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데, 델시!”
“델시아!”
델시아의 어깨를 하나씩 붙잡은 페르도 백작과 아놀드가 손을 바르르 떨었다. 델시아에게 몸 하나 제대로 일으킬 정도의 힘조차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깊은 잠에 빠져들기 전에 느꼈던 것처럼 이번에도 심장 부근이 뻐근하다는 것을 느낀 델시아가 밭은 숨을 뱉었다. 작은 움직임이었을 뿐인데, 전력 질주라도 한 사람처럼 진한 탈력감이 들었다.
“아, 아버지……. 오빠…….”
갈라진 그리고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을 잇는 델시아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작은 두려움이 속에서 움트고 있었다. 에드윈이 가질 부작용만 생각하느라 미처 묻지도, 가늠하지도 못했던 제 부작용을 느끼고 나서야 실감 났다.
막연히 괜찮을 줄로만 알았던 게,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게 얼마나 건방진 생각이었는지 깨달았다. 제 몸을 지탱하는 단단한 손들이 없었다면 델시아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델시아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이, 이게. 이게…….”
“오, 델시…….”
델시아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페르도 백작과 아놀드의 눈시울이 덩달아 붉어졌다. 간신히 눈을 뜬 델시아의 상태가 우려했던 것보다 더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직후이기 때문일까, 그들은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아낼 수 없었다.
가문을 책임지고 이끌어나가는 가주로서의 체통도, 기사라는 그럴듯한 직위도 곧 죽을 사람처럼 구는 가족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데, 델시아…….”
영롱하게 빛나던 동생의 눈동자가 꺼멓게 죽었다. 아름다운 보석과 견줄 만큼이나 아름답던 눈동자가 빛을 잃었다.
……전부 자신 때문에.
델시아의 어깨를 그러쥔 아놀드의 손등에 핏줄이 섰다. 뼈대만 간신히 잡히는 야윈 어깨가 손아귀에 들어오자 참을 수 없이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흐, 흐윽.”
아놀드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흐느꼈다. 제 동생이 상반신을 일으켜 앉는 것조차 버거워한다는 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신처럼 튼튼하지는 않았어도 건강한 축에 속했던 델시아가, 반송장처럼 파들거린다는 게 정말 현실이란 말인가.
상상해 본 적 없는 현실을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세게 깨문 아랫입술에서 검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송골송골 맺히던 핏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에, 에드윈……. 에드윈은요? 에드윈은, 하아. 잘 돌아갔나요?”
제대로 쉬어지지도 않는 가쁜 숨을 뱉어내며 묻는 첫마디가 에드윈의 상태라는 게, 힘겹게 버티던 가족들의 마음을 여러 차례 할퀴었다.
꺼멓게 죽은 눈동자가 에드윈의 이름을 읊조리고 나서는 작은 빛 조각을 내보였다. 그 조각을 외면할 수 없었던 페르도 백작이 델시아를 품에 끌어안았다.
세게 건드렸다가는 부서질 것만 같은 유리 장식품을 만지듯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커다랗지만, 긴장으로 힘줄이 도드라진 손이 델시아의 머리통을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델시아를 진정시키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진정시키려 이어지던 손길이 잦아들었다.
“아델리오 공작은……, 잘 돌아갔단다.”
“아, 아아……. 다행이에요.”
잘 돌아갔다는 한마디에 델시아의 낯빛이 밝아졌다. 창백하게 질렸던 뺨에 옅게나마 붉은 기가 맴돌았다. 꼭 작은 꽃잎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페르도 백작은 눈을 질끈 감으며 델시아의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델시아의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헝클어져도 다정한 손길은 계속됐다.
모든 게 좋아질 거라고, 델시아는 오래 살 거라고. 반드시 그렇게 만들 거라고. 속으로 수없이 되뇌고 되뇐 페르도 백작이 델시아를 침대에 눕혔다. 옅은 홍조가 도는 딸아이의 얼굴이 못내 원망스러웠다. 이 순간조차도 사랑스러운 딸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공작의 안위를 확인하자마자 안도하는 제 딸이, 자신의 생이 얼마나 남은 줄도 모르고 안심하는 제 딸이.
정말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미안하구나, 델시. 미뤄둔 일이 많아 가봐야 할 것 같다.”
“괜…… 하아, 괜찮아요. 어서 가보세요.”
“……수프를 올려보낼 테니, 식사하거라.”
“네, 그럴… 게요.”
희미하게 이어지던 대답은 얼마 들리지 못하고 가라앉았다.
페르도 백작은 주먹을 꽉 쥐며 델시아의 침실을 나섰다. 걸음을 옮기는 페르도 백작의 뺨이 투명하고 뜨거운 눈물에 한가득 젖어 있었다.
“오빠도 바쁠 텐데……,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해.”
“아니, 아니야. 하나도 바쁘지 않아, 델시아.”
무릎을 꿇고 침대에 팔을 걸친 아놀드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놀드는 델시아의 작은 손을 끌어와 제 손안에 감추듯 넣었다. 따뜻하지만, 힘없는 손이 아놀드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그 작은 손이 너무나 어여뻐 아놀드는 차마 손을 쥐지도, 펴지도 못했다.
가만히 내려다보며 기도하듯 중얼거릴 뿐이었다.
우리 델시아에게 기적이 일어나기를, 제 몫의 행운을 델시아에게 나눠주시기를. 작은 중얼거림은 바람이 되어, 살짝 열린 창밖으로 흩어졌다.
“아가씨.”
앤이 문을 두드리며 델시아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 문을 쳐다본 아놀드가 델시아 대신 답했다.
“들어와.”
“……아가씨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수프 그릇이 놓인 트레이를 든 앤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문이 완전히 열리기도 전에 다급한 걸음으로 델시아의 곁에 섰다. 델시아의 쪽빛 눈동자가 다정하게 휘어있었다.
다정하게 휜 눈을 한 델시아에게 해야 할 이야기를 떠올린 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가씨.”
아랫입술을 깨물던 앤이 입을 열었다. 수프를 조그만 협탁에 내려놓은 앤이 침을 꼴깍 삼켰다. 중죄를 고하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양손을 배꼽 앞으로 모은 앤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델리오 공작님께서…….”
“에드… 윈은 좀 어떻대?”
“좋으, 좋으시대요……, 그런데…….”
“……앤?”
앤의 눈이 질끈 감겼다. 아놀드와 델시아는 앤의 말을 기다리며 그녀를 쳐다봤다.
“렌토가 그러기를, 아델리오 공작님께서……, 기억을 못 하신대요.”
“아……, 그 이야기라면, 이…미 알고 있어.”
“다른, 다른 건 다 기억하시는데 아……, 아가씨만요.”
“……어?”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델시아가 이어진 말에 입을 다물었다. 머릿속에 모든 것을 기억하지만, 저만은 기억하지 못하는 에드윈의 모습이 뭉게뭉게 그려졌다.
제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차갑게 뱉어대는 말씨와 태도를 하는 에드윈의 모습이.
그래도……, 그래도 이름 정도는 기억해주지 않을까. 아. 그럴 리 없겠지. 저를 가만히 봤으면서도 끝끝내 누구인지 기억해내지 못한 에드윈인데. 제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다.
에드윈이 기억을 잃는다는 이야기는 비안나에게 이미 들어 알고 있었으니까 괜찮았다. 그러나 저만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델시아는 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다른 것들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에드윈은 델시아만을 잊은 것이다. 델시아만을…….
“괘… 괜찮아. 이미 각오했던 일이니까……, 그러니까 괜찮아.”
각오. 그 단어가 벌어질 일들의 방비책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델시아의 얼굴이 가라앉았다. 자신은 아주 작은 기적. 그것만을 바랐을 뿐인데 실낱같은 확률로 얻어걸릴 기적. 정말 그 하나만을 바랐을 뿐인데.
언제나 그렇듯 기적은, 빠져나올 길이 없는 구덩이 속에서 간신히 내민 손을 빗겨나간다. 잡을 옷깃조차 남겨두지 않고.
***
해가 진 창밖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심장을 주기 전 마음을, 페르도 백작가의 전경을 꾹꾹 담아두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필 저에 대한 기억만을 잃은 에드윈에게 제 마음을 온전히 전하는 일이 어려워졌으니 말이다. 자신이 눌러 담은 마음이 그에게 잘 전해졌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우울한 상황에서도 델시아의 머릿속에는 온통 에드윈을 향한 걱정뿐이었다. 저를 비웃으며 멍청이, 얼간이, 바보라고 중얼거려도 에드윈을 향한 걱정은 멈출 수가 없었다. 델시아가 잘 쉬어지지 않는 숨을 어떻게든 뱉어내고, 조금만 움직여도 저릿저릿한 심장을 움켜쥐고 창문 앞에 섰다.
창틀을 잡은 델시아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어둠의 장막이 드리우기 시작한 창밖의 풍경은 실로 아름다웠으며 소중했다. 자신이 심장에 남긴 소중한 추억을 에드윈이 언젠가는 꺼내서 봐주지 않을까.
설령 그 언젠가가 다음 생이 된다고 하더라도, 델시아는 버틸 자신이 있었다. 에드윈이 살아있다는 것. 그것이 델시아를 버티게 했다. 델시아가 침대를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몇 걸음 가지 않아 주저앉게 되었지만, 델시아는 웃었다.
심장이 달아날 것처럼 뛰어대도 델시아는 행복했다. 델시아의 에드윈이 괜찮다는데, 멀쩡히 숨을 쉬고 똑바로 걷고 정상적으로 행동한다는데.
델시아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다행히도 다른 모든 것들은 기억한다는데…….
“……아.”
델시아의 뺨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꾸역꾸역 어떻게든 삼켜낸 줄로만 알았던 슬픔이 몸집을 불렸다. 카펫 위에 주저앉은 델시아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입을 틀어막는 델시아의 손이 파들거렸다.
“으… 흐흑. 흐, 으으윽.”
억눌린 흐느낌이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나와 침실 안 공기에 녹아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기와 섞인 흐느낌은 문에 나 있는 작은 틈새 밖으로는 새어나가지 않았다.
귓가가 먹먹했다. 목이 메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그리고 가슴이, 가슴이 아팠다.
너무나도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