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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할래요, 공작님-71화 (71/94)

<71>

침대에 누워 쉬던 델시아는 엘라의 손에 들린 장미 꽃다발과 그 안에 꽂힌 서신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게 꽃다발과 서신을 보내 올 사람이 없는데, 아놀드가 보낸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설마 에드윈이……. 델시아는 차라리 아놀드가 보낸 꽃다발이기를 바랐다.

“저, 아가씨.”

“웬 꽃다발이야? 보낼 사람이 없는데…… 혹시 오빠가 보낸 거야?”

“그게…… 아델리오 공작님께서 보내셨어요.”

제 눈치를 보며 말하는 엘라의 모습에 델시아가 입을 꾹 다문 채 그녀의 손에 들린 꽃다발을 가만히 응시했다. 정말 에드윈이 보내 온 꽃다발이라니. 에드윈이 보라색 장미꽃 다발을 이곳 영지까지 보낸 저의가 무엇인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을, 그와의 추억이 몽땅 담긴 꽃을 결국에는 기억해 낸 것일까. 델시아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인제 와 무엇을 하겠다고 꽃을 보내 온 것일까.

델시아의 쪽빛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에드윈의 기억이 돌아오기를 바랐던 것도 정말 한때였는데. 그때의 욕심이 너무 과하였다는 것을 책하기라도 하듯 원치 않는 지금에야 에드윈의 기억이 돌아오다니.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나 늦었는데도 에드윈은 자꾸만…….

“아가씨, 어떻게 할까요?”

“에드윈이 보낸 서신 좀 줄래?”

엘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꽃다발에서 서신을 빼내어 델시아에게 건넸다. 델시아는 찬찬히 심호흡한 후에 서신을 펼쳤다.

「델시아, 당신이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서신을 펼치자마자 한눈에 들어오는 활자에 델시아가 눈을 질끈 감고는 종이를 닫았다. 서신을 쥔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제가 보고 싶다니.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서신에 적어 보내다니.

“……엘라.”

“네, 아가씨.”

“이 서신과 그 꽃.”

“네.”

“돌려보내.”

델시아의 짤막한 말에 엘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라 예상하기는 했지만, 돌려보내라는 완강한 태도를 보일 줄은 미처 몰랐다. 엘라는 델시아의 눈치를 살피다가 작게 대답했다.

서신을 읽자마자 눈에 띄게 굳었던 얼굴이 엘라의 대답에 조금 풀어졌다. 델시아는 엘라에게 서신을 건네고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응시했다. 자리에 서서 그녀를 잠시 지켜본 엘라가 꽃다발과 서신을 챙겨서 나갔다.

“…….”

그제야 델시아는 창가에서 시선을 뗐다. 어렴풋이 에드윈을 떠올리며 조금, 아주 조금 그리워하고 추억을 되새겼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가 저를 생각하며 썼을 서신을 마주하니 에드윈을 눈앞에 둔 기분이었다.

델시아의 입가가 바르르 경련했다. 제가 보고 싶다는 문장 하나만으로 이렇게나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데, 혹여 그가 다시 저를 찾아오거나 그와 마주치게 된다면……. 상상만 했을 뿐인데 벌써 참담한 미래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델시아는 침대에 누운 채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그 상태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에드윈이 보낸 서신의 문장이 스멀스멀 머릿속에 밀려들어 눈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한숨을 뱉어 낸 델시아는 제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안 돼. 그래서는 안 돼.”

복잡한 심경을 누르듯 뱉어 낸 작은 중얼거림은 금세 공기 중에 흩어졌다.

해가 높이 떠올랐다. 곧 클라우드가 방문하여 델시아의 치료를 도울 시간이었다. 델시아는 꽃다발과 서신을 처리하고 돌아온 엘라의 도움을 받아 준비를 마치고는 응접실로 내려갔다.

클라우드는 아직 도착 전이었다. 델시아는 클라우드가 올 때까지 응접실에 앉아 차를 마시기로 했다. 오늘따라 찻잔을 든 손이 떨려 왔다. 잠시 제 손을 내려다본 델시아는 미간을 찡그리며 힘을 주었다.

클라우드의 도움을 받아 상태를 유지하고는 있다지만, 나날이 악화하는 것만 같았다. 제가 클라우드의 치료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한 달이나 버틸 수는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입이 텁텁했다.

“아가씨, 클라우드 님께서 도착하셨어요.”

“……그래.”

상념에 잠겨 있던 델시아가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클라우드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오늘도 커다란 후드를 뒤집어쓰고 온 클라우드는 문이 꾹 닫힌 것을 확인한 뒤에야 후드를 벗었다.

“클라우드, 어서 와.”

“기운이 없어 보여.”

“응. 그럴 만한 일이 조금 있었거든.”

“괜찮아?”

맞은편에 앉은 클라우드가 눈을 맞춰 오며 물었다. 델시아는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괜찮지 않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 늘 괜찮아야만 한다. 그렇게라도 제 주변인의 걱정을 덜어 내는 게 속 편했다.

“기운이 있어야 마법이 잘 들지.”

걱정 어린 잔소리를 한 클라우드가 델시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클라우드의 손 위에 제 손을 얹은 델시아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클라우드, 네 생각에는…….”

“응.”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 것 같아?”

델시아의 손목을 잡고 마력을 흘려보내려던 클라우드의 손이 멈칫거렸다.

“…….”

클라우드는 숨을 삼켰다. 그러고는 델시아의 몸속에 마력을 흘려보내며 뒤늦게 대답했다.

“오래.”

“……정말?”

“응. 아주 오래.”

덤덤한 듯 내뱉는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그러나 클라우드의 손에서 새어 나오는 새하얀 마력에 정신이 팔린 델시아는 눈치채지 못했다. 클라우드는 델시아의 마력이 반발하지 않게 아주 느린 속도로 제 마력을 넣었다.

“델시아.”

“왜?”

“너야말로 어떻게 생각해?”

“어떤 걸?”

클라우드의 물음에 델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네 생각에는 네가 얼마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음…….”

예상치 못한 질문에 델시아가 잠시 고민하듯 눈을 끔벅거렸다. 기다란 속눈썹이 빠르게 너울거리다가 이내 멈췄다.

“한 달?”

길어야 한 달. 그렇게 대답한 델시아의 눈이 반달처럼 접혔다. 길어야 한 달일 것이다. 클라우드의 도움을 받는 지금도 이런데, 이런 몸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는가. 그리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겠지.

때로는 버티는 것보다 포기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며 스스로를 놓아 버리게 될 터이다.

“델시아.”

“응.”

“내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리 없잖아.”

너무나 차분한 목소리에 델시아가 시선을 돌려 그를 응시했다. 클라우드는 진지한 얼굴로 델시아를 마주 보고 있었다. 잠시간 입을 다물고 있던 델시아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은 델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클라우드.”

늘 그렇듯 델시아는 고맙다고 대꾸했다. 마력을 불어넣어 델시아의 몸을 안정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또한 까다로웠다. 클라우드의 이마가 땀으로 젖어 가는 것을 볼 때면,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가 친구라는 이유로 클라우드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잘 알기에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클라우드를 응시하던 델시아가 일순 기침을 토해 냈다. 빈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고 한참 기침을 한 델시아가 숨을 몰아쉬었다.

“델시아, 괜찮아?”

클라우드가 놀란 목소리로 묻자 델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가…… 피가 나잖아.”

클라우드의 말에 델시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제 손바닥을 확인했다. 클라우드의 말처럼 제 손바닥은 피로 흥건했다. 델시아가 당황한 낯으로 입술을 달싹거렸다.

“크, 클라우드. 이건…….”

“…….”

“이, 이건 일시적인 거니까 아버지랑 엘라에게는 말하지 말아 줘. 응?”

델시아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클라우드에게 잡힌 손목이 조금 시큰거렸다. 클라우드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 듯했다.

“저기. 클라우드.”

“……응.”

“언제 끝나? 나 손을 닦아야 할 것 같은데…….”

델시아가 작은 소리로 묻자 잠시 말이 없던 클라우드가 딱딱하게 대꾸했다.

“……금방 끝나.”

델시아는 클라우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잠자코 기다렸다. 십여 분이 지나고 치료를 마친 클라우드가 델시아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델시아는 그가 놓아주자마자 제 손바닥을 닦을 손수건을 찾았다.

그러나 이미 피가 말라붙은 손바닥을 물 한 방울 머금지 않은 손수건으로 닦을 수 있을 리 없었다. 클라우드는 방황하는 델시아의 손목을 쥐고 조그맣게 주문을 읊조렸다. 그러자 그녀의 피가 선연하던 손바닥이 금세 깨끗해졌다.

“고, 고마워.”

“델시아.”

“응?”

“점점 치료 시간이 길어지고 있어.”

클라우드가 잇는 말에 델시아가 어색하게 웃었다. 클라우드가 어떤 의도로 말하는지 잘 알았기에 그렇게라도 웃어넘기고 싶었다.

“네 몸이 점점 망가지고 있기 때문에 치료 시간이 늘어나는 거야.”

그러나 그가 치료 시간이 길어지는 이유를 덧붙여 말하자 어색하게 웃는 것으로 무마할 수 없었다. 입술을 달싹거리던 델시아가 조용히 사과했다.

“……미안해.”

“델시아 네가 나한테 미안할 게 뭐 있어.”

델시아의 사과에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 클라우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였다면 전부 비워 내어 바닥을 드러냈을 케이크 접시와 찻잔이 그대로였다.

“클라우드, 케이크 안 먹어?”

“응. 오늘은 이만 가 볼게. 생각할 게 좀 있어서.”

클라우드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델시아가 미처 인사할 틈도 없이 클라우드는 저택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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