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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화 외전5: 설산의 스노우 드래곤, 하이사(3) (146/148)

146화 외전5: 설산의 스노우 드래곤, 하이사(3)

“끄으윽!”

데샤루트는 노른자를 반 이상 먹고는, 남은 것을 발로 조심조심 눌러서 동그랗게 경단을 만들고 도로 배에 붙였다.

그러고는 잠을 청하려고 눈을 스르르 감았다.

페이가 루키우스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저걸 다 먹으면 어떻게 되나요?”

“원래 저거 말고 주는 거 따로 있었어.”

구체적으로 어떤 먹이였는지는 절대로 알려 주지 않았다.

그 와중에, 하이사는 데샤루트에게 다가가며 설득하기 바빴다.

“이봐, 데샤루트? 우리는 너를 오래도록 기다려 왔다. 설산에서 태어난 너의 친척과도 같은 수룡들이 바다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나와 함께 가서….”

“크아아아!”

데샤루트는 듣기 싫다는 듯 머리를 저어 댔다.

그러면서 꼬리를 더욱 말아서 노른자 경단을 못 보게 가렸는데, 하이사는 부주의하게 더 다가서고 말았다.

“일단 내 말을….”

촤아악!

경계심이 강한 해츨링은 꼬리를 휘둘러 하이사를 노렸고, 그는 마법으로 피하기는 했으나 기분이 상했다.

“이봐! 어린 해츨링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굴어도 되는 건 아니다.”

“그만하세요.”

“뭣?”

보다 못한 페이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하이사의 소매를 붙들고 어딘가를 가리켰다.

“방금 먹었으니 이제 잘 시간이라서 보모가 올 거거든요.”

“…보모?”

끼에에엑!

어디선가 괴상한 포효가 들리더니, 어떤 생물체가 이쪽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드래곤과 닮았으되 그보단 날렵하고, 날개의 크기도 다소 작은 드라칸.

간만에 본체로 돌아간 모이테트라 바누스는 페이에게 고개를 까딱하고는, 천연덕스럽게 러그 위로 올라섰다.

드라칸이 감히 드래곤의 영역을 침범하다니.

하이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는 장면이었다.

어린 해츨링이라도, 저런 괘씸한 놈은 꼬리를 쳐서 즉사시켜야 할 거 아닌가!

“꾸우, 꾸우우.”

“하…?”

그제야 ‘조금 귀여운 해츨링’다운 모습으로 운 데샤루트는 아기 같은 소리를 내며 모모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어기적대면서 두 날개로 해츨링을 덮은 모모는 금세 드르렁대며 잠에 빠졌다.

먹고 자기를 좋아하는 모모에게 그야말로 맞춤인 일과인 셈.

“끄으으으….”

“피유우….”

사이좋게 코로 중창을 하며 자는 드라칸과 해츨링을 본 하이사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열등한 드라칸이 드래곤을 돌봐? 이건 있을 수도 없는 일!

“이게 무슨…!”

“쉬잇, 아가 드래곤 깨요.”

페이가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주의하라고 말하자, 하이사는 더욱 기가 막혔다.

인간 여자와 말이 통할 리가 없지.

그는 루키우스를 사납게 노려봤다.

“왜?”

“…왜냐니. 저게 말이나 되는 거요, 루키우스?”

“저래야 잠이 잘 온다는데 어떡하나. 어미 잃고 남의 손으로 겨우 탈각한 해츨링인데. 노른자를 빼앗아서 굶기고 보모를 내쳐서 오들오들 떨면서 자라고?”

루키우스는 자기 입으로 말하면서도 실실 웃고 있었다.

실은, 모모를 데샤루트의 임시 보모로 쓰라는 건 페이의 묘안이었다.

먹이양이 늘면서 몸이 커진 데샤루트는 어딘가에 끼어 안락하게 자길 원했고, 모모는 하루 중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자고 싶은 게 꿈이잖나.

그렇다면 서로 사이좋게 몸을 맞닿고 재우면 된다!

‘후후, 페이는 역시 천재라니까. 황태자의 말이 틀리지 않았어.’

“크… 크윽….”

“하이사, 자네 말마따나 일족 최후의 희망인 해츨링을 잘 키워야지. 어린 시절에 그깟 드라칸을 보모로 뒀다고 손가락질당한 드래곤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네.”

“그야 지금까지 그런 드래곤이 없었잖소!”

“너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모를 텐데? 말해 봐야 누가 믿을 건가?”

당했다!

루키우스가, 찰나에 불과한 저 인간 여자와의 사랑놀이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걸 약점으로 삼아서 데샤루트를 데려가려 했거늘….

하이사는 허무한 눈으로, 쿨쿨 자는 데샤루트를 바라보았다.

깨어서 한참 캬악거릴 때 뇌리로 들어온 데샤루트의 감정은 분명했다.

‘나는 이곳에서 지내고 싶고, 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않길 원한다. 나를 내버려 두라.’ 그게- 데샤루트가 하이사에게 요구한 사항이었지.

완벽하게 졌군.

김이 빠진 하이사는,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기에 다짐을 받아 뒀다.

데샤루트가 자라는 동안 그와 적절한 접촉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당사자의 마음이 바뀌면 언제라도 수룡의 둥지 혹은 그가 사는 설산으로 오도록 조율할 것.

…물론, 루키우스가 실컷 빈정대는 말이 따라오는 것만큼은 막을 수가 없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단 저 보모 드라칸은 못 내주니 온기가 있는 가짜 본 드래곤이라도 준비해 놓든가. 해츨링을 ‘잘’ 키우려면 말이지.”

“인간도 아니고 드래곤이 본 드래곤을 입에 담소!”

“뭐 어때? 나는 본 드래곤이 될 일은 없거든. 너나 조심해라.”

‘크윽…!’

자기는 강하니까 괜찮다고 낄낄대는 얼굴을 한 대 후려쳐 줄 수만 있다면!

하이사는 뒤집히는 속내를 겨우 다스리고, 그가 살던 설산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칸 제국에 눈이 내리는 계절.

활동기를 선언한 하이사는 하염없이 피어난 눈꽃을 보다가 자기 권속, 아이언 골렘에게 말했다.

“난 잠시 다녀올 곳이 있으니 레어를 지켜라.”

끄덕.

육중한 머리가 움직이는 모습을 다 보기도 전에, 하이사의 몸이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드래곤은 위대한 존재.

그 당연한 이치를 뼛속에 깊이 새긴 하이사는, 루키우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고대 샤르프 제국이 건재하던 시기에도 다소 괴팍하고 이상한 드래곤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우매한 인간들이 하나둘 드래곤을 섬기기 시작하자 적극적으로 나서서 용신전을 짓는 드래곤-예를 들면 하이사-이 있는가 하면.

루키우스처럼 인간들을 쭉 지켜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도와주고 입을 닫는 자도 있었다.

그래, 그건 하이사가 태어나기 전에 있던 일.

‘인간 중에서도 쓸모없기에 노예가 된 자들의 해방 전쟁을 왜 도와줬단 말인가?’

불쾌하다.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다가 기어이 그, 연약한… 으음, 마법 연구는 꽤 한 눈치지만. 아무튼 인간 여자와 짝을 이뤘다는 게 기분 나빠!

찾아가서 죽여 버릴까.

그러면, 고룡 루키우스는 어떤 얼굴을 할까.

리치로 되살려 곁에 둘까? 시체를 눈앞에 두고 비통하게 울부짖다가, 하이사를 죽이려고 들까?

루키우스가 그 인간 여자에게 보호 마법을 걸어 뒀다는 사실도 잠시 잊은 하이사의 눈빛이 음습해졌다.

드래곤은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포악한 족속.

루키우스에 이어 데샤루트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하이사가 고개를 막 들었을 때였다.

‘…음?’

“걸어 봐, 옳지! 잘하고 있어!”

쿠궁, 쿠궁.

공동에서 보았을 때와 똑같은 크기의 데샤루트가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고 있었다.

두툼한 다리가 움찔거리며 걸을 때마다 밑의 흙이 패여 인간 여자의 로브에 다 튀고 있었다.

“그냥 이리 오라니까.”

루키우스가 한숨을 쉬며 그 여자를 불러내려 했다.

“왜요, 더 볼래요. 데샤루트! 더 해 봐, 응?”

“끼이잉!”

페이의 부추김에, 데샤루트는 끽끽대며 애교를 부렸다.

인간 여자 주제에 위대한 드래곤을 애완용처럼 가지고 놀다니! 용서할 수 없다, 본때를 보여 줘야 마땅하지.

하이사가 이를 악물었을 때였다.

‘윽!’

그의 드래곤 하트로 타인의 마력이 은밀하게 감싸들며 콱 쥐는 듯한 느낌.

루키우스다!

손쓸 새도 없이 제압을 당한 그의 뇌리에, 루키우스의 엄포가 쏟아졌다.

「감히 내 페이를 두고 말 같지도 않은 상상을 해? 하이사, 나는 널 세 번이나 봐줬고 더는 기회가 없다. 현존하는 드래곤 중 한 마리가 본 드래곤이 되다니 불쌍하군.」

‘아… 안 돼, 제발… 크윽…!’

“데샤루트?”

“끼이잉!”

페이와 놀고 있던 데샤루트가 헐레벌떡 달려와 하이사를 살짝 밀었다.

마지못해 인간의 몸으로 변해 있던 그의 발이 한 발짝 떨어져서 옆으로 가자, 그제야 마력이 풀렸다.

‘알고… 한 건가….’

“으응? 왜 그래요? 데샤루트도 왜?”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놀고 싶었나 보지.”

고고하기 짝이 없는 루키우스의 조롱이 귓전에 쏟아졌다.

“후….”

루키우스의 손바닥 위에서 한바탕 놀아났음을 절감한 하이사는 다 포기했다.

그나저나 나를 세 번 봐줬다는 건 또 무슨 소린지.

그의 요구 사항대로 인간들의 황태자에게 적당히, 설산 근처에 자생하는 약초밭의 출입 정도를 허용한 하이사는 한숨을 쉬었다.

믿고 싶지 않다, 이렇게나 강해진 육신으로 완패라니.

황궁의 의자에 축 늘어진 그에게 페이가 사뿐사뿐 다가왔다.

“왜.”

“하이사 님, 기분이 안 좋은 건가요?”

“인간하고 더 할 말은 없다.”

퉁명스레 내뱉은 하이사는, 이 인간 여자의 삶이 상당히 굴곡졌음을 떠올렸다.

뭐라더라? 기억을 잃고서 고아로 살다가, 자기 신분을 친구에게 빼앗겼다고 했나. 지금은 다 제자리로 돌렸다지만 그런다고 겪은 아픔이 사라지진 않겠지.

하이사의 생각에 그보다 더 기막힌 건 이거였다.

대체 어쩌다가 루키우스같이 괴팍한 드래곤과 엮여서 반려가 되어 살고 있단 말인가? 그게 반드시 행복한 끝으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는데.

페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었다.

“설산으로 돌아가시고, 나중에 또 들러 주세요. 데샤루트가 잘 자라고 있는지 보러 오셔야죠.”

“넌 운명을 믿나?”

하이사는 그런 말을 불쑥 내뱉었다.

고대의 인간들은 유독 운명, 점술, 이런 것들에 의존하곤 했다.

한 인간이 불길한 별을 타고 태어났다는 점괘를 받으면 아이를 내버리기도 일쑤였지.

…하이사는, 그런 아기를 데려다가 자기 용신전에서 키워 주는 것쯤은 봐주었다.

노예는 싫어했으면서도, 노예가 자기 아기만은 운명을 다르게 만들려고 몰래 내돌리는 일도 눈을 감아 줬다.

“예전엔 차분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지금은… 음….”

“…….”

“안 믿는 편인데요.”

“뭐?”

흥미로운 대답에, 하이사의 눈초리가 그녀에게 향했다.

지상 최강의 종족인 드래곤을 눈앞에 두고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는, 이상한 인간 여자.

이 여자의 얼굴에는 빛나는 행복이 가득했다.

저건 어디에서 오는 믿음일까.

“운명을 믿지 않는데 행복해 보이는군.”

“네. 마법을 배우게 되면서 그런 생각에서 벗어났어요. 예전엔 정해진 일을 되돌릴 수 없다고 여겼는데, 마법은 제게 새로운 길을 열어 줬거든요.”

“흠….”

그게 전분가.

아닌 것도 같아 보이지만, 생글생글 웃는 저 인간 여자는 그러한 말을 하이사 앞에 냉큼 다 털어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너에겐 무슨 이야기가 있는 거지. 그 짧은 생을 살아왔으면서, 일기 한 권을 채울 만큼의 일을 겪었나?

하이사는 불쑥 호기심이 생겼으나, 그걸 티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고룡 루키우스의 여자.

지난번처럼 공공연하게 건드리려고 생각을 했다가 또 걸리면 이번에야말로 본 드래곤 신세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여자로군.”

“네?”

“나중에 설산으로 놀러 오든가. 데샤루트와.”

하이사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그 여자의 손에 자그마한 구슬을 남겼다.

하얀 눈꽃 모양이 새겨진 구슬은, 그가 지내는 설산의 레어와 연결된 보물.

루키우스만 쏙 빼고 말한 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도망치듯 자기 레어로 돌아간 하이사는 그날부터 매일 기도했다.

루키우스가 저 연약한 인간 여자와 헤어지고 진정한 드래곤의 마음을 되찾길, 해츨링 데샤루트가 저 둘을 버리고 자기를 찾아오길, 루키우스의 시대가 저물고 나 하이사의 시절이 오기를!

그러나, 그 셋 중 무엇도 이뤄지지 않았다.

하이사가 본 그대로 페이는 매일같이 행복한 생을 누렸고, 그도 결국에는 그녀와 약간의 친분을 맺었다.

…후회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어쩌면, 봉인된 루키우스보다 하이사가 더 먼저 깨어났더라면.

그가 다가섰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로 페이는 그의 마음에 쏙 들었거든.

물론 그 생각을 한 직후에 루키우스에게 걸려, 그때야말로 진정한 죽음의 공포를 누렸지만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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