다.

비안나는 클라우드와 손을 맞잡은 채 눈을 감았다. 이윽고 그녀가 진지하게 말했다.

“클라우드 퀴너와 비안나 테리엄은 생명의 근원을 대가로 불문율에 반하는 계약을 성사한다. 이는 엄숙한 것이며 엄중한 것이니라. 계약의 이행을 위해 클라우드 퀴너와 비안나 테리엄은 어떠한 노력도 불사할 것을 맹세하는 바이다.”

여러 갈래의 빛이 뿜어져 나오며 침실 안을 환하게 비추었다. 침실 안을 가득 채우던 빛이 사그라들며 비안나와 클라우드의 몸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눈을 뜬 비안나가 클라우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클라우드, 하르투아의 심장을 이리 줄래?”

“……네.”

마법 주머니에서 심장이 든 유리병을 꺼낸 클라우드가 그것을 비안나에게 건넸다. 비안나는 유리병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뚜껑을 찬찬히 열었다.

“그, 그건 뭐죠? 이상한 것 같은데……, 그게 정말 델시아의 몸에 들어가서 델시아를 살려 주는 건가요?”

“이건 드래곤의 심장이야.”

“……네?”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 볼 생각이야.”

“하지만…….”

아놀드가 미심쩍은 눈으로 비안나와 그녀의 손에 든 유리병을 번갈아 응시했다. 그러자 페르도 백작이 아놀드를 다독였다.

“아놀드, 괜찮단다. 믿어 보자꾸나. 그리고…… 고맙소. 클라우드 퀴너라고 했던가. 델시아에게 귀한 드래곤의 심장을 내주어서 정말 고맙소. 이 은혜는…….”

“그런 건 필요 없어. 비안나, 어서 시작해요.”

“그래, 클라우드.”

“델시아의 마력은 제가 최대한 제어할게요.”

클라우드는 델시아를 보며 말했다. 델시아는 숨을 쉬지 않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에 있는 마력은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간혹 지나치게 많은 마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죽어도 마력이 쉬이 사라지지 않고 십수 년간 시신에 남아 있다고 했다.

남은 마력들은 시신을 돌아다니다가 자연에 융화되거나 외부의 마력과 충돌하여 커다란 폭발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클라우드는 긴장한 낯으로 델시아의 몸에 흐르는 마력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비안나는 델시아의 몸에서 기능을 멈춘 인공 마력 심장을 조심스럽게 빼내었다. 시커멓게 변한 인공 마력 심장을 협탁 위에 놓은 비안나가 유리병에서 하르투아의 심장을 꺼냈다. 손바닥에 놓인 심장에 마력을 흘려보낸 비안나가 그대로 심장을 델시아의 몸으로 밀어 넣으려 할 때였다.

“……이런.”

“왜 그래요, 비안나?”

클라우드가 이마에 스민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묻자 비안나가 착잡한 낯으로 말했다.

“서로가 거부하고 있어.”

그녀의 말에 클라우드가 입술을 꽉 물었다. 요동치는 마력을 최대한 누르고는 있으나 주인을 잃은 마력은 일전보다 더 거센 움직임을 보였다. 최대한 힘을 쓰고 있건만…….

“제가 어떻게든 제어하고 있는데……. 마력을 더 눌러 볼까요?”

“누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이건. 자칫 하다가는 마력 폭주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그럼…… 이대로 포기해요? 그럴 수는 없어요.”

“그래. 불문율을 어기는 계약을 한 이상, 델시아를 살려 내야 해.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될 것 같네.”

비안나가 느릿하게 심호흡하고는 다시 델시아의 몸에 심장을 밀어 넣었다. 클라우드는 그녀가 심장을 밀어 넣는 순간에 맞춰 델시아의 마력을 진정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꼭 거대한 파도에 홀로 맞서는 듯 숨이 턱턱 막혔다.

그러나 이번에도 델시아의 몸과 하르투아의 심장이 서로를 거부했다. 비안나는 무거운 숨을 내쉬며 클라우드와 눈을 맞췄다. 클라우드는 잔뜩 지친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클라우드.”

“비안나, 한 번만 더요. 한 번만 더 해 봐요.”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진전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한 번만 더 해 봐요.”

계속되는 클라우드의 요청에 비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안나는 자꾸만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클라우드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기로 했다. 그렇게 비안나와 클라우드는 하르투아의 심장을 델시아의 몸에 넣으려 온 힘을 다했다.

델시아의 마력을 억지로 누르던 클라우드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던 찰나, 델시아의 빗장뼈 부근이 환하게 빛났다.

“이건…….”

비안나가 놀란 눈으로 델시아의 빗장뼈를 확인했다. 요정의 문양이었다. 날개와 나뭇잎 그리고 꽃으로 이루어진 문양이 빛을 뿜으며 사라지고 있었다. 요정의 문양이 어떻게 델시아에게 있는 건가, 의문이 드는 것도 잠시였다.

문양이 사라지자 충돌하던 델시아의 마력과 하르투아의 심장이 서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델시아의 몸에 하르투아의 심장이 들어갔다. 제자리를 찾은 듯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었다.

“……비안나, 성공한 거죠?”

“그래, 성공했는데……. 요정의 문양이 왜 델시아에게 있지?”

“요정의 문양이라면, 델시아가 요정 여왕을 도와준 적이 있다고 했어요. 그때 받은 것 같아요.”

요정의 문양은 약속의 증표와도 같은 것이었다. 요정 여왕이 델시아에게 어떤 약속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약속이 적절한 때에 지켜진 듯했다. 비안나는 피로하지만, 밝은 얼굴로 돌아섰다. 그녀의 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침실 뒤편에 모여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성공적이야. 언제 깨어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잘 마무리된 것만은 확실해.”

“오, 세상에. 델시…….”

“아버지, 델시아가……!”

“……델시아.”

“흐, 흐윽. 아가씨.”

비안나의 말에 안심한 이들이 앞다투어 침대로 달려왔다. 비안나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어. 기억을 잃었을 수도 있고, 일시적으로 말을 하지 못한다거나, 무감정해진다거나 할 수도 있어. 물론 부작용이 아예 없을 수도 있지만, 드래곤의 심장을 인간에게 넣어 본 건 처음이라…….”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소. 우리가 어떻게든 노력하면 되오.”

페르도 백작은 붉어진 눈시울로 비안나를 응시했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페르도 백작의 인사에 비안나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하던 무거운 짐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았다. 비안나는 늘 저를 누르고 있던 마음의 짐과 죄책감을 덜어 내고 홀가분해질 수 있었다.

셀레나, 그녀가 언젠가 제게 부탁했었다. 델시아에게 자신의 심장을 주라고. 갓난아이인 델시아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고. 하여 셀레나는 페르도 백작 몰래 불문율을 어기는 계약을 했었다.

당시 셀레나의 마력과 인공 마력 심장은 다행스럽게도 상성이 잘 맞았다. 그래서 오래도록 너끈히 버틸 줄만 알았다. 돌연 그녀의 마력이 폭주해서 모든 게 엉망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때만 떠올리면 못내 마음이 아팠다. 인공 마력 심장을 조금만 더 튼튼히 만들었더라면, 그녀의 마력을 조금 눌러놔 주었더라면 그렇게 허무하게 보내지는 않았을 텐데. 갓난아이인 델시아를 두고 셀레나는 그렇게 떠났다. 그 이후부터 비안나는 마음속에 커다란 짐을 가지고 살아왔다.

비안나는 셀레나를 허무하게 보냈던 때를 생각하자 괜히 울컥하는 기분이 들어 눈가에 손으로 부채질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손부채질을 하는 비안나의 앞에 에드윈이 섰다. 그는 델시아가 살았음에, 델시아가 떠나지 않았음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생명에 지장이 있는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은 없습니까?”

“아마도. 거듭 말하지만, 나도 확신할 수는 없어.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니까.”

“……그렇습니까.”

“다만,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지. 특히나 기억 상실. 그건 너도 겪어봐서 알 테고.”

그녀의 말에 에드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억 상실. 그 부작용을 델시아가 겪게 된다면……. 에드윈이 주먹을 꽉 쥐었다. 만일의 경우는 언제나 존재하니 대비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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