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만할래요, 공작님-4화 (4/94)

<4>

“신체 일부?”

페르도 백작의 물음에 델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체 일부라 하면…….”

페르도 백작이 말끝을 흐리며 델시아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델시아가 침을 삼켰다. 심장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했다가는 반대할 것 같아 부러 두루뭉술하게 말하였는데, 도리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듯했다.

어떤 것으로 대체해야 할지 고민하던 델시아의 머릿속에 신체 일부이기는 하지만,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을 법한 것들이 떠올랐다.

“네. 제…… 손톱이랑 머리카락을 조금…….”

“정말 그런 것으로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이번에는 아놀드가 반문했다. 결국, 가족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델시아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거짓말이 아니라면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했을 테니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속으로 사죄의 말을 수백 번도 더 읊조렸다.

“델시아, 솔직히 나는 이해가 안 돼. 손톱이랑 머리카락 몇 개로 죽은 사람을 살리는 건 흑마법 같은 거 아니야?”

“아니야.”

“뛰는 심장을 다시 집어넣는 것도 아니고 손톱과 머리카락으로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건…….”

너무 이상하잖아.

아놀드의 말에 델시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델시아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모든 것을 실토해야 할까, 혹은 에드윈을 살려내는 것을 허락받지 못하는 것일까, 그런 걱정이 앞서던 찰나였다.

“아놀드, 그만하거라. 델시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할 리 없잖니.”

“당연히 저도 그러리라 생각하는데 조금 이상해서요.”

“일단 델시, 이 이야기는 저녁에 다시 하자꾸나. 응? 지금은 너무 갑작스러워서 어떤 결정도 쉽게 할 수 없을 것 같구나.”

“……네.”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 페르도 백작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델시아의 둥그런 머리통을 두어 번 쓰다듬고는 아놀드를 데리고 집무실을 나갔다.

남겨진 델시아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가족들에게 거짓을 고한 자신이, 그렇게라도 허락을 받아내고자 한 자신이 너무나 미웠다. 자신이 거짓을 고하는 순간마저도 저를 걱정하던 가족들에게 어떻게……. 물기가 차는 눈을 몇 번 껌벅거린 델시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 제 생각에는-”

“아놀드,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려무나. 델시가 우리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페르도 백작과 아놀드가 나누는 대화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 대화를 듣던 델시아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침실로 올라갔다. 침대에 걸터앉아 스스로 책하던 델시아에게 엘라가 찾아왔다.

“아가씨, 기분이 안 좋으세요?”

“아니야. 괜찮아.”

“표정이 안 좋으셔서요. 혹시 걱정이라도 있으신 거예요?”

엘라에게조차 말 못 할 걱정이라면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 알릴 수 없었다. 힘없이 고개를 내저은 델시아가 엘라의 손을 꼭 잡았다.

“아가씨?”

“생각해보니까 엘라의 손을 이렇게 잡아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서.”

“갑자기 왜…….”

“그냥. 꽤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으면서 엘라를 세심하게 챙겨주지는 못했잖아.”

델시아가 그렇게 말하며 빙긋 웃었다. 작고 따뜻한 엘라의 손을 다시 잡는 날이 올까.

페르도 백작과 아놀드가 나누던 대화를 미루어 보았을 때, 아마도 긍정적인 결과가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제 심장을 에드윈에게 준다면 엘라는 물론이고 가족들과 사용인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테고. 그 모든 것을 각오한 적은 없었기에 델시아의 마음이 덜컥 아려왔다.

사실 제가 각오하는 것과 제 주변 사람들이 각오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저는 에드윈을 위해 희생했다, 그런대로 괜찮은 결정이었다. 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눈을 감으면 되지만, 남겨진 주변 사람들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그런 부분까지 생각이 닿자 문득 마냥 고생만 시킨 것 같아서 엘라에게 미안해졌다. 제대로 된 휴가 한 번 보내준 적도 없을뿐더러 늘 걱정만 시켰으니까. 이참에 휴가를 보내주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그리고 이번 일이 무사히 성사되기 위해서라도 엘라는 곁에 없는 편이 나았다. 엘라는 제 상태나 생각 따위를 누구보다도 기민하게 알아차리기 때문에 계획이 금방 들통날 가능성이 컸다.

가라앉은 눈으로 엘라의 손등을 바라보던 델시아가 작게 말했다.

“생각해보니 제대로 된 휴가 한 번 보내준 적 없는 것 같아.”

“네?”

“엘라, 내일부터 일주일 동안 쉬다가 와.”

“하지만 상심이 크실 아가씨를 두고 어떻게 제가…….”

엘라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부정적인 뜻을 보이자 델시아가 단호하게 몰아붙였다.

“괜찮아, 엘라.”

“아가씨, 너무 갑작스러운데 백작님과-”

“아버지께는 내가 잘 이야기할게. 괜찮으니까 다녀와.”

델시아의 말에 엘라는 기뻐하기보다는 조금 어두운 낯을 했다. 평소였다면 기뻐하며 여행을 계획했겠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묘하게 변한 델시아의 분위기와 상황도 염려스러웠고.

엘라는 방금 델시아가 한 이야기를 페르도 백작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게 날이 저물고 해가 떠올랐다. 아침 식사 후 가족들과 집무실에 앉은 델시아가 다소 긴장한 얼굴을 했다. 아침을 먹던 중 가족들이 반대를 불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게다가 자신을 앞에 두고 조금 뜸을 들이며 말하기를 망설이는 가족들의 모습도 긴장에 한몫했다.

“음, 델시.”

“네, 아버지.”

“말하기 전에 우선 엘라와 관련된 이야기부터 해야겠구나.”

“네?”

그 말에 델시아가 의아한 기색을 내비쳤다.

“……엘라요?”

“그래. 델시 네가 엘라에게 휴가를 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엘라에게 휴가를 권하는 것을 무어라 하려는 것은 아니란다.”

“그럼…….”

“다만, 엘라가 휴가를 권하는 델시 네 표정이 좋지 않아서 걱정된다고 하길래 한번 물어보려는 것뿐이다.”

페르도 백작이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델시아를 바라봤다.

“엘라에게 숨기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

“네?”

“에드윈을 살리려는 네 계획 말이다.”

“……아.”

그제야 델시아는 페르도 백작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페르도 백작은 자신이 그런 뜻으로 휴가를 권했으리라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상은 전혀 아닌데 말이다.

델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페르도 백작의 뜻이 맞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 델시. 이 아비가 네 뜻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았구나. 엘라에게는 일단 휴가를 다녀오라고 말했단다.”

“죄송해요. 제가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괜찮아, 델시. 네가 사과할 것 없단다.”

그렇게 델시아를 다독인 페르도 백작이 이내 아놀드와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살짝 주억거렸다.

“델시.”

“네.”

“네가 했던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봤단다. 여러 가지 방향으로 말이야.”

“……네.”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생각해봤다는 말에 델시아의 얼굴이 다시금 긴장으로 물들었다. 잠시 말을 멈추고 뜸을 들이던 페르도 백작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정말 머리카락과 손톱이 대가의 전부라면……, 네 뜻대로 해 보려무나.”

“정, 정말이요?”

“대신 모든 것은 아비와 아놀드가 보는 앞에서 이루어져야 할 거야. 잘 알겠니?”

“……아버지와 오빠 앞에서요?”

쉬이 답을 내놓기에는 조금 곤란한 이야기였다. 실제로 쓰이는 것은 손톱이나 머리카락 따위가 아닌 제 심장이었으니. 그 모습을 본다면 페르도 백작과 아놀드가 길길이 날뛰거나 가슴 아파할 것이었다. 잘못하다가는 에드윈을 살리기도 전에 끌려 나올지도 모르고.

그런 이유로 델시아가 대답을 망설이자 페르도 백작과 아놀드가 의아스러운 얼굴로 기다렸다.

“왜 그러니?”

“그게…….”

“어려운 일이니?”

“아, 아뇨. 아니에요. 괜찮을 것 같아요.”

혹여 가족들의 마음이 바뀔까, 서둘러 괜찮다고 대답한 델시아가 살짝 웃었다. 가족들이 동의해줄 줄은 몰랐기에 조금 벅찬 기분이 들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쑤셔왔다. 가족들을 속여서 끝끝내 허락을 받아 냈다는 게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에드윈을 되살리는 날에 모든 것을 들킬 게 분명했지만, 그래도 그를 살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당장 오후에 비안나에게 가서 가족들이 허락했음을 알리고 어서 에드윈을 살리자고 말할 생각에 떨렸다.

가족들과의 이야기가 끝나고 델시아가 침실로 올라왔다. 에드윈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것도 잠시였다. 가족들을 속였다는 생각에 금세 죄스러운 마음과 자책이 다시금 찾아와 그녀를 괴롭혔다.

눈을 질끈 감은 델시아가 치맛자락을 꽉 쥐었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 남은 시간 동안 속으로 사죄하고 또 사죄하며 허락되지 않는 용서를 비는 수밖에 없다고 해도 말이다. 우선은 에드윈을 살리는 것부터 해야만 했다.

차가워진 몸으로 외로이 있을 에드윈을 살리기 위해…….

델시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남은 아침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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